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하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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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빙상에서 6명으로 구성된 두 팀이 스틱으로 퍽을 쳐서 상대팀의 골에 넣는 스포츠.

아이스하키 선수
구분 빙상경기
기원국 북유럽
한국도입시기 1928년 1월

유래와 역사

빙상에서 스케이트를 착용한 6명으로 구성된 두 팀이 가황(加黃)처리된 고무원판의 퍽을 스틱으로 쳐서 상대팀의 골에 넣는 경기이다. 아일랜드의 국기(國技)로 인정받는 헐리 또는 헐링, 스코틀랜드의 국기로 인정받는 신티와 비슷한 밴디라는 빙상경기가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의 이주민들 및 영국의 군인들에 의해 캐나다로 전해져 아이스하키로 발전하였다.

캐나다 몬트리올(Montreal) 맥길대학의 J.크라이턴을 비롯한 학생들이 1875년 결빙한 강에서 편을 갈라 경기를 한 것이 최초이며, R.스미스와 W.로버트슨이 1879년 규칙을 만들고 각 팀의 선수를 9명으로 제한하였다. 캐나다의 국기로까지 발전하였다.

1885년 몬트리올에서 최초로 전국적인 하키단체인 캐나다 아마추어 하키협회가 설립되었고, 여기서 각 팀의 선수를 7명으로 제한하였다. 20세기에 접어들어 선수들은 신패드(정강이 보호대)를 착용했고, 골텐더(Goaltender, '골리(Goalie)'라고도 하며, 골키퍼와 같은 역할이다)는 가슴 보호대를 입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아이스하키 링크가 캐나다 동부 전역에 건설되었으며, 스틱도 생산되었다. 이로써 근대 아이스하키는 캐나다를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이 경기가 유럽에 소개되자 호응하는 나라들이 늘어났고, 여러 나라에서 국제 단체를 조직하자는 의견이 있어 1908년 5월 파리(Paris)에서 가진 제1회 회합에서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International Ice Hockey Federation)이 결성되었다.

1910년에는 유럽선수권대회를, 1920년에는 세계선수권대회를 창설, 국제대회를 개최하기 시작하였으며, 올림픽이 동계와 하계로 나누어지기 직전에 벨기에의 안트베르펜에서 열린 제7회 올림픽경기대회에서 처음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다. 그리고 1924년 하계올림픽대회와 분리되어 열린 제1회 동계올림픽경기대회 이후 줄곧 정식종목으로서 인기를 더해 왔다. 2018년 현재 76개국이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에 가입, 인기있는 동계 스포츠 종목으로 각광받고 있다.

경기 방법

남녀 경기로 나뉘며, 선수는 한 팀에 골텐더 2명, 플레이어 20명 등 총 22명으로 구성된다. 링크에 출전하는 선수는 총 6명으로 골텐더(G) 1명, 방어가 주임무인 디펜스(DF) 2명, 공격을 주로 하는 포워드(FW) 3명이다. 이 가운데 디펜스는 라이트 디펜스(RD)와 레프트 디펜스(LD)로 나뉘고, 포워드는 중앙에 위치하는 센터포드(CF) 1명과 그 양 옆에 자리하는 윙으로 나뉘는데, 역시 라이트윙(RW) 및 레프트윙(LW)으로 구분된다.


경기 시간은 20분씩 3회로, 총 1시간이다. 각 20분을 1피리어드라고 하며, 각 피리어드 사이에 15분 동안 휴식 시간이 있다. 3피리어드로 승부가 나지 않을 경우 통례적으로 토너먼트에서는 10분 연장전을 실시하는데 선취 득점과 동시에 경기가 종료된다. 연장전에서도 승부가 나지 않을 경우 슛아웃(승부샷)으로 승부를 가린다. 그러나 리그전에서는 무승부로 경기를 끝낸다. 각 팀은 전경기를 통하여 30초간의 작전 타임을 1회에 한하여 요청할 수 있다.

경기 방법은 센터라인 중앙에 양팀의 센터가 마주 서서 심판이 떨어뜨린 퍽을 스틱으로 서로 빼앗는 페이스 오프를 하는 것으로 시작, 퍽을 골에 넣음으로써 득점(1점)이 되고, 득점 수가 많은 쪽이 승리한다. 중앙에서의 페이스 오프는 각 피리어드가 시작될 때와 득점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하지 못한다. 그밖에 반칙이 있었을 때 그 반칙이 발생한 지점에서 펜스로부터 6 m 떨어진 안쪽에서 실시하며, 엔드존에서 반칙이 있었을 경우 그 원인을 구분하여, 공격측이 반칙한 경우에는 뉴트럴존의 스포트에서, 수비측이 반칙한 경우에는 엔드존 스포트에서 페이스오프한다.

선수 교체는 경기 중 언제든지 6명 이내에서 22명의 선수 전원이 수시로 자유롭게 할 수 있다. 골텐더를 제외한 5명의 선수는 1∼2분이면 급격히 체력이 소모되므로 잦은 선수교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이스하키는 스피드하고 스틱을 사용해서 경기하며, 규정의 한도 내에서 보디 체크(몸으로 부딪히는 일)가 허용되는 경기이므로 때때로 위험한 플레이가 속출될 수 있어, 반칙을 범한 선수는 그 정도에 따라 2·5·10분 동안, 또는 잔여시합 동안 계속해서 퇴장을 당하는 페널티 등의 벌칙을 적절히 부과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선수 가운데 가슴에 로마자로 C 또는 A를 부착한 경우가 반드시 있는데, C는 주장(캡틴), A는 부주장(어시스턴트 캡틴)으로서 심판의 판정에 문의를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모든 국제 경기에서의 심판은 레퍼리(주심) 1명과 라인즈맨(선심) 2명의 3인 심판제를 채택한다. 그러나 각국 연맹은 그 관할 구역에서 경기를 개최할 경우 2인 심판제를 택할 권한을 갖는다. 2인제 심판은 통상 15세 이하 선수들의 스피드가 없는 경기에서 채택된다. 라인즈맨은 라인에서 일어나는 중단 변칙에 한하여 경기를 중단시킬 수 있으며, 레퍼리는 경기 중 득점 및 벌칙 부과를 주요 임무로 하고 그 밖에 경기 중에 일어나는 모든 상황에 대하여 최종 결정 권한을 갖는다.


경기장


아이스하키 경기장을 링크라 부른다. 링크는 1.2∼1.22m 높이의 목재 또는 플라스틱 재질로 만들어진 펜스로 둘러싸여 있으며, 링크의 크기는 길이 56∼61m, 너비 26∼30m이나 국제대회를 치를 수 있는 최소규격은 길이 60m, 너비 29m이며, 골의 높이와 너비는 각각 1.2m와 1.8m이다. 링크는 중앙에 그어진 붉은색의 센터라인에 의해 구분하여 둘로 갈라져 있고, 다시 골과 골 사이에 있는 2개의 블루라인으로 링크가 3등분되어 있다. 분할된 빙역(氷域)은 중앙이 뉴트럴존(세터존), 다른 두 빙역은 엔드존으로, 엔드존은 어태킹존(공격빙역)과 디펜딩존(방어빙역)이 된다. 이때 어태킹존은 상대팀에서 볼 때는 디펜딩존에 해당하는 셈이다. 양쪽 엔드보드로부터 4m 떨어진 곳에 너비 5㎝의 붉은 선으로 엔드라인이 그려져 있는데, 이것이 골라인이다. 골라인 중앙에 골텐더를 상대편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붉은색 반원으로 구획된 빙역이 있는데, 이것을 골크리스라고 한다. 이 골크리스의 중앙 골라인에 높이 1.22m, 너비 1.83m 크기의 골대가 놓인다.



용구


아이스하키 용구로 퍽은 두께 2.54㎝, 지름 7.62㎝, 무게 156∼170g으로, 경화(硬化) 고무 또는 다른 적당한 재료로 만들어진 납작한 원판상(圓板狀)으로 되어 있다. 스틱은 퍽을 다루는 막대기로, 자루의 길이는 152㎝ 이하, 블레이드는 전체길이 32㎝, 높이 5∼7.5㎝를 초과해서는 안된다(골텐더는 전체길이 37㎝, 높이 9㎝). 스케이트의 블레이드는 피겨나 스피드스케이트와 달리 두껍고 견고하다. 유니폼의 색깔은 빙상에서 경기를 하므로 8 대 2 정도의 밝은 색과 진한 색의 배색으로 만들어야 하며 상반되는 색의 유니폼 2벌을 해마다 협회에 통보해야 한다. 보호장비는 스케이트·스틱·퍽 등으로 부상을 입기 쉬으므로 선수는 숄더패드(어깨와 가슴보호)와 레그가드 또는 쉰패드(정강이 보호)를 착용하며, 머리에는 헬멧, 손에는 두꺼운 장갑을 낀다. 슛을 막아야 하는 골텐더의 보호장비는 중장비로서 무게가 15∼20㎏이다.

한국의 아이스하키

역사
한국의 아이스하키는 1928년 1월 일본의 도쿄[東京]제국대학 아이스하키팀이 만주에서 경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용산철도국 국우회(局友會)의 초청으로 서울에 들렀는데, 이때 스케이트 링크에서 시범경기를 보인 것이 최초이다. 그때 창설된 철도팀에 뒤이어 경성제국대학에서도 빙구부를 창설하여 경기를 가지게 되었는데, 이것이 한국 최초의 아이스하키 경기로 기록되었다. 그후 1930년 1월 조선체육회 주최로 열린 제6회 전조선 빙상경기대회에서 빙구 종목 가운데 하나로 채택되었고, 이것이 국내 최초의 공식경기가 되었다. 같은 해 11월 조선빙구연맹이 조직되었으며, 한국인 학교로서는 연희전문학교가 처음으로 빙구부를 창설하였다. 당시 국내에는 경성제국대학을 비롯하여 경성사범 등 여러 팀이 있었고, 단체도 조선빙구연맹을 비롯하여 조선학생빙상경기연맹 등이 조직되어 여러 경기가 열렸다. 1947년 조선빙구연맹이 대한아이스하키협회로 명칭을 바꿨고, 1960년 3월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에 정식가입하였다.

경기장
1964년 11월에는 아이스하키의 숙원이던 실내링크가 동대문에 생겨 아이스하키 기술 향상에 커다란 보탬을 주었다. 1984년 5월 태릉선수촌에 실내링크가 만들어졌으며, 1989년 12월에는 국제 규격의 링크 2면을 갖춘 5,000석 규모의 목동(木洞) 실내 아이스링크가 완공되면서 본격적인 공식국제대회 및 국제친선경기를 개최하기 시작하였다. 1990년 2월 제7회 아시아·오세아니아 주니어선수권대회, 1993년 제10회 대회를 유치하여 성공리에 치르면서 국제적으로도 주목을 받았고, 1995년 1월 제3회 아시안컵, 1997년 동계 유니버시아드대회 등을 개최하였다. 1999년에는 제3회 동계 아시아경기대회를 개최함으로써 한국 아이스하키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는 등 이후에도 수많은 대회를 유치하였다. 2018년 평창에서 열리는 제23회 동계올림픽을 대비하여, 강릉 하키 센터관동 하키 센터를 건립·개관하였다.

국제 경기
1979년 스페인 바르셀로나(Barcelona)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 처음으로 참가하였으며, 그뒤 각종 국제대회에 지속적으로 참가하여 경기력을 향상시켰다. 1986년 제1회 동계 아시아경기대회에서 동메달을 획득하였으며, 1989년 제14회 소피아(Sofia) 동계 유니버시아드대회에 참가한 대학생 대표팀은 아시아 최강이었던 일본에 6:1로 처음 승리하였다. 1990년 제2회 동계 아시아경기대회에서 동메달을 획득하였으며, 1994년 중국에서 개최된 제11회 아시아 주니어선수권대회에 참가한 18세 이하로 구성된 팀도 일본 주니어 대표팀을 제치고 2위를 차지함으로써 국제경쟁력을 높였다. 2001년과 2003년에는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세계선수권대회 디비전Ⅱ A그룹에서 우승하였으며, 2007년 제6회와 2011년 제7회 동계 아시아경기대회에서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2012년과 2015년에는 IIHF 세계선수권대회 디비전Ⅰ B그룹에서 우승하였다.

여자 국가대표팀은 1998년 창단되었으며, 2013년 스페인에서 열린 IIHF 여자 세계선수권 디비전Ⅱ B그룹에서 우승하였다. 또한 2014년 이탈리아에서 열린 같은 대회 디비전Ⅱ A그룹에서는 3위를 기록하였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 남녀 대표팀이 출전하였으며, 여자팀은 남북단일팀(코리아팀)으로 출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