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잔인한 장면은 없으나, 이 글에서는 몇 가지 사고에 대해서 다루니 이런 것을 거북해하시는 분들께서는 뒤로 가기를 눌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III 혼돈의 바레인 GP
저번 주 일요일에는 바레인 GP가 개최되었죠. 레이스 초반에 엄청난 사고가 터지며 난장판이 되었던 경기입니다. 특히 로맹 그로장의 사고는 엄청난 이슈에 휩싸였죠.
레이스는 해밀턴을 선두로 시작합니다. 첫 번째 바퀴인 만큼 트랙 아웃도 많았고 여러 파츠가 흩날리기도 합니다. 다닐 크비얏이 초반에 조금 뒤처지는데.. 크비얏을 보지 못한 그로장이 오른쪽으로 이동하다 크비얏의 왼쪽 앞바퀴와 컨택을 일으키며 그대로 스핀하여 방벽에 충돌합니다! 정말 운 없게도 잘못된 각도로 충돌하여 충돌하자마자 차량이 반으로 갈리고 연료 탱크가 손상되며 불이 폭발하듯이 순식간에 크게 일어납니다. 첫 랩이라 기름이 꽉 채워져 있었기 때문에 화재가 매우 크게 발생했죠.
이때 그로장은 약 220 km/h로 가드레일에 거의 정면으로 충돌하였습니다. 이때 찍힌 순간 중력가속도는 53G, 즉 지구 중력의 53배에 달했다고 하네요.
바로 레드 플래그가 발령되었고 그로장은 27초를 불속에 있다가 마침내 자력으로 탈출하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레이스는 약 1시간 동안 중단되었고 그로장은 화상 외의 큰 부상 없이 병원으로 옮겨집니다.
레이스가 중단된 약 1시간의 시간 동안 그로장이 충돌한 방벽을 절개하고 새로운 방벽을 설치한 후, 레이스는 재개됩니다.
그런데 레이스가 재개된 지 한 바퀴도 지나지 않아 랜스 스트롤이 또 크비얏과 충돌하며 차량이 전복되는 사고를 겪습니다. 이로 인해 세이프티 카가 등장하게 됩니다.
이 사고가 크비얏에게 잘못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팬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리는 편이지만 일단 크비얏은 레이스 중에 10초 페널티를 받고, 피트 스톱 중에 이를 수행합니다.
크비얏은 비록 그로장과의 사고에서는 잘못이 아예 없었고, 스트롤과의 사고에서도 아주 큰 잘못은 없었다지만 단 3랩 만에 큰 사고 2개에 직접적으로 연루되었기 때문에 심적 부담이 크지 않을까 염려하는 시선도 적지 않게 받았습니다.
레이스 후에 그로장은 병원에서 손 화상 때문에 손에 붕대를 감싼 채로 괜찮다는 영상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렸습니다. 병원에서 스쿼트도 하는 등 건강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고, 곧 병원에서도 퇴원할 예정입니다. 비록 올해 경기가 2개밖에 더 남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시즌 내에 복귀가 가능할지는 확실치 않지만 짧은 시간 내에 차량에서 스스로 탈출한 것만으로도 매우 다행입니다.
III 모터스포츠의 위험성과 안전성을 동시에 증명한 사고
이번 사고는 모터스포츠가 얼마나 위험한지, 그리고 또 그만큼 얼마나 안전에 신경을 쓰고 있는지를 동시에 증명한 사고입니다. 안전 기술이 충분히 발달한 지금 시대에도 잘못 박으면 저런 식으로 불이 날 수도 있고, 그리고 그런 끔찍한 사고 속에서도 심각한 부상 없이 드라이버가 자력으로 걸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죠.
III 기적적으로 살아 나온 그로장, 무엇이 살렸는가?
이번 사고에서 그로장이 살아 나온 것은 굉장한 기적입니다. 탈출 각도도 거의 안 나왔고 차량이 가드레일을 뚫고 들어갔음에도 콕핏 내부는 안전하게 보호받은 것은 매우 운이 좋은, 불행 중 다행이지요. 이번 사고는 발달한 차량 안전 구조가 그로장을 살린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엄청난 충격에도 한치의 손상 없이 버텨 준 서바이벌 셀, 그로장의 머리를 보호해 준 헤일로, 그리고 그로장이 빠져나오지 못한 27초 동안 불로부터 그로장을 보호해 준 방염복은 그동안 모두가 노력하며 발전시켜온 안전 기술 발전을 증명하기도 하기 때문에 정말이지 찬사를 받아 마땅하죠.
또 차체가 반으로 갈라진 것이 케블러 재질로 정말 손상되기 어렵게 만들어진 연료 탱크를 손상시키는 데에 일조했지만 오히려 긍정적으로 작용한 점도 있는데 바로 차체가 둘로 갈라지며 충격이 분산됐다는 것입니다. 몇몇 슈퍼카에도 일부러 강한 충격을 받으면 차체가 갈라지도록 만들어진 구조의 차체가 적용되지요.
또한 FOM의 빠른 대처 또한 좋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사고가 일어나자마자 옐로 플래그 없이 바로 레드 플래그를 선택하는 결단력에 찬사를 보내는 팬이 많지요. 특히 그로장이 탈출하자마자 부축을 받고 바로 후행하던 메디컬 카에 탑승하여 이송되었기 때문에, F1 경기가 시작하면 전속력으로 추격하는 메디컬 카의 호위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는 팬도 많습니다. 필자인 저에게도 이번에 메디컬 카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상기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습니다. 이번 사고는 이러한 메디컬 카 후행의 경우처럼 잘 보이지 않는 부분일지라도 중요하다는 것 또한 일깨워 줍니다.
III 무엇이 문제였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이 문제였는지 알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너무나도 운이 없던 사고이긴 하지만, 저는 후술할 문제가 없었다면 사고의 규모가 이렇게까지 커지지는 않았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상술했듯이 차량엔 문제가 전혀 없었습니다. 오히려 드라이버를 너무나도 잘 보호해 줬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사고가 이렇게 커진 직접적인 원인이었을까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방벽입니다. 레이싱 서킷의 방벽의 종류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중에서는 벽을 최소 이중으로 설계해 놓는 텍프로 배리어와 SAFER 배리어가 최고봉이죠. 다만 이 두 방식은 설치비와 수리비가 매우 많이 들며 유용한 유형과 취약한 유형의 코너가 있기 때문에 오히려 독으로 작용할 수도 있어 타이어를 겹겹이 쌓아 놓는 배리어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번 사고에서 그로장이 충돌했던 배리어는 암코 배리어였습니다. 심지어 유난히 서킷 쪽으로 튀어나와 있던 부분이었죠. F1에서는 흔히 암코 배리어로 통용되는 이 배리어는 사실 별거 없고 그냥 우리가 흔히 아는 그 가드레일입니다. 암코 배리어는 모터스포츠에서 쓰기에는 문제점이 굉장히 많아서 주변에 타이어나 텍프로 등의 배리어를 추가로 둘러주는 게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충돌 지점의 배리어는 아무것도 두르지 않은 순수한 암코 배리어였습니다. 암코 배리어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 하면...
III 문제는 이전부터 지적되어 왔다
위의 사진처럼 차가 배리어 사이를 뚫고 들어간다는 겁니다. 위의 사진이 굉장히 옛날 사진인 것에서 유추하셨을 수도 있는데 이러한 암코 배리어의 문제점은 이번에 새롭게 발견된 문제점이 아닌, 한참 전부터 심각하게 제기되던 문제입니다. 그 역사는 무려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70년, 드디어 매우 원시적이었던 건초 더미를 규정상으로 금지시키며 다른 배리어를 도입할 수 있게 된 F1은 최소한 충격 흡수도 제대로 안 되고 불에 쉽게 타는 건초 더미보다는 훨씬 안전한 암코 배리어, 즉 가드레일을 많이 도입하게 됩니다.
근데 이 가드레일도 문제가 굉장히 많았습니다. 일단 여전히 충격 흡수를 제대로 못 해준다는 것도 있었지만 제일 큰 문제는 세게 충돌하면 가드레일이 갈라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드라이버 지키겠답시고 만든 물건이 오히려 드라이버를 죽일 수도 있게 된 것이죠.
실제 사례는 없었느냐? 아주 많습니다. 위 사진의 존 러브의 경우도 있고, 1973년 왓킨스 글렌에서 치러진 미국 GP에서 3회 챔피언 재키 스튜어트의 수제자로 유명한 프랑수아 세베르가 예선 도중 연석을 잘못 밟아 차가 스핀하고 그대로 전복돼서 가드레일에 운전석 쪽으로 충돌하며 가드레일을 다 찢어 놓고 상반신에 엄청난 충격이 가해져 즉사한 사고도 있었고, 이듬해인 1974년 미국 GP에서는 아예 차량이 가드레일 아래를 비집고 들어가 드라이버의 목이 잘려 즉사한 헬무트 쾨닉의 사례도 있습니다. 최근의 사례를 보자면 로버트 쿠비차가 랠리 도중에 가드레일이 차량을 뚫고 들어오는 바람에 오른팔을 잃을 뻔했죠. 아시듯이 지금도 쿠비차는 오른팔을 제대로 쓰지 못합니다.
이번에도 똑같습니다. 그로장의 차량은 가드레일 상단부와 하단부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습니다. 헤일로가 가드레일을 막아 주지 않았다면 가드레일은 그로장의 머리나 상반신으로 향했을지도 모릅니다.
이렇듯 가드레일은 도입 초기부터 여러 문제가 있었습니다. 근데 세계 최고의 모터스포츠라는 F1에서 아직도 쓰이고 있죠. 물론 FIA가 노력한 끝에 F1 차량은 엄청난 안전도를 갖게 됐지만 FIA는 정작 이전부터 꾸준히 제기돼 왔지만 많이 알려지지 않은 문제에는 눈을 잘 돌리지 않는 경향이 있기도 하기에 그것을 고쳐나갈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F1 차량에 각종 안전장치를 바르게 되는 계기가 된 세나의 사고, VSC와 헤일로를 도입하게 된 비앙키의 사고 등의 경우는 모두 당대에 엄청난 이슈가 되었던 것이 큰 이유이기도 하기 때문이지요. 그래도 FIA, 특히 리버티 미디어가 인수한 이후의 F1은 계속해서 안전 방침에 대해 적극적으로 갈구하고 있으니 이번 일을 계기로 과거부터 계속 제기되어 왔던 문제에도 주목하게 되었으면, 그리고 트랙에 소시지 커브나 주차봉을 단다거나 앙투안 위베르의 사고 이후에도 라디옹 코너의 런오프를 넓히지 않는 등 트랙 안전에 대하여 아쉬운 면모를 보여 왔던 FIA가 트랙 안전에도 더욱 신경 써 모터스포츠의 안전 수준이 더욱 향상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지금까지 바레인 GP의 대체적인 요약과 그로장의 사고에 대한 설명이었습니다. 이전부터 존재하던 FIA의 몇 가지 결점이 드러난 사고이기도 하지만, 지금까지도 그랬듯 충분히 고쳐나갈 수 있으며 좋아요와 팔로우는 필자에게 엄청난 힘이 되오니 잘 보셨다면 한 번씩 눌러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III CAR GO STUDIOS FaustoAriz (이현빈) 에디터
cargostudio@naver.com
2020.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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