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자동차 잡썰

한번 주유로 서울-부산 왕복? 현대 린번 엔진

CAR GO STUDIOS님의 프로필 사진

CAR GO STUDIOS

공식

2022.02.26. 23:5513,998 읽음

자동차를 소유 중이라면 다들 한 번씩은 트립 컴퓨터상 최고 연비를 기록해 보기 위해 온 신경을 발끝 감각에 몰두하면서 운전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요새는 굳이 하고 싶지 않아도 워낙 기름값이 올라간 만큼 대부분의 운전자들은 현재 '연비'에 민감해져 있을 것이다. 이번 글에서는 전기모터 하나 없이 오로지 엔진 기술 만으로 연비를 높여보려 개발된 현대의 린번 엔진 (Lean Burn Engine)에 대해 알아볼까 한다.

III 린번 엔진은 무엇인가?

현대 알파 린번 엔진

현대자동차가 개발한 린번 엔진(Lean Burn Engine)은 토요타를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양산된 엔진으로 소형차용 독자 개발 엔진인 알파엔진을 베이스로 개발되어 엑센트와 아반떼에 탑재되었다. 린번 엔진은 우리말로 희박 연소(稀薄燃燒) 엔진이라 부를 수 있는데, 이 희박 연소 엔진이 무엇인가 하면, 엔진에 들어온 공기의 양에 비해서 본래 분사되는 양보다 적은 양의 연료를 분사해 연소 시키는 엔진이라 할 수 있다.


엔진의 연소를 위해 공기와 연료가 섞이는 비율을 '공연비'라고 하는데 이론적으로 완벽한 비율이라는 뜻의 이론공연비는 14.7:1이다. 즉, 연료 1g을 완전히 태우기 위해서는 공기 14.7g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이보다 공기가 지나치게 많이 들어오는 상태이거나 그 반대의 경우에는 연소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여기서 20:1 이상의 높은 공연비에서도 연소가 안정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연료 공급 시스템과 공기 흡기 시스템을 개선한 것이 바로 린번 엔진인 것이다.

III 희박 연소는 어떻게 일어나는가?

희박 연소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DOHC 엔진의 2개의 흡기구 중 한 곳에 장착되어 있는 솔레노이드 밸브가 린번 시스템의 작동 조건에서 작동되면서, 흡기구의 독특한 구조로 인해 흡기 공기와 연료의 와류가 발생하게 되어 연소실에서 성층화 되게 함으로 점화 때 플러그 주위에는 공연비가 13:1~14:1 정도로 짙게 형성되어 희박 연소를 이끌어내는 구조이다.

III 린번 엔진, 이론은 좋다.

이렇게 들어보면 린번 엔진은 엔지니어들이 노력과 집념이 담긴 대단한 기술이 틀림없음은 사실이다. 이런 꿈과 같은 기술이 개발되었다며 TV CF부터 지면 광고까지 린번 엔진의 우수성을 널리 알렸고, 대통령 상까지 수상하면서 린번 모델의 판매가 꽤 이루어졌다.

린번 엔진의 이론만 보자면 대단한 기술임이 틀림없지만, 문제는 실 주행으로부터 시작된다. 그 이유를 지금부터 알아보도록 하자. 린번 엔진의 궁극적인 목적은 높은 연료 효율성과 배출가스를 줄이기 위함에 있다. 마냥 연비가 좋을 것만 같은 린번 시스템은 전 구간에서 상시 작동되는 것은 아니다. 린번 시스템은 냉각수 온도 80℃ 이상, 시속 40~120km/h 구간에서 스로틀 밸브 개도가 일정한, 정속 주행인 상태에서 작동이 된다.

린번 시스템이 작동되면 출력이 저하되는 것을 바로 느낄 수 있다. 곧이어 힘을 받아야하는 구간이 오면 본래의 힘을 쓰기 위해 린번을 해제해야 한다. 이를 해제하기 위해서는 액셀 페달을 깊이 밟아주면 되는데, '툭' 하는 충격과 함께 해제가 된다. 해제를 한다고 해도 곧이어 스로틀 개도가 일정해지면 다시 린번이 작동되며 출력이 저하되고, 가속하면 다시 해제되는 과정이 계속 반복되어 짜증을 유발한다는 이야기가 많았다고 하며 참고로 이 '툭'하는 충격은 연식이 오래된 자동차의 변속 충격 보다 더 큰 충격이 온다고 한다.

사진은 비스토의 4단 오토매틱

여기서 나타나는 출력 저하는 어느 정도 인가하면 올 뉴 아반떼와 엑센트의 1.5 DOHC 노멀 엔진은 110마력인데 반해 1.5 DOHC 린번 엔진 모델은 겨우 95마력에 그친다. 그만큼 노멀 엔진보다 힘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는 소리다. 여기에 동력 손실이 많이 나는 90년대의 4단 오토매틱이 물린다고 생각해 보자. 출력과 연비는 더욱 바닥을 밑돌 것이다.

힘이 없으면 그만큼에 상응하는 연비라도 나와줘야 이치에 맞는데, 린번 엔진은 안타깝게도 대한민국 도로 사정에도 맞지 않았다. 원체 린번 엔진이 힘을 쓰지 못하니 힘을 써야 하는 구간이 나오면 운전자는 정황상 액셀러이터 페달을 더욱 깊숙이 밟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결국에는 킥 다운이 상습적으로 걸리면서 실연비가 제원상의 연비보다 훨씬 밑도는 상황이 발생되어 이도 저도 아닌 경우가 된 것이다.

경쟁사인 대우자동차는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누비라 2 파워노믹스(Power+Economics)의 광고에서 이런 아반떼의 상황을 희화화한 광고도 존재한다. 여기서 재미난 점이 있다면, 누비라 2의 파워노믹스는 경제성과 파워를 동시에 챙겼다는 뜻인데, 린번 엔진처럼 특별한 기술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기본 엔진에서 부품 몇 개만 바꾼 수준이라 린번 엔진처럼 특수한 기술은 아니라는 점이다.

누비라 2의 상황에서는 가만히 있어도 린번 엔진의 파워와 연비를 이길 수 있는 상황이지만, 실패하더라도 도전정신으로 린번 엔진을 개발한 현대자동차에 비해 '기술은 사 오면 된다'라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던, 이름만 그럴싸하게 하게 지어 판매한 대우자동차가 마냥 으름장을 놓던 것을 보니 이후 현대자동차에게 밀린 이유가 짐작이 간다.

III 린번 엔진의 몰락

린번 엔진이 마지막으로 탑재된 2001년형 아반떼XD와 베르나

린번 엔진의 평판이 그리 좋지만은 않았지만, 어느 정도 판매량은 있었기에 후속 모델은 린번 엔진을 개량한 2세대 린번 엔진이 탑재되었다. 기존 95마력에서 98마력으로 상승했고, 린번 시스템 개입 시 울컥거림을 줄여 상품성을 높였다고 한다. 2세대 린번 엔진 역시 일부 사양의 선택 옵션이었지만, 특히 아반떼XD의 경우에는 이전 아반떼에 비해 차량의 중량이 증가해 95마력이던 린번 엔진이 98마력이 되었다고 해서 큰 효과는 없었으며, 린번 작동시 울컥거림 역시 크게 줄어들지 않아 여전히 전작의 문제가 빈번히 발생되어 2002년을 마지막으로 린번 엔진은 역사의 뒤안길로 단종되었다.

III 린번 엔진의 부활?

감마 엔진, 세타 엔진

원초적인 린번 엔진은 오래전에 사라졌지만, GDi 엔진은 현재도 적용된 차종이 꽤나 돌아다니는지라 익숙할 것이다. 놀랍게도 이는 린번 엔진과 같은 개념의 엔진이다. 연료를 실린더 외부에서 분사해 흡기 밸브를 통해 실린더 내부로 공급하는 통상적인 엔진과 달리 GDI 엔진은 연료를 실린더 내에 직접 분사한다. 따라서 보다 높은 공연비에서도 원활한 연소가 이루어지도록 연료 분사량과 분사각도를 조절할 수 있어 이 덕분에 현재 GDI 엔진에서 안정적으로 연소시킬 수 있는 공연비는 40:1 정도까지 확대되고 있다. 결국 GDI 기술은 린번 기술을 기초로 더욱 향상된 기술이라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엔진의 세계는 종이 한 끗의 차이로 실패와 성공이 나누어지는 순도 100% 공학 덩어리이다. 비록 현대 린번 엔진은 실패한 엔진이라 평가받지만, 엔진을 독자적으로 개발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현대자동차의 당시 위치로서는 정말 대단한 도전이라고 할 수 있다. 혼다에는 혼다 소이치로의 도전정신이 있다면, 현대자동차에는 정주영의 도전정신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말이다. 현재는 대규모 자동차 브랜드들이 하나 둘 전동화를 선언하며 탈 내연기관을 준비하고 있어 얼마 후면 이런 공학적인 일화도 보지 못할 것 같아 아쉬움이 따르지만, 앞으로의 행보에서도 이와 같은 도전정신을 바탕으로 이어 나간다면 분명 좋은 결과가 따를 것이라 본다.

III 포스트 더 보기

III CAR GO STUDIOS 정래겸 에디터
cargostudio@naver.com

본 포스트에 작성된 글과 사진의 저작권은 카고! 스튜디오와 정래겸 님에게 있습니다. 허가 없는 무단 도용 및 퍼가기를 금합니다.
2022.02.26.  III CAR GO STUDIOS

로딩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