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올림픽 개회식 잔혹사... ‘홀로코스트’ 개그 논란에 연출가 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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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1.07.22. 오후 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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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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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유명 코미디언 고바야시 겐타로. 도쿄올림픽 개회식 쇼 디렉터를 맡았다. 사진은 '패럴림픽 개회식에 출연하겠습니까'라며 오디션을 보라고 권유하는 포스터에 등장한 고바야시.


도쿄올림픽 개막을 불과 하루 앞두고 개회식 공연 연출자가 해임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대회 조직위원회는 22일 공연 연출감독(쇼 디렉터) 코미디언 고바야시 겐타로(48)를 해임한다고 발표했다. 그가 23년 전 나치의 유대인 대량 학살(홀로코스트)을 소재로 개그를 했던 동영상이 트위터 등에서 급속히 확산되며 비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개회식 음악 담당을 맡은 유명 뮤지션 오야마다 게이고가 수십 년 전 학창 시절에 저지른 잔혹한 학교 폭력 논란으로 지난 19일 사임(관련기사: '도쿄올림픽 음악 담당' 뮤지션도 사임... 조직위 관계자 "저주받은 올림픽")한 데 이어, 개회식 크리에이티브 팀 구성원이 개막을 불과 며칠 앞두고 잇따라 사임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둘 다 과거의 반인권적 행태로 인해 사임했다는 점에서 '다양성과 조화'를 이념으로 내세운 도쿄올림픽의 가치가 큰 상처를 입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바야시 겐타로가 2인조 개그콤비 ‘라멘즈’로 활동하던 초기인 1998년 5월에 발매된 비디오의 한 장면이 담긴 짧은 동영상이 홀로코스트를 조롱했다며 트위터에서 확산되고 있다. 트위터 캡처


문제의 동영상(바로보기)은 고바야시가 과거 2인조 개그콤비 ‘라멘즈’를 결성해 활동하던 초기인 1998년 5월에 발매된 비디오의 한 장면으로, 두 명이 프로그램 제작 방안을 의논한다는 설정하에 진행하는 콩트의 일부분이다. 한 사람이 “문자로 구성된 야구장을 만드는 것은 어떨까?”라고 제안하자 상대방이 “괜찮지 않아? 해 볼까? 마침 이렇게 사람들 모양으로 자른 종이가 많으니까”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상대방이 “진짜? 아, 그 ‘유대인 대량 학살 놀이(ごっこ)’ 하자고 했을 때 말이야”라며 홀로코스트를 희화화한 발언을 한다. 23년 전 일이긴 하지만 인류의 비극인 홀로코스트를 ‘놀이’로 비유한 것이나 이를 개그 소재로 삼은 것 모두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미국의 유대계 인권단체 ‘사이먼위젠털센터’가 21일(현지시간) 이 동영상과 관련해 고바야시 겐타로의 과거 코미디가 반유대주의적이라고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사이먼위젠털센터 홈페이지 캡처


이에 미국의 유대계 권익 옹호단체 ‘사이먼위젠털센터’는 21일(현지시간) 이 동영상과 관련해 고바야시를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은 “고바야시는 ‘홀로코스트 놀이를 하자’는 등 악의적이고 반유대적인 농담을 했다”며 “그는 장애인에 대해서도 불쾌한 농담을 했다고 보도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아무리 창의적인 사람이라도 나치 학살 희생자를 비웃을 권리는 없다”면서 “이 사람이 도쿄올림픽과 관련을 맺는 것은 600만 유대인의 기억을 모욕하는 것이고, 패럴림픽에 대한 잔인한 조롱이다”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고바야시는 조직위의 발표 직후 사과문을 발표했다. 그는 “지적을 받고 당시의 일을 되돌아봤다”면서 “생각만큼 사람을 웃기지 못해 천박하게 사람의 마음을 끌려고 하던 때”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 후 스스로도 좋지 않다고 생각해, 사람에게 상처 주지 않는 웃음을 목표로 하게 됐다”고 회고했다. 이어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하는 직업인 내가 다른 사람을 불쾌하게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 “당시 나의 어리석은 언사가 잘못이었다는 것을 이해하고 반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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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국제부 기자입니다. 3년 간의 도쿄특파원 생활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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