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of the week] 마법같은 현대통화이론은 허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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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그린우드 런던 인베스코 수석 경제학자
스티브 H. 핸케 존스홉킨스대 응용경제학 교수

자국 통화로 돈 빌리고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한
재정적자는 중요하지 않다고?
일러스트=추덕영 기자 choo@hankyung.com

현대통화이론(MMT:Modern Monetary Theory)이 요즘 많이 회자되고 있다. 하지만 이 이론은 제대로 된 논리를 갖추지 못한 포스트-케인스주의적 이론에 불과하다. MMT는 국가들이 자국 통화로 돈을 빌리고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한 재정 적자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이것은 더 많은 정부 지출과 더 큰 재정 적자를 지지하는 사람들에게는 천국에서 온 메시지나 다름없다.

MMT는 부채가 엔화로 표시되고, 인플레이션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일본에서 고개를 들고 있다. 물론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은 간과된다. MMT 옹호자들은 일본이 그들 이론이 맞다는 증거를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MMT는 일본에서 진행되고 있는 공공과 민간 부문의 저축-투자 수지의 극적인 변화와 통화정책의 실패를 설명하지 못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일본의 정부 적자는 GDP의 2%에 불과했다. 기업과 가계 흑자는 총 5.1%에 달했다. 그러나 1년 만에 일본에서 민간 투자와 소비가 크게 위축됐다. 2009년 4분기까지 민간 부문 흑자는 GDP의 12%로 급증했다. 이와 동시에 정부 적자는 GDP의 9.9%로 크게 늘었다. 이에 따른 순저축잉여금이 자본 유출을 부채질했다. 오늘날 이런 유출은 GDP의 2.1%에 달한다. 일본에서 외국인 투자 자금의 흐름을 보여준다.

이처럼 큰 민간 저축 흑자의 패턴은 부분적으로 대규모 공적 적자에 의해 상쇄된다. 그 결과 일본 공공 부문의 규모와 역할이 매우 커졌다. 정부 부채는 1990년 GDP의 60%에서 오늘날에는 놀랍게도 235%로 증가했다. 그러나 MMT에서 설명하는 것과 달리, 이 재정적인 ‘사치’는 경제를 부양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1990~91년 일본의 거품이 붕괴된 이후 광의 통화는 M2(현금과 요구불예금을 더한 M1에 정기예금 등 저축성예금과 거주자외화예금 포함)로 측정했을 때 연간 2.6%의 미미한 증가율을 보였다. M2의 느린 증가는 명목 GDP 확대를 억제했다.

일본이 물가상승률 목표치인 연 2%를 달성하고 잠재성장률 1%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M2 통화 공급량을 매년 5%씩 늘려야 할 것이다. 거의 30년 동안 이어진 낮은 M2 증가율은 연간 0.9%의 평균 실질 성장을 만들었다. 이로 인해 일본은 GDP 디플레이터로 측정했을 때 연간 평균 0.6%의 가격 하락이 일어나는 디플레이션 위기에 처하게 됐다.

일본에서 M2 증가가 최소한으로 유지되는 한 낮은 인플레이션 혹은 완전한 디플레이션은 공공 부문과 민간 부문의 저축이 흑자이든 적자이든 관계없이 나타날 것이다.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말했듯이 인플레이션은 언제 어디에서나 통화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디플레이션도 마찬가지다. 통화가 좌우한다.

일본 경제를 이해하려면 MMT가 아니라 고전적인 화폐 이론이 필요하다. 1974~84년 일본은 전반적으로 안정적인 광의 통화 증가와 꾸준한 실질 GDP 증가, 낮은 인플레이션으로 황금기를 누렸다. 하지만 그 후 통화정책은 1985년 플라자 합의 등에 의해 탈선됐다. 일본 중앙은행은 통화 목표 대신 이자율 목표치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1987~90년 일본은 처참한 거품 시기를 맞았다. 이어서 소위 ‘잃어버린 10년’이 찾아왔다.

일본 중앙은행은 금리를 충분히 낮춰주면 기업이나 가계가 소비를 많이 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경제학자 어빙 피셔가 한 세기 전에 보여줬듯이, 금리는 인플레이션을 따라간다. 금리는 절대 인플레이션을 앞지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아르헨티나나 터키와 같이 높은 인플레이션율을 경험하고 있는 경제는 높은 금리를 가지고 있는 반면 일본과 유로존은 매우 낮거나 심지어 마이너스 금리를 갖고 있다.

일본(그리고 유로존)에 이 고리는 광의 통화를 늘려야만 끊어질 수 있다. 그렇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중앙은행이 은행이 아닌 보험회사나 연기금 등으로부터 증권을 매입해 새로운 예금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행의 증권 매입 대부분은 현재 은행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에서 광의 통화 증가는 여전히 ‘빈혈’ 상태다.

최근 미국의 역사도 고전적인 화폐 이론의 뛰어난 설명력을 보여준다. 1971~82년 M3(총유동성) 통화의 공급 증가율은 연평균 11.6%인 반면 정부 부채의 평균 수준은 GDP의 40.1%에 불과했다. 이런 급속한 통화 증가와 낮은 정부 부채의 결합은 비교적 높은 인플레이션을 초래했다. 역시 돈이 인플레이션을 좌우했다.

오늘날 미국은 정부 부채가 많고 광의 통화 증가는 저조한 정반대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2009년 이후 M3 증가율은 연평균 4.5%를 기록했고 오늘날 연방, 주 및 지방정부 부채는 GDP의 100%를 넘는다. 이 결합은 비교적 낮은 인플레이션을 초래했다. 마찬가지로 돈이 지배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MMT 옹호자들은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정부가 자국 통화로 표시된 증권으로 자금을 조달해 무제한의 적자를 낼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앞서 설명했듯이 그들이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은 재정 적자와 인플레이션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사실이다. 일단 자국 통화로 자금을 조달하면 광의 통화량이 늘어나 인플레이션이 올 수밖에 없다. 즉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기 전까지’라는 MMT의 전제는 지켜질 수 없다.

언제나 통화가 경제 흐름을 지배하고 있고, 그 이유를 고전적인 화폐 이론이 설명해준다. 귀를 솔깃하게 하는 MMT는 당신들을 현혹하는 뱀의 혓소리에 불과하다.

원제:Magical Monetary Theory

정리=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

THE WALL STREET JOURNAL 한경 독점제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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