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칫솔 사러 나온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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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1. 26.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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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시1 /신동엽 


스칸디나비아라든가 뭐라구 하는 고장에서는 아름다운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업을 가진 아저씨가 꽃 리본 단 딸아이의 손 이끌고 백화점 거리 칫솔 사러 나오신단다. 탄광 퇴근하는 광부들의 작업복 뒷주머니마다엔 기름 묻은 책 하이데거 러셀 헤밍웨이 장자(莊子) 휴가 여행 떠나는 국무총리 서울역 삼등 대합실 매표구 앞을 뙤약볕 흡쓰며 줄지어 서 있을 때 그걸 본 서울역장 기쁘시겠소라는 인사 한 마디 남길 뿐 평화스러이 자기 사무실 문 열고 들어가더란다. 남해에서 북강까지 넘실대는 물결 동해에서 서해까지 팔랑대는 꽃밭 땅에서 하늘로 치솟는 무지갯빛 분수 이름은 잊었지만 뭐라군가 불리우는 그 중립국에선 하나에서 백까지가 다 대학 나온 농민들 트럭을 두 대씩이나 가지고 대리석 별장에서 산다지만 대통령 이름은 잘 몰라도 새 이름 꽃 이름 지휘자 이름 극작가 이름은 훤하더란다. 애당초 어느 쪽 패거리에도 총 쏘는 야만엔 가담치 않기로 작정한 그 지성(知性) 그래서 어린이들은 사람 죽이는 시늉을 아니하고도 아름다운 놀이 꽃동산처럼 풍요로운 나라, 억만금을 준대도 싫었다 자기네 포도밭은 사람 상처 내는 미사일 기지도 탱크 기지도 들어올 수 없소 끝끝내 사나이 나라 배짱 지킨 국민들, 반도의 달밤 무너진 성터가의 입맞춤이며 푸짐한 타작 소리 춤 사색(思索)뿐 하늘로 가는 길가엔 황톳빛 노을 물든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 병을 싣고 삼십 리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 가더란다. 


줄 나눔도, 쉼표도 찍어주지 않은 글을 읽으려니 숨고르기가 필요하다. 

한 숨에 못 읽어서도 그렇지만, 치미는 화도 가라앉혀야해서다. 

그러나 참고 뜻을 헤아려 더듬어 다시 읽어보자. 

시인도 시를 쓰면서 글 가운데 쉬어갈 곳을 찾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줄 바꿔 시상을 옮기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시를 읽는다면 시인의 시 정신에 다가갈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나름의 시풀이를 위해 

쉼표와 줄바꿈으로 바꿔보기로 한다.    


스칸디나비아라든가 뭐라구 하는 고장에서는 

아름다운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업을 가진 아저씨가 

꽃 리본 단 딸아이의 손 이끌고 백화점 거리 

칫솔 사러 나오신단다. 


탄광 퇴근하는 광부들의 작업복 뒷주머니마다엔 

기름 묻은 책 

하이데거, 러셀, 헤밍웨이, 장자(莊子), 


휴가 여행 떠나는 국무총리,  

서울역 삼등 대합실 매표구 앞을 뙤약볕 흡쓰며 줄지어 서 있을 때 

그걸 본 서울역장 

기쁘시겠소라는 인사 한 마디 남길 뿐 

평화스러이 자기 사무실 문 열고 들어가더란다. 


남해에서 북강까지 넘실대는 물결 

동해에서 서해까지 팔랑대는 꽃밭 

땅에서 하늘로 치솟는 무지갯빛 분수 


이름은 잊었지만 뭐라군가 불리우는 그 중립국에선 

하나에서 백까지가 다 대학 나온 농민들 

트럭을 두 대씩이나 가지고 대리석 별장에서 산다지만 

대통령 이름은 잘 몰라도 새 이름, 꽃 이름, 지휘자 이름, 극작가 이름은 훤하더란다. 


애당초 어느 쪽 패거리에도 총 쏘는 야만엔 가담치 않기로 작정한 그 지성(知性) 

그래서 어린이들은 사람 죽이는 시늉을 아니하고도 아름다운 놀이 

꽃동산처럼 풍요로운 나라, 

억만금을 준대도 싫었다 

자기네 포도밭은 

사람 상처 내는 미사일 기지도 탱크 기지도 

들어올 수 없소 

끝끝내 사나이 나라 배짱 지킨 국민들, 


반도의 달밤 무너진 성터가의 입맞춤이며 

푸짐한 타작 소리, 춤, 사색(思索)뿐 


하늘로 가는 길가엔 황톳빛 노을 물든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 병을 싣고 

삼십 리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 가더란다. 


전쟁을 치르고 겨우 숨돌린 50년 전에도 대통령 물러나라고 외치고, 

50년이 지난 대통령이 힘못쓰는 현대에도 대통령 물러나라고 외친다. 

자기들의 권력화가 아니고 민주화란다.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업을 가진 아저씨가 

꽃 리본 단 딸아이의 손 이끌고 백화점 거리 

칫솔 사러 나오신단다." 

그 대통령 해먹기가 참 편하겠다.  

꽃 리본 단 딸아이의 손 이끌고 백화점 거리 

칫솔 사러 

사적인 볼일로 한가롭게 나다녀도 

물러나라는 정치패들도 없고, 운동권들도 없고, 촛불 시위꾼들도 없고, 

"대통령 나오신다"고 깎듯이 존칭어를 쓰는  

'스칸디나비아라든가 뭐라구 하는 고장'의 

어떤 나라에서는 말이다.   


"탄광 퇴근하는 광부들의 작업복 뒷주머니마다엔 

기름 묻은 책 

하이데거, 러셀, 헤밍웨이, 장자(莊子), " 

탄광이 있고 지하자원도 많은 모양이다. 

광부들마다 철학과 문학 서적을 끼고다니며 독서를 하는 모양이다. 

독서를 그 나라에서는 강제하는가? 


"남해에서 북강까지 넘실대는 물결 

동해에서 서해까지 팔랑대는 꽃밭 

땅에서 하늘로 치솟는 무지갯빛 분수" 

수자원도 풍부하고 녹지가 많고 분수 등으로 국토를 잘 가꿔놓은 듯하다. 무엇보다도 호시탐탐 노리는 적성국과 경쟁국이 없는 모양이다.  


"하나에서 백까지가 다 대학 나온 농민들 

트럭을 두 대씩이나 가지고 대리석 별장에서 산다지만 

대통령 이름은 잘 몰라도 새 이름, 꽃 이름, 지휘자 이름, 극작가 이름은 훤하더란다."  

공장이 없어도 농업만으로 온 국민이 다 대학을 나오고, 실어나를 게 많아서 트럭을 두 대씩이나 가지고 대리석 별장에서 산다고 한다. 

대통령 이름은 잘 모를만큼 정치패들과 운동권들이 설치지 않고, 

새 이름, 꽃 이름, 지휘자 이름, 극작가 이름은 훤할만큼 국민들이 교양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 같다. 


"애당초" 적성국과 경쟁국이 없는 나라에서, 

"어느 쪽 패거리에도 총 쏘는 야만엔 가담치 않기로 작정한" 것도 "지성(知性)"이라는가?  

"그래서 어린이들은 사람 죽이는 시늉을 아니하고도 아름다운 놀이 

꽃동산처럼 풍요로운 나라, 

억만금을 준대도 싫었다 

자기네 포도밭은 

사람 상처 내는 미사일 기지도 탱크 기지도 

들어올 수 없소 

끝끝내 사나이 나라 배짱 지킨 국민들" 이라는데, 

한국에도 '비핵화'를 외치며, 북한과 적대를 하지말고 북한의 뜻대로 무장해제를 하고, 자기네 지역은 사람 상처 내는 미사일 방어기지도 들어올 수 없다고 

배짱 지키는 정치패와 지역민들이 있지 않은가? 


"반도의 달밤 무너진 성터가의 입맞춤이며 

푸짐한 타작 소리, 춤, 사색(思索)뿐" 

한국에도 '반도의 달밤 무너진 성터' 복원한 광화문 앞에서 '입맞추어' '하야'를 외치며 

'푸짐한 타작 소리, 춤'판이 벌어지지 않는가? 

'사색(思索)'일지는 모른다.  

 

"하늘로 가는 길가엔 황톳빛 노을 물든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 병을 싣고 

삼십 리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 가더란다." 

한국에도 전 대통령이라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 병을 싣고 

하늘로 가는 길을 가신 분이 있지 않은가? 


"휴가 여행 떠나는 국무총리,  

서울역 삼등 대합실 매표구 앞을 뙤약볕 흡쓰며 줄지어 서 있을 때 

그걸 본 서울역장 

기쁘시겠소라는 인사 한 마디 남길 뿐 

평화스러이 자기 사무실 문 열고 들어가더란다."는데, 

스칸디나비아의 어느 중립국과 한국을 대비하다보니 끌어온 구절 같다. 

광부들 뒷호주머니에 꽂혀있던 '휴가 여행 떠나는 국무총리'라는 책의 내용인지는 모르겠다. 


국무총리도 여유롭고, 제 할일만 하는 서울역장도 그렇고 각자가 남의 일에 신경쓰지 말고 제 할일을 하고 살자는 것인데, 


바쁘고 귀한 일을 하신다는 국회의원님들은 비행기나 기차나 줄서지 않고 특별석을 이용해야 한다면서, 


국민은 촛불을 들고 대통령을 쫒아내라고, 싸드기지 설치를 반대하라고, 북한정권의 우두머리에게는 위원장으로 존칭을 쓰라고 한다면, 


이 시에서 시인이 말하는 시의 뜻일까?  

  

신동엽(申東曄, 1930-1969)은 50년 전 쯤 40년도 못 되게 대한민국을 살다간 시인이다. 

'산문시(散文詩) 1'은  38세에 남긴 시라고 한다. 

일제 때 어린시절을 보냈고 해방을 맞아 6.25전쟁을 겪었으며 4.19를 거쳐 군사정권의 1960년대를 국어교사로 살았다. 

충남 부여 출생으로 전주사범학교와 단국대 사학과를 졸업했다. 1959년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입선되었으며, 1961년부터 명성여고에서 국어교사로 재직했다. 1967년에 4,800여 행에 달하는 서사시 <금강>을 발표함으로써 확고한 문학사적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 때의 작품들은 대개 민족적 동일성을 훼손시키는 반민족적 세력에 대한 저항이 기조를 이루며, 민중에 대한 자기 긍정을 노래하고 있다.

그는 민족 정신을 일깨우는 작품과 더불어 민중의 정서에 따른 시적 형상을 창조했다. 이런 측면에서 1960년대에 김수영의 시와 더불어 참여시의 세계를 펼쳐 보였다고 평가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껍데기는 가라>, <금강(錦江)>,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등이 있다. 

호는 '석림(石林)'이라고 한다. 


석림(石林)은 돌이 숲을 이룬다는 이름인데, 우리나라에는 특별히 '석림'으로 이름지어진 곳이 없는 것 같고, 중국의 많은 석림 중 가장 대표적인 석림은 운남(雲南)으로 카르스트의 대표적인 경관이다. 

호(號)는 남이 지어주거나 스스로 짓기도 하는데, 살던 곳의 이름이거나 그의 삶을 나타내는 이름들이다. 

돌숲이라면 돌무더기나 돌탑과는 다르다. 산비탈에 돌을 흩어져 내린 '너덜' 또는 '세석'도 있다. 


'산문시(散文詩) 1' 이라는 이름과 줄이 나뉘지 않은 글의 짜임에서 비슷한 느낌인듯해서다.   

 

산문시는 시적 산문(poetic prose)보다 짧고 간결하며, 자유시와 같은 행의 끊어짐(line breaks)이 없고, 내재율(inner rhyme)과 운율적 흐름을 지닌다고 한다. 

산문시란 용어는 1869년 '파리의 우울(Le Spleen de Paris)' 이란 시집에서 보들레르(C.P.Baudelaire)가 맨 처음 사용했다고 한다. 

이름은 보들보들한 보들레르인데, 이 시집 서문에서 산문시를 "리듬이나 운이 없어도 마음속의 서정의 움직임이나 몽상의 물결, 의식의 비약에 순응할 수 있는 유연하고 강직하며 시적인 산문"이라고 정의했다. 


산문시는 산문적으로 시행을 나누지 않고, 드러나 보이는 운율은 없으나 시는 시여야 한다. 

시 정신이 있고, 시라는 그릇에 담기 위해 압축과 응결이 있고 매듭이 있다보면 보이지 않는 운율도 생겨난다. 

자유시가 리듬의 단위를 행에다 둔 데 반해 산문시는 한 문장 또는 한 문단에다 리듬의 단위를 두고 있다.


산문시 '봉황수(鳳凰愁)'를 쓴 한국 시인 조지훈은 [시의 원리]에서

"산문시는 자유시의 일부분으로서 거기서 출발하여 자립한 것이니 표현력이 왕성한 시인에 있어서만 걸작이 기대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산문시는 그 형식에서보다 내용에서 시가 되느냐, 하나의 평범한 산문이 되느냐가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미묘한 음악의 미는 발휘되지 않더라도 내용의 조리는 산문과는 달리 시 정신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라야 비로소 산문시가 되는 것이다." 라고 했다. 


봉황수(鳳凰愁) /조지훈 

-봉황의 슬픔 


벌레 먹은 두리기둥 빛 낡은 단청(丹靑) 풍경 소리 날아간 추녀 끝에는 산새도 비둘기도 둥주리를 마구 쳤다. 큰 나라 섬기다 거미줄 친 옥좌(玉座)위엔 여의주 희롱하는 쌍룡 대신에 두 마리 봉황새를 틀어 올렸다. 어느 땐들 봉황이 울었으랴만 푸르른 하늘 밑 추석을 밟고 가는 나의 그림자. 패옥 소리도 없었다. 품석(品石) 옆에서 정일품(正一品) 종구품(從九品) 어느 줄에도 나의 몸둘 곳은 바이 없었다. 눈물이 속된 줄을 모를 양이면 봉황새야 구천(九天)에 호곡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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