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남편이 흉기 협박, 뺨 때렸는데…‘부인이 폭력 유발’ 탓한 법원 [촉!]

입력
수정2021.04.09. 오후 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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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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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시간 등 문제로 다툼…머리·배 등 걷어차
이혼소송 냈지만 오히려 피해자 잘못 지적한 법원
대법원에 와서야 이혼 사유 인정돼
“특별법 취지를 몰각한 시대착오적 판결” 비판
대법원. [헤럴드경제 DB]


[헤럴드경제=박상현 기자] 남편이 배우자의 뺨을 때리고 흉기로 협박했는데도 ‘피해자가 폭력을 유발했다’며 이혼 사유가 안 된다고 본 판결이 대법원에서 바로잡혔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최근 베트남 여성 A씨가 내국인 남편 B씨를 상대로 낸 이혼 및 위자료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구가정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9일 밝혔다.

A씨는 2018년 2월 남편 B씨와 부부싸움을 한 뒤 ‘이혼하자’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이에 화가 난 B씨는 A씨의 뺨을 때렸다. 이후에도 A씨는 지속적인 폭력에 시달렸다. 2018년 5월 취업을 한 A씨는 귀가시간과 잦은 외출 문제로 B씨와 다퉜고, 2019년 3월엔 늦게 귀가한다는 이유로 뺨을 맞았다.

이후 부부는 법원에 협의이혼 신청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집에 돌아온 B씨는 이혼을 하지 말자며 다투는 과정에서 A씨의 배와 머리를 발로 걷어차는 등 또다시 폭력을 가했다. 또 흉기를 양손에 쥔 채 “앞으로 같이 잘살아보든지, 안 그러면 오늘 같이 죽자”며 위협하기도 했다. 이후 B씨는 상해와 특수협박 혐의로 벌금 500만원이 선고받았다.

하지만 법원은 이혼소송에서 오히려 남편 B씨의 손을 들어줬다. 항소심 재판부는 A씨가 약속한 귀가시간을 지키지 않은 점 등을 거론하며 “B씨의 폭행은 A씨의 잘못으로 유발된 부부싸움 중 일시적·우발적으로 감정이 악화돼 발생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또한 B씨가 지속적으로 이혼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보인 점 역시 혼인관계가 파탄에 이르렀다고 단정할 수 없는 이유로 봤다.

A씨는 대법원에 가서야 이혼 사유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 대법원은 “항소심은 A씨가 자신의 행동을 개선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지속적으로 이혼을 요구함으로써 B씨를 자극했다고 판단해 A씨가 B씨의 폭력행사에 상당 부분 책임이 있는 것으로 본 듯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B씨는) A씨의 배와 머리를 발로 걷어차고 양손에 각각 흉기를 들고 생명에 위해를 가할 것처럼 협박까지 한 사실을 알 수 있어 그 폭력행사의 정도도 무겁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A씨 부부의 혼인관계는 B씨의 폭력행사 이래 그 바탕이 돼야 할 애정과 신뢰가 상실돼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파탄됐다”고 결론냈다.

대법원에서 판결이 바로잡혔지만 법조계에서는 1·2심의 판단이 시대착오적이란 비판이 나온다. 성폭력 사건 피해자 대리 경험이 많은 이은의 변호사는 “대부분의 가정폭력은 우발적이고 계획 없이 일상적으로 이뤄져서 문제가 되는 것”이라며 “가정폭력을 따로 특별법으로 의율하는 취지 자체를 몰각한 판결”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1·2심이 시대에도 역행하고 법리에도 역행하는 판결을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A씨를 대리한 권오훈 변호사는 “A씨는 항소심 판결을 보고 울분을 토했다”며 “대법원이 설사 피해자가 외국인 여성이라고 하더라도 어떤 이유로든 폭력이 용납되지 않는다는 취지의 판결을 확인한 것은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poo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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