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기재부, 公기관에 "군복무 승진우대 조항 없애라…남녀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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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1.01.24. 오후 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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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연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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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재부 산하 공기업·준정부기관에
승진시 남녀차별 규정 정비 지시
"군경력 포함된 호봉으로 승진 땐
남녀차별 해당된다" 조속시정 요구

공공기관 경영평가 감점 우려에
일부 공기업들 곧바로 수정 나서


군가산점 폐지 논란
최근 정부가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소속 직원 승진자격에 군 복무기간을 반영하는 규정을 모두 없애라고 지시한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24일 오후 서울역에 군장병이 부대 복귀열차를 기다리고 있다.2021.1.24.
이승환기자
최근 정부가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소속 직원 승진자격에 군 복무기간을 반영하는 규정을 모두 없애라고 지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병역의무가 없는 여성이 구조적으로 승진에 불이익을 받는 불합리한 관행을 뿌리 뽑겠다는 의도지만 역차별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아 잡음이 예상된다.

24일 매일경제 취재 결과 기획재정부는 '승진 시 남녀차별 규정 정비'라는 제목의 공문을 지난 13일 산하 공공기관에 내려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기재부는 이 공문에서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10조에 따르면 사업주는 근로자의 승진에 있어서 남녀를 차별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며 "군 경력이 포함되는 호봉을 기준으로 승진자격을 정하는 경우 이 규정을 위반할 소지가 있으니 각 기관에서는 관련규정을 확인해 필요한 경우 조속히 정비해 달라"고 요구했다.

기재부가 이 같은 엄포를 내놓게 된 배경에는 일부 공공기관이 내부 승진 시 필요한 최저 근속연한을 산정할 때 군 복무기간을 포함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같은 연차인 군필자 동료에 비해 군 미필자는 2년가량 승진에서 밀리게 되는데, 이는 성별 등의 사유로 합리적인 이유 없이 근로조건을 달리하거나 기타 불이익 대우를 금지하고 있는 남녀고용평등법에 위반된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승진이 가능한 근무기간 요건에 남성의 군 복무기간을 반영하면 같은 학력, 같은 직급으로 채용된 여성의 경우 남성보다 2년 늦게 승진하는 구조가 된다"고 말했다.

현행법(제대군인 지원에 관한법률 제16조)은 제대군인의 호봉이나 임금을 결정할 때 군 복무기간을 근무경력에 포함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의무복무로 인해 사회참여에서 배제되는 데 대한 경제적 보상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군 복무기간을 근무경력에 포함해 호봉을 가산, 인정하는 것이 '합리적인 차별'의 범위에 해당한다는 이유에서다.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검토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8월 기준 의무복무기간을 근무경력에 인정하는 비율은 공공기관·공기업 89.9%, 일반 사기업체 40.3% 수준이다.

이처럼 호봉을 산정할 때 군 복무기간을 고려해 1~2호봉을 높이는 금전적 혜택은 공기업이나 사기업에서 일반적인 관행이다. 문제는 더 나아가 승진과정에서도 군 복무기간을 반영하는 관행이 일부 금융권 공기업을 중심으로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에 복무를 했기 때문에 공공기관 입장에서는 군 복무기간을 공적 업무의 연장으로 봐서 호봉으로 인정해줄 수 있지만, 호봉으로 인정하는 것과 근속으로 인정해 승진에 반영하는 것은 명백히 구분해야 한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승진을 할 때 근속기간을 감안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때 군 복무기간을 근속으로 인정하면 남녀 간 합리적이지 않은 승진상의 차별로 볼 수 있다"며 "병역의무가 없는 여성근로자가 업무능력과는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승진에 있어 불이익한 결과를 받게 된다면 이는 결과적으로 남성근로자에게 이중적인 혜택을 부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공문이 내려가자 기재부의 공공기관 경영평가를 의식한 일부 공기업은 '화들짝' 놀라 곧바로 해당 기준을 손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다수 공공기관 사이에서는 "군 복무기간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 승진에 필요한 기초 연한을 계산할 때 포함하는 것일 뿐이지 군 복무 자체를 인사고과에 반영하는 것은 아닌데 이를 싸잡아 남녀차별로 간주하는 것은 너무한 것 아니냐"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한 공기업 재직자는 "과거와 달리 지금은 여성 역시 하사관 또는 장교로 군 복무를 할 수 있는 방법이 과거보다 훨씬 쉬워졌다"며 "대다수 남자들이 국방의 의무라는 미명하에 2년이라는 금쪽같은 시간을 20대에 희생하도록 강요당하는데 공기업 재직 정년은 남녀 모두 동일 연령으로 규정된 것이 오히려 진정한 의미의 남녀차별 아니냐"고 토로했다.

이미 승진 과정에서 수혜를 받은 직원들과의 형평성 논란도 예상된다. 서울소재 금융공기업 관계자는 "군복무기간을 경력으로 인정받아 승진을 눈앞에 둔 직원들이 갑작스런 기재부의 공문으로 인해 승진에서 대거 미끄러질 경우 박탈감이 상당할 것"이라며 "또 이미 군필자 동기보다 승진이 늦어진 여성 직원이나 군미필 남성직원 사이에서도 억울하다는 반응이 불 보듯 뻔해 이번 조치가 남녀갈등과 노노(勞勞)갈등으로 번지지는 않을지 우려된다"고 전했다.

[양연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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