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 '설리法' 제정 움직임 확산... "악플 제발 그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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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9.10.20. 오후 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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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리법 제정 여론…전문가 10인이 밝힌 ‘악플’ 해법

"악플은 약자에 화풀이하는 전형적인 ‘자전거 타기 반응’"

"익명성 제거해야 악플 줄어…댓글에도 책임 물어야"

"댓글 일정 기간 후 삭제도 검토…악플 방치 포털엔 페널티"

지난 14일 걸그룹 에프엑스 출신 배우 설리(25·최진리)가 세상을 떠났다. 악플(악성 댓글)이 설리가 극단적 선택을 한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이번엔 정말 악플을 근절해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 침해를 이유로 위헌 결정이 났던 인터넷 실명제 재도입과 함께 악플 처벌 강화를 위한 ‘설리법’을 제정하자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연예계도 악성 댓글을 ‘사이버 테러’로 규정하고 악플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한국연예매니지먼트협회(연매협)은 최근 성명을 내고 "한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고 그 가족과 주변인까지 고통 받게 하는 사이버 테러 언어폭력(악플)을 더 이상 묵과하지 않을 것"이라며 악플에 대한 초강경 대응 방침을 밝혔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지난 15일 ‘인간다운 삶을 위해 최진리법을 만들어주세요’라는 청원이 올라와 20일 현재 2만명에 가까운 동의를 받았다. 이 청원인은 "연예인이 아니더라도 특정 누군가를 표적으로 삼은 후 마녀사냥으로 인권을 훼손하거나 일상생활이 불가능하게 만드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며 "네이버, 다음 등에 노출되는 기사에는 댓글 실명제를 도입하는 등 댓글 시스템 변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인터넷 실명제는 지난 2007년 도입됐다가 5년 뒤인 2012년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폐지됐다. 당시 헌재는 "인터넷 실명제가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킨다"며 재판관 8명 전원 일치로 위헌 결정을 했다. 이후 증가하는 악플과 명예훼손 등 인터넷의 부작용을 막을 장치가 마땅치 않다는 지적과 함께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만들자는 목소리가 이어졌지만 매번 유야무야됐다.

일러스트=정다운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은 설리 사망을 계기로 법학·사회학·심리학·연예계 등 각계각층 전문가 10인에게 악플에 대한 효과적인 대책을 물었다. 악플이 없어지지 않는 이유와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안해달라고 요청했다. 전문가들은 크게 △인터넷 게시판 구조 변화 △법제도 개선 △올바른 인터넷 문화를 위한 시민 교육 △ 언론 보도 행태 변화 등을 해결방법으로 꼽았다.

전문가들은 "표현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악플에 대한 '처벌의 확실성'을 주는 쪽으로 형사정책을 바꿔야 한다" "익명성이 온라인에서 공격성을 높이는 만큼 '인터넷 실명제' 재도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또한 일정 시간이 지나면 댓글이 사라지는 시스템이나 악플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는 포털에 대한 페널티를 주는 제안도 나왔다.

하지만 ‘댓글 실명제’ 같은 ‘반짝 대안’보다는 혐오 발언 자체를 처벌하는 차별금지법 제정이나 인권 교육, 선플 교육 강화에 비중을 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다음은 전문가들이 밝힌 악플의 원인과 해법이다. 중복된 답변은 제외했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악플과 혐오 발언이 나오는 가장 큰 원인은 결국 한국 사회의 양극화다. 계층 간 불평등이 심한 사회일수록 상대방에 대한 혐오와 공격성이 강하다. 자전거를 탈 때 머리는 숙이고 아래로는 발길질해대는 모습을 빗대어 ‘자전거 타기 반응'이라고 하는데, 윗사람에게는 머리를 조아리면서 자신보다 아래인 사회적 약자에게 화풀이하는 모습이 마치 지금 한국 사회와 같다. 악플도 전형적인 ‘자전거 타기 반응'이다.

악플 문제에는 복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혐오 표현에 대해 어려서부터 잘못됐다는 인권 교육을 통해 성숙한 시민 문화를 만들고, 사회 불평등 완화를 통해 사회 구성원 간 유대감을 강화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문제에 관해 토론할 수 있는 공론장도 마련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이뤄져야 악플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국내 대형 연예기획사 A 대표

"현장에서 느끼는 것은 ‘댓글 실명제’밖에 답이 없다는 것이다. 소속 연예인들에 대한 악플 대응 때마다 느끼지만, 댓글 수집해서 명예훼손으로 고발하는 것 자체가 상당한 노력과 비용이 들어간다. 막상 악플러를 찾아내도 처벌로 이어지는 것은 10명 중 1명도 안 된다. 처벌 수위도 낮다.

회사 차원에서 ‘악플을 보지 말라’는 교육도 하고, 악플 피해를 본 연예인의 경우 심리상담을 주선하기도 하지만, 큰 효과는 없다. 댓글의 상처는 연차 구분 없이 모두가 받는다. 악플로 은퇴할 때도 있다. 칼로 찌르는 것과 다르지 않다. 댓글에 대한 책임을 부여하는 실명제가 옳다고 본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인간은 본능적으로 공격성을 지니고 있다. 여기에 익명이 보장될 경우 공격성이 최대 6배까지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표현의 자유’는 성숙한 사회에서나 가능하다. 우리 사회는 아직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온라인 환경이 급격히 확산됐고 이 과정에서 부작용이 생겼다. 이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인터넷 실명제’와 같은 방법이 필요하다. 익명성을 제거하면 악플은 확실히 줄어들 것이다.

악플에는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 언론에서도 강력한 처벌 사례를 보도해 악플러들에게 경각심을 줄 필요가 있다. 포털사이트 역시 책임을 갖고 자정작용을 해야 한다. 만약 포털사이트 내 악플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을 경우, 정부가 그 기업에 페널티를 주는 것도 한 방법이다."


황상민 전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일차적 잘못은 언론에 있다. 기자들이 악플이나 댓글을 가지고 기사를 안 쓰는 게 가장 실효성 있는 대책이다. 미국에서는 기자들이 악플을 인터뷰 자료나 취재 자료로 활용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나라 기자들은 그것을 너무나도 중요한 취재 자료로 활용한다. ‘기레기'란 소리를 듣는 이유다.

악플 확산의 원인은 언론에 있다. 정부나 권력기관을 통해 규제나 관리가 필요하다고 결론내는 것은 국민들을 통제하고 억압하기 위한 핑계에 불과하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연구소 교수

"설리 악플 사건은 우리 사회의 ‘여성혐오’ 문제다. 단순히 말해, 남성 연예인과 여성 연예인이 받는 악플의 수준은 완전히 다르다. 여성 연예인을 향한 악플의 내용은 대부분 무조건 성적인 문란성 등을 지적한다. 뉴스 역시 자극적인 SNS 받아쓰기 보도를 통해 여성 연예인에 대한 가십을 확대 재생산한다. 여성 연예인은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생산과 소비 방식에서 모두 ‘성적 대상화'되고 있다.

이는 결국 문화 소비자들인 ‘악플러’들에게만 비난의 화살을 돌릴 것이 아니라, 더 근본적으로는 여성 연예인을 특화된 상품으로 만들어내는 엔터테인먼트 산업 자체도 반성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들 역시 악플을 양산하는 데 일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택광 경희대 문화평론 교수

"지금으로서는 포털사이트에서 댓글을 없애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물론 포털사이트에 강제할 수 없어 현실적으로 어렵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제한적으로 댓글이 사라지게 하는 시스템을 도입하는 방법도 있다. 외국에서는 이미 이런 시스템을 시행하고 있다. 포털사이트 기업들이 먼저 악플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제도적으로는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 한다. 이미 오래전 미투운동 등을 통해 무한정한 차별적 표현을 허락하지 않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본다. 차별금지법을 통해 혐오 발언에 대한 처벌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상대방에 대한 혐오 발언 등을 함부로 못 할 것이다."


민병철 선플문화운동본부 이사장

"인터넷 실명제나 처벌 강화는 근본적 해결책이 아니다. 해법은 시민들의 ‘의식개선’에 달렸다. 악플은 ‘무지’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악플러들은 막상 자신이 단 악플로 인해 한 생명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 못한다. 악플의 무게를 깨닫게 해야 변화한다.

인식 개선을 위한 지속적인 교육과 캠페인이 필요하다. 교육부 통계자료 중에 선플운동에 참여했던 울산지역 학교들에서 학교폭력이 64% 감소했다는 자료도 있다. 선플운동을 통해 악플을 해결할 수 있다는 뜻 아니겠나. 직장에서 성희롱 예방의무교육을 하는 것처럼 학교와 직장에서 인터넷상에서 좋은 댓글을 올리는 ‘선플달기’를 의무교육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

"현재 우리 사회에서 ‘악플'은 스트레스를 배출할 최적의 도구다. 첫째로는 익명성, 두 번째로는 처벌의 불확실성 때문이다. 양형 수위도 벌금형이나 집행유예로 낮은 경우가 많다. 이 두 가지 요소가 결합되면, 사람들은 악플을 다는 것에 별다른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다.

‘처벌의 확실성’이 중요하다. 인터넷 실명제는 표현의 자유 문제가 있고, 현재 사이버명예훼손의 경우도 허위일시 최대 7년으로 양형 기준이 약하지 않다. 때문에 형사정책적으로 ‘악플을 쓰면 무조건 걸리고, 무조건 처벌을 받는다'는 결과를 만드는 쪽으로 바꿔가야 한다."


한상희 건국대 로스쿨 교수

"우리 사회는 그동안 악플에 대해 사건이 날 때만 반짝 대안을 이야기하고 지나면 망각하는 것을 반복해왔다. ‘인터넷 실명제’ 등 제도 논의 때문에 외려 정말 우리 사회가 이 문제를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 성찰할 기회가 박탈됐다. 청년실업대책위원회를 꾸려 청년실업 문제를 논의하는 것처럼, 악플도 같은 무게를 가진 사안으로 바라봐야 한다. 전(全)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논의의 출발점은 차별금지법 제정이다. 현재 악플의 양상은 과거 괴롭힘에서 이제는 특정 혐오 표현을 내재하는 것으로 양상이 심화됐다. 이러한 혐오 표현을 규제하는 것을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데서부터 악플에 대한 논의도 시작될 것이다."


김성철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지금은 악플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 때다. 대책을 논의할 단계가 아니다. 문제를 정확히 진단하기 위해 누가 어떤 댓글을, 왜, 어떻게 다는지 기초 연구를 통해 정확하게 조사나 연구를 하고,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대책을 논의해야 한다. 그래야 창의적인 대안이 나온다.

과학적인 데이터 없이 단편적인 사례들만 가지고 대책을 논의하다 보면 사태를 더 악화시킬 수도 있다. 사례들을 살펴보면 분명 우리가 어떻게 예방하고 조치할 수 있는지 ‘힌트’가 있다. 객관적인 증거를 갖고 차분하게 논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무 정파적으로, 진영에 따라 휘둘리면서 결국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다. 대안은 문제가 정확히 정의돼야 나온다. 실체를 모르는 상황에서 무슨 얘기를 할 수 있겠나."

[최효정 기자 saudade@chosunbiz.com] [김우영 기자 young@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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