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탄희 판사 “판사들 압도적 다수는 사법농단 진상 밝혀야 한다는 진실의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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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9.07.01. 오후 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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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택 논설위원의 직격인터뷰│이탄희 판사


사법농단 의혹을 세상에 처음 알린 이탄희 수원지방법원 안양지원 판사가 7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이탄희 판사. 그가 아니었다면 ‘사법농단’의 진실은 지금까지도 드러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가 여느 판사들처럼 위에서 시키는대로 하며 그 자리를 지켰다면 법원행정처는 여전히 국민들 몰래 재판에 개입하고, 필요하면 정치권력과 또다른 ‘거래’를 시도하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2년 전 그가 던진 사표는 나비의 날갯짓이 돼 결국 사법사상 초유의 태풍을 몰고 왔다.

법원 안팎에서 ‘진실’과 ‘거짓’의 힘겨운 싸움이 진행되는 동안 그가 감당했어야 할 심적 고통은 결국 두번째 사표를 내게 했다. 그럼에도 그 2년은 그에게 좀더 확고한 판사관과 사법철학을 심어준 것 같았다. 지난 7일 만난 이 판사는 사표가 수리됐지만 2월말일자 인사여서 그때까지는 현직 신분이다. 민감한 질문에는 조심스런 태도를 견지했지만 법원의 미래와 개혁 방향에 대해선 쉴틈없이 답변을 이어갔다. 인터뷰 말미엔 ‘꼭 하고 싶은 말’이라며 법원행정처 탈판사화가 반드시 이뤄지는 방향으로 법원조직법이 개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부 언론과 판사들의 주장과 달리 ‘판사들의 압도적 다수가 사법농단 사건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분명히 ‘진실’ 편에 서 있다는 답변엔 단호함이 묻어났다. 판사 사회 전체를 매도하면 결국 잘못 저지른 판사들만 그 속에 숨어버리고 자정 노력하는 판사들만 냉소에 빠지니 ‘판사 개개인을 놓고 조망해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사표 제출 소식이 알려진 뒤 청와대 게시판에 반려하라는 청원도 제기되고 아쉬워하는 분들이 많았다. 가족이나 주변에서 만류는 없었나?

“가족들하고 가까운 지인들은 제가 2년 동안 이 상황을 헤쳐가는 것을 봤기 때문에 만류보다는 ‘수고했다’는 반응이 주였다.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인정하고 싶지가 않다는 분들도 있었지만 인생 끝나는 것도 아니라고 그냥 웃어넘겼다.”

-두 번째 사표낸 게 올 1월초인데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정기 인사 때 법관직을 내려놓자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은 좀 시간이 됐다. 사건 당사자들에겐 사건 하나하나가 중요하니 판사는 실수없이 잘 처리해야 하는데 그게 에너지가 굉장히 많이 소모되는 일이다. (사건이 처음 불거진) 2017년 2월 이전 재판에 순수하게 열정적으로 몰입했던 때에 비하면 많이 지쳐있고, 재충전이 필요한 상태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번 정기인사 때 그만두기로 마음을 먹었다.”

-2년 동안 고충이 심했을 것 같은데 어떻게 감당했나?

“마음 편하게 지낸 날은 하루도 없었다. 이 사건에 대한 공적인 책임감이랄까, 그런 게 저를 압도했던 것 같다.”

-2년 전으로 돌아가보면, 법원행정처 기획심의관 발령을 받고 전임자한테 담당 업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바로 다음날 사표를 냈는데?

“처음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인) 이규진 실장으로부터 판사 뒷조사 파일을 관리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때부터 고민을 시작했다. 마지막에 전임자한테 인수인계를 받으면서 도저히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제인권법연구회를 와해시킨다는 결정은 대법원장 승인없이는 할 수 없다. 최고위층까지 의사 결정이 끝난 것이라면 항의하거나 설득해서 바꿀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들어가서 업무를 할 것인가, 이 자체를 거부할 것인가 두 가지밖에 없었다. 그 상황에서 10년 동안 쌓아왔던 판사로서의 명예를 포기하는 게 너무 싫었다. 그래서 명예를 지킨다는 생각으로 사직서를 냈다.”

사법농단 의혹을 세상에 처음 알린 이탄희 수원지방법원 안양지원 판사가 7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하룻만에 판사직을 그만둔다고 결정하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부인이나 가족들이 말리진 않았나?

“처음에는 아내도 이해를 온전하게 못하는 것 같았다. 내 입장에서는 아내의 동의가 필요해서 내가 겪은 일들, 이렇게 결단하는 것에 대한 공적인 의미 이런 것들을 최대한 설명하려고 노력을 했다. 내가 명예라고 한 것이 좋은 선후배 법관들, 우정관계를 갖고 있는 동료판사들에 대한 배신행위에 가담한다는 데서 오는 분노 내지는 참담함이었을 수 있다. 그건 결국 판사로서 이상과 가치를 다른 판사들과 공동으로 추구하는 과정에서 생긴 관계다. 그런 소속감을 배신하는 게 곧 공적인 가치를 배신하는 것이 된다. 판사라는 명예를 지키는 게 결국 공적 가치를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표 뒤 행정처에서 만류하고 원직 복직 했는데 한침 뒤에 그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그리고 나서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1차 조사위가 꾸려졌다. 그때 이야기를 해달라.

“당시 두차례 조사를 받았다. 사실 기대를 많이 했다. 왜냐면 처음 경위서를 제출해달라고 요청하면서 최대한 상세하게 진술해달라, 그러면 그걸 기초로 진상규명을 하겠다고 했다. 의지가 있다고 기대하고 들은 내용을 전부 다 진술했다. 그런데 조사 결과를 보고 굉장히 실망했다.”

-대법원장이 바뀌고 법원행정처장이 위원장을 맡은 특별조사단이 꾸려져 3차 조사를 했다. 결론은 형사처벌 대상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나중에 대법원장이 ‘검찰 수사 협조’ 입장을 밝힌 뒤 법원 스스로 조사 결과를 뒤집고 검찰을 불러들였다는 비판도 나오게 됐는데?

“특별조사단에 참여했던 판사들이 자기 직분이 뭔지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더 아쉽다. 진상조사 기구인데 재판 기구처럼 운영된 것 같다. 진상조사 기구라면 재판을 거래나 흥정의 수단으로 삼으려고 했던 흔적이 발견됐다면, 그에 따라서 실제 어떤 행위가 있었는지 밝혀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조사를 거부했고, 행정처 인사총괄실 컴퓨터는 보지도 못해 진상을 충분히 밝히지 못할 상황이었다. 그랬으면 조사를 중단하든가, 못 밝힌 부분에 대한 대책을 내놓든가 했어야 한다. 그런데 특별조사단은 조사가 완결된 것처럼 했다. 일부 밝혀진 내용만 놓고 형사처벌 여부에 찬반 의견이 비등하다고만 하고 조사를 끝내는 바람에 큰 혼란을 야기했다.”

-국민들이 사법농단 사실이 담긴 행정처 문건을 상당 부분 본 상황에서, 특조단이 이 정도로 끝내도 되겠다고 판단한 자체가 심각한 문제 아닌가?

“동의한다. 진상조사 기구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재판기구인 것처럼 자기 역할을 혼동한 것 아닌가 생각한다.”

사법농단 의혹을 세상에 처음 알린 이탄희 수원지방법원 안양지원 판사가 7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사건 초기에 행정처 컴퓨터를 공개하면 안되고, 당사자 동의없이 하면 불법이라고 일부 언론과 법관들, 특히 행정처 출신들이 강력하게 주장했다. 이제와서 보니 어마어마한 게 있어서 그랬던 거 아닌가. 애초 그런 게 나오리라고 생각했었나?

“전혀 못했다. 결국은 숨겨야 할 내용이 광범위하게 있어서 일부분만 드러내고 나머지를 숨기는 식으로 해결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조사 자체를 방해하거나 무산시키는 방법밖에 없었던 게 아닐까 추단을 해본다.”

-처음 법관 사찰 문건이 나오고 나중엔 이른바 ‘불이익 조처’ 문건까지 나왔는데도 일부에선 여전히 블랙리스트가 없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블랙리스트 논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문건이 발견될 때마다 개념을 변경해가면서 새로운 논란거리를 만들어내는 양상으로 흘러왔다. 제가 기억하고 있는 블랙리스트 개념 정의만 해도, 세 차례나 바뀌었다. 2017년 처음 언론에서 사법부 블랙리스트 개념을 사용할 때는 ‘판사 뒷조사 파일’ 그 자체였다. 그런데 판사 뒷조사 파일 발견되자, 블랙리스트 개념이 ‘전체 법관에 대한 뒷조사 파일’로 변경됐다. 그 뒤 ‘뒷조사 플러스 불이익 조치’ 개념으로 바뀌었다. 다시 ‘불이익 조처 검토’ 문건이 발견되니까 거기에 다시 실행 됐는지를 시비하는 개념으로 바뀌더라.”

-결국 블랙리스트가 없다는 주장을 펴기 위해 4번이나 말을 바꾼 셈이다.

“이제는 그 실행까지도 검찰 수사로 확인됐다. 더 이상 무의미한 논란은 중단하고 이미 드러난 문제점에 집중했으면 좋겠다.”

-재판거래란 표현에도 시비가 많다. 단순히 재판개입 사안도 있고 사후적으로 ‘정부 협조 사례’라고 표현한 것도 있지만 최소한 전교조 사건이나 강제징용 사건 같은 경우는 확실한 재판거래로 봐야 할 것 같은데? 해외파견 법관 자리까지 만들기도 했고.

“개개 사건들은 직접 경험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논평을 하기는 어렵지만, 사법농단이란 표현으로 통칭되는 사건 전체 구조에 대해서는 제대로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대법원장을 정점으로 하는 법원행정처가 가운데 있다면 한쪽엔 권력자라고 부르는 대통령, 대통령 비서실장, 국회의원, 외교부장관 이런 분들이, 다른 쪽엔 일선 재판장들이 있다. 행정처는 권력자들이 재판과 관련해서 원하는 게 뭔지 알아내려 노력하고 그 과정에서 재판 청탁이 이뤄진다. 다음엔 행정처가 일선 재판장에게 직간접적 방법으로 이를 전달한다. 여기서 재판개입이 발생한다. 일선 재판장 입장에선 행정처를 무시할 수 없다. 인사이익 또는 불이익의 이해관계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게 블랙리스트 문제다. 원하는 결과가 나오면 그걸 가지고 다시 권력자에게 가서 원하는 것을 얻어내려 하는 데서 재판거래가 이뤄진다. 전체 사건이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그 총체적인 구조를 조망하는 게 중요하다.

이런 시각에서 봤을 때 특정 사건을 특정인이 거래 대상으로 삼았다 안삼았다 차원이 아니라 거대한 구조의 결함 내지는 시스템의 총체적인 실패, 그렇게 표현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대법관 일동’도 재판거래는 없었다는 공식입장을 내놨다. 재판거래를 부인하는 분들 생각은 진실을 좀 덮더라도 사법부 위신이나 조직보호가 우선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저는 그런 분들이 소수라고 확신한다. 전국에 3천명의 판사들이 있는데 2017년부터 최근까지 2년 동안 진상을 반드시 규명해야 한다고 결의한, 진실의 편에 선 판사의 수가 압도적 다수다. 반대되는 취지의 결의를 한 법관은 극소수다. 법원을 하나의 위계 조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가지고 있는 쪽에서는 상층부에 있는 소수, 그 중에서도 일부라고 생각하는데, 그 소수의 입장이 과다 대표되는 것 같아서 굉장히 안타깝다.”

‘사법농단’ 1차 조사 때 기대했다가 실망
지난 2년 ‘공적 책임감’이 나를 압도했다
일부선 말 바꿔가며 ‘블랙리스트 없다’ 강변


‘재판 거래’는 법원 시스템의 총체적 실패
법원 전체 매도하면 ‘문제판사’만 익명에 숨어
‘김명수 대법원’ 자체 개혁안, 성공할 수 있을까


-법관대표회의가 ‘탄핵 결의’를 한 뒤에도 법관 대표회의 자체를 탄핵해야 한다는 등 여러 비판이 나왔다. 이런 목소리들 역시 실체 이상으로 과대 대표되고 있다고 보나?

“그렇다. 그리고 법원의 분위기라는 표현이 자주 사용되는데, 사실 허상인 경우가 많다. 법원에 3천명의 법관이 있다면 3천개의 사법부가 있는 셈이다. 이들이 어떤 공통의 생각을 갖고 있는지는 판사들 스스로도 모를 때가 많다. 그런 상태에서 일부 소수의 의견만 취합해서 거기에서 공통분모를 찾고 이게 법원 전체의 분위기라고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사법부라는 조직에 대해 아직은 이해가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법원개혁과 관련해서도 법원 자체를 매도해버리면 실제 잘못한 사람들은 그 집단이라는 외투 속에 숨어버리고, 자정을 하고자 노력했던 사람들은 그 사람들과 같이 비판을 받는다. 그러면 뭣하러 이 일을 하고 있는가 냉소에 빠지고 결국 개혁도 지체된다. 잘못을 해서 비판받아야 할 사람들은 집단 속에 숨어버리고 자정 노력한 사람은 냉소적으로 변하면서 개혁이 지체된다. 사법 선진국처럼 우리나라도 이제는 판사들을 개별적으로 조망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고 본다.”

-진상 규명을 결의한 판사들이 압도적이라지만, 사법농단 연루 판사들 징계 수위를 보면 결국 솜방망이 수준이다. 국민들이 어떻게 보는지 상관없다는 식 아닌가?

“결국 징계위원회도 고위법관들 중심으로 구성된 데서 오는 한계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그 부분에 대해서 변호할 생각은 없다. 징계와 관련해서 본질적으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징계 수위를 떠나서 법관 독립을 침해했던 판사들이 과연 계속 재판을 하는 것이 맞는가, 재판당사자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 많이 우려가 된다.”

-3천개 사법부란 개념을 좀더 설명한다면?

“2014년에 하버드대 로스쿨로 유학을 갔다. 여러나라 법관, 로클럭들과 모여서 ‘justicia’라는 모임을 만들어 교류하면서 미국 법관 몇명과도 친해졌다. 그 중 한 분이 6·25 참전군인 출신으로 노령이셨는데 어느 날 ‘I am the office’라고 하더라. ‘내가 곧 기관’이란 뜻인데 깊은 인상을 받았다. 판사는 한명한명이 헌법상 독립기관이고 판사가 곧 사법부인 셈이다. 우리로 치면 3천개의 각자 다른 사법부가 있다는 뜻 아니겠느냐.”

사법농단 의혹을 세상에 처음 알린 이탄희 수원지방법원 안양지원 판사가 7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사법권 독립이 된다고 곧바로 재판의 공정성이 담보되는 건 아니지 않나?

“사법권이 삼권 중 하나인데 사법권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으면 나머지 입법 행정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견제해야 한다. 삼권 분립 정신을 성문헌법으로 만든 게 미국이다. 그 정신은 견제와 균형, 체크앤밸런스라고 하는데 헌법이 제대로 기능하도록 나머지 기관들이 견제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미국 의회도 15번이나 탄핵 소추를 결의했다. 그중엔 미국 대법원에서 먼저 의회에 탄핵 소추를 검토해달라고 요청한 경우도 있었다. 그렇다고 미국 사법부의 권위가 다른 사법 선진국들에 비해서 떨어지느냐? 그렇지 않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 뒤, 일부에서 사법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완전히 무너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하는데?

“사법부를 하나의 조직으로 이해하기보다 개별적으로 조망해야 한다. 잘못한 판사에 대해서 엄정 대처하는 것이 법원 전체에 대한 신뢰에는 오히려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미 사실이 드러났는데 드러난 사실에 대해서 별일이 아니라는 것처럼 모르쇠하는 법원과 이 일을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고 엄정하게 대처하는 법원, 이 중 어떤 법원이 국민들 보시기에 믿음직할까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

-사법농단 사건이 지금 상황에 이르게 된 데 대해 처음 문제제기를 한 당사자로서 느끼는 감회가 있다면?

“저는 개인적인 감정을 논하는 것이 이 사안에 대한 논의의 격을 떨어뜨린다고 생각한다. 개인 간 관계의 문제가 아니라 공적 사안인만큼 공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과거 여러 차례 사법파동이 있었지만 이번처럼 적나라하게 사법부의 치부가 드러나고 결국 전직 대법원장까지 구속된 건 사상초유의 일인데?

“국민들께서 충격을 많이 받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실 생각해보면, 2년 전에 ‘이게 나라냐’는 국민들 외침이 있었는데 그건 공직사회를 향한 외침이었다. 오랜 시간 정보기관·검찰·경찰·군 등 공직사회나 공적 역할을 해야 할 언론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감이 누적돼 그런 외침이 나왔을 것이다. 실망의 본질은 배신감이다. 그런데 전에는 법원은 그래도 다르겠지 하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는데 법원도 마찬가지였다는 게 드러난 셈이다. 과거 법원 내에서 벌어졌던 일들, 나아가 그 일이 드러나는 과정에서 일부 판사들이 보여주는 조직 보신주의, 그런 행태들을 국민들이 보면서 다른 공조직하고 너무 똑같으니 실망감이 더 컸을 것이다.”

-일부에서 이번 사건의 핵심에 국제인권법 연구회가 있고 법관대표회의도 이들이 주도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대부분 진보성향이라며 진영논리로 접근하고 있다.

“국제인권법연구회는 대법원 설치된 15개 연구회 중 하나다. 헌법연구회 등과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전부터 법원행정처 비위 사실이 드러날 때마다 시선 돌리기 용으로 활용돼왔는데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김명수 대법원’이 진행해온 사법개혁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아직은 말을 아끼고 싶다. 다만, 일반론으로 이야기하자면, 대법원장이든 일선 판사든 정치인이든 고위공직자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공적인 존재로서 자기가 누구인지 자기 직분이 뭔지 자기가 지향해야 할 공적가치가 뭔지 명확하게 하지 않으면 관계에 휘둘리기 쉽다고 생각한다. 현 대법원장도 국민들 앞에서 한 말씀들을 통해서 그런 공적 가치들을 명확히 표현하신 편이다. 그런 것들이 얼마나 지켜지는가가 핵심일 것 같다.”

-지금과 같은 위기 상황에선 사법부가 대대적인 혁신을 해도 모자라는데 사법발전위원회 구성도 그렇고 이후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국회에 넘기는 과정에서도 개혁 의지가 많이 부족해 보인다. 과거 이용훈 대법원장 시절에도 못 미치는 것 아닌가?

“본인이 한 말씀을 얼마나 지키는지가 핵심이다. 2018년 9월 사법개혁 담화문을 보면, 사발위 건의안을 구체화하는 것은 행정처가 관여하지 않고 별도 기구에 맡기겠다는 게 들어가 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대법원에서 국회에 제시한 법안은 사실상 행정처가 만들었다. 자기 개혁안을 자기가 만들어서 성공한 사례를 잘 알지 못한다.”

-앞으로 이런 사법농단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나?

“세가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행정처 탈판사화가 중요하다. 그러면 권력자와 일선재판장 사이의 연결통로를 끊어진다. 임종헌 차장이나 국회 파견근무자가 판사가 아니었다면 권력자들이 그들에게 재판과 관련된 내용을 요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소용이 없으니까. 임 차장도 본인이 판사가 아니었다면 일선 재판장에게 전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재판장이 전화를 끊어버렸을 테니까.

또, 사법행정을 혁신적으로 투명화해야 한다. 사법농단이 가능했던 이유는 관련자들이 법원 내부 일은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절대로 외부에 드러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여러 문건에 기재된 ‘알려지면 큰일이다’라는 취지의 표현들이 그걸 방증한다. 행정처의 여러 회의, 법원장회의 등의 회의록을 전국법관대표회의 수준으로 만들어서 공개하고, 사법행정에 다양한 법원 외부자들이 실질적으로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재판절차도 투명화해야 한다. 지금 우리는 법정에서 판사가 재판진행을 하며 한 말에 대한 기록을 남기지 않는다. 하지만 미국 일부 주는 법정에서 진행되는 재판의 전 과정을 영상녹화물로 만들어 법원 내부에 보존한다. 우리도 그랬다면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사건 선고 당시 재판장의 언행에 사법행정권자의 요구내용이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사건에서도 재판 개입 전후의 재판 진행이 유의미하게 달라졌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사법농단 의혹을 세상에 처음 알린 이탄희 수원지방법원 안양지원 판사가 7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앞으로 법원이 신뢰를 회복하려면 사법농단의 진실이 규명되고 합당한 조처가 내려지는 게 당연한 전제조건일 것이다. 여기에 간과할 수 없는 게 이미 ‘오염된 재판’은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다. ‘정부 협조 사례’ 문건의 메모를 당시 법원행정처장이 직접 썼다는데 재판 공정성에 문제가 생겼다면 사후에라도 치유나 해법이 필요하지 않나?

“아직 현직 판사 신분이니까 구체적으로 확정된 사건에 대해서는 말을 아껴야 할 것 같다. 다만 당사자들이 느꼈을 정신적 고통은 정말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컸을 거다. 국민들이 모든 것을 다 거치고 마지막으로 오는 곳이 법원이다. 그런데 이곳마저도 공정한 절차에 의해서 결정을 해주지 않는다는 절망감은 견뎌내기 힘든 일이다. 그래서 법원에 대한 믿음은 사실 필요에 의한 믿음이고, 아주 특별한 믿음이다. 판사들이 공정하게 결론에 이르렀을 거라고 믿고 그 결론을 수용한 것인데, 그게 그렇지 않았다고 나중에 밝혀졌을 때 느꼈을 배신감과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래도 젊은 법관들이 양심적 목소리를 내는데 대한 기대가 있다. 그 중심에 법관대표회의가 있는데 바람이 있다면?

“저도 기대를 한다. 판사들이 아주 느리긴 한데 선례를 존중하고 일관성을 추구하는 측면이 있다. 속도는 느리지만 지난 2년 동안 전국법관대표회의가 활동해온 방향성이라고 하는 것은 유지될 거라고 기대한다. 앞으로도 법원 개혁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

-김경수 경남지사 구속 이후 정치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사법농단 사건 이후 법관사회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분석도 있는데 정말 그런가?

“특별히 드릴 말씀이 없다.”

-이 판사의 행동에 비추어 어떻게 부르는 게 맞나?

“언론에 폭로를 하거나, 제보를 한 적이 없기 때문에 내부고발에는 미치지 못한다.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내부 거절자, 좀 더 적극적으로는 저항했던 사람으로 불려지면 충분할 것 같다. 당시 사직서를 제출했던 것은 사람이나 조직에 대한 게 아니라 공적 가치에 대한 일종의 충성심, 그리고 판사이자 공직자로서의 명예를 지켜내기 위한 저항이었다.”

-법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내 경험에 비춰보면 개인 또는 조직의 이익과 공적가치를 구분하고 공적가치에 대한 지향을 분명히 하는 것이 중요하더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국민들에게는?

“일단 죄송하다. 개인으로든 집단으로서든 한계가 있었다는 걸 부정할 수는 없다. 다만, 앞으로 법원이 구조적인 변화로 이어질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의회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다른 국가기관과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다.”

사법농단 의혹을 세상에 처음 알린 이탄희 수원지방법원 안양지원 판사가 7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마친 뒤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 인터뷰 안팎

이탄희 판사의 이야기를 좀더 일찍 듣고 싶었으나 결국 사표가 수리되고 양승태 전 대법원장 기소를 코앞에 둔 시점에야 인터뷰가 이뤄졌다. 아직 현직 판사 신분이기 때문인듯 자신이 겪은 법원 내부의 일이나 민감한 사안에는 말을 아꼈다. 양 전 대법원장 구속에 대한 소회를 묻자 “씁쓸하다”는 한마디로 복잡한 속내를 압축할 뿐 더이상의 언급은 삼갔다. 그의 인사방식에 대해 ‘법원행정처 지시를 그대로 따른 뒤에 승진 못한 판사 없고, 반대로 따르지 않았는데 승진한 판사 역시 하나도 없다는 얘기가 있다’고 묻자 “개별적인 이야기는 조심스럽다”며 즉답을 피했다.

참여연대로부터 의인상을 받는 자리에 아들을 데리고 간 얘기를 꺼내자 “아들이 좋아하더라. 갇혀있던 마음이 해방된 것 같다. 나도 목적을 달성한 셈”이라며 활짝 웃었다.

이 판사는 2008년 4월 수원지법에서 처음 판사 생활을 시작해 서울·광주·제주지법을 거쳐 2017년 안양지원 판사 시절 법원행정처 기획2심의관 발령을 받았다. 그러나 자신이 몸담고 있던 국제인권법연구회를 와해시켜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다음날 곧바로 사표를 냈다. 사표 반려 뒤 안양지원으로 복귀했다가 최근까지 헌법재판소에서 파견근무 중이다. 참여연대는 사표로 저항함으로써 사법농단 사건을 촉발시킨 점을 높이 평가해 지난해 그를 ‘의인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올해 초 두번째 사표를 내 결국 수리됐다. 김이택 고한솔 기자 ri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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