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문빠’로 보낸 2017년은 행복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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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지지율 70%의 원동력은 문재인 팬덤… “우리는 배후나 지령이 없는 집단”

올 12월 20일은 원래 19대 대통령 선거일이다. 1년 전 이맘때만 해도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대선일이 앞당겨질 것이라고 확신하지 못했다. 하지만 어느덧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일은 200일을 넘겼고, 문 정부의 지지율은 7개월이 지나도록 70%를 유지하고 있다.

70%의 문 대통령 지지층 중에서도 온라인 공간에서 유독 활발한 활동을 보이는 이들이 있다. 달빛기사단, 문꿀오소리 등으로 불리는 이들 핵심 지지층은 젠틀재인, 문팬, 문사모, 노란우체통 등 다양한 문재인 팬카페를 거점으로 활동한다. 온라인 공간뿐만 아니라 오프라인 현장에서도 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2012년 6월, 당시 대선후보였던 문 대통령이 서울 서대문구 독립공원에서 출마선언을 했을 때도, 국회의원 시절인 2014년 8월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가족들과 함께 단식에 나섰을 때도 문재인 팬클럽 회원들이 곁을 지켰다. 팬카페 회원들은 언론에서 다 담지 않는 문 대통령 관련 사진과 영상까지 놓치지 않는 등 문자 그대로 팬클럽처럼 활동했다.

문재인 지지층의 핵심에 속하는 이들은 스스로를 ‘문재인의 팬’이라 부른다. 연예인 팬덤이 대상의 모든 것을 좋아하듯 문 대통령의 정책뿐만 아니라 인간 그 자체로도 좋아한다는 뜻이다.

5월 9일 문재인 대통령 당선인이 서울 광화문 특설무대에 오르자 지지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대통령이 바뀌자 평화로워진 삶

문재인 팬덤에 속하는 이들도 올해 연말을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한 상태에서 맞을 줄은 몰랐다고 말한다. 문팬 회원인 백동기씨는 2012년 대선 이후 1년여를 청와대 인근에서 촛불집회를 했다. 그는 “국정원 댓글사건이 (2012년) 대선 결과에 영향을 크게 줬다고 생각하고 결과를 수긍할 수 없으니까 꾸준히 촛불을 들었다. 민주노총, 반값등록금 활동하는 대학생과도 들었다. 하지만 촛불을 들면서도 우리와 무관하게 세상은 그냥 잘 돌아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백씨는 “2015년 말 백남기 농민사건 때만 해도, 지난해 처음 촛불을 들었을 때만 해도 정권이 이렇게 바뀔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올해 3월 박근혜가 탄핵된 이후에는 국민들이 정치인보다 똑똑하구나, 나라를 구성하는 개개인이 정치에 관심을 갖는다면 정치가 발전하고 우리의 삶도 나아지는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문재인 팬덤은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 5월 9일을 끝으로 삶이 평화로워졌다고 말했다. 문사모 회원인 플리(닉네임)씨는 “대통령이 바뀌고 나서 확실히 삶이 평화로워졌다. 지금도 팬클럽 활동도 하고 댓글활동도 하지만 전처럼 열심히 하지는 않는다”며 “MB 때는 BBK 관련 피켓시위를 하다가 전경차를 타기도 했고, 박 전 대통령 때는 너무 속 터지는 일이 많아서 TV보는 것조차 싫었던 것과 비교하면 세상이 너무 달라졌다”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문재인 팬덤을 비난하는 표현도 여전히 존재한다. 문각기동대, 달빛기사단뿐만 아니라 문빠, 달레반 등 좀 더 자극적인 표현들도 등장한다. 문재인 팬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진영을 넘나든다. 지난 11월 28일 안희정 충남지사는 한 강연회에서 문재인 팬덤을 겨냥해 “이견의 논쟁을 거부해선 안된다”며 “‘대통령이 하겠다는데 왜 네가 문제제기야’라고 하면 우리의 공론의 장이 무너진다”고 말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아예 문재인 팬덤을 국정원 댓글부대에 비유했다. 지난 10월 그는 자유한국당 내 강연회에서 국정원 댓글 대선개입 사건을 언급하며 “지난 대선 때부터 달빛기사단이란 사람들이 당내 경선에서 얼마나 문자폭탄을 날리고 댓글을 썼는가. 그건 왜 조사하지 않나”라고도 말했다.

이런 규정에 대해 문재인 팬덤은 어떻게 생각할까. 문재인 팬덤은 자신을 ‘맹목적 지지자’라고 부른다. 문 대통령에 대한 비판적인 지지를 하지 않겠다는 뜻이자 사회·정치적 문제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겠다는 뜻이 같이 담겨 있다는 게 문재인 지지자들의 설명이다.

젠틀재인 운영자 ㄱ씨는 과거 노사모 회원이었다. 그는 자신이 ‘유령회원’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ㄱ씨는 “노사모에 가입은 되어 있었지만 노 전 대통령이 대선에서 당선된 이후에는 마음으로만 지지를 했다. 2기 민주정부가 들어선 만큼 우리가 할 일은 다했다는 자만심도 조금 있었다”며 “문 대통령에 대해서는 이런 과거를 반복하지 않고, 문 대통령을 전적으로 신뢰한다는 차원에서 ‘맹목적으로 지지하겠다’는 표현을 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무조건 지지’와는 다른 ‘맹목적 지지’

물론 문재인 팬덤이라고 해서 모든 사안에 같은 입장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박성진 포항공대 교수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에 올랐을 때,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를 둘러싼 공론화위원회가 열렸을 때 문재인 팬덤 내에서는 의견이 갈렸다. 이런 경우 ‘맹목적 지지자’는 어떻게 활동할까.

ㄱ씨는 “문 대통령 팬들은 말로만 지지한다고 하지 않는다. 문재인이란 사람에 대해서 좀 더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배우고 노력하는 이들”이라고 말한다. 그는 “문 대통령은 국회의원 시절부터 탈원전에 대해 꾸준히 고민하고 활동해 왔다. 마치 문 대통령이 대선 때 갑자기 탈원전 공약을 내건 것처럼 오해하는 이들이 많았는데, 우리는 그동안 문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라다니며 모은 자료를 바탕으로 그가 탈원전에 대해 꾸준히 생각해온 사람이라는 점을 알리는 활동에 주력했다”고 말했다.

ㄱ씨는 ‘맹목적 지지’가 꼭 ‘무조건 지지’와 같은 것은 아니라고도 설명했다. 그는 “대통령이 하는 일에 대해 마치 북한처럼 무조건 만장일치로 찬성하자는 게 아니다. 대통령의 결정이 지지자들의 기대와 다른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우선 비판부터 하기보다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지켜보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문빠’나 ‘달레반’이라는 표현을 굳이 부정하지 않겠다는 의견도 있다. 노란우체통 카페지기 박달사순(닉네임)씨는 “처음엔 문빠나 달레반이란 말을 듣고 화가 났지만 지금은 아니다. 남들이 우리를 문빠라고 부르면 우리는 문빠답게 보답해주겠다고 웃으며 응대한다”고 말했다.

박달사순씨는 노란우체통 회원들과 함께 팟캐스트 닥표간장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5월 대선이 끝난 이후에는 잠시 휴식을 가졌지만 새 정부의 내각 인사가 차질을 빚으면서 금세 다시 시작했다. 그는 “지지자들이 문재인을 종교라고 생각하고 지지하는 게 아니다. 정치와 나의 삶, 자녀들의 삶이 연결되어 있고, 문재인 정권이 성공해야 우리의 현재와 미래가 나아질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활동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2014년 8월 28일, 팬카페 젠틀재인에서 찍은 문재인 당시 의원의 세월호 동조단식 현장. / 젠틀재인


사실 누가 ‘문빠’인지에 대해서도 문재인 팬덤 내에서조차 생각은 다 다르다. 어떤 이들은 ‘나는 꼼수다’에서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가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말한 것을 듣고 문 대통령의 팬이 됐다. 또 어떤 이는 김 총수 등은 “문빠라 볼 수 없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문재인 지지자들은 자신들은 국정원 댓글부대와 달리 배후세력이나 지령이 없는 집단이라고 규정한다.

박달사순씨는 “문재인 팬클럽 사람들이 활동하는 것과 연예인 팬클럽이 활동하는 게 크게 다른 게 아니다. 누가 호루라기를 불어서 군자금을 조달하고 지령을 내리고 이런 집단이 아니다”라며 “우리는 스스로를 ‘진보’라는 프레임으로 가두고 싶은 생각도 없고, JTBC 손석희 사장 등 진보 쪽에서 성역화된 이들에 대해서도 하고 싶은 대로 할 말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문사모 회원 플리씨는 문재인 지지현상은 하나의 흐름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여러 문재인 팬카페에 가입한 분들 숫자는 몇만 명 정도밖에 안 된다. 하지만 여러 여초, 남초 커뮤니티를 보면 문 대통령을 지지하는 유저들이 많다. 문재인 지지는 하나의 트렌드이자 흐름이고 나는 그 중 한 명일 뿐”이라며 “문빠나 달레반이란 용어를 소비하는 사람들을 보면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주도세력을 색출하려고 했던 움직임이랑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반대세력과는 총성 없는 전쟁

문재인 대통령 당선 이후 지지자들은 문 대통령의 행보에 방해가 된다고 여겨지는 세력들과 총성 없는 전쟁을 몇 달간 이어왔다. 문재인 팬덤과 가장 많이 대립한 집단은 역설적이게도 진보언론의 대표격인 한·경·오(한겨레, 경향신문, 오마이뉴스)다.

젠틀재인 운영자 ㄱ씨는 “현재 저를 비롯한 많은 문재인 팬들은 뉴비씨처럼 대놓고 ‘어용방송’을 하겠다는 인터넷 언론을 많이 본다. 하지만 우리 지지자들이 너무 답답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고, 기존 진보언론에 ‘어용언론’이 되라고 요구하지도 않는다”며 “사실 대통령을 무조건 지지하는 기사만 쓰는 기자는 제대로 된 기자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다. 팬들이 바라는 것은 진보언론이 공정하고 정확한 언론이 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팬덤은 진보언론이 문 대통령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던 사람들의 마음을 잘 읽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백동기씨는 김정숙 여사에게 ‘여사’ 호칭을 부여할지 말지로 왈가왈부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 언론이 조금 더 존중을 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다 있는데, 그런 마음을 읽기보다 ‘원칙’만 내세우는 모습에 실망했다”고 말했다. 젠틀재인 운영자 ㄱ씨는 “문재인 팬클럽에 가입된 사람은 수만 명이지만, 70% 지지층 내에서는 가장 활동력이 강한 분들이다. 진보언론이 기계적인 중립을 추구하기보다 기자정신에 맞는 충실한 기사들을 써준다면 한·경·오에 대해 호의적인 여론이 생기는 것도 한순간이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문재인 팬덤의 많은 이들은 오늘도 기사의 댓글란에서, 여러 단체 대화방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다. 플리씨는 사회 참여도 중요하지만 “평화로운 나날을 좀 더 즐겼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문 대통령에 비협조적인 언론에 대해 댓글로 목소리를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스스로 염증을 느낄 정도로는 하지 않으셨으면 한다. 주변에도 지지활동을 너무 열심히 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분들도 있다”며 “지금 같은 때 힘을 비축해야 대통령이 지지자들을 필요로 할 때 열심히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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