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한의 미래를 묻다] “코로나19 백신 개발 최소 3년 걸릴 것”

입력
수정2020.06.01. 오전 1:18
기사원문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건강한 시민에게 접종하는 백신
부작용 일으키면 엄청난 피해
안전성 검증에 많은 시간 필요
트럼프 “연내 개발”은 희망일뿐
백신 전쟁
강진한 가톨릭대 의대 백신바이오연구소장
1978년 소아과의사 생활을 시작하고 처음 마주한 비극은 중증 전염병인 디프테리아에 걸려 숨진 어린이였다. 중증 결핵에 희생된 어린이는 하도 많이 본 바람에 꿈에서도 나타났다. 일본뇌염과 신생아 파상풍도 두려운 질병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질병이 됐다. 백신의 덕택이다. 사람들이 별로 의식하지 못하지만, 백신은 수많은 생명을 살린다. 백신 없는 세상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래서 백신을 식량·무기와 더불어 ‘3대 안보’라고 한다.

해킹까지 동원한 백신 개발 경쟁

그래픽=최종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감염증 때문에 다시 백신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개발과 관련해 온갖 발표와 추측이 난무하고 세계 주식시장이 들썩거린다. “내가 먼저”라는 백신 주도권 싸움도 치열하다. 미국과 중국은 국가 주도로 개발 속도전을 벌이며 격돌하고 있다.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원수처럼 거의 사생결단을 벌이는 것 같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중국 해커들이 코로나19 백신 연구 정보를 빼내려 하고 있다”고 했다. 이런 상황을 ‘백신 패권’을 노린 ‘백신 전쟁’ ‘백신 냉전’이라고 표현하는 이들도 있다.

벌써 백신 개발 이후에 대한 우려도 쏟아진다. 다른 나라는 어떻게 되든, 개발에 성공한 나라나 투자한 나라에만 백신을 먼저 공급할 것이라는 걱정이다. 백신을 개발 중인 프랑스 제약사 사노피는 최근 “개발에 투자한 미국 정부가 가장 많은 양의 백신을 우선 주문할 권리가 있다”고 했다가 소나기처럼 퍼부어진 비난에 바로 다음 날 “전 세계에 공평하게 공급하겠다”고 사죄하듯 발표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는 독점을 경계하며 “백신은 세계적 공공재”라고 했고, 문재인 대통령도 세계보건총회에서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는 인류를 위한 공공재로서 전 세계에 공평하게 보급돼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코로나19가 번지자 마스크 수출을 금지한 나라가 한둘이 아니다. 사정이 급해지면 백신이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이 없다. 아니, 오히려 그럴 가능성이 크다. 자국 중심주의가 갈수록 짙어지는 마당이 아니던가. 그래서 미국·중국·독일·영국·프랑스 등 주요국들은 각자도생(各自圖生)하듯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하고 있다. 한국 역시 SK바이오사이언스 등이 경쟁에 뛰어들었다.

승자는 누구일까. 지금까지 언론에 나온 것만 보면 미국이 제일 앞선 것 같다. 미국의 ‘모더나’란 회사는 임상 1상 시험에서 백신이 효과를 냈다고 발표해 주가가 뛰었다(그랬다가 다시 폭락했다). 미국 ‘노바백스’도 지난주 임상 1상을 시작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연말까지 백신을 개발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그러나 “연말까지 개발”은 정치가의 간절한 염원일 뿐이다. 백신은 그렇게 빨리 나오지 않는다. 아무리 서둘러도 3년 안에는 힘들다.

코로나19가 퍼지자 먼저 백신 개발에 나선 건 주로 바이오 벤처 기업들이었다. 글로벌 대형 제약사들은 그냥 상황을 주시했다. 경험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백신은 통상 개발에 8~15년의 시간과 조 단위 돈이 들어간다. 섣불리 개발에 뛰어들었다가 감염병이 사라지면 큰 손해를 본다. 더구나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은 아직 만들어 본 적이 없다. 2002년 처음 발병한 중증호흡기증후군(사스·SARS) 백신은 2015년 개발을 중단했다. 백신을 만드는 사이에 병이 자취를 감췄다. 2012년 나타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MERS) 백신도 8년이 지나 병이 드물어진 지금까지 나오지 않았다.

코로나19는 사스·메르스보다 백신 개발 가능성이 크다. 전 세계로 퍼졌고 희생자가 많이 나왔다. 한동안 반복 발생할 조건을 갖췄다. 그래서 각국 정부와 국제기구·단체들은 백신 만들기에 전에 없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기술이 발전한 덕분에 백신 후보물질을 찾아내는 속도는 전에 없이 빨라졌다. 그래도 1년이 안 돼 백신이 나올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임상 1·2·3상을 통해 안전성과 효과를 면밀히 검증하는데 최소 3년은 걸린다.

특히 안전성은 검증에 또 검증, 확인에 또 확인이 필요하다. 백신은 환자가 아니라 건강한 사람 최소 수억 명에게 접종한다. 안전성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으면 수십만~수백만 명이 큰 피해를 입는다. 실제 사례가 있다. 76년 치사율 높은 독감이 나돌자 미국 정부는 급하게 백신을 내놨는데, 즉각 문제가 생겼다. 접종받은 많은 사람에게서 하반신부터 마비가 오는 ‘길랑-바레 증후군’이란 중증 부작용이 나타났다. 백신 접종은 중단됐고, 약 1억 명분의 백신이 폐기됐다.

위험성이 있는데도 충분히 부작용을 살피지 않고 임상 시험을 단축해 백신을 접종할 수는 없는 일이다. 게다가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은 아직 나온 게 없어 더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 모더나 등이 발표한 ‘핵산 백신(DNA·RNA를 활용한 백신)’ 기술 역시 현재까지 한 번도 백신으로 상용화된 적이 없다. 이런저런 점을 고려하면, 백신이 나오기까지는 빨라도 3년은 걸릴 것으로 보인다. 개발 전쟁에서 누가 이길지 예상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코로나19 백신에 정부 집중투자해야

한국은 백신 접종 선진국이지만 백신 개발은 상대적으로 뒤처졌다. 사진은 국제백신연구소의 모습. [중앙포토]
백신이 나올 때까지는 코로나19에 걸리지 않도록 자기를 보호하고 동시에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사회적 백신’이 필요하다. 시민 의식을 바탕으로 마스크를 쓰고, 상대방과 거리를 두며, 손을 자주 깨끗이 씻는 등 방역 수칙을 지키는 것이다. 한국은 강력한 사회적 백신을 갖고 있으며, 그 효과 또한 이미 입증됐다.

그렇다고 사회적 백신에만 기댈 수는 없다. 코로나19에 맞서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실제 백신이다. 개발에 엄청난 돈과 시간·인력이 필요한 만큼 정부가 나서서 집중 투자해야 한다. 손 놓고 있으면 코로나19가 다시 번졌을 때 백신을 확보한 나라의 눈치를 보며 손 벌리고 기다리는 처량한 신세가 될 수도 있다.

비록 이번 개발 경쟁에서 조금 뒤처지더라도, 쌓게 될 실력과 인력은 훗날 다른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했을 때 큰 힘이 된다. 그게 바로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기초체력 가운데 하나다. 다시 말하지만, 백신은 국민을 지키는 안보다.

너무 싸도 문제…백신 가격 딜레마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 다시 생각해도 아찔하다. 2009년 신종플루가 덮쳤을 때, 우리나라는 단 한 톨 백신을 들여오지 않았다. 백신이 있는 나라는 자국민에게 백신 주사 놓기 바빴다. 자기 집에 난 불을 끄느라 남의 집에 물을 나눠줄 수 없었다. 천만다행으로 당시 녹십자(현 GC파마)가 독감 백신 기술을 개발해 막 공장을 준공했다. 여기서 재빨리 신종플루 백신을 만들어 국민에게 접종했다. 코로나바이러스와 달리, 신종플루는 이미 그 전에 백신이 많이 나온 독감 바이러스여서 안전성과 효과를 보는 임상 시험을 짧은 시간에 마치고 백신을 양산할 수 있었다.

한국은 백신 접종에 관한 한, 선진국 중의 선진국이다. 그러나 개발과 생산은 별로다. 백신 자급률이 떨어진다. 대통령 선거 때마다 후보들이 ‘백신 주권, 백신 안보’를 외쳤으나 당선되면 그뿐이었다. 그러다 신종플루가 자극이 됐던 것 같다. 2013년 정부는 “백신 주권을 확보하고 수출 산업으로 육성한다”는 내용의 ‘백신 산업 글로벌 진출 방안’을 만들었다. 계획대로라면 올해 백신 자급률이 80%에 이르러야 한다. 하지만 실상은 50%에도 못 미친다.

전 국민의 건강을 지키고, 국민건강보험 재정을 지키기 위해 백신 가격을 싸게 책정한 게 걸림돌이었다. 백신은 결국 민간 기업이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민간 기업의 동력은 이윤이다. 큰돈 들여 개발해도 돌아오는 이윤이 형편없으면 계속 투자할 리 없다. 신생아가 30만 명 밑으로 떨어지는 상황이어서 백신을 판매할 국내 시장도 쪼그라들고 있다.

싸게 책정한 백신 단가는 다른 측면에서도 백신 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제3국에서 만드는 백신이 우리나라에서는 100원, 다른 나라에서는 200원이라고 하자. 비상사태가 나서 백신 물량이 달릴 때, 백신을 생산하는 제3국이 어느 나라에 먼저 백신을 줄 것 같은가.

값이 싸면 백신 안보가 흔들리고, 값을 올리면 국민건강보험 재정과 접종이 흔들린다. 딜레마다. 해결할 솔로몬의 지혜는 없을까.
◆강진한 소장
대한감염학회·대한백신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2013년 정부가 백신산업 육성을 추진할 때는 백신산업화기획단장을 맡았다. 현재 대한백신학회 백신활성화 위원장이다.


강진한 가톨릭대 의대 백신바이오연구소장


그래서, 팩트가 뭐야? 궁금하면 '팩플'
세상 쉬운 내 돈 관리 '그게머니'
중앙일보 홈페이지 바로가기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오피니언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