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해상도 촬영장비 등 힘입어
미처 몰랐던 몸 구조들 찾아내
2015년 뇌막 감싼 림프관 규명
‘뇌엔 림프관 없다’는 믿음 깨져
“뇌 노폐물 빠지는 배수관” 추정
머리뼈-뇌막 잇는 통로도 찾아
뇌 염증 연구에 새 단서 될 듯
“저도 해부학을 배운 의학자입니다. 머리뼈와 뇌막 사이에 미세 통로(채널)가 있다는 동료 연구자의 얘기를 처음 듣고는 사실 믿지 못했어요. 그런 게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았을 리 없잖아요. 그런데 사람 머리뼈에서 그 구조를 직접 보고 너무나 놀랐죠.”
김동억 동국대 의대 교수는 “역시 연구자의 적은 고정관념인 것 같다”면서 “겸허해져야 한다는 연구 자세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미국 하버드 의대의 마티아스 나렌도르프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에 참여해 면역세포들의 이동 경로가 되는 이 통로 구조를 연구해왔다.
뇌로 향하는 면역세포의 직통로
그 미세 통로를 쥐에서 처음 찾아낸 건 나렌도르프 교수 연구진이다. 이들은 그 통로를 사람 몸에서도 확인한 한국 연구진과 함께 이런 발견을 지난달 과학저널 <네이처 뉴로사이언스>에 발표했다.
나렌도르프 연구진은 뇌 손상이나 뇌경색 때 뇌에 출현하는 ‘호중구’라는 염증성 면역세포들이 어디에서 오는지 그 경로를 쫓고자 했다. 흔히 알려져 있듯이 팔다리뼈 같은 큰 뼈의 골수에서 만들어져 오는지, 또는 가까운 머리뼈 골수에서 오는지를 식별하기 위해, 연구진은 면역세포들이 출처별로 다른 빛의 형광을 띠게 하는 실험 기법을 이용했다. 그렇게 살펴보니, 뇌 손상이나 뇌경색이 일어난 쥐의 뇌에 출현한 면역세포들은 주로 머리뼈에서 만들어져 이동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실시간 현미경 관측으로 그 면역세포들이 쥐 머리뼈 안쪽에서 뇌막으로 곧바로 이동한다는 것을 알아냈고 이동 경로에서 미세한 통로 구조를 찾아냈다.
사람 머리뼈에도 그런 통로가 있는 걸까? 인체 머리뼈 연구는 김 교수 연구진이 맡았다. 그는 “병원에서 뇌경색 환자에 감압 수술을 할 때 제거되는 머리뼈 일부의 구조를 마이크로단층촬영 장비로 살필 수 있었는데, 사실 반신반의 하다가 놀랍게도 그 존재를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런 연구를 종합해, 공동연구진은 뇌 손상이나 뇌경색 때 뇌에 모여드는 염증성 면역세포들이 팔다리뼈 골수에서도 오지만 긴급 상황에선 주로 가장 가까운 머리뼈 골수에서 직접 온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염증성 면역세포의 새로운 통로가 확인되면서 앞으로 뇌 염증질환과 관련해 전에 몰랐던 발견도 이어지리라는 기대가 나온다. 김 교수는 “뇌경색은 물론이고 다양한 염증성 뇌질환이 미세 통로의 면역세포 이동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규명하려는 연구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세 통로의 흐름을 제어할 수 있다면 뇌 염증질환에 대한 새로운 치료법도 얻을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2세기만에 확인된 뇌막 림프계
뇌 주변에서 새롭게 발견돼 주목받는 또 다른 기관은 림프계의 뇌 연결 구조다. ‘제2의 혈관’으로도 불리는 림프계는 혈관처럼 온몸에 퍼져 있는 체액 흐름의 연결망인데, 우리 몸의 노폐물을 운송하기도 하고 면역세포 집합소(림프절)에서 걸러내고 제거하는 면역 기능에도 관여한다. 그동안 뇌와 림프계는 완전히 분리돼 있다고 여겨져 왔다. 19세기 초 이탈리아 해부학자가 인체 해부도에서 뇌까지 이어진 림프계를 처음 제시했지만 학계에선 최근까지도 해부학의 ‘실수’로 평가하며 무시해왔다.
그런데 미국 버지니아대학 의대의 조너선 키프니스 교수 연구진이 2015년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에서 그동안 알려진 것과 달리 뇌를 감싼 뇌막에 림프계가 직접 연결되어 있다는 쥐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뇌막 주변에서 관찰되는 여러 면역세포가 어디에서 어떻게 오는지를 규명하려는 연구를 하다가 림프관의 연결 구조를 보게 됐다고 한다. 핀란드 헬싱키대학 등의 공동연구진도 같은 시기에 비슷한 발견을 다른 의학저널에 발표했다.
키프니스 교수는 <한겨레>에 보낸 전자우편에서 “당시 우리는 그 발견에 너무 놀라 한동안 믿지 않았다”면서 “몇 가지 실험을 거친 뒤에야 우리가 본 것이 진짜임을 확신하게 됐다”고 말했다.
연구에 참여한 하승권 뇌질환뇌졸중연구소 박사후연구원은 “뇌에는 림프관이 없다는 건 너무 확고한 믿음이었다”면서 “그런데 뇌 혈관 영상을 연구하는 우리 연구팀에서 혈관과 다른 독특한 영상 신호를 포착했고 그 즈음에 쥐의 뇌막 림프계를 발견했다는 보고가 나오면서 림프계만을 따로 식별해주는 자기공명영상 조영기법을 개발해 사람 몸에서도 찾아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뇌질환에 대한 새로운 접근
뇌 주변의 새로운 구조 발견은 뇌질환에 대해 다른 접근을 가져다주었다. 여러 후속 연구를 거쳐, 이제는 ‘뇌막에 연결된 림프관이 뇌에 쌓이는 노폐물 등을 뇌 바깥으로 빼내는 일종의 배수구 기능을 한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지난해 10월 스위스 연구진은 뇌척수액이 이런 림프관을 통해 빠져나온다는 것을 쥐 실험에서 밝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보고했다.
하승권 연구원은 “뇌막 림프계 구조는 알츠하이머병을 다른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게 해주며, 또한 이 림프관을 고분자 약물의 뇌 전달 경로로 활용하려는 연구, 뇌로 전이되는 암세포의 경로가 될 가능성에 관한 연구 등 분야에서도 관심 대상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인체 구조는 왜 이제야 과학자들의 눈에 띄었을까? 연구자들은 몇 가지 이유를 든다. 너무 작거나 혈관과 섞여 찾기 힘들다는 점, 그리고 그것을 찾을 이유나 필요가 별달리 없어 평소에 쉽게 지나쳤으리라는 점이 주로 지적된다. 림프계 구조를 새로 발견한 키프니스 교수는 2015년 당시 언론 보도에서 이렇게 말했다. “림프관은 너무 잘 숨어 있습니다. 혈관에 너무 가깝게 있어 림프관의 존재를 쉽게 놓칠 수 있죠. 찾으려는 게 무엇인지를 먼저 알고 있지 못하다면 쉽게 놓칠 겁니다.” 찾으려 해야 찾을 수 있다는 얘기로 들린다. 김동억 교수는 실험장비의 발전을 강조했다. “머리뼈와 뇌막의 연결 통로는 쥐에선 지름 15마이크로미터, 사람에선 지름 100마이크로미터(0.1mm) 정도라 고해상도 마이크로단층촬영 장비가 없었다면 찾기 힘들었을 크기입니다.”
오철우 선임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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