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토론]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입력
기사원문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둘러싸고 정치권에서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여야 4당은 지역구 225석·권역별 비례 75석 등 전체의석 300석의 부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에 합의했다. 반면 자유한국당은 비례대표 전면 폐지라는 정반대 주장을 펴면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찬성 /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정당득표율 따라 의석배분…정당들 정책경쟁 몰두효과

대한민국 국회의원을 보면, 지방의원인지 국회의원인지 분간이 안 된다. 지역구 관리를 명목으로 각종 지역행사와 경조사까지 챙기고 다닌다. 그러니 정작 해야 할 의정활동에 충실하지 못하다. 정당 지도부도 이런 국회의원들을 통제하지 못한다. 지역구 관리를 잘해야 다음번 총선에서 자기 정당이 승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다. 국회의원들은 지방선거 공천권을 가지고 온갖 '갑질'을 한다. 국회의원들이 지역에서 지방의원들을 수행원처럼 데리고 다니는 것도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이런 행태를 없애려면, 선거 승패가 정당 지지율에 따라 좌우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정당 지도부나 당원들이 국회의원들에게 본래 해야 할 의정활동에 충실하도록 요구하게 된다. 국회의원이 제 역할을 하지 않으면, 자기 정당 지지율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최근 자유한국당은 비례대표를 없애고 국회의원 정수를 270명으로 줄여서 전부 지역구에서 뽑자고 하는데, 그것은 정치를 더 무능하고 부패하게 만드는 길이다. 비례대표 공천과 관련해서 그동안 문제도 많았지만, 의정활동을 잘한 비례대표 국회의원들도 많았다. 소설가 출신인 김홍신 씨는 8년 동안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만 활동하면서 보건복지 분야에서 매우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공천이 문제라면, 비례대표 공천에서 밀실공천을 추방하도록 법을 만들면 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민주적 공천'을 공직선거법에 명시하자고 제안해 왔다.

비례대표제는 여성, 청년, 장애인들이 국회에 진출하는 것도 쉽게 한다. 20·30대 국회의원 비율이 20%를 넘는 나라들을 보면 비례대표제를 택한 곳이 많다. 대한민국은 20·30대 국회의원이 1%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러니 청년들 삶이 나아지기 어렵다.

또한 정당이 제 역할을 하게 만들려고 해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해야 한다. 정당 지지율보다 중요한 것이 지역구 당선자 숫자인 이상, 정당들은 정책 개발에 몰두할 이유가 없다. 매년 수백억 원 국고보조금을 받는 정당들이 미세먼지 문제 하나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정책을 내놓지 못하는 이유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정당 득표율에 따라 국회 전체 의석을 배분하기 때문에, 정당들이 정책 경쟁에 몰두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이외에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부패를 없애는 효과도 있다. 부패한 정당은 선거를 통해서 심판받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부패가 없는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 등 국가는 100년도 더 전에 비례대표제를 택했다.

반대 / 노동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정치문화·윤리 개선이 우선…금권·파벌정치 온상 우려도

"비록 한 선거구에서 선출된 대표자라고 하더라도 그 선거구만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고 전체 국민을 대표한다는 대의제도의 이념 면에서 볼 때 전 국민의 대의기능을 부인하고 단순한 집단대표의 기능만을 강조하는 비례대표 사상은 대의 부정 사상과 그 맥을 같이하게 된다."

한국 헌법학의 대가인 허영 교수의 교과서에 기술된 내용이다. 비례대표제의 본질적 문제점을 정확히 지적하고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특히 비례대표를 대폭 늘려야 가능하다. 여야 4당은 '지역구 225석, 비례대표 75석'의 잠정 합의안을 도출했다. '준연동형'이라지만 비례대표 확대가 불가피함을 보여준다. '연동형' 주장자들은 당선자 지지표를 제외한 모든 표가 사표가 되어 민심을 반영하지 못하는 소선거구제가 문제라고 한다. 대의제의 본질을 망각한 주장이다. 선거로 뽑힌 대표자는 자신을 지지한 집단의 대리인이 아닌 국민 전체 대표자로서 부분 이익이 아닌 전체 국민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군소정당의 난립을 가져온다. 찬성론자들은 다당제로 협치가 가능하다는 주장을 편다. 현재 우리 국회는 5석 이상의 주요 정당만 5개에 달한다. 다당제에 다름 아니다. 협치를 방해하는 장애물은 합리적 근거가 없는 '20석 교섭단체' 기준이다. 연동형 비례대표 주장은 교섭단체 달성을 위한 소수 정당의 생존책이다. 하지만 교섭단체 폐지 등 소수 정당이 국회 운영에서 '투명인간' 취급을 받는 문제를 보다 쉽게 개선할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일방적인 정당 주도 비례대표 선거 과정에서 국민이 소외되는 것도 문제점이다. 정당 지도부가 후보자 선정과 순위 결정을 독점함으로써 금권·파벌정치의 온상이 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찬성론자들은 독일의 연동형 제도가 잘 운영되고 있음을 예로 든다. 필자의 독일인 지인은 다른 생각을 밝혔다. 제도가 아니라 끈질긴 토론과 협상을 벌이는 독일의 문화가 연동형 비례대표의 토양이라는 지적이다.

최장집 교수도 비슷한 의견이다. 최 교수는 "비례대표제는 정치적 윤리나 규범, 협상의 기술이 누적되고 서로를 존중할 때 잘 돌아갈 수 있다"며 "한국 정당의 행태와 협상의 모습을 볼 때 과연 독일처럼 분명한 정책을 갖고 경쟁해서 다수를 구성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고 밝힌 것이다.

의회주의의 원조인 영국, 대통령제의 원조인 미국은 소선거구제를 채택하고 있다. 두 나라 모두 정치적 문제가 있지만 문제의 근원이 소선거구제 때문이라거나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은 생각할 수 없다. 영국, 미국처럼 비례대표제를 폐지하자는 게 아니다. 어느 나라에나 통하는 지고지선한 제도란 없다는 말이다.

▶매경 뉴스레터 '매콤달콤'을 지금 구독하세요
▶뉴스 이상의 무궁무진한 프리미엄 읽을거리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오피니언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