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칼 휘두르는 남자… ‘킹덤’ 전투도 내 손 거쳤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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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1.03.20. 오전 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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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국 수원시립공연단 상임연출, 드라마·영화 속 군사 자문
국립고궁박물관 ‘군사의례’ 특별전 영상과 도록에도 참여

최형국 소장이 ‘군사의례’ 특별전 영상을 배경으로 무예 시범을 펼치고 있다. 그가 조선 시대 무기인 환도를 휘두르자 휙- 바람 가르는 소리가 났다. /남강호 기자

이 남자의 일과는 낮과 밤으로 나뉜다. 낮엔 몸을 쓰고, 밤엔 머리를 쓴다. 최형국(46) 수원시립공연단 무예24기 시범단 상임연출 겸 한국전통무예연구소장. 매일 활 쏘고 환도(環刀·조선 시대 전통 무기)를 휘두르는 무예인이자 국내 최초로 무예사로 박사 학위를 받은 연구자다.

문무(文武)를 겸비한 그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28일까지 열리는 특별전 ‘군사의례’ 전시장에서 만났다. 조선 시대 무관의 평상복을 입고 나타난 그는 “늘 이렇게 입고 지하철 타고 다닌다”고 했다. “생각보다 왜소한 체격이라 놀랐다”고 하자 웃으며 답한다. “그런 말 자주 들어요. 시범 공연을 할 땐 10㎏짜리 갑옷을 입고 빠른 무예 동작을 펼치니까, 실제보다 더 커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가 이끄는 시범단은 매일 오전 11시(월요일 제외) 수원 화성행궁에서 무예 24기 시범 공연을 펼친다. 무예 24기란 규장각 학자 이덕무·박제가, 정조 친위 부대인 장용영(壯勇營) 최고 무관 백동수의 주도 아래 편찬된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의 24가지 무예를 뜻한다. 창과 봉, 검으로 하는 무예, 맨손 권법에 말 타고 하는 무예까지 선보이며 수원의 대표 관광 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최형국 소장이 국립고궁박물관 '군사의례' 특별전 영상을 배경으로 무예 시범을 보이고 있다. /남강호 기자

최형국 소장이 국립고궁박물관 '군사의례' 특별전 영상을 배경으로 무예 시범을 보이고 있다. /남강호 기자

시범단의 ‘얼굴’ 같은 그가 무예에 입문한 건 20대 때. 경영학을 전공하면서 들어간 동아리에서다. “탈춤과 사물놀이를 배우다가 전통 무예에도 관심을 갖게 됐어요. 무예 동아리 ‘경당’에서 수련하면서 깊이 빠지게 됐지요.” 무예가 깊어질수록 공부에 대한 갈증도 커졌다. ‘조선 시대 때 무예가 어떤 역할을 했고, 실제 어떻게 무예를 익혔는지 궁금해' 중앙대 사학과 박사 과정에 입학, ‘무예사 1호 박사’를 받았다. 논문 제목은 ‘조선 후기 기병의 마상무예 연구’. 그는 “당시 무반(武班)들이 썼던 용어 중엔 사어(死語)가 많아 한글로 써도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게 대부분이었다. 일일이 사료를 찾고 해석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고 했다. “병서에 나오는 용어 중에도 잘못 알려진 게 많아요. 예를 들어 ‘화병(火兵)’을 흔히 ‘조총병’이라고 해석하는데, 취사병이란 뜻이거든요. 군사들이 밥을 먹어야 하니까 요리를 담당하는 병사였던 거죠.”

‘무예도보통지’를 완역하는 등 10권 이상의 책을 냈다. 매일 오전 10시 화성행궁으로 출근해 단원들과 함께 공연과 연습을 하고, 퇴근 후엔 연구실에 틀어박혀 책과 씨름한 결과물이다. 드라마·영화 제작진에게 군사 자문도 많이 했다. 해외에서 더 인기를 얻은 드라마 ‘킹덤’도 그의 손을 거쳤다. 그는 “좀비를 적군이라고 상정하고, 적이 공격해 오면 군사들이 어떻게 방어선을 구축하고 대응해야 하는지, 총 쏘고 활 쏘는 장면을 세세히 알려줬다”며 “처음엔 ‘조선 시대 좀비물?’이라며 당황했는데 제작진이 고증 내용을 잘 반영해줘서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최형국 소장이 국립고궁박물관 '군사의례' 특별전에 전시된 장수의 붉은 융 갑옷을 배경으로 무예 시범을 보이고 있다. /남강호 기자

조선왕조의 군례를 종합적으로 소개하는 이번 전시에도 곳곳에 그의 흔적이 배어있다. 그가 감독한 단원들의 무예 장면이 거대한 3면 영상으로 상영되고, ‘무예도보통지’의 동작들도 직접 재현했다. 연구자로서 ‘조선 후기 군사 신호체계와 진법 훈련’이라는 논문도 도록에 담았고, 유튜브 강연도 했다. 그는 “조선 시대 군사 의례를 체계적으로 보여주는 전시는 처음이라 ‘군사 덕후’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면서 “말에서 떨어지고 훈련하다 다쳐서 온 몸이 성한 데가 없지만, 어쩔 수 없는 천직인 것 같다”고 했다.

[허윤희 기자 ostinat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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