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타냐후 또 기소… 이스라엘 검경, 살아있는 권력과 전쟁

입력
기사원문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규제 완화 대가 홍보 기사 거래… 올해 들어서만 세번째 기소 의견


세계 스트롱맨(strongman·강력한 지도자) 중 이렇게 국내 사정기관에서 마음껏 두들겨맞는 이가 있을까. 14년간 장기 집권 중인 베냐민 네타냐후(69) 이스라엘 총리가 2년째 자국 검찰과 경찰의 끈질긴 부패 혐의 수사로 휘청거리고 있다. 작게는 수백만~수천만원어치 뇌물 수수나 공금 횡령부터 특정 기업에 대한 규제 혜택과 기사 뒷거래까지 혐의가 다양하다. 스트롱맨의 혐의치고는 소소해 보이지만, 총리가 임명한 검경의 수장들은 전쟁을 선언했고 야당과 언론은 "법치가 무너졌다" "총리 사퇴하라"며 난리다.

이스라엘 경찰은 2일(현지 시각) 네타냐후 총리가 연루된 통신 업체 비리 의혹에 대해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고 밝혔다. 올해 들어 세 번째 기소 의견이다. 네타냐후는 2014년 대형 통신사 베제크의 지배주주인 샤울 엘로비치에게 2억8000만달러 상당의 규제 완화 혜택을 주고 베제크 계열 일간지에 정권 홍보성 기사를 쓰게 했다는 혐의로 뇌물수수와 사기, 배임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네타냐후 총리 부부와 엘로비치 아내와 아들, 베제크 임원 등 8명을 무더기로 기소 권유했다. 유대교 명절인 하누카 연휴 첫날 터진 뉴스에 네타냐후는 "수사 시작도 전에 기소 의견이 결정되는 법이 있느냐"며 "마녀사냥"이라고 반발했다.

이는 이스라엘 경찰이 네타냐후 부패 의혹 중 '케이스 4000'으로 명명한 사건이다. 경찰이 2016년부터 파헤친 혐의는 네타냐후가 '유력 사업가들로부터 수년간 고급 시가와 핑크 샴페인, 보석 등 총 28만달러어치(3억원)의 선물을 받고 면세 특혜 등을 줬다'(케이스 1000) '유력 일간지 예디오트 아하로노트에 정권에 유리한 기사를 쓰게 하고, 정부가 대신 경쟁지 '이스라엘 하욤'의 발행 부수를 줄였다'(케이스 2000) '독일 티센크루프와 20억달러 규모 잠수함 계약에서 네타냐후의 사촌과 최측근 군 장성들의 수뢰가 드러났다'(케이스 3000)는 것이다. 네타냐후 측은 "모두 정상적 통치 행위"라고 주장한다.

이스라엘 사정기관이 권력의 핵심을 겨냥한 의혹 중 압권은 '퍼스트레이디 밥값 횡령 사건'이다. 법무부는 지난 6월 총리 부인인 사라 네타냐후(60)가 2011~2013년 3년간 외부 식당에서 총리 공관으로 10만달러(1억원)어치 케이터링 주문을 했다는 이유로 사기·배임 혐의로 기소했다. '총리 관저 전속 요리사가 있는데 별도로 음식을 주문하는 데 세금을 유용했다'는 것이다.

살아 있는 권력에 가차 없이 법의 잣대를 들이댈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스라엘은 의회 시스템과 삼권 분립이 엄격히 작동하는 민주주의 국가다. 건국 이후 반세기 넘게 특정 정당이 의회 과반을 안정적으로 차지한 적이 없을 정도로 야당이 활성화돼 있다. 네타냐후 총리도 1996~1999년에 이어 2009년부터 3연임을 할 정도로 장기 집권하고 있지만 매번 연정으로 정부를 꾸려왔다. 검경 등 사정기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높다.

국립외교원 인남식 교수는 "이스라엘은 미국·유럽 등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이 건국한 일종의 이민 국가로, 정체성이 다양하고 역동적"이라며 "특정 이슬람 종파나 종족의 지배가 독재로 고착화되는 중동국들과는 다르다"고 했다. 네타냐후가 이란 핵개발 등 안보 위협을 내세워 장기 집권을 정당화하고, 트럼프 정부와 밀착해 수도 예루살렘을 공식 인정받는 등 공격적인 외교를 펼치고 있지만 내부에선 장기 집권에 대한 반발이 거세다는 것이다. 영국 BBC도 "이스라엘은 '없던 나라를 만들었다'는 국민적 자부심과 이 국가를 제대로 운영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크다"며 고위직 인물의 위법과 부패를 용인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했다.

[정시행 기자 polygon@chosun.com]

[조선닷컴 바로가기]
[조선일보 구독신청하기]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세계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