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길에서 부처를 만나면 죽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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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9.05.29. 오후 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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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외길 건설엔지니어’ 이순병의 주문
이순병, 한국공학한림원 원로회원


요즈음 한국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마음챙김(Mindfullness) 같은 동양의 정신수양법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과학문명이 먼저 발달했던 서양에서 동양 사상을 그들의 기존 학문에 접목하려는 시도도 오래되었습니다. 10여년 전 영국 학자 숀 홀이 쓴 책 ‘기호학 입문(원제 This means this, this means that)’의 뒷부분에는 “길에서 부처님을 본다면 무엇을 해야겠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후 답으로 “그를 죽여라”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라는 말은 선(禪)불교에서는 유명한 구절입니다. 기존의 문화적 습관이나 전통에 갇혀 있는 자신을 뛰어넘어 집단적 개인적 우상들을 과감히 타파하는 노력을 하라, 즉 관념에 집착하지 말고 내가 아는 것이 진리라고 고집하지 말라는 뜻이라 합니다.

한 가지 더 소개하지요. 수행을 다니던 중이 겨울밤 어느 절에 하루밤 묵어가게 되었는데 밥도 주지 않고 방에 불도 때어주지 않았답니다. 섭섭했던 수행승은 법당의 목불(木佛)을 쪼개어 불을 피웠습니다. 당연히 절에서는 난리가 났죠. 이 수행승은 천연덕스럽게 “이 절에 계신 부처님 법력이 대단하시다니 사리를 얻어볼까 하고 다비식(茶毘式` 불교 장례의식)을 했습니다”라고 하자 주지(住持)가 “나무불상에서 무슨 사리가 나오는가”라고 쏘아붙였답니다. 그러자 이 수행승은 “사리도 나오지 않는 부처라면 불이나 피워 언 몸을 녹이는게 마땅합니다”라고 답을 했답니다.

야당 대표가 절에 가서 예의를 표했느냐로 입방아에 올랐습니다. 그가 그 순간 어떤 생각을 했는지는 본인만이 압니다. 지금 본인이 무슨 해명을 한다 하더라도 그가 말하는대로 믿을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경조사에 부지런히 얼굴을 나타내는 정치인들이 경건한 표정을 짓고 그 종교에 맞는 예를 표했다고 하더라도 그 속내까지 알 수는 없습니다. 매일 신문을 장식하는 정치인들의 악수하는 사진을 보고 그게 진심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봐야 할 것은 그가 무슨 종교를 믿느냐가 아니라 그의 국가관과 경륜이어야 합니다.

불교는 마음의 종교라고 합니다. 어쩌면 경건한 모양새로 예를 갖추면서 다음 선거의 표를 세고 있는 사람보다는 예법은 달라도 진심으로 축하를 표하는 사람이 더 예의로울지도 모르겠습니다.사실 말이나 모양새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심즉불(心卽佛), 즉 마음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형식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형식은 실질에 다가가기 위한 방편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강을 건넜으면 뗏목을 버리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형식인 줄 안다면 시비는 그걸로 끝나야 합니다. 아마 입방아꾼들이 사방에서 이야깃거리를 만들지도 모르겠습니다. 이해타산이 있는 사람들은 부추길 지도 모르지요. 이게 말의 한계이고 포퓰리즘의 온상이 됩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사회의 모든 면에서 매우 심각한 분열 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거기에다 오랜 폐해인 학연, 지연, 혈연에 종교연까지 더하여 갈라진다면 정말 큰 일입니다. 그러나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한국은 3대 종교가 함께 봉사활동을 하고 함께 상대 종교의 성지순례도 다니는 관용의 나라입니다.

세상을 구하러 오신 분들이 사랑과 자비를 전하시고 떠나셨지만 그분들의 뜻을 실행하는 것은 사람의 일이라 그분들의 말씀을 해석하는 일에서부터 다툼이 일고 집단화, 조직화하면서 세속적 탐욕에 오염되고 타락했던 역사가 있었습니다. 아직도 지구 여러 곳에서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잔혹한 전투와 살육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더는 형식의 아집에 빠지지 않도록 수행하는 노력도 종교인들의 사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자비존인(自卑尊人)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상대가 누구더라도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높여주면 세상에 다툼이 없다는 말입니다. 어느 날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이 중국 관리들을 만찬에 초대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서양식 식사를 해본 적 없는 중국인들은 손 씻는 물이 나오자 차인 줄 알고 마셔버렸습니다. 그러자 여왕도 손 씻는 물을 같이 마셨습니다. 핑거볼(finger bowl)에 손을 씻는 예의 형식도 중요하지만, 상대를 배려해 그 물을 같이 마시는 마음이 진정한 예의이겠지요.

20년 전인 1999년 4월 여왕은 안동 하회마을을 방문했습니다. 마침 그날이 그분의 생신이어서 생신상도 차려드렸습니다. 여왕은 류성룡의 종택(宗宅)인 충효당에 오르면서 신발을 벗었습니다. 서양에선 발을 드러내는 것을 금기시한다는데 여왕이야 더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당시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당황했다지요. 이후 이 사례는 여왕의 품격의 대명사처럼 남았습니다. 며칠 전 한국을 방문한 아들 앤드류 왕자도 충효당과 봉정사를 찾아 어머님이 그랬던 것처럼 법당에 오를 때 신발을 벗었습니다.

쿼드릴레마(四重苦)라는 서양의 철학 논법이 있습니다. 'A는 맞다', 'A는 틀리다', 'A는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A는 맞는 것도 아니고 틀리는 것도 아니다'를 놓고 논쟁을 벌입니다. 불교에도 중관(中觀)사상이 있습니다. 사물의 실체를 바로 본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이번 해프닝으로 우려스러운 건 불자(佛子)들 사이의 논쟁으로 번지는 겁니다. 이걸 정치적 이해관계로 이용하려는 세력들이 있을 것 같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논쟁이 될수록 답은 멀어집니다. 불교식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모두 부처님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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