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샛별_녹색에코
이샛별 작가! 회화 작가 이샛별은 한국 현대미술에서 특별한 존재이다. 작가는 대형 화면에 꽉 채운 강렬한 이미지들로 ‘지독한 그리기’를 몸소 실천해 왔다. 화면 밖의 관객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텅 빈 눈빛의 괴수들과, 튀어나온 내장 등의 장면들은 호러 영화나 판타지의 미장센을 연상시키며, 미술인은 물론 미술 애호가들에게도 어필해왔다.
이번 <녹색에코> 전시는 작가가 가지고 있던 스타일과 연결되지만 사뭇 달라진 테마로 호기심을 자아낸다. 일단 색감이 모두 그린, 그린이다. 캔버스를 가득 메운 숲과 정글에 사람들이 있거나, 사람의 얼굴에 이목구비 대신 넝쿨진 풀들이 가득하다.
작가의 설명에 의하면, 기존 작품을 구성하는 얼개는 ‘세 명의 캐릭터가 보여주는 사건을 재구성한 화면’이었다. 작가는 인터넷에서 떠도는 이미지들을 단어(키워드)로 치환하여 수집한 후, 작가의 화면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을 진행해왔다. 이 작업은 인물과 사건을 화면에서 재구성하면서 현실을 재구성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제주도와 호주에서 접했던 압도적인 자연의 이미지를 차용하여 형식미를 보충하게 되었다.
흔히 도시에서 ‘자연’이라고 하면 생명의 근원이나 일상의 휴식 등의 이미지를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이런 ‘쾌적한’ 자연은 문명 속에서 정돈된 또 다른 인공에 불과할 뿐, 실재의 자연은 냉혹한 약육강식의 세계라는 것이 작가의 착안점이었다.
작가가 호주에서 접한 원시림 같은 자연의 숭고미와, 4년 동안 제주 강정마을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겨울에 접한 제주도의 황량한 풍경은 이런 생각을 이미지로 뒷받침해주었다. 작가가 학살의 현장에서 바라본 제주의 모습은 ‘푸른 제주’라기보다는 검은 숲이 생명을 땅속으로 삼킬 것 같은 환경이었다.
<녹색 에코>는 인공화원이 배경으로 펼쳐지면서, 이 자연이 역습을 해왔을 때 펼쳐지는 결과에 대한 작가의 상상이 가미되어 있다. 대형 화면을 채우는 원시림들의 무질서한 풍경은 녹색의 두려움을 내포하고 있으며, 예전 작품들에서 역할극을 담당했던 세 명의 캐릭터들은 문맥에 걸맞게 작은 존재로 축소되었다.
얼굴에 사람의 표정 대신 넝쿨진 자연이 채우고 있는 <스키너> 시리즈는 친화적이었던 녹색이 다시 우리에게 되돌아왔을 때의 상황을 가정한 ‘녹색 에코’를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스키너’는 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의 리플리컨트 캐릭터에서 차용하였으며, 미래형 인간의 가정을 담보로 하고 있다. 얼굴 안에 그려진 자연은 추상화되어 표현되어 있는데, 넝쿨 등이 인간의 내장과 같은 형태로 표현되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 전시는 작가의 달라진 신작들을 보는 재미와 함께, 2층에 전시된 드로잉 시리즈로 풍성함을 더한다. 작가가 일상 속에서 접한 이미지와 상황이 마치 드로잉 소설처럼 연재되는데, 제목과 더불어 음미하면 재미있는 작품들이 많다.
예를 들어 <미신과 아티스트>의 경우에는 작가가 최근 레지던시 활동을 하면서 겪었던 젊은 작가들에 대한 단상이 들어 있는 작품이다. 작가는 최근 젊은 작가들이 점을 엄청나게 보러 다니고 맹신하는 일부 현상을 바라보며, 미래를 살아가야 하는 작가들이 과거의 통계에 집착하는 현상을 특유의 서늘한 유머감각으로 풀어냈다. 이런 드로잉 작품들은 <녹색 에코>의 정서를 보충하는 역할을 하며, 작가의 세계관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단초들을 제공한다.
*전시는 11월 12일까지 종로구 화동 아트비트 갤러리(art bit gallery)에서 진행될 예정입니다. 작가에 대해 더 자세한 내용은 작가의 홈페이지 참조 : www.lisetbyul.com
글Ⅰ조숙현(전시기획자) · 사진 Ⅰ아트비트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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