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연의 외교탐구] 누가 한-감비아 외교장관 회담을 조롱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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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7.09.29. 오전 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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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문재연 기자] 지난 20~22일(현지시간) 한국은 북한에 대한 ‘완전 파괴’ 가능성을 시사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유엔 기조연설과 ‘그 이상의 초강경 대응’을 하겠다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성명, 그리고 리용호 북한 외무상의 트럼프 비난발언에 초긴장 상태였다. 

그런 와중에 외교부에서 24일 한-감비아 외교장관 회담 결과를 공개하자 일부 네티즌들은 분노를 표출했다. 일각에서는 북핵문제 당사국이 아닌 감비아 외교장관과 회담한다며 ‘코리아 패싱’ 논란까지 제기했다.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던 20~22일 사이 한미ㆍ한일ㆍ한중 외교장관 회담이 이뤄졌다는 사실은 잊은 채 말이다.

북핵 당사국과의 외교장관 회담 성사여부를 차치하더라도 한-감비아 외교장관 회담을 조롱하는 네티즌들의 행태는 우리들의 미성숙한 외교인식을 예증한다. 

[사진=외교부 제공]

북핵문제라는 엄중한 외교과제를 다뤄야 하는 입장에서 감비아는 일개 ‘아프리카권 국가’일까? 그렇지 않다. 감비아는 올 초 22년 간의 야히야 자메 정권을 선거로 물리치고 우여곡절 끝에 아프리카권 국가 중에서도 이례적으로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뤘다. 전임 대통령이 ‘감비아 이슬람 공화국’으로 선포한 나라를 아다마 배로우 감비아 대통령은 ‘감비아 민주공화국’으로 바꾸고 국제법 체제 하에서의 민주국가를 약속했다. 다시 말해, 강 장관과 우사이누 다르보 감비아 외교장관이 만난 자리는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룬 국가의 외교장관들이 만나는 자리였다.  

감비아는 지난 22년 독재정부기간 동안 북한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던 국가였다.  배로우 대통령은 정권교체를 이뤘을 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으로부터 축전을 받기도 했다. 그런 국가가 독재에서 벗어나 인권신장과 민주주의 국가가 되겠다고 강 장관과의 양자회담을 추진했다. 이날 회담은 북한과 같은 독재국가도 한국처럼 민주화와 국제질서에 동참하기 시작했다는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었다.

우리 정부의 지원에 대한 ‘기브-앤-테이크’(give and take) 의미로 감비아는 우리 대북정책에 대한 공감과 지지를 표명했다. 북한에 우호적이었던 국가가 한국의 대북정책을 지지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사진=외교부 제공]

외교는 거대한 퍼즐을 맞추는 것과도 같다. 1000개가 넘는 퍼즐조각을 다 맞추기 전까지는 어떤 그림이 나오는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그 어떤 퍼즐도, 단 한 조각의 퍼즐도 무의미하다고 할 수 없다. 국제평화를 논하는 국제사회에서 ‘무의미’한 국가가 존재할까.

일본이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외교정책인 ‘지구촌 외교’를 펼치고 중국이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 대대적인 대(對)아프리카 외교를 펼칠 때 우리는 한국 외교장관이 감비아 외교장관과 만났다고 조롱과 비하, 그리고 패러디 사진을 공유했다. 어느 언론사의 기자는 주한 감비아 대사관이 한 아파트에 있다며 조롱성 메세지를 페이스북에 올렸다. 이것이 과연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려는 국가의 성숙한 외교인식이라고 할 수 있을까.

가난하다는 이유로, 북핵문제를 다루는 주요국가가 아니라는 이유로 무시당할 수 있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강대국 사이에서 코리아패싱을 논하기 전에 우리는 상대적 약소국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돌아보자.

munja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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