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책 미리보기] 헤세가 들려주는 나비 이야기

[연재]#4. 아이를 보며 자기 잘못을 떠올린 어른, 공작나비(1)_교과서 수록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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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5. 06:00696 읽음

"자식이 생기니 이상하게 내가 어릴 때 빠졌던 여러 취미가 되살아나지 뭔가. 심지어 일 년 전부터는 나비 수집도 다시 시작했네."

"참 이상한 일이지"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내가 자네 수집품을 자세히 구경하지 않았다고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는 말게. 나도 어릴 때는 물론 그런 게 하나 있었지. 하지만 아쉽게도 좋지 않은 기억이 있어. 그 일을 생각하니까 기분이 안 좋아졌네. 창피한 이야기이지만 한번 들어보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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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떠올린 자신의 어린 시절의 잘못은 <공작나비>의 마지막에 나옵니다.)


공작나비(1)
Das Nachtpfauenauge
- 헤르만 헤세, 1911년

중학교 교과서 수록 작품입니다. 비상, 지학사, 천재 교과서에 '공작나방'이란 제목으로 실려있습니다.
나비에 관한 이야기가 왜 나방으로 번역되어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공작나비

내 집을 찾은 손님이자 친구인 하인리히 모어가 저녁 산책에서 돌아와 서재에 함께 앉아 있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이었다. 창문 앞에는 가파른 구릉으로 둘러싸인 창백한 호수가 저 멀리 펼쳐져 있었다. 어린 아들이 막 취침 인사를 하고 들어갔던 터라 우리는 아이들과 아이들의 기억에 대해 이야기했다.

내가 말했다.

“자식이 생기니 이상하게 내가 어릴 때 빠졌던 여러 취미가 되살아나지 뭔가. 심지어 일 년 전부터는 나비 수집도 다시 시작했네. 한번 보겠나?”

하인리히가 그러자고 해서 나는 방을 나가 가벼운 종이 상자 두세 개를 갖고 들어왔다. 첫 상자를 여는 순간에야 우리는 그새 날이 어두워진 것을 알아차렸다. 펼쳐서 고정시킨 나비들의 윤곽이 거의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남포등을 집어서 성냥을 켰다. 바깥 풍경이 순식간에 가라앉더니 창문 앞에 푸르스름한 어둠이 철벽처럼 버티고 섰다.

그러나 상자 속 내 나비들은 환한 등불 빛 속에서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다. 우리는 고개를 숙여 아름다운 색상의 형상들을 관찰하면서 하나씩 이름을 불러나갔다.

“저건 노랑밤나방일세.” 내가 말했다. “라틴어 학명은 풀리네아이고. 여기선 희귀종이지.”

하인리히 모어는 조심스럽게 핀에 꽂힌 나비 한 마리를 상자에서 꺼내더니 날개 아랫면을 살펴보았다.

“참 이상한 일이지.” 그가 말했다. “다른 어떤 것보다 나비를 볼 때 어린 시절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나니···.”

이 말과 함께 그는 나비를 다시 제자리에 꽂아두고는 상자 뚜껑을 닫았다. 이걸로 됐네! 

하인리히는 마치 무언가 달갑지 않은 기억이 떠오른 사람처럼 딱딱하고 급하게 말했다. 내가 곧 상자를 들고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자 그는 갸름한 구릿빛 얼굴에 옅은 미소를 띠며 담배를 한 대 청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내가 자네 수집품을 자세히 구경하지 않았다고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는 말게. 나도 어릴 때는 물론 그런 게 하나 있었지. 하지만 아쉽게도 좋지 않은 기억이 있어. 그 일을 생각하니까 기분이 안 좋아졌네. 창피한 이야기이지만 한번 들어보겠나?”

산호랑나비

그는 남포등 등피 위로 얼굴을 가져가 담배에 불을 붙이더니 등에 녹색 갓을 씌웠다. 순식간에 우리의 얼굴이 어둑한 빛 속에 잠겼다. 친구는 열어 놓은 창문 앞의 창턱에 걸터앉았다. 그의 늘씬하고 마른 몸은 어둠과 거의 구분이 되지 않았다. 안에서는 내가 담배를 피우고, 밖에서는 소리 높여 들려오는 먼 개구리 울음소리로 밤이 가득 차는 동안 친구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내가 나비 수집을 시작한 건 여덟 살이나 아홉 살쯤 되었을 걸세. 처음에는 다른 놀이나 취미처럼 그리 열심이지 않았네. 하지만 이듬해 여름, 그러니까 열 살이 다 돼 갈 즈음 나는 그 일에 푹 빠져버렸네. 다른 일은 모두 잊어버리거나 게을리하는 바람에 어른들이 여러 번 나비 수집을 금지시킬 만큼 정말 남다른 열정을 보였지. 나비를 잡으러 다닐 때는 등교 시간이나 점심시간을 알리는 시계탑 종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채집통에 빵 하나만 달랑 챙겨 넣고 이른 아침부터 밤까지 밖으로 돌아다닐 때도 많았네. 밥을 먹으러 집에 들르지도 않고 말일세.


4화 끝.
5화로 이어집니다.

헤세가 들려주는 나비 이야기

저자 헤르만 헤세

출판 문예출판사

발매 2016.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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