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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지헌의 브러시백] 염경엽 감독의 '용기 있는 반성'

기사입력 2016.07.27. 오후 01:28 최종수정 2016.07.27. 오후 04:35 기사원문

매년 진보하는 사령탑, 넥센 염경엽 감독. (사진=엠스플뉴스 알렉스 김)

 

반성은 진정한 용기에서 나온다. 특히 책임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반성은 더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거대한 비극 앞에서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참담한 사태를 겪고서도 누구도 사과하는 사람이 없는 시대를 살다 보면 그런 용기가 더욱 간절하게 느껴진다.

 

그런 면에서 26일 나온 넥센 히어로즈 염경엽 감독의 발언은 진정한 용기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작년에 가장 실수한 부분은 몇몇 선수에게 지나치게 치중했다는 거에요. (조)상우에게 너무 치중하다보니 결국 과부하로 이어졌어요. 정말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염 감독이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후반기 불펜 운영 구상을 밝히다 한 말이다. 2015시즌 넥센에서 셋업맨 조상우가 차지하는 팀 내 비중은 절대적이었다. 전 경기를 불펜으로 등판했음에도 93.1이닝으로 팀내 최다이닝 4위에 올랐고, 대체선수대비 기여승수(WAR)는 에이스 밴헤켄(5.0승)에 이은 팀내 투수 2위(3.4승)였다. 리그 전체 불펜 투수를 놓고 봐도 한화 권혁(112이닝), 한화 박정진(96이닝) 다음으로 많은 이닝을 던진 투수가 조상우였다. 

 

조상우는 올 시즌을 앞두고 팔꿈치 인대접합, 일명 토미존 수술대에 올랐다. 

 

굳이 이유를 대자면 얼마든지 댈 수 있다. 지난 시즌 넥센은 30경기 이상 등판한 선발투수가 밴헤켄과 피어밴드 둘 뿐일 정도로 선발 마운드가 약했다. 1경기 이상 선발등판한 투수만 15명에 달했다(10개 구단 최다). 자연히 불펜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다. 

 

투수의 부상과 많은 등판도 ‘상관관계’는 있지만 ‘인과관계’는 성립하지 않는 대목이다. 투구폼 자체가 부상 당하기 쉬운 폼이라서, 포크볼이나 슬라이더 같은 구종 때문에, 지나치게 공을 강하게만 던져서, 보강운동을 착실히 하지 않아서 등등 다른 이유를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무엇보다, 투수 기용은 감독의 고유 권한으로 통한다. 감독의 투수 기용에 대해서는 함부로 비판해서는 안 된다는 기류가 강하다. ’투수가 없다’ ‘리그 전체적으로 투수가 전멸이다’ ‘우리 팀만 그런 것도 아니다’ ‘외부에서 보는 것과 안에서 보는 것은 다르다’는 발언을 만나게 되는 이유다. 발언 속에 리더의 책임은 어디에도 없다. 팀 사정, 리그 상황, 외부의 편견 탓만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염경엽 감독은 지난 시즌 자신의 투수 기용에 실수가 있었다고 솔직하게 인정했다. 조상우를 너무 많이 기용했다고 털어놨다. 조상우가 과부하 걸린 원인도 그 때문이라고 반성했다. “뼈저리게 느꼈다. 많은 공부가 됐다”는 표현으로 진심을 전했다.

 

"감독인 내가 불안하면, 모두가 불안해진다"

 

염경엽 감독은 2016시즌 장기적 관점의 마운드 운용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엠스플뉴스 알렉스 김)

 

염 감독의 용기 있는 반성은 계속된다.

 

“내가 불안하면 모두가 다 불안해집니다. 감독인 내가 불안하니까, 자꾸 쓰는 선수만 쓰게 되는 거에요.”

 

지난 시즌 조상우는 93.1이닝을 던지는 동안 탈삼진 89개를 잡아내고 평균자책 3.09를 기록했다. 넥센 불펜진 전체 평균자책이 4.90에 달한 것과 비교하면 차이가 크다. 마무리 손승락은 2015시즌 평균자책 3.82로 다소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구위를 놓고 봐도 평균 패스트볼 구속 148.1km/h를 기록한 조상우에 비견할 만한 투수는 김세현(148.6km/h) 밖에 없었다. 조상우는 감독이 언제 어떤 상황에도 믿고 기용할 수 있는 유일한 투수였다.

 

“그간 좋은 셋업맨을 만드는 데 너무 빠져있었던 것 같습니다.” 염 감독의 말이다.

 

본래 셋업맨은 마무리투수에 앞서 7회와 8회 등판해 1이닝을 막아내는 투수를 뜻한다. 그러나 KBO리그에서 셋업맨은 9회 이전 가장 결정적인 위기 상황에 등판해 막아내는 투수다. 7회에 올라와 8회까지 막기도 하고, 심지어는 6회부터 올라와 긴 이닝을 던지는 경우도 있다. 이런 역할을 하는 투수가 여럿 있다면 돌아가며 서로의 짐을 나눠 질 수 있지만, 한 명 뿐이라면 혼자 짊어지는 짐의 무게가 커진다. 

 

조상우가 바로 그랬다. 지난 시즌 조상우는 70차례 등판 중 19경기에서 2이닝 이상을 투구했다. 4아웃 이상을 잡은 경기는 전체 등판의 절반에 가까운 32경기에 달했다. 5회에도 1경기에 등판한 기록이 있고, 6회부터 등판한 경기도 적지 않았다. 확실하고 유일한 셋업맨이라는 조상우의 존재감이 많은 경기에 등판해 긴 이닝을 던지는 원인으로 작용한 셈이다. 

 

“물론 역할을 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너무 한 선수에게만 치중하면 선수 본인에게도 좋지 않고, 팀에도 좋지 않고, 감독에게도 좋지 않습니다. 그걸 깨닫는 데 3년이 걸렸어요. 감독 첫 해에는 올 시즌처럼 했었는데 말입니다.”

 

넥센 불펜의 달라진 2015-2016년 (144경기 환산)

 

넥센 불펜진 이닝 상위 1~10위 투수가 불펜 전체 이닝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비교했다. 여러 투수들을 골고루 기용하며 특정 선수에 쏠리는 부담을 줄이려 하는 노력이 드러난다.

 

실제 염경엽 감독은 이번 시즌 들어 매우 합리적이고 멀리 내다보는 마운드 운영을 하고 있다. 필승조 김상수와 이보근을 주축으로 다양한 투수를 폭넓게 기용하면서 투수진의 과부하를 방지하고 있다. 넥센은 김상수가 26일까지 49이닝, 이보근이 43이닝으로 팀내 불펜 투수 중 가장 많은 이닝을 투구하고 있다. 144경기로 환산하면 김상수가 76.2이닝, 이보근이 67.1이닝을 던지게 된다. 지난해엔 조상우 혼자서 93.1이닝을 책임지고 그 뒤로는 김대우가 69.1이닝, 김세현이 69이닝을 던진 바 있다. 특정 선수 한둘에 치중하는 경향이 확실히 줄어들었다. 다소 경쟁력이 떨어지는 투수라도 적재적소에 활용해 투수진 과부하를 막고 있다. 

 

선발진 사정이 지난해보다 좋아졌기 때문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밴헤켄이 일본에 진출하고 한현희가 토미존 수술대에 오르면서 넥센은 선발진에 큰 구멍이 난 채로 2016시즌을 맞이했다. 외국인 투수 피어밴드는 부진했고, 코엘로는 매 경기 5이닝만 던졌다. 신재영을 제외한 국내 선발진은 안정감을 보여주지 못했다. 여기에 조상우의 수술과 손승락의 이적으로 필승조도 사라진 상황이다.

 

반성하는 리더, 강한 조직을 만든다

 

팀 분위기도, 팀 성적도 최고조인 넥센. (사진=엠스플뉴스 알렉스 김)

 

그럼에도 넥센과 염경엽 감독은 지난 시즌보다 진일보한 투수진 운영을 보여주고 있다. 투수 혹사는 자취를 감췄고, 젊고 싱싱한 투수들이 등장해 빠른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다. 노장 투수들도 저마다 맡은 자리에서 제 몫을 하며 후배들을 지원한다. 지난해라면 조상우가 나왔을 만한 상황에 전혀 의외의 선수가 등장해 위기를 막아내는 장면도 자주 나온다. 후반기에는 밴헤켄의 국내 복귀와 새 외인투수 맥그레거가 등장해 투수진에 더욱 힘이 붙었다. 

 

팀 성적도 ‘지구방위대’ 라인업을 자랑한 지난 시즌(0.545)보다 훨씬 좋은 0.560의 승률로 리그 3위를 달리고 있다. 단지 한 두 경기 승리만이 아닌 시즌 전체를 바라보며 장기적 관점의 운영을 해 온 결과가 성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나간 실수를 용기있게 인정하고, 반성하고, 더 나은 대안을 찾았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다. 

 

넥센과 염경엽 감독은 반성할 줄 아는 리더, 용기 있는 리더가 얼마나 조직을 강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지금 우리 야구에는, 그리고 우리 사회에는 이런 리더가 필요하다.

 

통계출처=스탯티즈(www.statiz.co.kr)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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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제공 스포츠춘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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