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증 정자로 낳은 아이, 친자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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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9.05.22. 오후 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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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환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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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전원합의체서 격론

[저작권 한국일보]친자인정 관련한 소송_신동준 기자/2019-05-22(한국일보)


타인의 정자로 인공수정해 낳은 자녀를 남편의 친자식으로 인정할 수 있는지를 두고 대법원에서 격론이 벌어졌다. ‘혼인 중에 부인이 임신해 낳은 자녀는 남편의 자식으로 추정한다’는 대법원 판례와 직결된 문제라 논쟁이 더욱 치열했다. 부부가 동거를 하지 않은 경우에만 친자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현재의 판례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과 인공수정 등 새로운 형태의 임신과 출산이 등장한 만큼 예외 범위를 더 넓게 봐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2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주최로 서울 서초동 대법정에서 열린 공개변론은 A씨가 자녀 둘을 상대로 낸 친생자관계 부존재 확인 소송의 상고심. 무정자증인 A씨는 다른 사람의 정자를 제공받아 시험관시술로 낳은 첫째 아이와, 아내의 혼외관계로 태어난 둘째 아이 모두 자신의 자녀로 신고했지만 2013년 아내와 이혼 소송을 하면서 자녀들이 친자녀가 아니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1950년대 제정된 민법에서는 아내가 혼인 중 임신한 자녀를 남편의 친생자로 추정하면서 이를 깨뜨릴 유일한 방법으로 ‘친생부인의 소’를 인정하고 있다. 여성이 혼인 중 낳은 아이에 대해 남편의 자식임을 일일이 증명해야 하는 문제를 방지하기 위한 취지다. 친생 관계를 부인하는 소송 역시 ‘부부가 동거하지 않는 명백한 외관상 사정이 존재할 때에만 추정이 깨질 수 있다’는 198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례에 따라 엄격하게 제한돼 왔다.

다른 사람의 정자로 출산한 점이 확실한 A씨 사건에서도 민법상 ‘친생자 추정 원칙’을 고수해야 하는지가 쟁점이다. 유전자 검사결과 두 자녀 모두 A씨와 유전학적으로 친자관계가 아닌 것이 확인됐지만 1ㆍ2심은 모두 판례에 따라 A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이날 공개변론에서는 36년만에 기존 판례를 바꿀지를 두고 치열한 법리 공방이 오갔다. 원고 측 안성영 변호사는 “의학ㆍ과학기술 발달로 진실한 혈연관계 판단이 손쉽게 됐는데도 친자관계를 지속시키는 건 가족 구성원 복리와 가정 평화의 법익을 조화시키지 못하고 불행한 가족관계를 지속하게 해 매우 불합리하다”며 판례 변경을 주장했다. 안 변호사는 또 “친생부인 소송의 제척기간이 2년으로 엄격하게 제한돼 있어 친생자가 아닌 게 명백한 경우에도 진실한 혈연관계를 회복할 수 없는 불합리가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친생자관계부존재 확인소송 상고심 사건의 공개변론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반면 피고측 최유진 변호사는 “친자추정의 예외를 확대하면 자녀는 혼외출생자로 신분이 불안정해지고 아버지에 대한 부양청구권, 상속권이 상실되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맞섰다. 대한변호사협회도 의견서를 통해 “제3자 인공수정에 남편이 동의한 경우에 대해선 남편의 친생부인 주장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며 예외 허용 범위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대한산부인과학회 역시 “원칙적으로 법률상 부부만을 대상으로 하는 제3자 인공수정시술의 경우 시술 부모에게 출생아가 친자라는 점을 충분히 설명하고 동의서까지 받는다”면서 “태어난 아기가 안정된 환경에서 양육될 것이라는 신뢰가 중요하기 때문에 판례 변경에는 부정적”이라는 입장을 냈다.

법조계에서는 친생자 확인은 부양이나 상속에 큰 영향을 미치고 새로운 임신과 출산의 형태에 따라 법적, 윤리적인 문제까지 제기될 수 있어 대법원이 해당 판례를 변경한다면 파장이 적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대법원은 늦어도 연내에 최종 결정을 내린다는 방침이다.

유환구 기자 red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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