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魚友야담] 미쉐린 맛집의 선언, '모두 셀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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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어수웅·주말뉴스부장

국립외교원 인남식 교수의 페이스북 유머를 읽다가 소리 내 웃었습니다. 새 알탕집 옥호(屋號)가 '아르마니'였다는 거죠. 이 계열 식당 이름으로 '알마니'까지는 들어봤지만, '아르마니'는 처음. 이어 댓글창에는 한바탕 언어유희가 벌어졌습니다. 최고의 일본 카레집 '와카레마시타'와 자웅을 겨루자는 둥, 절대로 잊을 수 없는 뷔페는 서초동 대검 근처 '부정부페'라는 둥.

좋아하는 맛집 이야기는 늘 즐겁습니다. 마침 찾은 식당은 종로 낙원상가 뒷골목의 해물 칼국수집. 개그 감각으로 승부한 앞의 이름들과 달리, 신앙에 기반한 경건한 옥호를 가지고 있죠. 20년 넘은 단골이지만 최근에는 좀 뜸했습니다. 그새 한 그릇 가격은 7000원. 원래 저렴한 가격과 풍성한 해물이 놀라운 집이었는데, 전에 안 보이던 안내판이 벽에 붙어 있었습니다.

'모두 셀프서비스'.

아랫줄에는 네 개의 명사가 괄호 안에 적혀 있더군요. 김치·물·접시·바가지. 김치도, 물도, 개인접시도, 바지락과 홍합 껍데기를 담을 플라스틱 바가지도 직접 가져다 먹으라는 안내 혹은 지시였습니다. 안내판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김치만두, 고기만두 아래 쓴 여섯 글자. '만두 반반 없음'.

아, 이야말로 코로나 시대에 보기 드문 호연지기(浩然之氣)가 아닌가.

3년 전 이 칼국수집은 미쉐린 맛집으로 뽑혔습니다. 미쉐린 스타 직전 단계인 빕구르망으로, 맛과 저렴한 가격이 충족되어야 선정한다고 하죠. 그 자부심이 불러온 기개의 가격과 호기인 걸까.

원래 낙원상가 뒷골목은 서울 도심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가격으로 유명합니다. 3000원 국밥, 5000원 설렁탕집을 지금도 찾기 어렵지 않죠. 1965년 시작할 때 해물칼국수의 가격은 20원. 주변 노인과 주머니 헐거운 젊은 손님들의 열렬한 사랑과 지지를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인기 있는 식당은 당연히 가격 현실화 혹은 인상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영업자에게 더욱 가혹한 시절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아쉬운 점은 '모두 셀프'와 '반반 없음'이 주는 어떤 위압. 우리가 특정 식당을 좋아하는 이유가 오직 맛과 가격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중에는 주인장의 손님에 대한 어떤 태도도 포함되겠죠.

'아무튼, 주말'의 맛집 소개가 돈 받고 하는 광고가 아니듯, 인기있는 식당에 대한 비판 역시 바탕은 애정입니다. 나와 독자가 좋아하는 맛집이, 좀 더 오래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어수웅·주말뉴스부장 jan10@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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