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서호정 기자 = 홍대라는 지명에는 개성과 젊음이 내포돼 있다. 자신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방식 중 하나인 헤어스타일을 담당하는 헤어숍의 경쟁이 홍대에서는 유독 치열하다. 최근 홍대 앞의 한 헤어숍에는 심상치 않은 경력의 인물이 등장했다. 불과 2년 전까지는 프로 축구 선수였고, 그 전에는 K리그1에서도 상당한 경쟁력을 자랑했다. 2014년에는 K리그2 최고의 선수로 맹활약했다. 최요셉(2019년 개명 전 최진호)이다.
2011년 부산아이파크에서 프로로 데뷔한 그는 2013년 강원FC로 이적한 뒤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2014년은 그의 축구 인생에서 가장 빛난 시즌이었다. K리그2에서 33경기 13골 9도움을 기록하며 시즌 베스트11과 도움왕을 차지했다. 그 시즌의 K리그2는 아드리아노(당시 대전), 조나탄(당시 대구) 등 쟁쟁한 선수들이 활약한 수준 높은 무대였는데, 최요셉은 그 해 해트트릭만 3번을 달성하며 강원의 에이스로 올라섰다.
2017년 상주상무로 입대했지만, 제대 후 최요셉의 축구인생은 꼬여갔다. 2018년 강원, 2019년 아산(입대가 아닌 일반 계약)을 거쳤지만 입대 전 만큼의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그의 전성기라 할 수 있는 2013년부터 2016년 사이에는 최고의 활약에도 구단, 에이전트와의 갈등으로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했다. 점점 축구에 회의감이 들었다. 2020년에는 말레이시아 무대 진출을 타진하다 K3의 김포시민축구단으로 향했지만 내부 갈등이 생겨 개막 전 팀으로부터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다.
2020년 4월 최요셉은 현역 은퇴를 결심했다. 선수 생활을 지속할 동기부여가 생기지 않았다. 합리적이지 못한 선택, 자신을 이용만 하려는 이들의 거짓말에 상처를 입었다고 했다. 축구계를 떠나기로 했을 때 그가 가장 싫어했던 말은 "다시 안 볼 것 같아? 결국 다 축구계 안에서 만나게 돼 있어"라는 말이었다. 은퇴해도 축구로 밥 먹고 살 수밖에 없을테니 눈치껏 처신하라는 뜻이었다.
그 말이 오히려 최요셉으로 하여금 축구가 아닌 다른 일로서 성공하겠다는 의욕에 불을 붙였다. 김포시민축구단과 결별하는 과정에서 법적 소송도 고려했던 그는 평소 친하게 지내던 목사님으로부터 "내려 놓고, 용서하고, 요셉 선수가 가고 싶었던 길을 갑시다"라는 메시지를 받고 미용업계로의 진입을 택했다.
선수 시절에도 그는 이미 시대를 앞서간 헤어스타일과 경기장 밖 사복 패션으로 유명세를 누렸다. 고향 인천에서 오랜 시간 미용실을 하신 어머니 영향도 컸다. 미용 일을 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적은 이유였다.
소질을 확인한 것은 2015년 상주상무에서 군복무를 할 때였다. 외박 외출을 마음대로 할 수 없고, 이발병이 없는 상황에서 전우들의 머리를 깎아준 것이 계기였다. 당시 바리깡(전동 헤어클리퍼) 하나로 김호남, 김태환, 이광선, 윤빛가람 등 동료들의 머리를 깎아줬는데 호평을 받았다. 당시 유행하기 시작하던 바버샵에 대한 관심이 컸고 스스로 과감한 커트와 포마드 스타일링을 했던 그는 헤어 영역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은퇴 후 제2의 인생을 시작하려면 미용 자격증 취득이 필요했다. 준비 과정은 쉽지 않았다. 헤어숍에 취직해 허드렛일부터 시작해야 했다. 주변과의 연락을 끊고 지인이 소개한 울산의 헤어숍으로 가서 밑바닥부터 시작했다. 그는 "축구 선수니까 하체 쓰는 일에는 누구보다 자신 있었는데, 하루 종일 서 있고 움직여야 하는 일에 초반에는 다리가 부들거렸다"고 말했다. 실력을 빠르게 키워야 하는 입장인데, 교육의 기회를 얻기도 쉽지 않았다. 노하우는 눈대중으로 배워야 했고, 헤어숍 일과가 끝나면 남아서 따로 공부를 해야 했다.
"남들이 수년간 한 걸 1년 안에 따라잡으려니까 쉽지 않았죠. 방법은 남들보다 2~3배의 시간을 더 들여서 연습하는 수 밖에 없었어요. 3~4시간 자면서 했어요. 다행히 요즘은 온라인 강의가 잘 돼 있으니까 그 도움을 받을 수 있었죠. 코로나 때문에 미용 업계도 불황이어서 교대로 쉬는 날에는 건설 현장에 가서 일용직 일도 했어요. 선수 생활을 그만둘 때는 축구가 싫기도 했지만, 그래도 20년 넘게 운동을 하면서 생긴 끈기와 집중력, 체력이 지난 1년 간 큰 도움이 된 거 같아요."
올해 초 미용 자격증을 취득한 그는 서울로 올라와 취업의 문을 두드렸다. 문턱을 넘긴 쉽지 않았다. 포트폴리오와 자신감은 충분했지만, 업계에서 본격적으로 준비한 시간이 '고작' 1년에 불과한 그에게 믿음을 주는 이는 많지 않았다. 그러다 만난 이가 현재 일하고 있는 아뜰리에 여름의 소민 원장이었다. 소민 원장도 처음에 경력을 듣고는 뜨악 했지만, 그의 진지함과 노력을 주목했다고 했다.
"처음엔 황당했죠. 그런데 포트폴리오를 보니까 준비가 잘 됐더라고요. 남자 커트는 저보다 낫다고 인정했을 정도니까. 면접을 하면서 얘기를 하는데 진지하더라고요. 그래서 같이 해 보자고 했죠. 축구 선수 출신이라는데 사실 스포츠를 잘 몰라서 어느 정도로 했는지는 몰랐어요.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유명한 선수 출신이라고 해서 놀랐죠."
취업 후 여름 실장이라는 이름으로 변신한 최요셉은 쉽지 않은 기회를 준 이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더 노력했다. 그는 "퇴근 후에 여전히 연습을 한다. 여성 고객들의 펌이나 컬러는 원장님 일을 도우며 계속 실력을 쌓고 있다. 지금은 기회를 주신 분에게 보답해야 한다는 생각 뿐이다"고 말했다. 소민 원장도 "정말 성실하다. 그만큼 본인도 이 일을 잘 하고 싶은 절실함이 있고, 그 부분을 신뢰한다"라며 그의 자세를 전했다.
헤어 디자이너로의 변신이 알려지며 그와 함께 했던 많은 선수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일부 선수들은 이미 그에게 머리를 맡겼다. 부산 강원, 상주, 아산에서 인연을 쌓은 김태환, 임상협, 박종우, 신진호, 임채민, 신세계, 김도혁 등 많은 축구 스타들이 그의 새 출발을 축복했다. 윤빛가람은 "형 손님 1천명 받으면 머리하러 갈게"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최요셉은 "안 오겠다는 얘기를 돌려서 한 거 아닌가?"라며 크게 웃었다.
프로 축구 선수에서 프로 헤어디자이너가 된 그가 다시 모시고 싶은 손님으로 꼽은 선수는 오세훈(김천상무)이다. 2019년 오세훈은 임대 신분으로 아산에서 뛰었는데 당시 짧은 머리를 유지하던 그를 바리깡으로 여러번 깎아줬다고 한다. U-20 월드컵과 23세 이하 대표팀을 거치며 스타가 된 막내에게 이제는 당당히 프로의 입장에서 제대로 머리 손질을 해 주고 싶다는 바람이었다.
'20년 간 축구를 했으니까, 가장 잘 하는 게 그거니까'라는 생각에 대부분의 선수가 은퇴 후에도 관성적으로 축구계 안에 머문다. 하지만 최요셉은 그 새장을 박차고 나와 더 큰 세상을 향해 날개를 폈다. 그는 "스스로에게 당당해지고, 용기를 갖길 바란다. 자신을 믿는다면 못할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제는 발이 아닌 손으로 자신을 찾아주고 믿어주는 이들에게 감동을 주기 위한 그의 도전은 이미 그 자체로 주목받을 가치가 있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성문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