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국가 스페인 “안락사 합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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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1.05. 오전 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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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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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시행앞두고 찬반논란 가열

18일(현지 시각) 마드리드의 스페인 의회 앞에서 안락사에 찬성하는 사람들이 안락사 허용 법안 통과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엄격한 가톨릭 국가인 스페인에서 안락사를 합법화해 논란이 일고 있다. 종교계와 의료계 일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좌파 정부가 관철시켰다.

18일(현지 시각) 스페인 하원은 좌파 연정(聯政)이 발의한 안락사 허용 법안을 찬성 202표, 반대 141표로 가결했다. 이에 따라 3개월 후인 오는 6월부터 안락사가 시행된다. 카롤리나 다리아스 보건부 장관은 “보다 인간적인 사회를 향해 나아간 날”이라고 했다.

이날 하원을 통과한 법안은 안락사와 조력자살을 둘 다 허용하고 있어 전향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보통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중단하는 존엄사는 허용하는 국가가 많아 요즘은 큰 논란이 벌어지지 않는다. 찬반 논쟁이 벌어지는 건 의료진이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독극물 주입 등의 방법으로 사망하게 하는 안락사나 불치병 환자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있도록 의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하는 조력자살이다. 스페인은 안락사와 조력자살을 모두 허용키로 했는데, 기존에 두 가지가 모두 허용된 나라는 네덜란드·벨기에·룩셈부르크·캐나다·뉴질랜드 등 5국뿐이다. 미국은 일부 주(州)에서 허용한다.

이 때문에 스페인이 가톨릭 국가로서는 안락사를 급진적으로 받아들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종교 성향이 비슷한 프랑스·이탈리아·포르투갈 등 이웃 나라들에선 안락사가 금지돼 있다. 스페인에서도 지금까지 누군가의 목숨을 끊는 일을 도울 경우 최대 징역 10년형에 처해졌다.

물론 스페인은 안락사와 조력자살의 요건을 엄격하게 제한했다. 다수의 의료·법률 전문가가 참여하는 지역위원회를 열어 특정 환자에 대한 안락사를 결정하기까지 최장 3개월의 절차를 밟아야 한다. 그러나 우파 야권과 가톨릭 교회는 물론이고 의료계 일각에서는 여전히 반대하고 있다. 극우 정당 복스는 헌법소원을 제기해 저지하겠다고 밝혔다.

스페인에서는 25세에 다이빙을 하다가 목뼈가 부러져 사지가 마비된 라몬 삼페드로(1943~1998)라는 선원이 숨질 때까지 30년간 안락사를 시켜달라고 요구했던 사건이 널리 알려져 있다. 결국 삼페드로는 지인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삶은 2004년 아카데미상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을 받은 영화 ‘씨 인사이드(The Sea Inside)’로 만들어졌다.

25세에 온몸이 마비된 후 안락사를 시켜달라며 30년 동안 투쟁하다 숨졌던 스페인 선원 라몬 삼페드로. 그의 삶을 영화화한 '씨 인사이드'는 2004년 아카데미상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을 받았다.


기자 프로필

경제부 정책팀장, 파리특파원, 위클리비즈 편집장 거쳤음. '부자 미국 가난한 유럽(공저)'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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