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질 게 터졌다"…고질적 저가입찰이 독감접종 중단 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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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0.09.28. 오후 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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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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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가 후려치기·리베이트로 얼룩진
국가백신 시장의 민낯

원가도 안되는 국가백신 입찰가
제조·유통사 적자 떠안는 구조
이 과정서 리베이트 고착화

10년 유통독점社 검찰조사로 제외
새로 맡은 신성약품이 결국 사고내
국내 독감 무료 예방접종(국가 예방접종)이 22일 유통 과정상의 이유로 전면 중단됐다. 이날 경기 수원시 장안구 한국건강관리협회 경기지부에서 시민들이 일반 예방접종을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다. 뉴스1

정부가 22일 시작하려던 12~18세 어린이·청소년과 임신부 독감 백신 무료 접종을 잠정 중단했다. 사상 초유의 독감 국가백신 중단 사태를 두고 제약업계에서는 ‘예견된 인재’라고 했다. 국가백신 낙찰가격이 지나치게 낮아 백신 제조사는 물론 유통사도 적자를 감수해야 하는 데다 고질적 리베이트 문제까지 겹치면서 시장질서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독감 백신 유통을 담당하는 신성약품은 10년간 독점하던 업체가 검찰의 리베이트 조사로 조달시장에서 제외되면서 올해 처음 유통을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제조원가에도 못 미치는 백신 입찰가
질병관리청은 올해 1844만 명에게 독감 백신을 무료로 접종해줄 계획이다. 신성약품은 이 중 1259만 명분의 유통권을 1100억원에 낙찰받았다. 보건당국은 이 업체의 1차 배포 물량인 500만 명분 중 일부가 상온에 노출됐을 것으로 보고 조사 중이다.

A형 인플루엔자 2종과 B형 인플루엔자 2종 등 4개 유형의 독감 바이러스를 한꺼번에 예방할 수 있는 4가 백신의 도스당 낙찰가격은 8620원(임신부 등은 9090원)이다. 지난해 3가 백신(A형 2종+B형 1종) 7605원보다는 높지만 여전히 원가에 못 미친다는 게 백신제조업체들의 주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4가 백신 원가는 1만원 이상이지만 낙찰가격은 이보다 낮게 결정됐다”며 “정부 백신 조달시장은 마케팅 효과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시장이 된 지 오래”라고 했다.

국가백신 입찰은 백신 유통회사가 정부 입찰 계약을 따낸 뒤 백신을 만드는 제약사와 협의해 계약 물량을 맞추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 과정에서 유통회사가 백신을 만드는 제약사를 모으지 못하면 계약이 유찰된다. 정부는 계약이 한 차례 유찰되면 입찰가를 높여주며 유통사와 제약사의 참여를 유도한다.

올해는 네 차례 유찰 끝에 독감 백신 유통사가 신성약품으로 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진문 신성약품 대표는 “백신 유통 사고는 전적으로 우리의 불찰”이라면서도 “배송 일정이 빠듯했던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질병관리청이 올해 독감 백신 유통 입찰을 시작한 것은 6월 30일이다. 백신 단가 문제 등으로 수차례 유찰된 끝에 최종 계약은 8월 말께 이뤄졌다. 영유아 백신 접종 일정 때문에 9월 8일부터 배송해야 해 준비기간이 빠듯했다는 게 신성약품의 해명이다.
리베이트로 얼룩진 국가백신 시장
조달시장의 매력이 떨어지다보니 낙찰받은 유통업체가 제약사 등에 리베이트를 챙겨주는 구조가 고착화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지난해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반부패수사1부(부장검사 구상엽)는 광동제약, 한국백신, 보령제약 등 제약사와 우인메디텍, 팜월드 등 의약품 유통업체 10곳을 입찰 방해 혐의로 압수수색했다. 일부 유통사들이 국가 필수접종인 결핵(BCG) 백신 등 입찰 과정에서 제약사 임원 등에게 뒷돈을 줬다는 혐의다.

백신 입찰은 정부가 먼저 기준가를 제시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정부가 백신 가격을 과도하게 후려쳐 시장 질서를 망가뜨리고 왜곡된 시장 구조가 백신의 질까지 떨어뜨렸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신성약품이 배송을 맡긴 곳은 2~8도로 냉장 유통할 수 있는 백신 전문 물류업체로 알려졌다. 이 업체는 냉장차량을 이용해 전국에 백신을 공급했다. 그 과정에서 차량 문을 열어둬 일부 물량이 상온에 노출됐고, 이것이 사진으로 찍혀 질병관리청에 신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업체 측은 광주 지역에서 사진이 찍힌 것으로 추정했다. 업계에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닐 것으로 추정했다.
“2주간 조사해 결론 내릴 것”
아직 500만 명분의 백신 중 어느 정도가 상온에 노출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질병관리청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주 안에 폐기 물량 등을 파악해 발표할 계획이다. 해외 연구 등에 따르면 냉장 보관해야 하는 백신이 상온에 노출되면 단백질이 망가져 효과가 떨어질 수 있다. 부작용 위험은 높지 않지만 ‘물백신’이 되는 셈이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문제 된 백신은 아직 접종이 이뤄지지 않았고 다른 유통 경로로 접종된 11만8000명분은 문제가 없다”며 “오는 10월부터 시작하는 62세 이상 접종 일정은 예정대로 진행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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