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대선주자 안희정’의 몰락은 여권의 대선 경쟁구도를 흔들고 있다. 지난 대선부터 그와 경쟁해온 박원순과 이재명은 일단 지지율 상승의 계기를 맞았다. 이낙연과 김부겸, 김영춘, 임종석 등의 기회도 넓어졌다. 표면적으로는 일리 있는 분석이다. 그런데 여기엔 함정이 있다. 한국 정치의 역동성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안희정의 충격적인 정치무대 퇴장으로 여권 대선 구도가 완전히 딴판으로 짜일 가능성이 있다. 박원순을 가운데 두고 이재명과 안희정이 좌우에 서면서 안정적으로 형성된 ‘삼각 정립구도’가 붕괴했기 때문이다. 안희정과 대립관계에 있을 때 이재명의 선명성이 빛났고, 박원순의 균형감이 돋보였다. 안희정의 추락은 이런 장점을 살리기 어렵게 한다. 다음 대선은 4년이나 남았다. 장기적으로 보면 안희정의 급작스러운 대오 이탈이 박원순과 이재명에게도 타격일 수 있다는 얘기다.
안희정의 돌연한 파산은 상당수의 ‘정치 유민’을 양산했는데, 이들의 움직임도 예사롭지 않다. 그를 따르던 유수의 정치 전문가들이 졸지에 실업자 신세가 됐다. 그가 만든 싱크탱크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는 청산 절차를 밟고 있다. ‘마른하늘 날벼락’에 망연자실했던 ‘안희정의 사람들’도 하룻밤 기습 공격에 허망하게 무너진 나라의 백성들처럼 이리저리 흩어져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고 있다. 안희정 캠프의 ‘책사’들은 ‘제3의 주자’에게 눈길을 돌리고 있다. 이들이 요즘 유심히 관찰하고 있는 ‘기대주’가 있다. 민주당 경남지사 후보로 추대된 김경수 의원이다. 경남지사에 당선되면 여권의 차기 주자로 급부상할 것이란 판단에서다.
정치인에게 선거는 권투 선수에게 링이나 마찬가지다. 링에 오르지 않으면 결코 챔피언이 될 수 없다. 선거에 나서길 머뭇거리는 정치인이 대중의 사랑을 받기는 어렵다. 김경수는 경남 김해에서 어렵게 국회의원에 당선됐지만 간곡한 당내 요청을 뿌리치지 않았다. 국회의원 2년밖에 안 했지만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독배가 될지도 모를 출마를 선택했다. 그의 정치 주가는 더욱 치솟고 있다.
김경수의 출마엔 극적 요소가 다분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이자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참모였으니 그야말로 ‘친노·친문 그룹의 적통’이다. 진중한 언행에 묵묵히 주어진 역할을 다하며 당내에서 책임감과 헌신성을 인정받았다. 더구나 그와 맞설 자유한국당 후보가 ‘이명박의 남자’에다 ‘홍준표의 간택’을 받은 김태호다. ‘노무현-이명박, 문재인-홍준표의 대리전’이라고 의미를 부여하는 이들도 있다. 한때 유력한 차세대 주자였던 김태호는 돌파력이 만만치 않은 인물임이 틀림없다. ‘범문재인 지지층’의 관심이 뜨겁지 않을 수 없는 선거다.
김경수가 선거에서 이기고 대선주자로 발돋움해 안희정의 빈자리를 채울 수 있을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중요한 건 그가 용기 있게 도전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중은 여전히 잇속 계산하지 않고 희생을 감수하며 몸을 던지는 정치인에게 감동한다. 과거에 노무현과 문재인에게 그랬던 것처럼.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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