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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세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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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6. 2.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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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세월  /김상문

 

봄 여름 가을 겨울

한세월 한평생 한세상 

나도 나이 들며 철들며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번갈아 살았을까

북쪽 겨울이거나 아니면 

남쪽 여름으로만 살았을까 

 

나무는 거듭거듭 

꽃 피고 잎 피고 열매 맺는데

그냥 저냥 살아온지 몇 몇 해 

딱 한번은 봄이었던 듯 

또는 여름이었던 듯 

어쩌면 열매 맺기도 했을 듯

 

이제는 잎 지고 

물기 마르는 늦가을

세월을 이고 산 

머리에 하얗게 서리 내리고

잎 진자린 듯 검버섯 군데군데

삭정이지려는 듯 

삭신도 버석하다

 

눈마저 침침한데

보이느니 봄도 없는 겨울인가

다시 오는 봄도 봄이면 

좀 좋으련만

봄 없는 겨울이면 

다시없는 겨울도 이려니 

 

쓴 나물 맛보듯 맛들이듯 

그렇게 살려네

옷 껴입고 

벙어리장갑 끼고 털모자 쓰고 

나풀나풀 눈꽃도 보고 

비취인 듯 얼음도 보고

어줍게도 어둔하게도 

즐기듯 살려네

봄 여름 가을 겨울

한세월 한평생 한세상 


(참조: 한세월 http://blog.naver.com/himoon25/220257175190


학생들을 태우고 수학여행을 가다 침몰하여 

노란 끈으로 수 년 세월을 함께 묶어 보내고 

함께 나라도 휘청거리고 여자 대통령도 쫓아낸 

세월호 침몰 사건의 배가 하필이면 이름이 

왜 <세월호>라는 것이었을까?  

왜 서양에서는 '배'를 여성으로 이름지었을까? 

(참조: 한국의 세월호-한 세월 http://blog.naver.com/himoon25/220638922067


배 주인이 배를 바다에 띄우며 

<세월호>라는 이름을 지을 때는 무슨 생각이었을까? 

아이를 낳아 세상이란 바다에 띄우며 

아이의 이름을 <세월>이라고 짓는다면 무슨 생각이었을까? 


먼저 <세월>에 대해서 생각했을 것이다.  

'세월(歲月: 해-세,달-월)'은 한자풀이로 보면 해와 달이 번가르는 것을 말한다. 

해와 달이 번가르는 것은 옛이야기 '떡 하나 주면 안 잡아 먹지!' 의 '해와 달이 된 오누이'도 있다. 

해나 달이 번가르는 것처럼 한없이 흘러가는 ①시간(時間) ②시절(時節) ③세상(世上)을 말한다고 한다.  


'세월'을 일컬어 '세상(世上)'이라고 한다니 새삼스럽지 않은가? 

'세상(世上:인간/일생-세,위-상)'이란 '사람이 사는 곳'이기도 하지만,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 평생~'하듯이 '사람이 사는 것'이기도 하다는 말이다. 

'해와 달이 번갈아 흘러가듯이' 그렇게 살아가는 것 아니겠는가? 


<봄 여름 가을 겨울 / 한세월 한평생 한세상> 


: 봄 여름 가을 겨울 시간이 가고, 시절이 가고, 해가 바뀌어 

한세월 한평생 한세상이 간다. 

한 사람의 한 시절은 한세월, 시절이 흘러 한평생, 평생이 흘러 한세상이다. 


*  

<나도 나이 들며 철들며 / 봄 여름 가을 겨울을 / 번갈아 살았을까> 


: '나'에게 드는 '나이'란 무엇일까? 

'나이'란 '나'와는 상관없는 그냥 365일의 시간일뿐이겠는가? 

'나이'가 '나'이기 위한 시간으로 '나'에게 들어서 '나'를 완성하는 '나이'는 아닐까? 

'철'든다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나'를 알게 된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 '철'이라는 것이 '봄 여름 가을 겨울'로 '철'따라 이루어지는 일들이 있는 것이다. 

'봄'에는 꽃피워서, '여름'에는 열매 맺고, '가을'에는 익어서 거둘 '일'이다.  

그 이룰 '일'들을 이루면서 '철'따라 번갈아 살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북쪽 겨울이거나 아니면 / 남쪽 여름으로만 살았을까>


: 고통이라고 여기는 '겨울'이거나, 내키는 대로 내보이는 '여름'으로만 내내 살았을까 생각해본다. 

 

<나무는 거듭거듭 / 꽃 피고 잎 피고 열매 맺는데 /그냥 저냥 살아온지 몇 몇 해> 


: 한 해 두 해 가면서 벌써 60여 해... 


*  

<딱 한번은 봄이었던 듯 / 또는 여름이었던 듯 / 어쩌면 열매 맺기도 했을 듯> 


: 되돌아보면 '꽃피운' 적도 있었던가? '열매 맺으려 한' 적도 있었던가?  

어쩌면, 정말 어쩌면 '열매 맺기도 했을 듯'하기도... 


<이제는 잎 지고 / 물기 마르는 늦가을 /

세월을 이고 산 / 머리에 하얗게 서리 내리고/ 

잎 진자린 듯 검버섯 군데군데 / 

삭정이지려는 듯 / 삭신도 버석하다> 


: 벌써 60여 해를 살아와 노년 소리를 듣는 나이... 

머리도 하얗게 바래고, 얼굴에는 검버섯, 

팔다리도 나무가지 묵은 삭정이처럼 버석하다. 


<눈마저 침침한데 / 보이느니 봄도 없는 겨울인가 / 

다시 오는 봄도 봄이면 / 좀 좋으련만 / 

봄 없는 겨울이면 / 다시없는 겨울도 이려니>  


: 눈마저 침침해졌는데, 앞으로 다시 볼 봄도 없는 마지막 노년을 맞는가?  

인생의 봄이 다시와서 나무나 풀처럼 다시 살아났으면 좋으련만...

마지막 맞는 노년이면, 다시 또 맞을 노년도 아니려니... 


<쓴 나물 맛보듯 맛들이듯 / 그렇게 살려네 / 

옷 껴입고 / 벙어리장갑 끼고 털모자 쓰고 / 

나풀나풀 눈꽃도 보고 / 비취인 듯 얼음도 보고 / 

어줍게도 어둔하게도 / 즐기듯 살려네 / 

봄 여름 가을 겨울 / 한세월 한평생 한세상> 


: 그나마 한 번밖에 맞을 수 없는 '노년'이라면, 쓴 나물 맛보듯 맛들이듯, 

처음이야 입맛에 쓰기도 하겠지만 맛을 들여 살다보면 쓴 맛도 맛이려니 그렇게 살려고 한다.   

겨울에 옷 껴입고, 벙어리장갑 끼고, 털모자 쓰고, 나풀나풀 눈꽃도 보고, 비취보석인 듯 얼음도 보듯이

노년에 맛들일 수 있는 일들을 찾아 하면서 

물론 어줍기도 하고, 어둔하기도 하겠지만 즐기듯 살려고 한다. 

남은 짧은 노년에도 

봄 여름 가을 겨울 철따라 '일'을 챙기면서 살듯이 

'한세월 한평생 한세상'을 살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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