시리즈고북손의 포갤 문학

[포갤 문학] 나의 라디오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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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북손

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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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3. 13:2014,729 읽음




-"오늘은 누가 당첨이 될까? 규화의 암호, 시작합니다!"-


쾌속선 아쿠아호에 오르며

나는 한손에 포켓 기어를 들고 라디오 채널을 돌리고 있었다.


탁 트인 하늘과 맑은 해변이 보이는 테라스에 앉아

나는 햇살을 받으며 그렇게 라디오를 경청하였다.


"오늘도 꽝이군."

나는 중얼거리며 라디오채널을 돌렸다


시간을 때우기엔 성도의 라디오 채널은 그야말로 제격이었다

아마 금빛시티를 중심으로 라디오가 대유행인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라디오 좋아하세요?"

오박사의 포켓몬강좌가 흘러나올 즈음,

건너편의 누군가가 웃으며 나에게 물어왔다


유행에 맞지 않는 이상한 트렌치 코트를 걸친,

조금은 특이하게 생긴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 다가왔다


"그렇습니다만.."

라디오에선 DJ 호두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오박사의 명랑한 목소리가 '오늘의 포켓몬은 뭘까요?' 따위의 이야기를 꺼내고있었다.


나의 건너편 자리에 주섬주섬 앉던 그 남자는 웃으며 나에게 이야기했다.


"와, DJ 호두네요. 제가 정말 좋아하거든요."


나는 무심한 표정으로 나의 포켓기어에 손을 대는 그 남자를 바라보았다.

다른 사람의 물건을 마음대로 만지는 그 모습이 썩 내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포켓몬강좌를 좋아하시나보군요."

나는 그에게 성의 없는 질문을 대충 던지었고, 이내 그는 기쁜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그럼요. 사실 호두를 좋아하는게 더 크지만요."


그렇게 말하는 그의 모습은 아마 라디오의 열성 팬이었을 것이다.

나 또한 라디오의 애청자이지만

적어도 저런 모습으로 비치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더 좋아하는 DJ도 있어요. 안타깝게도 성도의 라디오에서는 들을 수 없지만요."

"네?"

조금의 흥미를 느낀 내가 그에게 되묻자, 그가 조금은 얼굴을 가까이하곤 나에게 말하였다.


"관동지방에도 라디오타워가 하나 생겼어요. 생긴지 얼마 안되었지만 컨텐츠가 얼마나 풍부하다고요."

"그런가요?"

"네. 관동엔 아직 가보신 적이 없나보군요? 그중에 제가 가장 좋아하는 DJ가 한명 있답니다. 이미 관동에선 인기스타이지만요."


그의 이야기에 나는 꽤나 흥미를 찾을 수 있었다.

"채널 이름이 뭔데요?"

"그 마을 그 사람의 DJ 리리스, 관동에 가시면 꼭 들어보세요."


그의 목소리가 나에게 각인을 남기듯 스쳐지나갔다.

이윽고 거대한 경적소리가 울리었고,

쾌속선 아쿠아호는 그렇게 우리에게 출항을 알리었다.

트렌치코트의 그 사내는 성급히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나에게 작별인사를 하였다.

"저는 이만 한숨 자러갑니다. DJ리리스, 꼭 들어보세요."


그는 끝까지 그렇게 말하며 나에게 손을 흔들어보았다.

그러한 그의 모습에 나는 무심하게 인상을 찡그릴 뿐이었다.



갈색시티 항구에 도착한 나는 천천히 짐을 챙겨 석양이 흐르는 부둣가로 나왔다.


바닷바람 소리에 맞추어 길을 걷다가 나는 문득 포켓 기어를 꺼내들다가 트렌치코트 사내의 말을 떠올릴 수 있었다.

전화번호부에 먼저 들어가려던 나는 방향을 바꾸어 라디오를 틀었다.



-"오늘도 은빛극단! 오늘의 주인공은 누구?"-


잠시 채널을 돌리던 나는 인상을 찡그렸다.

나의 귀를 자극하는 그 소음들은 형편없었다.


"조잡하군."


관동의 라디오는 성도의 발달된 버라이어티 채널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미 금빛시티 최신 트랜드에 익숙해진 나의 귀에 이러한 라디오는 전혀 와닿지 않았다.


그곳에는 고리타분한 채널과 포켓몬피리 따위의 촌스러운 라디오 잡음마저 섞여있었다.


그렇게 무심하게 채널을 돌리던 나의 귓가에 순간 무언가 들려왔다.


-"하하하! 그래서 뭐라고요?"-

지직거리는 소리 너머로 전파를 잡자 이내 선명하게 대화 내용이 들려왔다.

-"네. 그래서 제 생각엔 갈색시티 사람들은 좀 시끄러운것 같아요!"-

"뭐??"

나는 순간 놀라서 소리쳤다.

포켓기어를 바라보는 나의 동공이 떨리었다.

이런 대화는 방송에서 절대로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마치 그런 나의 반응을 비웃듯이 사회자는 웃으며 깔깔거렸다.

-"하하! 리리스씨 그런 말을 하면 안되죠!"-

-"안되긴 뭐가 안되요! 해야할 말은 해야죠! 제생각에 마티즈씨는 좀 느림보같아요!"-


나는 순간 알 수 없는 당혹감에 그 자리에 멈추었다.

포켓 기어를 들고 있는 손이 덜덜 떨렸다.

-"그럼 다른 마을 이야기도 한번 해주시죠!"-

-"글쎄요... 그럼 이번엔 블루시티 이야기를 좀 해볼까요?"-


명랑하게 울려퍼지는 당돌한 목소리,

그러나 나는 이미 알고있었다

나의 귓가를 타고 들려오는 목소리

-"이슬씨는 아마 바람을 피고있을지도?"-


거리낌없이 아무런 이야기나 내뱉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이미 푹 빠져있었던 것이다.




"회색시티의 웅이는 너무 멍청한것 같네~"

깔깔거리는 패널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점심으로 샌드위치를 먹고 있었다.


냅킨으로 입을 닦는 동안 저 멀리서 말끔한 양복을 차려입은 별 내키지 않는 녀석이 다가왔다

"너무 라디오에 빠져 있는것 아닌가?"

내 앞자리에 앉은 검은 양복의 신사는 그렇게 말하였다.

나는 라디오 소리를 조금 줄이고는 곁눈질하듯이 그를 쳐다보았다.


"점심시간에 내 마음대로도 못하나?"

나의 물음에 그는 머쓱해진 표정으로 상관없다는듯 손짓하더니, 이내 나에게 말하였다.

"그건 아니지. 하지만 대충 샌드위치로 끼니를 때워가면서까지 라디오를 듣는다면 조금 문제가 있지."

그의 이야기에 나는 조금 인상을 찡그리곤 라디오의 볼륨을 조금 올렸다.

라디오에선 리리스가 명랑한 목소리로 깔깔거리고 있었다.

"상관말게. 관동지방은 아닐지 몰라도, 성도지방에선 라디오가 대유행이니까. 문화적 차이로 넘어가자고."

"리리스인가?"

나의 이야기를 무시한 채 그가 물어왔다. 내가 불쾌한듯 쳐다보자, 그가 계속하여 말하였다.

"그마을 그사람이라면 나도 자주 듣는 편이지. 저 DJ, 아주 당돌하다고. 위험한 발언도 서슴없이 하고말이야."

"자네도 꽤나 즐겨듣는 모양이군."
 
나는 이제서야 그와 대화가 통하는듯 하였다.

그가 사용하는 언어와 내가 사용하는 언어에 처음으로 공통된 단어가 생겼다.

그는 조용히 안경을 고쳐쓰며 나에게 답하였다.


"물론. 관동지방에선 들을만한 라디오가 없거든. 알다시피 생긴지 얼마 안되었으니 말이지."

라디오를 타고 리리스의 목소리가 계속하여 흘러나왔다. 그 남자는 계속하여 말하였다.

"세간에서는 관동의 라디오가 금빛시티의 열풍에 뒤쳐지지 않느라 너무 급하게 준비한건 아니냐는 질타도 나오고있지."

"그런가?"

"그렇고말고. 보다시피 채널도 엉성하고, 컨텐츠도 부족하지. 마구잡이로 끼워넣은 편성표가 대부분일 뿐이야."

나는 그의 이야기에 수긍하였다.

내가 그의 이야기를 경청하자,

그가 웃으며 나에게 한마디 말을 덧붙였다.


"그런 상황에서 나타난 리리스는 말하자면,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지. 구세주이고 말이야. 적어도 라디오 방송국 입장에선 그렇겠지."

나는 그러한 그의 견해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리리스의 방송은 그야말로 가뭄의 단비와 같았다.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가 않지."

그렇게 말하는 그의 목소리 너머로, 라디오에선 여전히 리리스의 해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홍련섬은... 쾅! 하고 터져버린 팬케이크같아요. 마치 내 요리실력이랄까?"-

-"하하하하! 리리스씨, 방금 발언은 너무 수위가 쌘데요?"-

-"괜찮아요! 그런다고 홍련섬 사람들이 고소라도 하겠어요? 그렇죠 강연씨?"-


그녀는 마성의 여자였다

도대체 어떻게 방송에서 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일까


"그런데말이야.."

갑작스런 그의 목소리에 나는 그를 돌아보았다.

"저 리리스라는 여자, 사실 나는 한번도 본적이 없지."

"... 뭐라고?"

내가 묻자, 그가 잠시 생각하더니, 다시 나에게 말하는 것이다.

"물론 사진으로는 본적이 있지. 그리고 데뷔 초기에는 TV에도 몇번 나왔던것 같아. 하지만 그 이후로 한번도 본적이 없어."

"신비주의 컨셉인건가..."

내가 중얼거리자, 그가 웃으며 말하였다.

"그럴지도 모르지."

"뭐 팬싸인회 같은것도 안하는건가?"

나의 물음에 그는 모르겠다는 듯이 손짓하였다. 그리곤 가만히 손목시계를 바라보았다.

"이만 가봐야겠네. 실프는 점심시간을 철저히 준수하는것을 좋아하니 말이야. 자네도 그만 놈땡이부리고 나와 함께 돌아가지."

그렇게 말하는 그를 바라보며 나는 알겠다는 눈짓을 보내곤 포켓기어를 대충 낚아채었다.

나의 천사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이내 꺼버리곤, 나는 그렇게 사무실로 돌아갔다.





잠시 여러 사무실을 돌아다니며 업무를 보던 나는 무언가 특이한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어느 홍보부서로 보이는 그곳에선 수많은 직원들이 새로운 포스터를 찍어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곳에는 그들이 수없이 고민하고 의논끝에 만들어낸 홍보문구가 포스터에 크게 찍혀있었다.


'관동 라디오 오디션. 당신도 스타가 될 수 있다.'

상투적이고 진부한 문구에 나는 그다지 그곳에 시선을 오래 두지 않았다.

하지만 나의 흥미를 이끌었던 점은

왜 이런 포스터가 실프의 어느 홍보부서에서 만들어지고 있냐는 것이었다.


"실례합니다만, 이 포스터는 어디에 사용되는 것입니까?"

나의 물음에 한 여사원이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나오던 포스터를 마저 뽑아내고는 나에게 말하였다.

"전국에 배치될 포스터에요. 알다시피 저희 라디오타워는 지금 컨텐츠가 모자르잖아요?"

"네?"

내가 되묻자, 그녀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당황하여 얼버무리듯이 다시 물었다.

"그러니까, 저희... 라디오타워라고요?"

"네. 저희 회사가 급하게 부지를 얻어 라디오타워를 건설했잖아요. 금빛시티에 뒤쳐지지 않으려고 말이죠. 그런데 모든게 엉망이라, 저희만 고생이죠."


나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나는 얼마 지나지않아 그 사실을 스스로 납득할 수 있었다.

관동의 모든 인프라와 시설, 그리고 대부분의 산업과 기술들은 전부 실프의 아래에 있었다.

라디오타워가 실프의 소속이었다 할지라도 전혀 이상할것이 없는 이야기였다.


"아무튼 그렇군요. 수고가 많으십니다."


그렇게 말하며 뒤돌아서는 나에겐 묘연한 두근거림이 솟구치었다.

언젠가 DJ 리리스를 만날 수도 있겠다는 작은 기대감이 가슴속에서 솟구쳤다.





"견학이 불가능하다고요?"


내가 따지듯이 묻자,

엘리베이터를 가로막은 경호원이 단호하게 나를 내려다보았다.


"네. 불가능합니다."

"아니, 잠시만요. 무슨 라디오타워가 견학이 불가능해요?"

내가 묻자, 그가 딱딱한 어조로 준비된 대답을 꺼내놓았다.

"금빛시티의 라디오타워가 테러당한 지금, 저희도 보안에 각별한 주의를 요하는 중입니다."
 
"이봐요, 금빛시티는 오히려 그런 사건을 겪은 후로도 전층 견학이 가능하단 말입니다."


나의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저 단호하게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나는 분한 마음으로 라디오타워를 빠져나왔다.


그 완고한 경호원에겐 나의 그 어떤 이야기도, 목에 걸린 사원증마저 아무런 소용이 없었던 것이다.

모처럼의 작은 휴가를 내어 찾아온 이 산골 마을에 허무한 허탈감이 밀려들었다.


천천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기며,

거대한 바위산과 무성하게 자란 나무 사이로 높게 솟아오른 라디오타워의 모습은 그야말로 이질감이 느껴졌다.

이런 산골마을에 자리잡은 문명의 산물을 바라보는 그 누구라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마을을 벗어나려던 나에게 순간 누군가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얼마 지나지않아 그가 누구인지 알아챌 수 있었다.

"누추한 곳까지 잘 찾아오셨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그는 보라 타운의 촌장,

후지 노인이었다.


"라디오타워에 관심이 있으신 모양이군요?"

"이곳은.."

내가 주위를 둘러보자 노인이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이곳은 안식처입니다. 포켓몬타워가 철거되고나서 장소를 옮겨 이곳을 만들었지요. 많이 누추하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그는 그렇게 인자한 웃음을 내보이며 나에게 다시 말하였다.

"저 라디오타워가 들어서면서 보라타운도 조금은 활기를 되찾았다고들 하지요."

창문 밖으로 우뚝 솟은 라디오타워를 바라보던 그의 표정이 왠지 씁쓸하였다.

"하긴 묘지로 된 거대한 탑보다는 라디오 방송국이 사람들의 입맛에 맞았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라디오타워는 언제쯤 생겼는지요?"

나의 물음에 후지 노인은 가만히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이내 나에게 말해주었다.

"사실 얼마 되지는 않았습니다. 제 기억엔 2년도 채 안되었다고 생각하는데요.. 갑작스런 일이었죠. 포켓몬타워를 철거한다더니.."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 또한 침울한 기분에 잠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곳에는 분명 보라 타운 특유의 우울한 마을 분위기가 한몫했을 것이다.


"그런데 라디오타워에는 무슨 일이신지요?"

갑작스런 그의 질문에 나는 생각을 멈추곤 시선을 그를 향해 돌렸다.

"아, 그냥 견학차 왔습니다. 아무래도 관동 최대 규모의 방송국이니까요. 한번 구경와보고 싶었습니다."

"아, 그렇군요.. 견학이라, 최근까지는 없었던 드문 일이라서요."

나는 왠지 그러한 그의 말이 의아하게 들리었다.

그의 말대로 마을은 한산해보였다.

텅 빈 마을에는 이렇다할 상점가또한 없었다.

관동 최대의 방송국이 버젓이 있는데도 말이다.


나는 웃으며 노인에게 말하였다.

"하긴, 저도 당황했는걸요. 어렵게 찾아왔는데 견학이 불가능하다고 해서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한가지 더 질문하였다.

"그렇다면, 어르신. 혹시 이곳에서 기다리면 출퇴근하는 관계자들을 볼 수 있을련지요?"

나의 질문에 노인은 이상하리만치 대답이 없었다.

무언가 이상함을 느낄때쯤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니요, 보지 못할 겁니다."

"네?"

노인의 그 공허한 표정이 나의 가슴에 깊게 자리잡았다.

그는 그저 그렇게 말하며 쓸쓸히 창 너머 라디오타워를 바라볼 뿐이었다.



다시 노랑시티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나의 가슴은 깊게 짓눌려있었다.


'저는 지금까지 단 한번도 본적이 없어요. 적어도 리리스란 사람은 이곳에 출근하지 않습니다.'


그의 기묘한 말이 나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그의 말을 잊으려하였다.


"무언가 착각한 것이겠지."

노인의 말이 사실일리가 없었다.

그런 거대한 방송국에

몇명의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 빼고는 유동 인구가 없다는 사실이 진실일 리가 없었다.


"그래. 그 노인네가 하루종일 라디오타워만 쳐다보고 산 것도 아니잖아?"



그날의 헛걸음은 나의 기억 한켠에 걸려 사라지지 않았고

쏟아지는 업무 속에서,


나는 틈틈히 라디오를 들었다.

그녀는 나의 라디오 스타였으며

내가 관동에서 버티게끔 해주는 원동력이었다.


만날 수 없더라도 상관이 없었다.

나는 그저 이렇게 그녀와 소통할 수만 있으면 되었다.


-"체육관 관장의 비상...이라고 하는 것은 약간 나무늘보..일지도"-


패널들의 목소리 너머로,

순간 그녀의 목소리가 침울하게 느껴졌다.


말투가 조금 이상해서인가?

하지만 언제 그랬다는듯이 그녀는 다시 활력을 되찾아 소리치는 것이다.

-"블루시티 사람들은 굉장히 시끄러워요!"-


무언가 안도의 기색을 갖추던 나의 앞에

어딘가 낯익은 사람의 모습이 앉았다.


유행에 맞지 않는 트렌치코트

일전에 아쿠아호에서 만났던 그 사람이었다.


"당신은..?"

"리리스의 라디오, 정말로 들어보셨군요."


그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나의 포켓기어를 만지는 것이었다.

나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포켓기어의 볼륨을 줄이며 나에게 말하였다.

"들어보니 어떤가요?"


나는 그 질문의 의도를 간파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가 진지한 표정으로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다시 말을 덧붙였다.


"알다시피 관동의 라디오컨텐츠는 너무나도 급박했어요. 24시간 송출되는 라디오 전파를 채우기엔 지금도 부족한 편이지요."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나의 물음에도 그는 아무런 말 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잠시의 침묵 너머로 리리스의 목소리가 소곤거리듯이 전해져왔다.


-"이슬씨는 아마.. 바람을 피고있을지도?"-


리리스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트렌치코트의 사내를 쳐다보았다.

그를 바라보는 나의 눈빛은 그에게 이렇게 비추어졌을 것이다.

'이 라디오방송이 어때서?'

하지만 가만히 고개를 젓는 사내의 눈빛은 이렇게 나에게 답변하는듯 하였다.

'잘 들어보세요.'

'조금만 더 자세히'

그의 눈빛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고,

다시 한번 라디오소리가 나의 귓가에 닿았다


-"안되긴 뭐가 안되요! 해야할 말은 해야죠! 제생각에 마티즈씨는 좀 느림보같아요!"-


"그래서 이게 뭐 어쨌다는.."


"이 방송, 재방송이잖아요."

순간, 무언가 이상한 감정이 나의 뇌리를 타고 들어왔다.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분명하였다.

나는 이 방송을 이전에 들은 적이 있었다.

그 사내는 한숨을 내쉬며 포켓 기어를 나에게 돌려주었다.

"당신은 이곳에 온지 얼마 안되었기 때문에 잘 모르겠지만, 오랫동안 청취하였던 저는 알 수 있어요."

그는 고개를 조금 앞으로 숙이고는,

나에게 가까히 말하였다.


"이 방송, 계속해서 녹화된 방송만을 들려주고 있어요." 


"뭐?"


나의 당황스런 표정 앞에서,

그가 깊게 눌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사실입니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녹화된 방송뿐이에요. 물론 새로운 방송도 조금은 섞여있어요."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그의 표정은 더더욱 침울해졌다.


순간 다시 리리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체육관 관장의 사도....이라고 하는 것은 .. 잘 사용하고 있겠지.."-


"이거네요."

그는 그렇게 말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방금 들으신게 새로 녹화되고 있는 방송입니다."


눈앞의 트렌치코트 사내가 그렇게 말하였고,

나는 그의 말이 귓가에 들리지 않았다.

나의 모든 감각은 전부 라디오로 향해있었다.



"저게 도대체.. 무슨 말이야?"


"마치 기계가 말하는것같죠?"

트렌치코트 사내가 거들었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의 눈앞까지 얼굴을 들이밀었다.


"왜 저런식으로 말하는겁니까? 어디가 아픈거에요?"

"나도 모르죠."

그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왜 그런지는 나도 몰라요. 그리고 대부분 사람들은 신경도 안써요. 뭐가 이상한지 조차 눈치채지 못한다고요."

그는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튼 이렇게 다시 만나는 것도 인연이군요. 당신과는 왠지 말이 통할것 같아서 한번 이야기 해봤습니다."

"잠시만요!"

내가 부르는 소리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 손을 들어보이며 짧게 답하였다.

"급히 가던길이 있어서요. 저는 이만..."


그는 그렇게 말하며 인파속으로 사라졌다.


밀려오는 허무감 속에서

리리스의 목소리만이 나의 귓가에 닿았다.


-"18번도로의 불놀이꾼은... 정말 캐터피야.."-

나의 시선이 천천히 포켓기어로 향하였다.

-"7번도로의 낚시꾼.... 이라는것은..."-

라디오를 듣는 나의 눈빛이 떨리었다.

그 누가 들어도 정상이 아니었다.


-"하하하! 리리스씨 그런말을 하면 안되죠!"-

잡음이 섞이듯이 패널들의 목소리가 교차하였다.

-"그런다고 홍련섬 사람들이 고소라도..."-

잠깐의 노이즈,

라디오를 듣는 나의 귓가로

나는 순간 나의 귀를 의심하였다.

-"구해줘"-


분명히 들리었다.

다시금 깔깔거리는 패널들의 목소리 너머로,

나는 확실히 들을 수 있었다.

-"하하하, 리리스씨. 그런말은 하면 안되죠."-

나는 낚아채듯 테이블 위의 포켓기어를 쥐었다.

순간 손이 미끄러져 포켓기어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런 얘기는 하하하! 하면 안되죠. 절대로"-


포켓 기어를 다시 집어들던 나의 손이 떨리었다.

나의 심장 너머로 무언가 묘연한 감정이 솟구쳤다.



깊은 밤이 되자,

나는 조심스럽게 후지 노인의 집에서 나와 어둠 속의 라디오타워를 바라보았다.

갑작스런 방문이었지만 후지노인은 흔쾌히 자신의 집에 잘곳을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그가 깊히 잠든 사이, 나는 이 어둠 너머로 몸을 밀어넣었다.


어둠에 잠긴 보라타운은 그 어느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라디오타워에 다가갔다.


라디오타워의 불은 완전히 꺼져있었다.

그러나 나의 라디오에선 여전히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카드키를 가져다댔다.

실프의 직원임이 확인되자 문이 열렸다.


어두운 로비 너머로,

나는 이전의 엘리베이터로 다가갔다.

엘리베이터는 작동되지 않는 듯 불이 꺼져있었다.


잠시 엘리베이터를 바라보던 나는 문득 굳게 닫힌 엘리베이터 측면의 작은 틈을 찾을 수 있었다.


저 틈은 무엇일까?

순간 문에 손을 대자,

마치 끼익 열리듯이


엘리베이터의 문짝이 열리었다.


'뭐야 이건..'


이건 엘리베이터가 아니었다.


눈앞으로 어두운 통로 너머로 기나긴 계단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조심스럽게 포켓 기어로 눈앞을 비추며 계단에 발을 디뎠다.

"엘리베이터가 아니었다고..?"


계단을 오르며,

심장이 쿵쾅거렸다.


무언가 정상이 아니었다.

이윽고 저멀리 다음 층으로 보이는 공간이 나타났고


그 어둠에 싸인 넓은 빈 공간이 눈에 다가왔다.

그곳엔 말그대로 아무것도 없었다.

위로 올라가는 계단도

특별한 물건도 사람도


그야말로 텅 비어있었다.


새하얀 벽에는 달빛을 비추는 작은 창문같은 것이 붙어있었고

시선을 돌리자 저 멀리 작은 문으로 보이는 것이 다가왔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곳으로 향하였다.

어둠 속에서 그곳은 너무나도 멀게 느껴졌다.


침을 삼키며,

포켓기어의 불빛이 가리키는 문패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DJ 리리스'

라디오에선 리리스의 목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굳게 닫힌 문을 조금씩 밀어내자,

그 너머로 무언가 소리가 들려왔다.


-"2번도로의.. 곤충채집소년... 이라는것은... 정말 발랄해.."-

나는 그것이 라디오에서 나는 소리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눈앞의 무언가 아른거리는 불빛이 비치었다.


나는 천천히 들고있던 라디오를 끄며,


눈앞에 자리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하하하, 리리스씨. 오늘은 수위가 쌘데요?"-

고개를 들자


작은 방 너머로 모니터 여러 개가 기계에 뒤엉켜 붙어있었다.

그곳에선 패널들의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기계 불빛들이 깜빡이었고


모니터에 처음보지만 낯설지 않은 얼굴이 비치었다.


-"홍련섬은 마치 팬케이크 같아요!"-

과거에 녹화된 리리스의 모습이었다.


나는 멍하니 눈앞에 비치어지는 화면을 바라보았다.


아른거리는 불빛이 작은 방을 비추었다.

그렇게 나의 눈앞에는 기계로 된 나의 신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었다.


나의 라디오스타

나의 천사를 향해서

나는 가만히 무릎을 꿇었고

그렇게 나는 마치 경건한 기도를 드리듯이 고개를 숙이는 것이다.


적막한 어둠 너머로

나의 천사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실프의 회사원...이라는것은.. 지금 내 앞에있어.."-




-라디오스타 fin





DJ 리리스는 2세대에서 등장하는 인물입니다.

그녀가 진행하는 방송 '그 마을 그 사람' 은 마치 로봇이 말하는 것만 같은 어법에 맞지 않는 대사,

그리고 아무렇게나 짜집기한 특정 지역이나 인물을 비하하는 내용으로 유명했습니다.


하지만 리리스가 라디오를 송출하는 관동의 라디오타워는 견학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우리는 절대로 DJ리리스의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리리스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쾌속선 아쿠아호에서 트렌치 코트를 입고 리리스를 언급하는 포켓몬 매니아와 대화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그녀가 있는 곳은 견학이 불가능하다.



게임에서 리리스의 모습을 볼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녀의 방송이 이토록 기계적이었던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이상하게도 골드/실버 버전이 리메이크되면서 DJ 리리스의 존재는 사라졌습니다.

이젠 홀연히 사라져버린 리리스의 모습이 정말로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고북손의 포갤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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