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 내내 잠을 잔다?

겨울잠

생물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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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잠에 빠진 겨울잠쥐. 그런데 겨울잠도 잠일까? <출처 gettyimages>

‘겨울잠(冬眠, 동면)’이라는 단어 자체에 ‘잠’이라는 말이 들어있으니 겨울 동안 오래 자는 잠인 것처럼 생각되지만 사실, 동면은 잠을 자는 상태라고 할 수 없다. 잠을 자는 동안과 비교했을 때 생리적인 변화가 너무 극심하기 때문이다.

1 겨울잠은 잠이 아니다

겨울잠에 든 동물들의 활력 징후는 각성상태, 또 단순히 잠을 자는 상태의 동물과 완전히 다르다(활력징후란 생물이 살아있음을 표시하는 몇 가지 지표를 의미한다. 심박수, 호흡수, 체온 등이 해당한다.).

잠을 자는 동안에도 심박수, 호흡수와 체온이 깨어있을 때에 비해서는 떨어지긴 하지만, 겨울잠에 든 동물의 경우와 비교해보면 거의 변화가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또, 잠을 잘 때는 다시 각성상태로 깨어나기가 어렵지 않다. 아무리 깊이 잠이 들었다고 해도 깨어난 뒤 몇 분 안에 잠들기 전의 각성상태로 돌아온다.

하지만 겨울잠에 들었다 깨어난 동물은 겨울잠에 들기 전의 상태로 돌아가기 위해 며칠에서 길게는 몇 주 동안의 회복 기간이 필요하다.

겨울잠에 든 동물의 뇌파 역시 잠을 잘 때와 다르다. 겨울잠에 든 동물의 뇌파는 잠의 단계에서 보이는 뇌파의 형태를 나타내진 않고, 각성 상태의 뇌파에서 진폭만 10%정도로 확 줄어들었다고 표현하는 편이 더 낫다.

만약 이 때 뇌의 활성을 약물 등을 통해 완전히 없애버리면 겨울잠을 자던 생물은 죽게 된다. 뇌는 10%로 매우 약한 활성이지만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겨울잠에서 깨어난 뒤 나타나는 뇌파는 잠을 잘 자고 난 경우가 아니라, 수면 부족 상태의 뇌파 신호와 유사하게 나타난다.

겨울잠에 빠진 동물은 마치 혼수상태에 빠진 것처럼 보이며 깨어난 뒤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오기까지 평소보다 오래 자면서 휴식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2 겨울잠에 빠진 몸

겨울잠에 들었을 때 나타나는 가장 큰 변화는 바로 체온이 큰 폭으로 떨어지고 대사작용이 매우 느려지는 것이다. 겨울잠에 들어간 동물의 체온은 주변 기온과 함께 변한다. 하지만 무작정 체온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특정 온도까지 체온이 떨어지면 대사작용이 다시 활발해지면서 저장된 지방을 태워 에너지를 만든다. 이렇게 몸이 스스로 자신의 상태를 계속 확인하면서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최저 온도 이상으로 체온을 유지한다. 이 최저 온도는 덩치가 클수록 높다.

심박수는 동면에 들기 전 상태에 비해 2.5%까지도 떨어질 수 있다. 다람쥐의 경우가 그러한데, 평소에는 분당 200회 정도 뛰던 심장이 겨울잠에 들면 5번밖에 뛰지 않는다.

호흡수는 평소의 절반까지도 떨어질 수 있으며, 어떤 동물은 겨울잠을 자는 동안 아예 숨을 안 쉬기도 한다. 겨울잠을 자는 동안에는 공급할 수 있는 산소의 양이 엄청나게 줄어들기 때문에 이 상태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반드시 호흡수를 줄여야만 한다.

겨울잠에 들었던 고슴도치가 깨어나는 날 하루 동안의 체온과 심박수 변화. 원래대로 회복되었을 때와 비교해보면 겨울잠을 자는 동안 체온과 심박수가 얼마나 많이 떨어졌는지 알 수 있다. <출처 (cc) OpenLearnWorks, The Open University>

재밌는 것은, 겨울잠을 자는 동물은 화장실도 안 간다는 점이다. 에너지를 몸에 축적해둔 체지방을 태워서 얻기 때문에 소화관으로는 아무것도 지나가지 않지만 에너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오줌을 만드는 요소가 계속 발생하는데, 어떻게 오줌도 안 누고 버틸 수 있을까?

겨울잠을 자는 동물의 몸에서는 요소가 계속 재활용된다. 곰의 경우 요소를 분해하여 단백질을 구성하거나 에너지로 사용할 수 있는 아미노산을 만들어낸다.

3 어떻게 겨울잠에 빠지게 될까?

-주변 환경의 변화
겨울잠은 주위 환경의 기온 변화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 겨울잠을 자는 동물들은 기온이 떨어지면 동면 준비를 시작하며, 다음 해 봄이 되어 기온이 다시 올라가면 겨울잠에서 깨어난다.

기온뿐 아니라 낮의 길이 변화, 즉 일조량의 변화에 반응하여 겨울잠에 들 수도 있고, 주위에서 구할 수 있는 먹이의 양이 변하는 것에 반응하여 겨울잠을 준비하는 동물도 있다.

겨울이 다가옴에 따라 먹이를 모으고 있는 청설모 <출처 (cc) D. Gordon E. Robertson at Wikicommons>

-몸 속 호르몬의 변화
겨울잠에 들기 전 동물의 몸 속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에도 변화가 생긴다. 대표적으로 잠을 조절하는 데도 역할을 하는 멜라토닌의 분비량이 늘어난다. 멜라토닌은 동물이 잠에 빠져든 것 같은 상태를 유지시킬 뿐 아니라, 겨울철 동물의 털갈이를 일으키기도 한다.

그리고 대사 작용과 몸의 활성 정도를 조절하는 갑상선 호르몬, 몸에 지방이 축적되는 정도와 심박수, 호흡률, 대사 기능을 전반적으로 조절하는 뇌하수체 호르몬, 당의 대사를 조절하는 인슐린의 양에도 변화가 생긴다.

-생체 시계? 사실 같은 지역이라면 매 년 기온변화나 동물들이 먹이로 삼는 식생의 변화, 일조량의 변화가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매 년 비슷한 시기에 겨울잠에 들 것이다. 하지만, 주위 환경의 변화보다 생체시계의 영향을 받아 시간을 감지하여 겨울잠에 드는 동물도 있다.

이런 연주(年周) 리듬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진 바가 많지 않지만, 일주기 리듬과 유사하게 계절 변화를 감지하는 기작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고 있다.

4년동안 다람쥐가 동면에 든 시기를 비교해본 그래프. 일년의 흐름에 따라 생체주기가 변화하면서 매 년 같은 시기에 동면에 들고 있다. Animal Physiology(2004), Sinauer Associations. Inc.

4 겨울잠도 다 같은 겨울잠이 아니다?

-겨울잠의 깊이
겨울잠에도 깊은 겨울잠이 있고 얕은 겨울잠이 있다. 얕은 겨울잠은 보통 겨울잠을 잘 때 나타나는 몸의 변화가 나타나긴 하지만, 그 정도가 그리 심하지가 않다. 체온도 조금밖에 떨어지지 않고 잠에서 깨어나 원래 상태로 돌아오는 것도 비교적 쉽다.

곰이 얕은 겨울잠을 자는 대표적인 동물인데, 몸에 나타나는 변화가 심하지 않다는 것 때문에, 얕은 겨울잠도 겨울잠이라고 할 수 있는지를 두고 과학자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논란이 있어왔다.

눈밭에서 깨어난듯한 곰 <출처 (cc) Metassus at Flickr>

영어 단어 중에는 겨울잠을 가리키는 단어가 몇 가지 있다. 그 중 하나가 무기력 상태, 인사불성 상태를 가리키는 ‘Torpor’다. 이 단어는 단기간에 체온이나 대사작용이 떨어지는 상태를 전반적으로 포괄한다.

실제로, 몇 주 혹은 몇 달 동안이 아니라 하루에 몇 시간 정도씩 매일매일 체온과 대사작용을 떨어뜨려 일시적으로 동면을 하는 동물들이 있기도 하다. 곰이 자는 ‘얕은 겨울잠’보다 더 얕다고 해야 할지, 참 애매하다.

-겨울잠과 여름잠
겨울잠을 한자로는 겨울 동(冬), 잠 면(眠)자를 써서 동면이라고 한다. 한자어로도 ‘겨울에 자는 잠’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사실 여름에도 오랜 시간 잠을 자는 동물들이 있다. 이런 경우는 하면(夏眠), 즉 여름잠이라고 부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여름잠이라는 말은 생소하게 느껴질 것 같은데, 실제로 여름잠을 자는 동물들은 그리 많지 않고, 겨울잠을 자는 경우가 훨씬 흔하다.

달팽이는 건조한 사막 기후에 적응하여 여름잠을 자는 대표적인 생물이다. <출처 (cc) Wilson44691 at Wikicommons>

겨울잠이 먹이를 구하기 어렵고 체온을 유지하기 어려운 환경 변화에 적응한 결과인 것처럼, 여름잠도 생존하기에 어려운 환경 변화에 적응한 결과다.

여름잠을 자는 동물들은 주로 사막이나 열대기후와 같이 너무 덥고 건조해서 살기 어려운 곳에 있다. 여름잠을 잘 때는 땅 속으로 굴을 파고 들어가서 시원한 상태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고, 대사작용이 줄어드는 등 몸에 일어나는 변화는 겨울잠을 자는 동물과 거의 비슷하다.

5 사람도 겨울잠을 잘 수 있을까?

사람의 경우 하루 동안 받는 빛의 양에 따라 멜라토닌의 분비량이 달라지면서 잠을 자게 되는 것처럼 계절 변화에 따라서도 멜라토닌의 분비량이 조금씩 달라진다.

겨울잠을 자는 동물의 경우 겨울이 되면 이 변화가 매우 심각해지면서 결국 겨울잠에 빠져드는데 영향을 주기까지 하지만, 사람의 경우 그 정도로 심하진 않아 겨울잠에 빠지기까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계절의 변화에 따라 잠을 자는 것에 변화가 있긴 하다.

실제로 2011년 한 독일의 연구진이 계절에 따른 일조량의 변화가 큰 노르웨이와 적도 근처에 있어 계절 변화와 일조량 변화가 거의 없는 가나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계절에 따라 잠자리에 들고 아침에 일어나는 시각의 변화를 비교했다.

노르웨이 사람들의 경우 여름이 될수록 잠자리에 일찍 들고 더 일찍 일어났지만, 가나 사람들의 경우 계절이 변해도 잠자리에 들고 일어나는 시각이 거의 변하지 않았다.

일조량이 줄어드는 겨울철인 1월(January)과 일조량이 늘어나는 여름철인 8월(August)에 가나와 노르웨이 사람들이 잠자리에 드는 시각(Bedtime)과 일어나는 시각(Risetime)을 비교한 결과. 가나 사람들보다 노르웨이 사람들의 경우 그 변화의 폭이 더 크게 측정되었다. 사실 잠자리에 드는 시각보다 일어나는 시각 변화가 더 컸는데, 그 이유는 평일에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생활 습관 때문에 잠자리에 드는 시각은 조정되기 어려워서이다. O. Friborg et al. J.Sleep Res.(2012), Associations between seasonal variations in day length(photoperiod), sleep timing, sleep quality and mood: a comparison between Ghana(5’) and Norway(69’)

이 연구 결과에서 보여준 것처럼 일조량의 변화로 인한 잠자는 행동의 변화가 사람에게서 보여지는 겨울잠에 가장 가까운 행동일 것이다.

체온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겨울잠과 유사한 상태에 빠져들어 죽을 뻔 한 상황에서 살아남은 이야기는 꽤 많이 들려온다.

올해 2월에 메디컬 데일리지(紙)에 보도된 소식으로 미국 미주리주(州)에 살던 14살의 소년이 꽁꽁 언 호수에 빠져 15분 동안 갇혀있었는데 기적같이 살아난 이야기가 있다.

이 소년을 구조대가 구출했을 때는 맥박도 없었다고 하고, 심폐소생술을 여러 번 했는데도 맥박이 돌아오지 않다가 갑자기 눈을 떴다고 한다. 실제로 과학자들은 사람이 보통 온도의 물에 빠지면 3분밖에 살아남을 수 없지만, 언 호수 에 빠진 사람은 40분까지 살아있을 수 있다고 말한다.

산소가 부족해도 차가운 온도가 몸을 가사상태로 만들어 죽음을 지연시킬 것이라는 게 이유다.

가까운 일본에서도 비슷한 경우가 있었는데 2006년 35세의 젊은 남성에게 일어난 일이다. 친구들과 산에 올라갔던 미츠타카 우치코시씨는 혼자서 먼저 하산하다가 발을 헛디뎠다.

우치코시씨는 실종 처리된 뒤 3주가 지나서야 구조대에게 발견되었는데 발견되었을 때 맥박도 없었고 내장기관도 전혀 작동하지 않았으며 체온은 22도였다. 하지만 뇌에는 전혀 손상이 없었고, 치료를 받은 뒤 정상 상태로 회복됐다. 당시 우치코시씨를 진료했던 의사 신이치 사토씨는 영국 방송인 BBC와의 인터뷰에서 “사고를 당한 초기에 바로 저체온 상태로 빠져들면서 겨울잠을 자는 것과 유사한 상태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과학자와 의사들이 겨울잠을 자면 매우 낮은 체온, 대사활동을 유지하면서 생존하는 것이 가능하리라 생각한다는 것이다.

BBC뉴스에 보도된 미츠타카 우치코시의 뉴스<출처 BBC홈페이지>

6 마음대로 겨울잠을 잘 수 있다면.

나사의 우주비행사가 잠자는 동안 상태를 측정하는 장치를 달고 있는 모습. 실제로 인간이 겨울잠을 자게 하는 것은 우주탐사 연구 중 중요한 주제로 다뤄지고 있다. <출처 (cc) NASA>

사람도 생존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면 오랜 시간 동안 겨울잠을 자버리면 어떨까? 최근 개봉한 우주 영화에서는 실제로 우주선을 타고 긴 시간을 여행하는 우주비행사들이 어떤 기계장치에 들어가 동면을 하는 장면도 나왔다.

실제로 의학 분야에서는 심각한 사고를 당한 사람이나 질병에 걸린 사람에게 겨울잠을 자는 것 같은 상태를 유도하는 방법을 찾으려는 관심이 높다. 겨울잠을 자는 동안 대사작용이 느려진다는 점 때문에 질병의 진행 속도를 늦출 수도 있고, 궁극적으로 수명을 연장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겨울잠을 자는 동안 환경 변화에 반응해 단순히 기능이 떨어지는 몸과 달리 뇌의 작용 변화는 온도가 떨어진 것에 대한 반응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온도가 떨어진 와중에도 생명을 유지할 수 있도록 뇌는 끊임없이 활동하며,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도 바로 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변화를 일으키며, 그 변화는 어떻게 일어나는가에 대해서는 아직 아는 바가 없다. 이 외에도 겨울잠에 대해서는 밝혀져야 할 부분이 매우 많다. 아직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은 겨울잠에 숨겨진 사실들 중 아주 중요하고 놀라운 것이 많다는 뜻이라고 생각된다.

  • 발행일2015. 1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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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솔 카이스트 바이오및뇌공학과 석사재학생. 기초과학연구원 인지및사회성연구단 연수생.

    카이스트 생명과학과 졸업 후 동물의 마음을 조종하는 뇌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지학사 중학 독서평설 <꿈꾸는 과학의 세상 뒤집기> 연재, <세상을 만드는 분자> 번역, 네이버 포스트 ‘뽐내는 과학’, 트위터: @sollea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