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운 없이 농사를 지으면 가장 먼저 두꺼비가 나와요. 그 다음에는 뱀, 두더지, 쥐가 나타나죠. 두더지와 뱀이 나온 뒤에 멧돼지가 나오지, 처음부터 멧돼지가 나오는 법은 없어요. 멧돼지가 많이 나오면 지렁이가 굉장히 많다는 뜻이에요. 돼지들이 지렁이도 먹잖아요. 이렇게 자연스러운 생태계가 내 눈에 보여요. 김천에서도 지금 고령에서도 그렇죠. 이게 먹이사슬이 아닐까 싶어요.”
소, 염소를 키우며 얻은 퇴비로 순환 농사를 짓고, 오골계 알은 일회용품을 안 쓰기 위해 볏짚으로 꾸러미를 만들어 판매했다는 숙경 언니. 이때부터 농산물 가격도 스스로 결정했습니다. 쌀값이 지금보다 쌌던 그 시절에도 쌀을 한 가마니에 15만 원씩 받았고, 농산물을 적게 산다고 더 비싸게 팔지 않았다고 합니다.
“우리 신랑이 느닷없이 1되 사는 사람은 2만원, 1말사 는 사람은 1되 기준 3만 원씩 받자는 거예요. 1되 사는 사람은 좋은 거 먹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조금만 사 먹는 것 아니겠냐고요. 듣고보니 ‘정말 그걸 먹고 싶지만 형편 안되는 사람들 어떡할까, 그런 사람들은 수입농산물 먹어야 하나.’ 그런 고민에 그렇게 팔았어요. 많이 사면 더 비싸게요. 사람들이 ‘이런 법이 어디있냐 너무한다’ 하면서도 샀어요. 우리 농산물이 너무 맛있거든요.”
첫 해에는 동네 어른들의 조언을 받아 비닐을 썼지만 이듬해, 주워도 주워도 땅에서 없어지지 않는 비닐 조각을 주우며 너무 속상해 울어버렸다는 숙경 언니. 그때 큰 교훈을 얻은 뒤로 비닐을 쓰지 않고 자연스럽게 작물 스스로의 힘으로 클 수 있도록 자연농 방식으로 농사를 지어오고 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미니멀 라이프, 비전화 생활을 했던 거죠.
이런 방식이 여태껏 살아온 것 중 ‘가장 인간적인 삶’이었다 말하는 숙경 언니식 산촌생활. 언니의 가족은 6년 전 고령으로 이주한 지금도 TV 없이 냉장고와 선풍기, 세탁기 같은 최소한의 가전제품만 갖고 사는 검소한 삶으로 이어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