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 부사관 출신, 응급구조사로 군 생활한 청년
"남이 안가는 길, 평생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
"헬스 좋아하지만, 호미 날 세울 때가 더 행복해"
경북 영주 영주대장간의 석노기(66)씨가 만든 호미였다. 이후 석씨의 호미는 '아마존 호미' '한류 호미'로 불리며 지난해까지 5000자루 이상 미국 등 해외로 수출됐다. 석씨는 지난해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처음 주문이 몰렸을 때 아마존이라고 해서 어떤 숲에서 우리나라 '아줌마들'이 단체로 호미질하려나 했었다"면서 "호미 명맥이 끊어지기 전에 후계자를 찾아 대장장이 기술을 전수해야 할 터인데 걱정이다"라고 했다.
지난 8일 오전 찾은 영주대장간. "땅! 땅! 땅!" 석씨가 검은색 그을림이 묻은 개량 한복을 입고, 불에 달궈진 'ㄱ'자형 호미 날을 힘차게 두드리고 있었다. 잠시 뒤 "황군아~"라고 창고 쪽을 향해 누군가를 불렀다. 그러자 "예 선생님"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20대 청년이 석씨 앞에 모습을 나타냈다. 시커먼 장갑을 낀 두 손을 앞으로 가지런히 모으고서다. 석씨는 기자에게 "몇달 전부터 대장장이 기술을 배우는 내 제자. 좀 지켜보고 있어"라며 환하게 웃었다.
황씨와 영주대장간의 인연은 지난해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 졸업 후 2013년 해군 부사관으로 입대, 2018년 중사로 전역한 그는 대구에서 1년여간 취업 준비를 하다가 유튜브로 아마존 호미 이야기를 처음 접했다.
"호미 영상을 보다가 대장장이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영상에서 석 선생님이 대장장이를 하려는 사람이 없어 호미 만드는 기술 명맥이 끊어질 것 같다고 걱정을 하시더군요. 고민 끝에 결심했죠. 남이 가지 않는 길, 내가 평생 할 수 있는 일, 우리 전통을 이어가는 그런 일을 한번 해보기로."
영주대장간을 나서면 그는 영락없는 28살 청년이다. 헬스를 즐기고, 유튜브도 본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친구들과 소통하고, 주말 쉴 때 도시로 나가 '소개팅'을 하기도 한다.
스승인 석씨는 그를 엄하게 가르친다. 물건을 떨어뜨리는 것 같은 작은 실수라도 하면 큰소리로 야단을 친다. 황씨는 "선생님이 '이 날은 좀 잘 갈았다. 이건 좀 잘했구만.' 같은 칭찬을 할 때가 가끔 있는데, 그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황씨가 진짜 '아마존 호미' 후계자로 인정받기 위해선 갈 길이 멀다. 날 가는 법을 더 배워야 하고, 망치로 두드려 날의 형태 잡는 법도 익혀야 한다. 원재료를 불로 가공하는 법도 공부해야 한다. 대장장이가 혼자 제대로 된 호미 한 자루를 만들기 위해선 2년 이상 배워야 가능하다고 한다.
영주대장간 호미는 지금도 미국 등 해외에서 최고의 소형 농기구로 대접받는다. 호미를 처음 접한 외국인들은 '쓰기 편하고 손목에 힘을 많이 주지 않아도 된다'는 칭찬을 한다. 올해는 미국뿐 아니라 영국·호주·독일로도 수출길이 열릴 전망이다. 최근 이들 나라 유통 업체들이 대장간을 찾아와 호미 '샘플'을 받아갔다.
황씨의 이야기다. "중학교 선생님, 부동산 관련 일을 하는 부모님이 경북 상주에 계셔요. 아직도 공무원 준비 같은 취업 준비를 하라고 하세요. 지인들도 시골에서 왜 힘들게 그러냐고 해요. 하지만 이왕 시작한 만큼 끝을 볼 겁니다. 호미 날을 갈고, 날카롭게 그 날을 세울 때의 그 기분, 대장장이 일을 안 해본 사람은 모를 겁니다." 그는 "유튜브를 보거나 친구들과 카톡 할 때 보다 호미 날을 세우고, 갈 때가 더 좋다"고 했다.
영주=김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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