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복지원 사건](상) 사망자 551명…시신 일부는 해부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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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8.12.25. 오전 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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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랑인 선도한다며 무고한 시민까지 매년 수천명 불법 감금

10여년 인권유린…위법한 국가권력에 수많은 이들 고통받아

(부산=연합뉴스) 차근호 김선호 기자 = "형제복지원은 어떻게 '괴물'이 됐나?"

수많은 피해자를 만들어낸 형제복지원 사건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1960년대 초 부산 용호동에 들어선 아동보호시설이 그 출발점이다. 이후 형제복지원은 1975년 주례동으로 시설을 이전하고 부산시와 부랑인 일시보호사업 위탁계약을 맺으면서 '괴물'이 됐다.

형제복지원은 거리의 부랑인을 선도해야 한다는 군사정권 정책에 편승해 매년 3천명 이상 무연고 장애인, 고아를 비롯해 일반 시민들까지 끌고 가 불법 감금했다.

◇ 매년 수천명 불법 감금…경찰까지 합세

이 과정에서 경찰도 무고한 시민을 형제복지원에 강제로 데려갔다.

일단 형제복지원에 들어가면 수용자들은 군대식으로 집단 수용 생활을 하면서 하루 10시간 이상 강제노역에 시달렸다.

저항하면 굶기고 구타하거나 심지어 살해해 암매장하는 일도 많았다.

여성 수용자에 대한 성폭행도 스스럼없이 벌어졌다.

1975년부터 형제복지원의 참상이 세상에 처음 알려진 1987년까지 확인된 것만 551명이 숨졌을 정도다.

옛 형제복지원 수용자 신상 기록카드[부산사회복지연대 제공=연합뉴스]


사망자 중 일부는 300만∼500만원에 의과대학의 해부용 시신으로 팔려나갔다.

10여년간 강제 구금과 노역, 인권유린이 자행되던 형제복지원은 1986년 말 산행하던 울산지청의 한 검사가 우연히 강제노역하는 수용자를 발견하면서 실상이 드러났다.

당시 박인근 형제복지원 원장이 울산에 목장을 만들려고 수용자를 동원해 일을 시키다 현장이 적발된 것이다.

◇ 10여년간 강제 구금과 인권유린 자행

하지만 재판에 넘겨진 박인근 원장은 건축법 위반, 업무상 횡령 혐의만으로 징역 2년 6개월의 '솜방망이' 선고를 받고 형을 산 뒤 풀려났다.

정작 특수감금 혐의는 무죄를 받기도 했다.

오히려 박 원장은 전두환 정권으로부터 '부랑아 퇴치 공로'를 인정받아 1981년과 1984년 각각 국민포장과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7월에서야 박 원장에 수여된 훈포장 2개를 박탈했다.

이후 박 원장은 수차례 형제복지지원재단, 느헤미야 등으로 법인명을 바꾸고 20년 넘게 각종 수익사업을 하며 재산을 불려왔다.

박 원장은 부랑인 보호시설 운영 당시 매년 10억∼20억원의 국고보조금까지 받아왔다.

부랑인 공익사업을 한다는 이유로 헐값에 불하받은 국유림을 수용자를 동원해 강제노역시키면서 '형제복지원 왕국'을 건설했다.

이후 2001년 건설사에 팔아 200억원이 넘는 시세차익을 남기기도 했다.

박 원장은 법인 정관을 개정해 스포츠센터, 해수온천 등 복지시설과 동떨어진 각종 수익사업에 손을 댔다.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29년 만에 재심(서울=연합뉴스) 참혹한 인권 침해가 벌어졌지만, 관련자에게 무죄가 선고됐던 '형제복지원 사건' 판결에 대해 20일 문무일 대검찰총장이 29년 만에 대법원에 비상상고를 했다.
사진은 부산 형제복지원 전경. 2018.11.20 [연합뉴스 자료사진] photo@yna.co.kr


이 과정에서 부산시는 법인에 총 3차례에 걸쳐 60억원의 장기차입허가를 내줬고 법인이 원금과 이자 등을 갚지 못하자 2009년 118억원의 장기대출을 다시 승인해주는 특혜를 줬다.

시민사회단체는 법인재산 외에 박 원장 일가가 보유한 국내외 재산 규모가 1천억원대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피해자들은 박 원장 일가가 모으고 빼돌린 재산은 피해자들의 피와 땀, 정부와 지자체 지원과 특혜로 이뤄진 것인 만큼 반드시 환수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 헌법을 초월한 내무부 훈령이 감금 근거

형제복지원이 시민을 끌고 와 가둔 근거는 무엇일까.

박정희 정권은 1975년 부랑인 신고·단속·수용·보호 등에 관한 업무처리 지침인 내무부 훈령 제410호를 만들었다.

훈령이 정의한 부랑인은 '일정한 주거 없이 관광업소, 접객업소, 역, 터미널 등 많은 사람이 모이거나 통행하는 곳과 주택가를 배회하는 걸인, 껌팔이, 앵벌이 등 사회질서를 해치는 모든 사람'이다.

훈령을 집행하는 공무원이 얼마든지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내용이고, 실제로 수많은 무고한 시민이 영문도 모른 채 형제복지원으로 끌려와 고초를 당하고 숨졌다.

경찰도 실적을 위해 관련 없는 시민을 끌고 와 형제복지원에 집어넣었고 부산시는 이를 방관하고 형제복지원에 예산을 지원했다.

형제복지원장이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받은 포장증(부산=연합뉴스) 박인근 전 형제복지원 원장이 1981년 4월 20일 전두환 전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포장증. [형제복지원 진상규명 대책위 제공=연합뉴스] wink@yna.co.kr


형제복지원에 무고한 시민이 많이 수용된 것은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둔 시점이었다.

당시 전두환 정권은 내무부 훈령 제410호를 근거로 사회정화사업이라는 명분으로 경찰과 공무원을 동원해 거의 인신매매와 마찬가지로 시민을 납치하듯 형제복지원 등에 감금했다.

◇ 부랑자 수용행위…어떤 법률에도 근거 없어

하지만 형제복지원이 부랑자들을 수용한 행위는 경범죄처벌법, 사회복지사업법, 생활보호법 등 어떤 법률에도 근거가 없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정부가 형제복지원에 시민을 감금한 행위는 "행정규칙에 불과한 내무부 훈령을 근거로 했다고 하지만, 이는 불법 강제 구금에 지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법무부 산하 검찰과거사위원회는 지난 10월 형제복지원 사건 조사 및 심의 결과를 발표하고, 국가의 사과와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 등을 권고한 바 있다.

검찰과거사위원회는 내무부 훈령이 명백한 위법이었으며 더불어 사법부의 조직적인 은폐로 사건 진실이 묻혔다고 판단했다.

서울대 사회학과 형제복지원 연구팀 김재형 씨는 "이 훈령에 근거해 도시 하층민 등을 부랑인으로 낙인찍어 강제격리한 행위도 위헌이었다"며 "위법한 국가폭력으로 수많은 피해자가 고통받은 만큼 정부가 결자해지 차원에서 당장 진심 어린 사과와 진상규명, 피해 회복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훈장 받는 박인근 전 형제복지원 원장(부산=연합뉴스) 1984년 5월 11일 박인근 전 형제복지원 원장이 전두환 전 대통령으로부터 국민훈장을 받은 뒤 악수하고 있다. 2016.8.26 [형제복지원 진상규명 대책위 제공=연합뉴스] win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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