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자들 때문에 안경산업이 힘들다고?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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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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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기야사-34] 해방 이후 우리나라 최초로 만들어진 안경테 회사는 1946년 대구에 문을 연 국제셀룰로이드공업사라고 합니다. 창업자인 김대수 국제셀룰로이드공업사 회장은 일본에서 안경회사를 경영하다가 해방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우리나라 첫 안경테 회사를 설립하게 됩니다. 이 회사는 한 해 수출액만 31만달러(1970년), 직원 수가 3000명에 달할 정도로 큰 성공을 거뒀고 이 회사에서 나온 사람들이 대구에서 또 안경테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대구는 지금도 우리나라 안경테 수출의 80%를 차지할 정도로 우리나라 안경테 산업을 대표하는 지역입니다.

우리나라 대구 안경테 회사들은 메탈테 생산에 경쟁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진은 2016년 메탈테 유행을 주도한 안경테 브랜드 스틸러의 모멘텀 / 사진=스틸러 홈페이지
대구 안경테 산업은 과거 우리나라의 여러 산업들과 마찬가지로 수출 중심의 산업이었습니다. 해외의 안경테 기업들이 디자인한 제품을 생산만 하는 소위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업체였다는 뜻입니다. 1960년대 이후 높은 인건비로 인해서 노동집약적이고 수공업적인 성격이 강했던 안경테 제조업은 선진국에서 개발도상국으로 넘어왔습니다(중기야사 16화에 다뤘던 봉제산업과 비슷합니다). 한국은 이런 기회를 잡아서 1980년대에는 세계 2위의 안경테 수출국이 되기도 했습니다. 1995년 금액 기준으로 2억5000만달러까지 높아졌던 수출금액은 이를 정점으로 조금씩 줄어들어 2000년대 이후에는 1억달러대 초반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1995년 이후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실제 축소된 규모는 더욱 클 것입니다.

우리나라 안경테 수출이 줄어든 것은 예상하시겠지만 중국의 부상 때문입니다. 역시 우리나라처럼 OEM으로 시작한 중국은 낮은 인건비를 바탕으로 세계시장 점유율을 높였고 점차 OEM에서 얻은 기술을 바탕으로 내수시장과 해외시장을 장악했습니다. 지금 중국은 전 세계 안경테 수출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안경테 수출은 8위 정도에 머물고 있다고 합니다.

세계시장에서 중국에 밀리게 된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습니다. 안경테 제조업은 제조공정이 복합하고 인건비가 높아서 세계시장에서 중국산과는 도저히 경쟁이 불가능합니다. 여기에 더해 최근 중국산 안경테의 품질과 기술력이 이미 한국을 앞서고 있다는 설명도 있습니다. 게다가 OEM에만 의존했던 우리나라 안경테는 자체 브랜드 파워도 약했습니다. 가격이 비싸도 '한국산'이어서 해외에서 팔리는 경우가 많지 않은 이유입니다.

미국에서 유통되는 안경테의 95%가 수입산이고 그중 90%가 중국에서 생산됩니다(2015년 기준). 미국에서도 이에 대한 반성으로 국내에서 제조하는 소규모 안경테회사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사진=Lowercase NYC
문제는 국내 안경테 유통시장에서도 중국산에 국산 안경테들이 밀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안광학산업진흥원에 따르면 2019년 우리나라의 안경테 수출액은 1억1349만달러였습니다. 반면 수입액은 8349만달러를 기록했습니다. 전반적으로 안경테 수입이 늘어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최근 가장 빠르게 늘어나는 것은 중국산 안경테입니다. 2019년 기준 4329만달러로 전체 수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합니다. 언제부터 중국산 안경테는 우리나라 안경 시장을 잠식했을까요?

우리나라 최초의 안경회사인 국제셀룰로이드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플라스틱 소재의 안경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대구지역의 안경테 업체들은 플라스틱 안경(뿔테)보다는 금속테에 더 경쟁력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2000년대 초반부터 우리나라 남성들 사이에서 '뿔테(아세테이트 안경테)'가 유행하기 시작했고(2006년의 경우 전체 판매의 83%가 뿔테였습니다), 이때부터 중국산 저가 플라스틱 안경이 우리 시장에 침투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메탈테에 집중하던 한국 안경테 회사들은 이 유행에서 기회를 놓쳤고 2016년 다시 메탈테 유행이 시작될 때까지 고전했다고 합니다.

2002년 KBS 드라마 겨울연가가 뿔테유행의 방점을 찍었다고 보는 분들이 많습니다. /사진=KBS
하지만 메탈테 유행이 다시 찾아왔음에도 불구하고 국산 안경테 업체들이 마냥 좋지만은 않다고 합니다. 앞서 (상)편에서 밝혔듯이 국내 안경테 유통시장이 저가 경쟁을 중심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입니다. 저가 안경테 중에는 중국산이 많을 뿐만 아니라 저가가 아니어도 마진이 국산에 비해서는 중국산이 더 좋다고 합니다. 치열한 가격 경쟁에 처한 안경사들이 중국산 안경테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심지어 우리나라 회사나 미국, 유럽의 안경테 회사들도 자국의 브랜드는 유지한 채 중국에서 제조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고가 제품은 어떨까요? 안경테에 많은 돈을 쓸 의사가 있는 남성 소비자들의 경우 국산 안경보다는 일본이나 유럽의 고급 안경테를 선호한다고 합니다. 심지어 젠틀몬스터와 같은 유명 국산 브랜드도 제조는 중국에서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안경테 산업의 현실입니다.

안경테 외의 다른 아이웨어들은 어떨까요? 아이웨어는 크게 안경테, 안경렌즈, 콘택트렌즈, 선글라스의 4개 품목으로 나뉩니다. 안경테의 경우 수출이 정체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시장을 중국산 및 수입산에 잠식당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안경렌즈는 안경테와 달리 첨단 기술력이 필요한 산업이라고 합니다. 안경테에 비해서는 훨씬 규모의 경제가 가능해서 거대 글로벌 기업들이 세계시장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에실러(프랑스), 자이스(독일), 호야(일본), 로덴스톡(독일) 같은 글로벌 회사들이 대표적입니다. 국내 안경렌즈 시장도 에실러와 호야 두 회사에 의해 사실상 과점되어 있다고 합니다. 과거 안경렌즈는 대전을 중심으로 수출이 많았지만 지금은 2012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규모까지 수출이 줄어들었습니다.

아이웨어 수출은 콘택트렌즈가 하드캐리하고 있습니다. /자료=한국안광학산업진흥원
선글라스와 콘택트렌즈는 수출이 늘어나고 있는데요. 선글라스는 한국산 선글라스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 영향이지만 수입이 수출보다 5배 이상 많아서 한국의 경쟁력이 높지는 않습니다.

반면 콘택트렌즈는 수입도 많지만(약 2억달러), 수출도 많아서(2억1000만달러) 상대적인 균형이 맞고 있습니다. 우리 콘택트렌즈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뜻입니다. 내수시장에서도 아큐브(미국 존슨앤드존슨) 같은 글로벌 기업과 경쟁에서 인터로조(클라렌)이나 오렌즈(스타비젼) 같은 한국 기업들이 선방하고 있습니다.

이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한국 남자들 때문에 왜 안경산업이 힘든지에 대해 정리를 해보겠습니다.

1. 안경은 오프라인 매장인 안경원을 통해서 주로 판매되며 그 특성상 '남성'이 가장 큰 고객입니다.
2. 그러나 '남성' 소비자들은 현재의 안경 유통시장에 대해서 만족하기보다는 이를 외면하고 있습니다. 결국 안경 유통시장은 '가격' 위주의 경쟁만을 펼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3. 이런 유통구조는 국내 안경테 제조업체들에도 영향을 미쳐 수출시장뿐만 아니라 내수시장에서도 중국에 고객을 빼앗기고 있습니다.

고급차를 선호하는 한국 남성들 덕분에 벤츠와 BMW, 제네시스가 행복합니다. /사진=제네시스 인스타그램
이렇게 정리해놓고 보면 '한국 남자들 때문에 안경산업이 힘들다'는 얘기는 틀렸습니다. 한국 남자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고 이들에게 만족할 만한 서비스와 제품을 안경산업에서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안경산업에서 혁신적인 기업들이 계속 나타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성 소비자들이 이를 놓치고 있는 부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스틸러(뮤지크), 프로젝트프로덕트(이호아이티씨) 같은 국내 디자인과 제조를 하는 업체나, 반도옵티칼처럼 국산 아세테이트테(뿔테)를 만드는 회사들이 있습니다. 사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저렴한 중국산 안경테 대신에 국산 안경테를 택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 이후 우리는 Made in Korea의 중요성과 중국 제조업에 대한 지나친 의존에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남성 소비자들의 '다른 선택'은 안경산업의 흐름을 바꿔놓을 수 있습니다.

새로운 접근으로 안경산업 전체의 판을 바꾸려는 회사도 있습니다.

브리즘의 매장에 가면 위 사진 가운데에 보이는 로봇팔이 사람의 얼굴을 3D로 스캔합니다. /사진=브리즘
브리즘은 3D 프린터로 맞춤형 안경을 제조하는 회사입니다. 착용자의 얼굴을 3차원 스캔한 후에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약 2~3주에 걸쳐 국내 공장에서 개인화된 안경테를 만들어줍니다. 뿔테도 메탈테도 아닌 완전히 새로운 소재로 만들어진 안경테입니다. 이렇게 되면 인건비 경쟁에서 중국산과 맞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회사의 놀라운 점은 직접 안경원을 내고 유통을 한다는 점입니다. (상)편에서 말씀드린 대로 자신에게 어울리는 안경을 고르는 작업은 남성들에게 대단히 괴로운 일입니다. 하지만 착용자의 얼굴을 스캔해서 이 회사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고객에게 '가장 어울리는 안경'을 추천해줍니다. 선택을 어려워하는 남성들을 위해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안경을 추천해주는 것입니다.

이는 안경테를 판매해야 하는 안경사들의 고충도 덜어줍니다. 안경테를 추천하거나 안경테 재고를 관리해야하는 부담을 덜고 대신 고객의 시력을 측정하는 검안과 렌즈 판매에만 집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브리즘의 경우 긴 제작기간이 여전히 큰 한계로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제조뿐만 아니라 안경 유통방식 전체를 혁신한다는 점에서 가장 신선한 기업이었던 것 같습니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가장 강력한 힘은 소비자의 구매력입니다. 한국 남성들은 엄청난 구매력을 가지고 많은 시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자동차 시장과 명품시계 시장이 대표적입니다. 비슷하게 안경 시장에서도 남자들의 파워가 우리나라 안경산업을 바꿔놓을 수 있지 않을까요? 남성이 가진 '선한 영향력'을 깨닫기만 하면 말입니다.

[이덕주 벤처과학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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