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카이 마코토 감독 인터뷰"'기생충'과 '날씨의 아이'의 반지하방은 서로 닮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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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0.04.12. 오전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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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의 아이' '너의 이름은.' 국내 재개봉
내 작품이 해외에서도 호응 얻는 이유는?
"가장 개인적이고 로컬한 이야기라서"

최원석 기자
신카이 마코토 감독을 도쿄에서 인터뷰했다. 도쿄의 중심지 이치가야에 위치한 제작사 사무실에서였다.

“어릴 때의 선생님 말씀을 떠올려 보면 어떨까요? ‘여러분, 친구의 처지가 되어 생각해 봅시다’ 말입니다.”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 ‘날씨의 아이’를 만든 신카이 마코토(新海誠·47) 감독은 얼어붙은 한·일 관계를 풀 실마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내가 듣기 싫은 것은 나도 다른 이에게 하지 않는다’는 마음이 중요하다”면서 “양국이 서로에 대해 공감과 상상력을 좀 더 발휘할 수 있길 소망한다”고 했다.

미야자키 하야오를 잇는 일본 차세대 크리에이터 신카이 감독을 인터뷰했다. 코로나 사태가 한·일로 확산되기 전인 지난 1월 말, 도쿄의 제작사 사무실에서였다. 개점휴업의 요즘 국내 극장가에선 그의 작품 재개봉이 ‘조용한 러시’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글로벌 흥행 역대 2·5위인 ‘너의 이름은.(2016)’과 ‘날씨의 아이(2019)’가 소규모로 재개봉된데 이어 15일 상영관이 확대된다. 22일에는 ‘언어의 정원(2013)’, 다음달에는 ‘날씨의 아이’가 국내 유명 성우들이 출연한 더빙판으로 다시 선보인다.

신카이 감독은 한·일 관계 뿐 아니라 세계에 확산된 양극화, 우경화, 기성체제에 대한 10·20대의 분노를 우려했다. “타인과 다른 생각을 말하면 심하게 공격 받는, 조금이라도 다른 일을 하면 무너질만큼 두드려 맞는 일이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다”면서 “요즘 일본은 한번의 잘못도 용서받지 못할 것 같은 사회가 돼버린 것 같다”고 말했다. ‘기생충’ 얘기를 꺼내면서 “국가는 달라도 같은 시대 만들어진 영화라 사회 분위기를 공유한다고 느꼈다”면서 “‘날씨의 아이’에서도 반지하에 사는 빈궁한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기생충’은 아예 반지하에 사는 가족 이야기라 무척 흥미로웠다”고도 했다.

신카이 감독은 SF·컴퓨터 오타쿠에서 모라토리엄(성인이 되길 거부하는) 대학생을 거쳐 게임회사를 다녔다. 5년 만에 퇴사, 집에 틀어박혀 만든 1인 창작물이 데뷔작 ‘별의 목소리(2002년)’였다. 그는 “‘별의 목소리’를 사람들에게 처음 보였을 때의 경험이 지난 20년 간 창작의 원동력이 됐다”고 했다.
“50석 밖에 안되는 소극장에서 20분짜리 애니메이션을 틀었습니다. 졸렬한 작품이었지만 영화 본 전원이 아주 크게 박수쳐 주었어요. 내 작품이 다른 사람에게 다가갔다는, 나도 인정받을 수 있구나라는, 제 인생 최고의 기쁨이었습니다. 한번 더 그 감정을 느껴보고 싶어 지금까지 계속 작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창작에 고민하는 이들에게는 “내가 하는 일을 누가 필요로 할까, 누구에게 도움이 될까를 생각하는게 중요하다”고 했다. “그렇게 다른 누군가를 생각하면서 계속 일을 해나간다면, 그 길은 잘못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작품을 만들 때 해외 관객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를 생각 하나.
“그렇지는 않다. 2002년 ‘별의 목소리’로 데뷔했는데, 그 때는 해외 관객을 염두에 둔다는 것은 생각도 못했다. 누가 내 작품을 봐줄지도 전혀 알지 못했다. 당연했다. 다만 ‘별의 목소리’ DVD 가 발매됐을 때 세계 각지의 다양한 사람으로부터 메일이 왔다. 내가 만든 작품을 세계에서 봐주고 감상을 전해 온다는 것에 무척 놀랐다.”

-작품을 만들 때 굳이 글로벌 시장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는 얘기인데.
“2011년 ‘별을 쫓는 아이’를 만들었을 때 얻은 교훈이 작용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지브리스튜디오적인 취향이 들어간 팬터지를 만들었는데, 약간은 글로벌적인 것을 의도했었다. 세계 공통의 신화를 기본으로 일본인이 아니더라도 쉽게 즐길 수 있도록 해보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작품을 내놓았을 때 반응은 정반대였다. 이전 작품이 더 좋았다는 관객이 아주 많았던 거다. 해외에서도 국내에서도 ‘전작이었던 ‘초속 5센티미터(2007년)’가 더 좋았다’ ‘당신에게 기대하는 초속 5센티미터 같은 그런 작품이다’라는 반응이 아주 많았다.
크게 충격 받았다. 좋다고 생각해 만들었던 작품이 큰 비판을 받게 됐으니까. 그때까지 내 작품 이미지는 일본을 무대로 한 원거리 연애 같은, 조금은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였다. 관객이 원했던 것과 완전히 다른 것을 갑자기 던져서 관객도 당황했던 것 같다.
그런 경험을 하고 난 뒤 ‘의도적으로 글로벌한 것을 만들려고 하는건 내게 조금 어려운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작품인 ‘언어의 정원(2013년)’을 만들 때에는 정말 끝까지, 끝까지 일본의 로컬한 영화를 만들려고 했다. ‘만엽집’ 이야기를 꺼낸다든지, 일본 정원을 무대로 한다든지, 일본의 고교생과 교사 이야기를 다룬다든지 말이다. ‘언어의 정원’을 내놓았을 때 국내 뿐 아니라 국외에서도 평이 아주 좋았다.”

언어의 정원(2013)/신카이 마코토


-그런 경험을 통해 무엇을 얻었나.
“‘글로벌한 것을 의도적으로 만들려 하지 않고, 자기가 살고 있는 나라, 자기가 있는 장소를 더 심도있게 그리는 로컬한 작품을 만드는게 결과적으로 글로벌적인 것으로도 연결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다음 작품인 ‘너의 이름은’을 만들 때에는 ‘미쓰하’라는 무녀(巫女)가 나오고, 무녀가 신사(神社)에서 춤을 추고, 일본 전통 공예인 손목끈이 쓰이는 식으로 일본적 모티브를 의도적으로 넣었다. 이런 모티브들은 해외에서도 폭발적으로 인기를 얻었다. ‘너의 이름은’의 무대가 된 장소를 직접 가보려고 일본에 여행 온 사람들도 많았다.
따라서 일부러 글로벌을 노리고 만든다고 되는게 아니라, 자기가 발을 딛고 있는 곳을 더 깊이 파는 로컬한 작품을 만드는 쪽이 결과적으로 바깥 세상으로도 더 잘 전달되는 것 같다. 내가 어떻게 자라서 어떤 풍습에 대한 추억이 있고, 어떤 것에 내가 호기심을 느끼는지 등을 내 직감을 기반으로 이야기를 만드는 쪽이 결과도 좋지 않을까 싶다.”

-‘날씨의 아이’도 ‘너의 이름은.’도 도쿄의 풍경을 극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마치 언젠가 사라질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담겨 있는듯 한데.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계기였다. 대지진이 오기 전까지의 일본 사회는 비교적 평온했다. 경제적으로는 조금씩 침체되고 있었고 총리가 매년 바뀌는 나라이긴 했지만, 눈에 띄는 큰 재해 없이 지금까지의 일상생활이 계속 될 것 같았다. 그런데 2011년 그 큰 지진이 일어난 이후, 일본 열도의 실질적 특성이 바뀌었다. 대지진이 일어난 것과 마치 보조를 맞추듯, 지구 온난화 문제까지 심각해져서 자연재해가 거의 매년 일본 열도의 여기저기에서 일어나 사람들이 죽는다든지 거리 모습이 크게 변한다든지 하는 광경을 계속 목격하게 됐다. 그러면서 ‘도쿄조차 지금 모습으로 있지는 못하지 않을까’라는 예감, 두려움이 커졌다.
‘너의 이름은.’의 에필로그 부분에서도 ‘타키’라는 주인공이 구직활동을 할 때 “도쿄도 언젠가 사라질지 모릅니다”라고 말한다. 그 대사는 ‘너의 이름은.’을 만들 때 내 자신이 절감한 것이었다. ‘어쩌면 내년에 큰 지진이 올지 모른다’ 아니면 ‘거대한 태풍이 와서 도시가 물에 잠길지 모른다’는, 도쿄의 모습이 결정적으로 바뀔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최근 몇 년간 계속 들었다. 도쿄가 바뀌어 버리기 전에 영화에 그런 기억을 담아두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또 언젠가 바뀌어버린다고 한다면 어떻게든 그것에 준비한다는 기분으로 ‘내 영화에서 먼저 바꿔버리자’라는 마음도 동시에 있었다.”

너의 이름은(2016)/신카이 마코토


-‘너의 이름은’에서는 동일본 대지진으로 상처 받은 사람들을 위로하는 마음이 느껴졌는데, ‘날씨의 아이’에서는 위로의 대상이 전세계 젊은이들로 확대된 것 같다.
“최근 몇 년간 젊은이들을 둘러싼 상황이 어떤 나라에서나 비슷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적으로 여러 나라들이 내셔널리즘으로 가고 있다. 인터넷·SNS를 보면 그런 세계에 절망하는 젊은이들의 공통의 감정이 느껴진다. 타인과 다른 생각을 말하거나 하면 강하게 비판받고 공격 받는 현상, 뭔가 조금이라도 잘못된 것을 하면 일거에 자신이 무너질만큼 두드려 맞는 일들이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다.
역시 사람이란 잘못을 저질러 가면서 성장하는 것 아닐까. 지금의 일본은 한번의 실패도 용서받지 못할 것 같은 사회가 되어버린 것 같다. 꼭 일본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그런 기분이 들지 모르겠다. 아마 다른 나라의 젊은이들도 그런 기분을 느낄거라 생각한다.
인터넷 영향으로 세계가 동질화되고 있다고 한다. 나도 그렇게 동질화되고 있는 세계에서 영화를 만들고 있으니까, 일본에 대한 것을 만들고 있더라도 그것이 세계에도 맞닿은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띠게 되는 것 아닐까 생각한다. ‘조커’도 그렇고, ‘기생충’도 그렇고 말이다.(인터뷰가 진행됐을 때 일본에서도 영화 ‘기생충’이 크게 흥행했다.)”

-‘기생충’을 직접 봤나?
“그렇다. ‘날씨의 아이’와 비슷한 부분이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반지하 집에 살고 있는 빈궁한 사람들의 이야기이지 않나. ‘날씨의 아이’에서도 ‘스가’라고 하는 사람이 반지하 집에서 그다지 풍요롭지 못한 생활을 한다.(웃음) 역시 같은 시대에 만들어지는 영화라는 것은, 나라가 달라도 공통의 테마나 기분을 공유하는게 아닐까. ‘조커’를 보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기생충’ ‘조커’ ‘날씨의 아이’ 모두 지금 시대의 영화이지 않나. 의도적으로 시대를 반영하는 영화를 만들려 하지 않아도, 사회 분위기를 호흡하면서 영화를 만들다보면 그런 작품들이 나오게 되는 것 같다.”

-‘조커’와 ‘날씨의 아이’의 두 주인공인 조커와 호다카는 둘다 우연히 총을 갖게 되는데, 결말은 정반대다. 조커는 악의 세계로 나아갔지만, 호다카는 그렇지 않았다.
“호다카는 사랑하는 사람인 히나를 만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자신보다도 더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만난거다. 호다카는 여러 잘못을 저지르지만, 전부 히나를 만나고 난 뒤, 무엇보다 소중한 히나를 지키기 위해 한 것들이었다. 그것에 관객이 공감해주었으면 했다. ‘조커’에도 여성 캐릭터는 등장하지만, 결국 모든 것이 망상이었다. 조커는 자신이 정말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실제로는 만나지 못한 것이다. 그 부분이 큰 차이다.”

-‘날씨의 아이’의 엔딩이 파격적인데.
“세계가 어떻게 되든 그 안에서 강하게 살아간다고 하는 강력한 엔딩을 만들려고 했다. 호다카가 ‘날씨는 다시 궂어져도 괜찮아’라고 외친다든지, 스가가 ‘세계는 원래부터 미쳐 있었다’고 말하는 식으로, 세상이 더 미쳐버리는 것이 좋다는 기분이 지금의 젊은이들 사이에 실은 꽤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다.”

날씨의 아이(2019)/신카이 마코토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세상에 너무 많다는 것인가?
“‘정상인 지금의 세계가 행복한 것일까’라고 묻는다면 ‘행복하지 않다’고 말할 사람이 꽤 많을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세상이 한번 망가져버리는게 좋은거 아니야?’라고, ‘전쟁이라도 나서 세상이 뒤집어졌으면 좋겠다’라고, ‘재앙이 올거면 차라리 빨리 와주는 쪽이 오히려 내 기분이 후련해질 것 같아’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어떻게든 계속되고 있는 지금의 삶이 그렇게 좋은 것은 아니지 않을까’라는 기분이 모두에게 적잖이 있을거라는 생각도 든다. 내 마음 속 어딘가에도 조금은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것을 관통해 다음의 다른 세계까지 가버리는 것, ‘날씨의 아이’라고 한다면 물에 잠긴 도쿄, 지금 있는 건물 1층이 더 이상 쓸 수 없는 곳이 돼버리는, 그런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다. 그것을 관객이 어떻게 느낄지 내 자신이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그렇지만 세계가 미쳐버린다고 해도 거기에서 가능한한 건강하게 꿋꿋하게 살아나가는 결론을 만들고 싶었다. ‘내가 건강하게 살아간다는 것이 나만을 생각해서가 아니라 당신을 위해서이기도 하다는 것을 그릴 수 있다면 관객이 공감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호다카가 히나에게 ‘우리는 반드시 괜찮을거야’라고 말하는 것은 ‘내가 너를 괜찮게 해줄게’ ‘내가 있으니까 너는 괜찮아’라는 뜻이다. 실은 도쿄가 물에 잠겨서 괜찮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내가 너를 아무 일 안생기게 해줄테니까’인 것이다.”

-한국·일본 할 것 없이 그런 기분을 가진 이들도 있을 것 같다. 어떤 것에 상처받고 있는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서로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채 겉만 보고 공격적으로 반응하는 부분도 있을지 모르겠다.
“초등학교 수업에서나 얘기할만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릴 때 선생님이 ‘친구의 처지·기분이 되어 생각해봅시다’라고 하지 않나. 공감하는 것, 타인에 대한 상상력이랄까, ‘내가 저 사람이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겠지만. 다른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내가 들어서 싫은 것은 나도 다른 사람에게 하지 않는다’는 마음을 갖는게 중요할 것 같다.”

-이해받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면 분노·폭력의 방식으로 표출될 수도 있는데.
“어차피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면 당신의 모든 것을 부숴버리겠다고 하는 심정이 들 수도 있다. ‘너의 이름은.’은 서로 모르는 타키와 미쓰하라는 소년·소녀의 몸이 바뀌면서 서로를 알아가는 이야기이지 않나. 서로가 상대방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그 사람이 신경 쓰이게 되고 그 사람이 좋아지게 될 수도 있다. 인간 관계에서도 어떤 것을 개선하고 싶다면, 그 사람의 처지를 공감하고 그 사람의 기분을 생각해주는 것밖에 없다. 그것을 반복하는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날씨의 아이’에서 시간은 아주 먼 옛날의 흔적으로까지 이어진다. 어떻게 그런 부분까지 생각하게 됐나.
“서울에서도 도쿄에서도, 그 도시에 산다는 것은 시간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곳 위에서 산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사는 도쿄의 신주쿠대로는 서쪽으로 이어지는데, 대로의 양 옆이 계곡 형태로 돼 있다. 신주쿠대로가 가장 높은 위치에 있다. 대로의 왼쪽을 봐도 오른쪽을 봐도 내리막길이다. 산처럼 솟아 있는 지형의 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대로가 있는 형태다. 지금은 그 주변에 빌딩이 잔뜩 세워져 있기 때문에 의식을 잘 못하지만, 그것을 그림으로 그리려고 하면 ‘왜 여기에 언덕이 계속될까’를 생각하게 된다. 기본적으로는 도시 모습을 직접 보며 손으로 그려나가기 때문에 ‘왜 이 장소는 이런 지형일까’라든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최원석 기자
'날씨의 아이' '너의 이름은.'의 신카이 마코토 감독을 도쿄 사무실에서 인터뷰했다. 감독 뒤로 '날씨의 아이' 포스터가 보인다.


-뭔가 자신만의 것을 만들어내고 싶은 사람들에게 해줄 말이 있다면.
“무엇을 창작한다는 것은 누군가가 봐주기를 원하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고 하는 일일 것이다. 그렇게 다른 이를 생각하며 일을 해나간다면, 그 길이 잘못되지는 않을 것이다. 관객은 엔터테인먼트를 보고 싶어 하겠지만, 엔터테인먼트만으로는 정말 만족하지 못할지 모른다. 뭔가 충격을 받고 싶어하지는 않을까, 관객 스스로 잘 모르고 있었던 것을 영화를 통해 더 알고 싶어하지는 않을까. 그런 것을 생각하며 영화를 만들어나간다면 관객에게 닿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식으로 내가 하는 일을 누가 필요로 할까, 누구에게 도움이 될까를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창의성의 원천은 무엇인가.
“오래 전 경험을 말해보겠다. 2002년 ‘별의 목소리’를 공개했을 때다. 20분짜리 짧은 애니메이션이었다. 그것을 50석 밖에 안되는 소극장에서 첫 관객에게 보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서투르고 졸렬한 작품이긴 했지만, 그 영화를 보고 당시 50명 모두가 아주 크게 박수를 쳐 주었다. 그때까지의 내 인생에서 가장 기쁜 일이었다. 그 박수가 너무 따뜻했다. 한번 더 그런 기분을 느끼고 싶었던게 모티베이션이 됐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내 작품이 다른 사람에게 다가갔구나’ ‘나도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을 수 있구나’라는 그런 감정 말이다.”

-창의성을 어떻게 작품으로 연결할 수 있을까.
“창의성은 누구나 갖고 있다. 누구든 상상이나 망상을 하지 않나. 자기 전에 즐거운 일을 생각한다든지, 일하다가 공상에 빠진다든지.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과 데이트하면 얼마나 좋을까 공상하곤 한다. 다만 그것을 어떤 방식, 어떤 형태로 만들어 외부에 보일 것인지의 문제다. 내보이는 방법을 잘 모른다면, 아무리 여러가지 상상을 하더라도 그것을 어떤 형태로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는게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런 것은 배울 수 있다. 지금도 일이 매끄럽게 잘 안되는게 있지만, 그래도 20년간 이 일을 해 오면서 내가 상상한 것이 형태를 띠도록 하는 것에 조금씩 능숙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기술, 바깥에 내보이는 방법을, 자기 나름대로 찾고 훈련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학교에서 알려줄 수 있는 것도 있겠지만, 스스로 찾지 않으면 안되는 것도 있을 것이다.”

[최원석 기자 ws-cho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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