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콜라철학

Scholasticism 음성듣기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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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교부철학에 의해 세워진 기독교 신앙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이를 이성적인 사유를 통하여 논증하고 이해하려 했던 중세 철학 흐름이다. 중세 사람들의 사유와 삶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이후의 사상 발달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기독교 신앙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이를 이성을 통하여 입증하고 이해하려 했던 중세 철학이다. 철학을 신학을 위하여 사용했다는 점에서 교부철학까지 포함한 전반적인 기독교 철학을 지칭하는 용어로도 사용되나 구체적인 내용과 시기에서 교부철학과 차이가 있다. 신학을 뛰어넘어 중세 지식인들의 사유와 삶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이후 근대 철학의 발달에 밑바탕이 되었다. 신앙과 철학을 포함하여 중세의 정치, 경제, 문화 등의 현실문제와도 깊게 관여했기 때문에 ‘스콜라 주의(Scholasticism)’라는 넓은 의미의 명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스콜라 철학이란 용어는 중세 수도원 학교 교사나 학생을 지칭하는 라틴어 스콜라티쿠스(Scholasticus)에서 유래된 말이다. 중세 스콜라 철학이 성직자들을 양성하는 수도원 학교를 통하여 교육되고 크게 발전하였기 때문이다. 중세 저명한 스콜라 학자들 대부분은 이러한 교회 학교에서 학문을 배우고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신앙과 관련된 다양한 철학 이론들은 이와 같은 수도원 학교 즉 중세 대학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논의되었으며 사회 전반으로 퍼져나갔다.

중세 동안 스콜라 철학은 그것이 시작된 학교에만 국한되지 않았으며 유럽 전반에 매우 강렬하고 광범위한 영향을 끼쳤다. 이는 중세 문화의 중심이 지중해에서 알프스 북쪽의 유럽 내륙으로 옮겨가면서 유럽이 점차 종교적이고 초국가적인 모양을 띠게 된 데 있었다. 지식인들 사이에서 공용어로 사용된 라틴어는 학문이 지역과 민족에 구애받지 않고 활발하게 교류될 수 있는 바탕으로 작용했다. 이런 조건 속에서 많은 스콜라 학자들이 이탈리아와 프랑스, 영국을 넘나들며 유럽 각지에서 토론 및 강연 활동을 하였다.

시기적으로 스콜라 철학은 교부철학의 뒤를 이어 발생한 철학 흐름이었다. 학자들은 대체적으로 스콜라 철학 시대를 800년경부터 넓게 16, 17세기까지로 본다. 초기 스콜라 철학 시대인 9세기에서 12세기동안 에리우게나, 안셀무스, 아벨라르 같은 학자들은 스콜라 철학의 토대를 다졌다. 이 시기 동안 스콜라 철학은 때때로 교부 철학의 정통과 마찰을 빚기도 했으나 교부 철학이 세워놓은 기독교 교리를 철학을 사용하여 이해하고 증명하려고 시도하기 시작했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보편논쟁과 같은 신학관련 철학논쟁이 격렬하게 벌어졌다. 스콜라 철학의 전성기인 13세기에는 12세기 동안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고대 문헌의 번역 작업에 힘입어 다양한 고대 그리스 철학 사상이 기독교 사상에 반영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한 고대 철학자들의 사상이 스콜라 철학에 깊이 녹아들었다. 대표적인 전성기 스콜라 학자로는 알베르투스 마그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가 있다. 이후 그 경계가 불분명한 후기 스콜라 철학 시기에는 유명론과 경험에 대한 강조가 스콜라 철학의 뿌리를 점차 흔들기 시작했다. 그러한 경향에 주요한 역할을 한 후기 스콜라 학자로는 로저 베이컨, 윌리엄 오컴 등이 있다. 한편 이 시기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와 같은 스콜라 철학과 관계 깊은 기독교 신비주의 사상가가 등장하기도 했다.

스콜라 철학의 목표는 중세 사람들이 진리라고 믿었던 기독교 신앙에 철학을 이용하여 이성적인 근거를 부여하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스콜라 철학자들은 앞선 사상가들의 저술과 논거를 바로 활용하기 보다는 이전 사상들을 수합하여 비교, 고찰하고 그것을 비판적으로 검증한 후에 원하는 결론을 이끌어냈다. 이러한 비판적 논증은 스콜라 철학 방법론의 대표적인 특징이었으며 후대 사상가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초기

교부철학 시대를 통하여 마련된 기독교 근본 교리에 대해 스콜라 철학적 탐구가 시작된 시기였다. 대부분의 학자들이 카롤링거 르네상스가 본격적으로 결실을 맺은 800년경부터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이 기독교 철학에 대대적인 영향력을 미치기 전인 12세기까지를 초기 스콜라 철학의 시대로 보고 있다. 이 초기 시대를 통해 스콜라 학자들이 등장하고 자리 잡았으며 스콜라 철학 고유의 방법론들이 정립되기 시작했다. 특히 학자들 사이에서는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논의되어 왔던 ‘보편논쟁’이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올라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8세기말 중세 유럽은 카롤루스 대제(Charles the Great, 742~814)의 프랑크 왕국이 대대적으로 영토를 확장하면서 다양한 측면에서도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정치·경제적 권력의 중심이 지중해 연안에서 북부 유럽으로 움직이고 여기에 카롤링거 르네상스까지 더해지면서 중세 문화 전체가 고대 철학과는 또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던 것이다. 특히 권력에 대한 황제와 교황의 경쟁 그리고 교회와 성직자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지식의 발전은 중세문화 전반에 종교적인 색채가 가득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배경 아래서 철학은 신학과 긴밀하게 연결되었으며 9세기에는 그 긴밀함이 교부철학을 뛰어넘는 새로운 중세 기독교 철학 즉 스콜라 철학의 시대가 열렸다.

대표적인 초기 스콜라 시대 학자로는 우선 에리우게나(Eriugena, 810~877)와 안셀무스(Anselm of Canterbury, 1033~1109)를 들 수 있다. 이 둘은 신앙에 유지하는데 있어 이성과 철학의 역할을 강조했던 최초의 스콜라 철학자들로 스콜라 철학의 시조들로 불린다. 이후 보편논쟁이 활기를 띄면서 유명론자였던 로스켈리누스(Roscellinus, 1050~1125?)와 실재론자인 기욤 드 샹포(Guillaume de Champeaux, 1070~1121) 그리고 그 둘의 이론을 조화시키려한 아벨라르(Pierre Abélard, 1079~1142) 같은 스콜라 철학자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특히 아벨라르는 스콜라 철학 특유의 방법이라 할 수 있는 논제에 대해서 찬성하고 반대하는 근거를 변증법적으로 대질시켜보는 방식을 정립하였다. 이 때 근거는 앞선 사상가들의 사상을 조사, 검토하고 이를 비판적으로 검증한 뒤 마련되었다. 

초기 스콜라 철학 시대의 가장 큰 성과이자 핵심은 보편논쟁이라 일컬어지는 보편개념의 의미와 실제 존재여부에 대한 격렬한 사상 논쟁이었다. 초기 스콜라 학자들은 유명론과 실재론으로 나뉘어 혹은 그 중간적 입장에서 대립하였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고대 그리스 철학은 보편논쟁에 근거로 사용되었다. 이 초기 스콜라 철학의 논쟁은 아벨라르에 의해 어느 정도 해결되는 듯 보였으나 후기 스콜라 철학에서 다시 대두되었으며 이후 근대 철학자들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초기 스콜라 철학의 또 다른 성과는 12세기의 스콜라 학자들의 번역 작업이었다. 이슬람 세계와의 접촉으로 12세기 라틴어 번역이 활기를 띠면서 그리스어에서 아랍어로 옮겨진 고대 그리스 사상가들의 작품들이 본격적으로 라틴어로 옮겨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는 13세기 스콜라 철학이 절정으로 향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전성기

13세기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서(自然學書)를 아라비아철학에서 이입함으로써 종래의 신학으로부터는 독립된 지적 연구(知的硏究)가 일어난다. 이 새로운 연구를 대폭적으로 채용하고 게다가 이것을 전통적인 스콜라학의 체계 속에 혼연히 융화시킨 것이 토마스 아퀴나스이다. 신학에 대한 철학의 원리적인 독립성이 유지되면서 전체는 신학의 체계로서 종합되었다. 이에 비해 보나벤투라는 전통적인 아우구스티누스적·신비주의적 경향을 지켰다.

말기

14세기로, 신앙과 이성과의 조화가 점차 상실되었다. 유명론자(唯名論者) W.오컴, 신비주의자(神秘主義者) M.J.에크하르트가 대표적이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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