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방재 강국'으로 불립니다. 지진, 태풍 등 자연재해를 자주 겪다보니 구축해온 시스템과 노하우가 탁월합니다. 전 세계 지진의 10% 이상이 일본에 집중되는 데 비해 피해가 적은 것은 면밀한 대책의 결과입니다. 일본은 방역에 있어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2018년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이 내놓은 보고서는 조류인플루엔자·구제역의 경우 일본의 방역 기술이 한국보다 최대 7년이나 앞선 것으로 분석한 바 있습니다.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는 "일본은 사스나 메르스 때 주변국들과 달리 거의 피해가 없었다"며 "방역체계도 자국이 최고라는 자신감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자타 공인 '방재·방역 강국'인 셈이죠.
◆느슨한 초동대처에 뒷북 대응
먼저 일본 정부가 확진자 발생 초기 취했던 느슨한 초동 대처가 지적됩니다. 일본 정부는 지난 1월 28일 코로나19를 '지정 전염병'으로 지정하는 시행령을 결정·공포했지만, 실제 시행된 시점은 2월 7일로 열흘 이상 지난 후였습니다. 또한 이때까지 코로나19를 '1류 지정 전염병'보다 낮은 단계인 '2류 지정 전염병'으로 지정해 감염 의심자들의 입국 제한조치를 실시하지 않았죠. 이와 관련해 재무성 관료 출신인 다카하시 요이치 가에쓰대 교수는 "전염병 대응은 타이밍이 매우 중요하다. 이 같은 조치가 1월 28일에 선제적으로 취해졌다면, 크루즈선이 일본에 입항하지 못했을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2월 15일 후생노동성 장관은 승선 인원 모두에게 바이러스 검사를 받게 한다는 방침을 발표했지만, 이것도 당초 전원 검사는 실효성이 없다고 버티다 나중에서야 방침을 바꾼 것입니다. '다이아몬드 프린세스'와 비교되는 사례로 홍콩에 입항한 '월드드림호'가 있습니다. 홍콩 당국은 1월 24일 광둥성에서 내린 '월드드림호' 승객이 감염됐다는 보고를 받고 즉시 승선했던 승무원 1800명 전원에 대한 검사를 실시했습니다.
◆'매뉴얼'에 강하지만 임기응변 약해
하지만 매뉴얼에 없거나 분초를 다투는 긴박한 상황에 처했을 경우가 문제입니다. 매뉴얼을 찾느라 대응이 늦거나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 생기기도 합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 해외 구호물자가 도착했지만 '처리 지침이 없다'는 이유로 절박한 상황인 주민들에게 제때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해외 의료진 역시 관련 규정에 없다는 이유로 주민을 돌보지 못했습니다. 지난해 태풍 피해를 입은 가나가와현의 한 마을에선 수돗물 공급이 끊겨 급한 대로 자위대가 급수차를 파견했지만 매뉴얼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도착한 물이 전부 버려지는 해프닝도 있었습니다. 지나치게 매뉴얼에 집착하다보니 유연한 대응이 어려워지는 것이죠. 매뉴얼에 없는 건 안 하려다보니 매뉴얼 이상의 결정이 필요할 때 책임을 미루고 대응이 늦어지는 등 관료주의나 보신주의로 변질될 위험도 있습니다.
◆어긋난 '미즈기와' 대책...권력집중 따른 부작용
◆외조부처럼…'올림픽 업적' 의식한 아베
◆한국의 보건안보 리스크도 '정치'
그러나 며칠새 국내 감염자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있고 사망자까지 발생했습니다. 공교롭게도 대통령은 물론 여당 의원들이 한국의 대응을 자화자찬하자마자 이 같은 상황을 맞았습니다. '글로벌 보건안보 지수'는 분명 한국의 보건방역 역량을 최상으로 평가했습니다. 하지만 정치 시스템과 정부의 효과성에 대한 평가가 포함된 항목에선 그렇지 않았습니다. 정치 시스템과 정부의 효과성을 반영한 '리스크 환경' 항목에서 한국은 27위로 체코,슬로베니아와 비슷한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는 곧 한국에 보건안보 위험이 발생한다면, 그것은 의료보건 태세등 과학기술적 영역 보다 정치의 영역 때문에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지난 18일 대한의사협회는 중국 전역으로 입국제한 조치를 확대하고 위기경보의 상향을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불필요한 조치란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이에 공중보건 문제에 있어선 정부가 정무적 판단보다 현장과 전문가들 의견에 귀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 잇달았습니다. 김우주 고려대 감염내과 교수는 "중국과 일본의 상황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코로나19는 간단히 끝날 문제가 아니다. 우리도 그들과 같은 상황이 될 수 있다"고 경고 했습니다. 중국과의 관계가 한국 경제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는 건 자명합니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우선하는 건 없습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보다 정치적 논리가 앞설 때 어떻게 되는지, 이웃 국가인 일본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적어도 우리는 그들과 같은 실수를 반복해선 안되지 않을까요.
[신윤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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