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 청단놀음

醴泉青丹戏

한국민속예술사전 : 민속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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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놀음
분류 가면극

정의

경상북도 예천 예천읍에서 전승되는 무언無言의 탈놀이.

역사

기원 설화에 따르면, 예천 청단놀음은 전라도에 살았던 한 늙은이의 젊은 아내가 가출한 데서 비롯하였다. 아내가 가출하자 노인은 몸져누웠다. 이를 보다 못한 아들이 놀이패를 꾸려 각처를 떠돌면서 서모庶母를 찾았다. 마침내 예천에서 여인을 찾았지만 귀가를 거부하자, 아들 일행은 여인을 죽이고 떠나버렸다. 그 뒤 여인의 원한 때문에 재앙이 발생하자, 사정을 알게 된 고을 수령이 여인에 대한 제사를 설행하고 아들이 놀던 탈놀이를 재현하게 했더니 재앙이 사라졌다. 이때부터 예천에서는 고을의 안녕을 위해 해마다 여인에 대한 제사와 청단놀음을 벌여 왔다고 한다.

본디 예천 청단놀음은 예천 읍치의 새해맞이 축제를 구성하는 연행으로 전승되었다. 그러나 일제 강점 이후 축제 전통이 쇠락하면서 청단놀음도 함께 전승력을 잃게 되었으며 1930년대의 예천 경찰서 낙성식 기념 공연을 마지막으로 전승이 중단되었다. 그 뒤 1970년대 중반에 이르러 지역의 전통문화유산, 특히 무형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강원희를 비롯한 지역 내외의 관계자들이 예천 청단놀음에 관심을 기울이고 조사를 하였다. 이 과정에서 황병현, 장재영, 장정섭 등 1930년대의 공연에 직ㆍ간접적으로 관여한 이들로부터 청단놀음의 형식과 내용, 탈과 복식 등에 관해 제보를 받고 놀이를 재구성함으로써 새로운 전승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이런 작업을 바탕으로 재현된 예천 청단놀음은 1981년과 1987년, 그리고 2002년에 열린 한국민속예술축제에 경상북도 대표로 참가하였으며, 현재 예천청단놀음보존회를 중심으로 전승 활동을 벌이고 있다.

내용

1. 전승의 배경과 연행 집단

예천 청단놀음은 매년 정월 보름에 터서리당에서 당제를 지낸 뒤에 벌어졌다. 터서리당에는 ‘검덕부인’이라는 여신을 모셨고 청단놀음에서 사용한 기물을 이곳에 보관하였다. 당제는 독축 고사형으로 거행하였으며 당제를 마친 뒤에 지신밟기와 함께 청단놀음을 연행하였다. 전근대사회에서 읍치邑治를 배경으로 벌어진 고을 축제는 일반적으로 무당들의 굿과 잡희神遊를 중심으로 하는 ‘무당굿형’과 대동놀이를 중심으로 하는 ‘대동놀이형’으로 나눌 수 있는데, 어느 경우에나 읍권邑權을 장악한 아전들의 직ㆍ간접적 참여 하에 이루어졌다.

예천의 새해맞이 축제는 대동놀이형에 속하는 고을 축제로서 아전 또는 그 집안의 사람들에 의해 주도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1930년대의 경찰서 낙성식 기념 공연을 기획하고 연출하였으며 직접 연행한 이들이 황씨와 장씨들이었다는 사실은 이를 말해 주는 것 가운데 하나이다. ‘예천읍은 황장黃張판’이라는 향언이 말해 주듯이, 예천 읍치의 권력을 장악한 집단은 평해 황씨ㆍ창원 황씨ㆍ단양 장씨였고 이들 가운데 조선 후기에 아전의 직임을 맡은 이들이 있었다. 이러한 양상을 잘 보여 주는 것이, 1894년 예천에서 동학 농민군에 대항하기 위해 만든 보수집강소保守執綱所이다. 예천의 보수 지배층은 보수집강소를 결성하여 농민군의 공세를 효과적으로 진압하였고 그 중심에 황씨와 장씨들이 있었다.

이처럼 읍권을 장악하고 있던 세 가문의 족원族員들이 다른 고을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읍치의 제의와 놀이를 비롯한 축제 전통의 전승자이자 연행자로서 역할을 다했을 것으로 보인다. 1894년 당시만 하더라도 호장이 단양장씨인 장재정張載政이었고, 호장의 주요 업무 가운데 하나가 탈놀이를 포함한 읍치의 축제를 관장하는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장씨와 두 황씨가 청단놀음을 비롯한 축제 전통에 관여하였을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따라서 1930년대의 마지막 공연에 장씨와 황씨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한 것도 선대의 관행과 전통 위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2. 예천 청단놀음의 내용
예천 청단놀음에는 북광대 두 명, 양반과 사대부 각 한 명, 여자 배역인 쪽박광대 한 명, 주지광대 두 명, 지연광대 네 명, 중광대 한 명, 얼레방아 한 명, 무동 및 무동꾼 각 다섯 명 등 모두 스물세 명의 광대와 여러 명의 악사가 등장한다. 광대 가운데 무동 및 무동꾼을 제외한 배역들은 모두 탈을 사용하거나 분장을 하여 자신이 맡은 배역을 표현한다. 탈로는 북광대탈 두 개, 쪽박광대탈 한 개, 주지광대탈 두 개, 주지판 두 개, 지연광대탈 네 개, 중광대탈 한 개, 얼레방아탈 한 개 등 모두 열세 개가 있다. 지연광대의 탈은 키로 만들었고 주지판은 나무판과 꿩 털을 이용해 만들었으며, 나머지 탈은 모두 바가지로 만들었다. 한편 양반은 탈을 쓰지 않는 대신 백립을 쓰고 흰 수염을 달아 인물을 표현하였고 사대부 역시 정자관에 흰 수염을 달아 인물을 표현하였다.

광대와 악사들의 복장으로는 쾌자를 많이 사용한 것이 특징적이다. 광대의 경우 양반과 사대부, 중, 쪽박광대처럼 지체와 신분 그리고 성을 표상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한결같이 평상복 위에 검은색 계통의 쾌자를 걸쳤고, 악사들은 평상복 차림에 삼색 띠를 매는 정도였다. 한편 무동꾼 역시 악사와 마찬가지로 평상복 차림이었고 무동의 경우, 여아는 치마저고리, 남아는 바지저고리를 입었다.
마당별 내용은 다음과 같다. 먼저 광대판놀음이다. 광대판놀음은 놀이판을 여는 마당으로서, 북광대들의 움직임은 아래와 같이 정리할 수 있다.

①입장한 광대들이 자기 앞에 놓인 북을 두드리다가 맞은편의 북으로 이동한다.
②이동은 북채를 들어 마주 두드리면서 도무하는 형태를 취한다.
③맞은편의 북 앞에 가면 일정 시간 동안 북을 두드리다가 다시 맞은편의 북으로 이동한다.
④이와 같은 동작을 여러 차례 반복한다.

이 마당은 북광대들의 움직임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쪽박광대도 등장하여 일정한 역할을 수행한다. 쪽박광대는 놀이판 안팎을 튀는 몸짓과 춤, 경박한 표정으로 휘젓고 다니면서 사람을 찾는 시늉을 하는 한편, 별안간 놀음을 벌이는 광대의 멱살을 잡는 등의 행동으로 관중들에게 웃음을 준다.

다음으로 행의놀음이다. 행의놀음에는 양반과 사대부, 그리고 쪽박광대가 등장한다. 양반과 사대부는 허울 좋은 지체를 내세우는 자들로서 쪽박광대를 놓고 다툼을 벌여 자신들의 위선과 모순을 스스로 드러낸다. 이 마당의 전개 과정은 다음과 같다.

①쪽박광대가 등장하여 춤을 춘다.
②양반이 등장하자 쪽박광대는 춤으로 양반을 유혹하고 마침내 양반이 이에 호응하며 함께 춤춘다.
③사대부는 홀춤을 추면서 이 장면을 보다가 둘 사이에 뛰어들어 옥신각신한 끝에 양반을 내치고 쪽박광대와 대무를 한다.
④양반은 그들 주위에서 춤을 추다가 기회를 틈타 사대부를 내치고 다시 쪽박광대와 대무를 하다가 퇴장한다.

이 마당에서는, 대개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다른 탈놀이의 여역女役과 달리 매우 적극적으로 남성을 유혹하고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쪽박광대의 성격이 주목된다. 또 눈길을 끄는 것은 양반의 행색이다. 그는 상중임에도 불구하고 놀이판에 나왔다. 이 사실만으로도 지탄받기에 충분하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 쪽박광대라는 여성, 그것도 박색의 여성을 두고 사대부와 다투는 추태를 보인다. 교묘한 언어 구사 없이 행색만으로도 자신의 위선과 모순됨을 보여 주는 것으로서 무언 탈놀이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극적 장치라고 하겠다.

다음으로 주지놀음이다. 주지놀음은 두 명의 주지가 주지판을 들고 나와서 서로 또는 관중들을 향해 주지판을 부치면서 극적 갈등 없이 독무와 대무를 거듭하는 마당이다. 이 마당의 전개 과정은 다음과 같다.

①주지가 서로 마주 본 상태에서 주지판을 좌우로 작게 어르면서 등장한다.
②주지판을 머리 뒤쪽에서 앞쪽으로 가져오는 듯 움직이면서 각자의 바깥 방향으로 잔걸음질을 하며 돈다.
③주지판을 올리고 내리는 것을 반복하면서 앞으로 전진한다.
④서로 어깨를 맞대고 좌우로 돌면서 대무를 한다.
⑤주지판을 내리치다가 오른쪽 어깨 위에서 살짝 감아주며 몸을 틀어준다.
⑥④와 ⑤의 동작을 하며 정면을 향하거나, 주지끼리 서로 마주 본 상태에서 전진과 후진을 반복한다.
⑦각기 반대 방향으로 ⑤의 동작을 하며 퇴장한다.

다음으로 지연광대놀음이다. 이 놀음에는 네 명의 지연광대들이 등장하여 다양한 대형을 그리면서 활달한 의식무를 펼친다. 전개 과정은 다음과 같다.

①사방 대형(우측 앞은 가을, 뒤는 봄, 좌측 앞은 겨울, 뒤는 여름)으로 제자리에 서서 키탈을 좌우로 어른다.
②몸을움츠렸다가 사선 방향으로 키탈과 함께 길게 뻗는다.
③키탈을 좌우로 흔들면서 힘차게 마당 앞쪽으로 뛰어나온다.
④정면을 본 상태에서 키탈을 위아래로 흔들다가 사선 방향으로 쭉 들어 준다.
⑤③의 동작을 하면서 좌우로 돌고, 모였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한다.
⑥긴 사방 대형(좌측부터 겨울, 여름, 봄, 가을)을 만들고 키탈을 얼굴 앞쪽에 덮어쓴다.
⑦옆 뛰기를 하면서 팔을 날갯짓하듯 나풀거린다.
⑧자연스럽게 팔을 어깨에 메다가, 몸통을 왼쪽으로 틀어 앉았다 서기를 반복한다.
⑨정면으로 엉금엄금 걸어 나오며, 수염을 크게 쓰다듬는다.
⑩양팔을 교대로 어깨 위로 메면서 마당 양옆으로 뛰어나가며 퇴장한다.

다음으로 얼레방아놀음이다. 이 놀음에는 중과 쪽박광대, 그리고 얼레방아가 등장한다. 일반적인 중 마당처럼 중이 쪽박광대의 유혹에 넘어가서 파계하지만 얼레방아에게 들켜 징치당하고, 쪽박광대를 차지한 얼레방아가 그녀와 놀아나는 내용을 형상화하였다. 전개 과정은 다음과 같다.

①얼레방아가 등장하여 무엇을 찾는 시늉을 하며 한바탕 춤을 추고 들어간다.
②쪽박광대가 등장하여 마당을 쓴다.
③이때 중이 등장하여, 바람에 흩날리는 쪽박광대의 치마 사이로 월경혈이 묻은 고쟁이를 본다.
④이 사실을 알아챈 쪽박광대가 중에게 접근하자 중은 정색을 하며 피한다.
⑤쪽박광대가 계속 유혹하자 마침내 중도 좋아하며 함께 춤을 춘다.
⑥춤이 익어갈 무렵 얼레방아가 등장하여 이 장면을 목격하고는 “이놈 중아!” 하고 외마디 소리를 지른다.
⑦이 소리에 놀란 중은 넘어져 벌벌 떨고 얼레방아는 쪽박광대와 어우러진다.
⑧중은 아쉬운 표정으로 퇴장하고 쪽박광대와 얼레방아도 퇴장한다.

마지막으로 무동놀음이다. 무동놀음에는 모두 다섯 조의 이무동二舞童이 등장하며 전개 과정은 다음과 같다.

①무동의 움직임은 횡대형 또는 종대형, 그리고 원형으로 이루어진다.
②무동들은 팔만 흔드는 소극적인 춤사위를 펼친다.
③무동 마당을 일정하게 진행하면 놀이꾼과 관중들이 함께 신명을 푸는 대동 마당을 펼친다.
3. 주제와 갈등 양상
청단놀음의 주제는 주술ㆍ종교적인 차원과 사회적 차원에 걸쳐져 있다. 이와 같은 이중성은 우리나라의 탈놀이에서 보편적인 것이지만 청단놀음은 그 양상과 정도에 있어 차별적인 면모를 보여 준다. 대개의 탈놀이들은, 굿에서 극으로의 발전이라는 일반적인 진화의 도식에서 비교적 극 쪽에 가까이 가 있고, 그렇기 때문에 주술ㆍ종교적 성격이 약화되고 사회성이 강화된 양상을 보여 준다. 여기에 비해서 청단놀음은 아직 굿 쪽에 가까이 있는 탈놀이로서 강한 주술ㆍ종교적 성격을 유지한 채 일정한 사회성을 보여 준다.

이와 같은 양상은 마당의 구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전체 여섯 마당 가운데 일정한 주제를 전달하는 마당은, 행의놀음ㆍ주지놀음ㆍ지연광대놀음ㆍ얼레방아놀음 등 네 마당이다. 이 가운데 주지놀음과 지연광대놀음은 시종 주술ㆍ종교적 의미를 구현하는 데 바쳐질 뿐 어떤 사회적 의미도 담고 있지 않다. 한편, 행의놀음과 얼레방아놀음은 다른 탈놀이의 양반 마당과 중 마당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표면적으로는 양반에 대한 풍자와 파계승의 관념적 허위에 대한 풍자라는 사회적 주제를 구현하지만, 심층적으로는 당신화에 등장하는 원혼형 여신의 결핍된 성을 충족시켜 해원함으로써, 공동체의 안녕을 기대하는 주술ㆍ종교적 성격을 갖고 있다.

①주술ㆍ종교적 주제와 갈등 양상: 먼저 주지마당이다. 주지마당에는 두 명의 주지가 주지판을 들고 등장한다. 놀이판으로 나온 주지들이 취하는 움직임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관중들을 향해서 주지판을 부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서로 대무하면서 주지판을 움직이는 것이다.

주지는 상상의 영수靈獸로서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는 벽사의 존재이다. 꿩털로 장식한 주지판은 주지를 표상하는 신체의 일부분이자 벽사의 힘의 원천으로서, 광대들이 주지판을 부치는 행위는 곧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는 의미를 갖는다. 이때 벽사는 두 차원에 걸쳐 있다. 하나는 공동체 내부에 있는 사악한 기운을 몰아내는 것이고, 또 하나는 놀이판에 모인 사람들 개개인의 재액을 털어 내는 것이다. 관중들을 향해 주지판을 부치는 행위는 관중들의 재액을 물리치는 행위이기도 한 것이다. 한편 주지들의 대무는 하회 별신굿 탈놀이의 경우처럼 싸움의 형태로 진행되지 않고 협화協和의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다. 하회 별신굿 탈놀이에서는 암수 주지의 싸움을 통해 벽사를 구현하는 데 비해 청단놀음에서는 두 주지가 협화를 통해 벽사의 힘을 강화하고 그 힘을 풀어냄으로써 벽사를 구현하는 것이다.

한편 주지판에 달린 꿩털은 주지가 지상적 존재이자 천상적 존재임을 상징한다. 주지는 천지인天地人의 삼재三才를 넘나드는 벽사의 영수로서 공동체 공간을 종횡한다. 종적으로는 지상으로부터 하늘에 이르고 횡적으로는 동서남북과 중앙의 오방에 이른다. 따라서 광대가 주지판을 움직일 때 그 효용이 미치는 범위는 공동체의 모든 공간이 된다.

주지 마당에서 갈등은, 초인간적 존재인 주지와 역시 초인간적 존재이면서 정체가 드러나지 않는 사악한 힘, 즉 더 나은 삶을 꿈꾸는 인간의 의지를 좌절시키는 힘 사이에 존재한다. 초인간적 존재 사이의 갈등인 셈이다. 그러나 이 갈등의 원인 제공자는 인간이다. 일상 속에서 인간은 불만족한 현실을 경험하고 그 원인을 사기邪氣 탓으로 돌리며, 새해를 맞이하는 축제의 현장, 곧 청단놀음의 연행 현장에서 그것을 털어 내려고 한다. 주지는 이 같은 인간의 의지를 투사한 존재이다. 주지는 인간을 대신하여 사악한 힘과 싸우고 그 싸움에 승리함으로써 인간의 기대를 충족한다. 이 과정에서 사악한 힘은, 비록 놀이판에 가시적인 형상으로 등장하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갈등의 한 축으로서, 주지판이 일으키는 바람결의 끝자락에서 안간힘을 쏟으며 저항하다가 마침내 공동체의 밖으로 사라진다. 이 갈등에서 사악한 힘은 통상적인 인간의 의지와 능력을 넘어서 있고 곧잘 공동체인들을 무릎 꿇게 한다는 점에서, 유사이래 인간과 갈등해 온 자연의 부정적 은유이다. 여기에 비해 주지는 역시 초인간적 존재이면서도 공동체인들의 안녕을 보장하는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유사 이래 인간과 공존해 온 자연의 긍정적 은유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주지마당의 갈등은 결국 선한 자연과 악한 자연의 갈등인 셈이고, 선한 자연이 곧 인간의 의지를 반영한 존재라는 점에서 인간과 자연의 갈등인 셈이다.

다음으로 지연광대놀음이다. 이 마당에서 광대들은 동서남북의 사방과 놀이판의 중심 및 주변, 그리고 전후좌우를 오가면서 집단무를 춘다. ‘지연’은 그 어원과 유래를 알 수는 없지만 동서남북과 춘하추동을 상징하는 존재로서 방위신의 성격과 함께 농경신의 성격도 일정하게 갖고 있다. 탈놀이에서 방위신 개념의 차용은 낯설지 않다. 오방처용의 등장 이래 탈을 쓴 구나驅儺의 신격이 각 방위를 수호하는 모티프는 탈놀이에 광범하게 차용되었다. 오방신장 또는 다섯 명의 양반은 오방처용의 연장에서 이해할 수 있고 봉산탈춤 등의 사상좌四上佐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방위신은 동서남북과 중앙을 수호하는 신으로서 ‘수호’는 주로 ‘밖으로부터 안을 지킨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이때의 밖이란 곧 무질서한 세계, 그리하여 위험한 세계이고 나쁜 기운, 곧 재액을 품고 있는 세계이다. 따라서 방위신과 그 변용의 신격 또는 인격이 등장해서 벌이는 놀이는, 기본적으로 안팎의 대립 구도 속에서 공동체 내부의 길함을 지키는 방위신과 외부의 흉함이 갈등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이런 양상은 앞의 주지놀음과 유사하지만, 상대적으로 주지가 공동체 안의 사악한 힘을 밖으로 내치는 데 비해, 방위신의 변용인 지연광대는 공동체 밖의 흉함이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차단하고 안의 길함이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일정한 차별성이 있다.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지연광대는 더 나은 삶을 희구하는 인간의 대리자로 벽사진경의 싸움에 나선다는 점에서, 주지와 같은 맥락에 있는 초인간적 존재이고 따라서 지연광대놀음의 갈등 역시 인간과 부정적 자연의 갈등으로 볼 수 있다.

②사회적 주제와 갈등 양상, 그리고 신명풀이: 행의놀음은 양반과 사대부가 등장하여 쪽박광대를 놓고 다툼을 벌이는 마당이다. 양반은 상중임을 표현하는 백립을 쓰고 흰색 행의를 입었으며 요령을 들고 있다. 또한 사대부는 정자관을 쓰고 흰색 도포를 입었으며 부채를 들고 있다. 차림으로 보아 행세깨나 하는 집안의 나이 지긋한 남성들이다. 한편 쪽박광대는 박색의 입비뚤이로서, 월경혈이 어린 속곳으로 봐서 아직 생산이 가능한 여성이다. 양반은 상중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놀이판에 나와 정욕을 표출하고 사대부 역시 마찬가지이다. 두 사람은 박색임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구애하는 쪽박광대의 유혹을 처음에는 뿌리치는 듯하지만, 급기야 윤리와 도덕으로 상징되는 문화의 허울을 벗고 본성에 충실함을 드러낸다. 이 일련의 과정에서 양반마당의 일반적 주제인 양반의 허위와 모순에 대한 풍자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양반을 상중임에도 놀이판에 나와 반윤리적 행위를 서슴지 않는 존재로 설정한 것은, 양반 풍자의 심도를 더하는 극적 장치로 봐도 될 것이다.

한편 얼레방아놀음은 중과 쪽박광대의 사랑놀음을 얼레방아가 등장하여 좌절시키고, 다시 얼레방아와 쪽박광대가 사랑놀음을 펼치는 마당이다. 중은 송낙을 쓰고 가사장삼을 걸쳤으며 손에 염주와 지팡이를 들었다. 전형적인 중의 형상이다. 여기에 비해서 얼레방아는 패랭이를 쓰고 쾌자를 걸친 하급 관속의 모습이다. 중은 제법 경건하게 등장하여 근엄한 체하지만, 오래지 않아 쪽박광대의 유혹에 넘어감으로써 중을 강제하던 계율의 울타리를 넘어선다. 한편 얼레방아는 중과 쪽박광대의 사랑놀음을 목도하고 폭력으로 중을 징치함으로써 윤리ㆍ도덕의 수호자, 곧 문화의 충실한 심복인 것처럼 행세하지만, 곧장 쪽박광대와 놀아남으로써 그 역시 중과 마찬가지로 본성에 충실한 인간임을 드러낸다. 이 일련의 과정에서 역시 관념적 허위에 대한 풍자라는 중마당 일반의 주제를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행의놀음과 얼레방아놀음의 주제를 사회적 맥락 속에서만 바라보는 것은 자칫 우리 탈놀이의 다성적多聲的 울림을 단성화單聲化할 위험이 없지 않다. 행의놀음에서 양반 지배층에 대한 풍자는, 다른 탈놀이에서처럼 말뚝이형 하인의 언행을 매개로 이루어지지 않고, 쪽박광대를 두고 다투는 양반과 사대부의 갈등으로부터 발생한다. 그들은 스스로의 언행에 의해 스스로를 처벌하는 내부적 갈등을 통해서 그들의 허위와 모순을 드러낸다. 그런데 이 허위와 모순이란 것이 사실은 성적 욕망이라는 인간의 본성을 억누르는 윤리ㆍ도덕과 그로부터 일탈하고픈 인간적 본성 사이의 갈등에서 비롯됐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혹에 넘어가 여색을 탐하는 것은 인지상정이지만, 쪽박광대의 유혹을 받은 양반과 사대부는 사회화의 과정에서 학습 받은 문화, 곧 윤리와 도덕에 기대어 그 본성을 억누른다. 문화와 본성 사이의 갈등이 시작된 것이다. 이 갈등에서 승자는 문화가 아니라, 성적 욕망을 비롯하여 문화가 억압한 인간의 본원적 생명력, 곧 신명이다. 신명이 윤리ㆍ도덕을 이김으로써 양반과 사대부의 신명풀이가 가능해졌지만, 그 승리가 곧 윤리ㆍ도덕으로부터의 일탈과 다름 없기 때문에, 윤리ㆍ도덕의 수호자이자 실천자로서 양반과 사대부의 권위는 부정된다.

이런 양상은 얼레방아놀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중은 누구의 공격을 받아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행위에 의해서 허위를 드러낸다. 중은 승려로서 지켜야 할 계율, 즉 문화적 강제와 인간적 본성 사이에서 갈등하였고, 그 갈등에서 인간적 본성이 승리함으로써 신명풀이가 가능해진 것이다. 얼레방아 역시 마찬가지이다. 만약 얼레방아가 중을 징치하는 데서 그쳤다면 그는 문화의 하수인에 불과하다. 하지만 얼레방아는 중의 자리를 빼앗아 다시 쪽박광대와 놀아남으로써 신명을 풀어낸다. 얼레방아는 중에 비해 윤리ㆍ도덕의 강제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에 특별한 갈등없이 본성에 충실할 수 있다. 이렇듯 문화가 억압한 본원적 생명력으로서 신명의 승리는 필연적으로 문화적, 일상적 권위와 권력에 대한 부정으로 귀결할 수밖에 없고, 바로 이 지점에 우리 탈놀이의 재미가 놓여 있다. 이런 양상은 청단놀음뿐만 아니라 다른 탈놀이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한편 쪽박광대의 존재는 상당히 특징적이다. 쪽박광대는 그 용모와 손에 든 빗자루, 그리고 쪽박으로 미루어 상당히 곤핍한 하층의 여성이다. 쪽박광대는 우리 탈놀이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적극성을 발휘하면서 모든 남성들을 유혹한다. 쪽박광대의 속곳에 어린 월경혈은 좌절된 생산의 욕망을 상징하므로 쪽박광대의 유혹은 곧 생산을 향한 쪽박광대의 의지를 표상한다. 이런 맥락에서 남성들은 일차적으로 쪽박광대와 함께 생산을 완성할 짝짓기의 대상이다. 굳이 쪽박광대를 박색으로 묘사한 것도 신분을 비롯한 대상의 속성을 불문하게 한 것도, 짝짓기 그 자체에 대한 강조에 무게 중심이 놓여 있어서일지도 모른다. 미색을 비롯한 외적 요인이 작용하지 않는 짝짓기야말로 가장 본능에 충실한 생산 활동이기 때문이다.

쪽박광대의 이런 적극성 역시 사회적 맥락에서만 해석하기는 어렵다. 청단놀음에서 쪽박광대는 시종 놀이판을 돌아다니면서 ‘가출한 여인’, 곧 터서리당의 여신을 찾는 존재로 설정되어 있다. 다른 한편으로 극중에서 쪽박광대는, 적극적인 짝짓기의 시도를 통해 생산의 가능성을 추구하는 여성으로 설정되어 있다. 이와 같은 쪽박광대의 위상은 당신화와 이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시종 놀이판을 돌아다니며 사람 찾는 시늉을 하는 쪽박광대가 당신화의 ‘여인 찾기’ 모티프를 반영하고 있다면, 성에 대한 욕망과 추구는 젊은 나이에 죽임을 당함으로써 원귀가 된 여신의 성적 결핍을 충족시키는 해원의 의도를 반영하는 것이다. 따라서 쪽박광대는 찾는 자이면서 동시에 그 대상이 되는 이중적 지위를 갖고, 찾음의 대상일 때 쪽박광대는 곧 당신인 검덕부인의 놀이적 현신이 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행의놀음과 얼레방아놀음에서 쪽박광대의 성에 대한 집착은 곧 해원을 통한 공동체의 안녕 희구라는 주술ㆍ종교적 의도를 내포하고 있으며, 이 두 마당에서 성은 현실과 신화, 성과 속의 영역을 매개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극적 장치라고 하겠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두 마당의 갈등은 표면적으로는 양반과 사대부, 그리고 중과 얼레방아 사이에 전개되면서 사회적 주제를 구현하지만, 이면적으로는 신과 인간, 혹은 성적 결핍과 해소 사이의 갈등을 전개하면서 주술ㆍ종교적 주제를 구현하고 있다. 또한 이 두 마당은, 윤리와 도덕 또는 계율로 상징되는 문화와 그 문화적 억압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는 본원적 생명력 사이의 갈등을 극화하고, 그 싸움에서 늘 본원적 생명력으로서 신명이 승리하도록 함으로써 신명풀이를 구현하고 있다.

특징 및 의의

예천 청단놀음의 특징과 의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예천 청단놀음은 강릉 지역에서 전승되어 온 강릉 관노 가면극과 함께 우리나라 탈놀이에서 희귀한 무언 탈놀이의 전통을 잇고 있지만, 강릉 관노 가면극에 비해서 한층 풍부한 구성을 보여준다. 강릉 관노 가면극은 네 마당으로 구성된다. 그러나 첫 마당에서 장자마리가 등장하여 판을 닦는 것을 제외하면, 나머지 세 마당은 양반과 소매각시의 만남과 소매각시의 죽음 그리고 회생으로 이어지는 단일한 플롯을 갖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두 마당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다. 여기에 비해서 예천 청단놀음은 내용이 상이한 여섯 개의 마당으로 구성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비교적 많은 내용을 담아내는 데 효과적인 의사 표현과 소통의 방식을 갖고 있다.

둘째, 청단놀음은 인근 안동 지역의 하회 별신굿 탈놀이처럼 당신화와 제의, 그리고 놀이가 유기적 상관성을 보여 준다. 놀이에 등장하는 쪽박광대는, 당신화의 가출한 여인이자 동본리 터서리당의 여신이기도 하다. 따라서 청단놀음은 당신화와 공동체 제의의 놀이적 상관물이 된다. 이런 면모는 하회의 경우와 유사하지만, 여신의 놀이적 현현으로서 각시와 쪽박광대의 존재 양상은 서로 다르다. 하회의 각시는 시종 정숙한 모습을 보이고 비의의 과정에서 성적 결핍을 해소하지만, 청단놀음의 쪽박광대는 공개된 놀이판에서 적극적으로 욕망을 해소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셋째, 청단놀음은 하회 별신굿 탈놀이와 함께 경북 북부 지역 탈놀이의 전형성을 보여 주면서도 다른 면모를 갖고 있다. 언뜻 보기에 청단놀음과 하회 별신굿 탈놀이는 상당히 유사하다. 우선 공동체 제의와 당신화 그리고 탈놀이가 유기적으로 얽혀 있고, 여신이 탈놀이의 배역으로 현현하여 성적 결핍을 해소한다는 점도 같다. 또한 이동형의 연행 형태를 갖고 있다는 점도 마찬가지이다. 다음으로 벽사의 영수인 주지가 등장하여 독립적인 마당을 구성하고 있으며 양반 사대부와 소무형 인물이 삼각관계를 벌이고, 중과 소무형 인물의 관계를 제3의 인물이 등장해서 방해하는 내용도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또한 무동이 있다는 점도 한가지이다. 이처럼 유사한 부분이 많지만 차이도 적지 않다. 우선 주지마당과 중마당의 전개 양상이 다르다. 또한 청단놀음에는 하회 별신굿 탈놀이에 등장하는 백정이매할미ㆍ부네 등의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 대신 방위신과 계절신의 성격을 지닌 지연광대가 등장하며, 광대들의 북놀음이 주가 되는 광대판놀음이 따로 설정되어 있다.

넷째, 청단놀음은 독특한 형태의 주지판과 키탈을 갖고 있다. 지금까지 전승하고 있거나 조사 보고된 주지로는 경주와 함경북도 재가승 촌락, 그리고 하회 별신굿 탈놀이의 주지가 있다. 경주의 주지는 그 형상화의 내용을 알 수 없지만 함북의 재가승 촌락에서는 붉은 종이로 만든 탈을 쓰고 개가죽 저고리를 입는 것으로 주지를 형상화하였다. 한편 하회 별신굿 탈놀이에서는 반달형의 목재에 두 눈을 그리고 그 위쪽에 꿩털을 꽂은 뒤, 아래턱과 위턱을 분리하여 딱딱 소리가 나게 만든 탈을 들고 붉은 보자기를 덮어씀으로서 주지를 형상화하였다. 여기에 비해 청단놀음에서는 포대형의 옷을 입은 뒤 괴기스런 탈을 쓴 광대가 반달형의 나무판에 꿩털을 꽂고 그 하단에 솜뭉치를 주렁주렁 매단 주지판을 드는 것으로 주지를 형상화하였다. 이런 점으로 보아 청단놀음의 주지 형상화 방식은, 하회 별신굿 탈놀이와 유사하면서도 탈과 주지판의 존재로 인해 구별된다고 하겠다.

한편, 지연광대가 쓰고 있는 키탈은 매우 독특한 형태의 탈로서 그 가치를 인정할 수 있다. 우리 탈놀이에서 키탈을 쓰는 기존의 사례로는 통영 오광대의 사자가 있다. 통영의 사자는 키의 세로 면을 활용하여 이목구비와 갈기를 덧붙인 형태로서 겉으로 봐서는 그 재료가 키인지 확인할 수 없다. 이에 비해서 청단놀음의 지연광대탈은 키의 형태를 그대로 살려 제작함으로써 누가 봐도 그 재료가 키임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보면 키의 형태를 그대로 살린 탈로는 청단놀음의 지연광대탈이 유일한 것이라고 하겠다.

다섯째, 청단놀음의 춤사위는 전형적인 경상도의 덧배기춤이다. 주로 굿거리장단에 맞추어 추는 춤은 단순하고 소박하며 힘이 있다. 특히 두 명의 주지가 커다란 주지판을 움직이며 추는 대무는 역동적이면서도 감칠맛이 나는 굴신과 담박한 발동작이 돋보이며, 네 명의 지연광대가 키탈을 쓰거나 들고 추는 집단무는 활기찬 도약과 균형 잡힌 대형의 설정, 탈을 이용한 인상적인 표정 연출이 돋보인다.

참고문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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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의식의 분화와 탈춤구조(채희완, 한국미학회지6, 한국미학회, 1979), 예천청단놀음(강원희, 공연문화연구8, 한국공연문화학회, 2004), 예천청단놀음(한양명, 민속원, 2004), 예천청단놀음의 대립구조와 지역성(박진태, 구비문학연구18, 한국구비문학회, 2004), 한국 가면극의 유형과 전승원리연구(정형호, 중앙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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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한양명(韓陽明)
갱신일
2020.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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