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작용 일으키면 엄청난 피해
안전성 검증에 많은 시간 필요
트럼프 “연내 개발”은 희망일뿐
해킹까지 동원한 백신 개발 경쟁
벌써 백신 개발 이후에 대한 우려도 쏟아진다. 다른 나라는 어떻게 되든, 개발에 성공한 나라나 투자한 나라에만 백신을 먼저 공급할 것이라는 걱정이다. 백신을 개발 중인 프랑스 제약사 사노피는 최근 “개발에 투자한 미국 정부가 가장 많은 양의 백신을 우선 주문할 권리가 있다”고 했다가 소나기처럼 퍼부어진 비난에 바로 다음 날 “전 세계에 공평하게 공급하겠다”고 사죄하듯 발표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는 독점을 경계하며 “백신은 세계적 공공재”라고 했고, 문재인 대통령도 세계보건총회에서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는 인류를 위한 공공재로서 전 세계에 공평하게 보급돼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코로나19가 번지자 마스크 수출을 금지한 나라가 한둘이 아니다. 사정이 급해지면 백신이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이 없다. 아니, 오히려 그럴 가능성이 크다. 자국 중심주의가 갈수록 짙어지는 마당이 아니던가. 그래서 미국·중국·독일·영국·프랑스 등 주요국들은 각자도생(各自圖生)하듯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하고 있다. 한국 역시 SK바이오사이언스 등이 경쟁에 뛰어들었다.
승자는 누구일까. 지금까지 언론에 나온 것만 보면 미국이 제일 앞선 것 같다. 미국의 ‘모더나’란 회사는 임상 1상 시험에서 백신이 효과를 냈다고 발표해 주가가 뛰었다(그랬다가 다시 폭락했다). 미국 ‘노바백스’도 지난주 임상 1상을 시작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연말까지 백신을 개발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그러나 “연말까지 개발”은 정치가의 간절한 염원일 뿐이다. 백신은 그렇게 빨리 나오지 않는다. 아무리 서둘러도 3년 안에는 힘들다.
코로나19가 퍼지자 먼저 백신 개발에 나선 건 주로 바이오 벤처 기업들이었다. 글로벌 대형 제약사들은 그냥 상황을 주시했다. 경험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백신은 통상 개발에 8~15년의 시간과 조 단위 돈이 들어간다. 섣불리 개발에 뛰어들었다가 감염병이 사라지면 큰 손해를 본다. 더구나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은 아직 만들어 본 적이 없다. 2002년 처음 발병한 중증호흡기증후군(사스·SARS) 백신은 2015년 개발을 중단했다. 백신을 만드는 사이에 병이 자취를 감췄다. 2012년 나타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MERS) 백신도 8년이 지나 병이 드물어진 지금까지 나오지 않았다.
코로나19는 사스·메르스보다 백신 개발 가능성이 크다. 전 세계로 퍼졌고 희생자가 많이 나왔다. 한동안 반복 발생할 조건을 갖췄다. 그래서 각국 정부와 국제기구·단체들은 백신 만들기에 전에 없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기술이 발전한 덕분에 백신 후보물질을 찾아내는 속도는 전에 없이 빨라졌다. 그래도 1년이 안 돼 백신이 나올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임상 1·2·3상을 통해 안전성과 효과를 면밀히 검증하는데 최소 3년은 걸린다.
특히 안전성은 검증에 또 검증, 확인에 또 확인이 필요하다. 백신은 환자가 아니라 건강한 사람 최소 수억 명에게 접종한다. 안전성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으면 수십만~수백만 명이 큰 피해를 입는다. 실제 사례가 있다. 76년 치사율 높은 독감이 나돌자 미국 정부는 급하게 백신을 내놨는데, 즉각 문제가 생겼다. 접종받은 많은 사람에게서 하반신부터 마비가 오는 ‘길랑-바레 증후군’이란 중증 부작용이 나타났다. 백신 접종은 중단됐고, 약 1억 명분의 백신이 폐기됐다.
위험성이 있는데도 충분히 부작용을 살피지 않고 임상 시험을 단축해 백신을 접종할 수는 없는 일이다. 게다가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은 아직 나온 게 없어 더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 모더나 등이 발표한 ‘핵산 백신(DNA·RNA를 활용한 백신)’ 기술 역시 현재까지 한 번도 백신으로 상용화된 적이 없다. 이런저런 점을 고려하면, 백신이 나오기까지는 빨라도 3년은 걸릴 것으로 보인다. 개발 전쟁에서 누가 이길지 예상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코로나19 백신에 정부 집중투자해야
그렇다고 사회적 백신에만 기댈 수는 없다. 코로나19에 맞서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실제 백신이다. 개발에 엄청난 돈과 시간·인력이 필요한 만큼 정부가 나서서 집중 투자해야 한다. 손 놓고 있으면 코로나19가 다시 번졌을 때 백신을 확보한 나라의 눈치를 보며 손 벌리고 기다리는 처량한 신세가 될 수도 있다.
비록 이번 개발 경쟁에서 조금 뒤처지더라도, 쌓게 될 실력과 인력은 훗날 다른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했을 때 큰 힘이 된다. 그게 바로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기초체력 가운데 하나다. 다시 말하지만, 백신은 국민을 지키는 안보다.
강진한 가톨릭대 의대 백신바이오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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