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변호사 "지하철에서, 이유식 만들면서 글 써요"

입력
수정2022.07.15. 오전 11:35
기사원문
서믿음 기자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정지우 작가·변호사
중학교 2학년 때 작가 되기로 결심
2012년 데뷔했지만 수입 들쑥날쑥
새로운 도전 로스쿨 공부·육아 병행
변호사 직업 글 쓰는데 많은 자극
아내·아들과 '지금의 추억' 가장 중요
'내가 잘못 산다고 말하는 세상에게' 신간 통해 현실을 견디는 태도 제시
정지우 작가. [사진제공=이지윤 사진작가]


"제가 아는 한 전업 작가는 거의 없어요."

‘내가 잘못 산다고 말하는 세상에게’(한겨레출판)를 펴낸 정지우 변호사(36·사진)의 말이다. 그는 어릴 적부터 작가를 꿈꿨다. 정확한 기억으로는 중학교 2학년 기말고사가 끝난 이튿날. "게임 ‘파랜드 택틱스2’ 스토리의 여운이 가시지 않아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2012년 작가 데뷔의 꿈을 이뤘지만 인세로 생활이 가능한 전업 작가는 꿈 같은 일이었다. 강연과 기고를 토대로 가정을 살폈지만 한계가 있었다.

아내, 아들과 함께 안정적으로 살 길을 찾는 과정, 그의 선택은 법조인이었다. 물론 쉬운 선택은 아니었고, 힘겨운 도전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는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입학에 성공했고, 지난해 변호사가 됐다. 그러한 경험을 토대로 열여섯 번째 책 ‘내가 잘못 산다고 말하는 세상에게’를 펴냈다. 정 변호사에게 책을 펴낸 소회와 작가로서의 생각을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여러 선택지가 있었을 텐데, 변호사를 택한 이유는.

▲작가로서 수입이 너무 들쑥날쑥하다 보니 삶이 너무 불안정했다. 여러 고민을 했다. 출판사 취직과 전문 강연자도 고려했다. 근데 썩 내키지가 않더라. 그때 로스쿨에 다니던 여동생이 로스쿨 입학을 권했다. 글 쓰는 일이 많다며 오빠에게 잘 맞을 것 같다고 추천했다. 모아 놓은 돈을 까먹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장학금 등으로 경제 부담이 줄어 잘 마칠 수 있었다.

-그래도 쉽지 않은 도전이었을 것 같은데.

▲결혼과 동시에 아이가 생겼다. 갓난아이를 안고 공부했다. 이유식 만들면서, 샤워시키면서 틈틈이 책을 봤다. 특별히 가정적이어서가 아니라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렇게라도 해야 했다(웃음).

-공부와 육아를 병행하면서도 좋은 성적을 거뒀다고 들었다.

▲로스쿨 1학년 때는 거의 꼴찌였다. 수험 공부도 10년 만에 다시 하는 거니까 그럴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인문학책 쓰는 건 비판적으로 책을 읽고 파생적인 생각을 담아내야 하는데, 법조문을 창조적으로 해석할 수는 없지 않나(웃음). 그래서 과목별로 책을 쓴다고 생각하고 정리했다. 모든 과목 노트를 만들었다. 근데 이걸 암기할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했다. 그래서 택한 방법이 녹음이었다. 녹음한 내용을 육아 중에, 이동 중에 틈틈이 들었다. 나중에는 몇 배속으로 해도 들리더라. 3학년 때는 상위권까지 올라갔다.

-변호사로 활동하는 작가다. 전업 작가일 때와 생활이 크게 달라졌을 것 같은데.

▲출퇴근 적응에 애를 먹었다. 그전에는 시간에 구속받지 않고 자유롭게 생활했으니까 그럴 수밖에. 주말도 새롭게 느껴졌다. 주말에서 주초로 넘어가는 시점은 마치 차원 이동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주말이 그렇게 소중할 수 없었다. 시간 제약이 생기다 보니 글쓰기도 달라졌다. 그전에는 모든 책을 기획부터 시작해서 몇 개월간 통으로 썼다. 하지만 변호사가 된 후로는 그렇게 쓴 게 한 종도 없다. 쉬는 시간에, 퇴근 후에, 지하철에서, 이유식 만들면서 쓴 글들을 모아서 책으로 냈다. ‘행복이 거기 있다. 한 점 의심도 없이’(2019) 이후 책은 다 그렇다.

-겸직의 장단점이 있을 것 같다.

▲스무 살부터 인문학 공부를 하고 글을 썼는데 어느 순간 답답했다. 같은 내용을 또 다루는 것 같고, 뭔가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고전이 기대는 시간’(2017)을 낸 이후에는 정말 더 이상 쓸 내용이 없었다. 탈출구가 필요했다. 근데 변호사가 되고 나서 몰랐던 측면을 많이 알게 됐다. 코인 관련 사기 사건, 엔터테인먼트 저작권 사건, 대체 불가능 토큰(NFT) 등 역동하는 사회 문제들을 습득하면서 안 보였던 세계가 보이기 시작했다. 글 쓰는 사람으로서 많은 자극을 받고 있다.

-그러고 보니 요즈음 직업을 갖고 자기 영역에 관해 펴낸 책이 많이 주목받는 것 같다.

▲이제는 글쓰기가 특권이 아니다, 예전에는 특정한 사람만 공개적인 글쓰기가 가능했지만, 이제는 모든 사람이 작가가 될 수 있다. 자신만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이 많다. 골방에서 책만 연구한 사람의 글이 오히려 재미 없을 수 있다.



-‘내가 잘못 산다고 말하는 세상에게’는 어떤 계기와 환경에서 세상에 나왔나.

▲글을 다양한 주제로 쓰는 편이다. 육아, 결혼 생활, 문학·문화비평, 청년 문제 등 그때마다 쓰고 싶은 주제를 쓴다. 근데 이걸 매일 1년 정도 쓰면 카테고리별로 글이 쌓인다. 그중에서 사회 비평적인 시각을 다룬 게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2020)인데 이번 책은 그 후속편이라고 볼 수 있다. 비판과 동시에 그런 상황 속에서 잘 살아갈 수 있는, 견뎌낼 수 있는 태도를 담으려 노력했다. 지금의 문제적인 사회를 건너는 데 필요한 태도를 담은 에세이집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했다.

-제목을 직접 지었다고 들었다.

▲어느 날 밤 문득 떠올랐다. 곱씹을수록 내용을 관통하는 느낌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항상 압박을 느꼈던 것 같다.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 그래서 첫 책을 낼 때도 필명으로 냈다. 주변에서도 내가 책 낸 걸 잘 몰랐고, 강연이나 인터뷰도 안 했다. 20대가 ‘분노사회’(2014) 같은 책을 썼다고 하면 비난받을 것 같았다. 익명에 숨어 30~40대 교수처럼 여겨지고 싶었다. 로스쿨 입학도 주변에 안 알렸다. 변호사 시험에 불합격이라도 하면 받게 될 타인들의 시선이 부담스럽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책에서 독설 문화에 관한 우려를 전했다.

▲자기계발 시장에서 ‘그렇게 살면 안 된다’며 선택과 의지를 강조하는 독설이 유행하고 있다. ‘결혼하지 마세요’ ‘애 낳지 마세요’ ‘그 직업은 망했습니다’처럼 단정적으로 말하는 유튜브 콘텐츠도 허다하다. 그런 명쾌함이 매혹적일 수 있으나 인생에는 손쉬운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최악이 다른 누군가에게 최선일 수 있다. ‘이렇게만 하면 인생이 바뀔 수 있다’는 유혹이 우리 사회와 삶을 망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독설이 하나의 신앙이 된 것 같다.

-인간관계에서 ‘예민함의 궁합’을 중시한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취향에 관한 용납도가 상당히 높아졌다. 좋아하는 걸 인정해주는 거다. 반대로 불편한 것에 관해서는 냉엄해졌다. 악으로 규정할 정도다. 누군가는 회식하자는 상사를 꼰대이자 악으로 취급한다. 반대로 상사는 회식을 회피하는 사람을 공동체 의식이 없는 악으로 규정한다. 나를 불편하게 하면 악마인 거다. 섣불리 상대를 악으로 규정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다. 타인이 완전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관계가 유지될 수 없다. 예민함의 궁합이 중요한 이유다.

-책에서 아이를 통해 ‘지금’의 중요성에 주목했다. 지금의 삶에 만족하는지.

▲고정 수입이 있는 직장인이 됐다는 건 확실히 의미가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지금’은 결혼과 아이의 탄생 후로 지속되고 있다. 사실 과거에 내가 원하는 걸 몰랐다. 원하는 게 자유인지, 인지도인지, 돈인지, 걸작 집필인지. 하지만 아이가 생기고 나서부터 기준이 분명해졌다. 가정을 잘 유지하는 것. 다른 건 부차적이다. 그 무엇보다 세 가족이 쌓는 ‘지금의 추억’이 중요하다.

-앞으로는 변호사 생활의 경험이 담긴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건가.

▲그럴 것 같다. 변호사를 하면서 경험하는 일들을 책으로 쓰고 싶다. 또 하나는 글쓰기를 갈망하는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역할을 하고 싶다. 이제는 제가 책을 내는 데 욕심이 별로 없다. 오히려 누군가 책을 내는 걸 돕고 싶다. 최근에 제게 글쓰기 수업을 들었던 사람들의 르포 인터뷰집을 총괄 검수해서 출간했다. 작가 발굴이 의미 있게 느껴진다.

기자 프로필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생활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