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닝 시퀀스' 하면 어떤 장면이 떠오르시나요? 검은 배경에 하얀 글씨로 투자자들의 이름이 박혀있던 장면? 화면 위로 배우, 스탭들의 이름이 슥슥 지나가기만 했던 장면? 그런 장면밖에 떠오르지 않는다면 한번 정독해보시길! 알고 보면 기발하고 재미있는 오프닝 시퀀스가 많답니다. 영화의 톤을 정돈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오프닝 시퀀스! 첫인상을 결정하는 오프닝 시퀀스만의 매력을 하나하나 알아가보자고요.
무려 70년 전의 오프닝 시퀀스는 어땠을까요? 꽤 귀엽습니다. 1946년 장 콕토가 연출한 <미녀와 야수>의 오프닝 크레딧은 자막이 아닙니다. 카메라는 칠판을 비추고, 장 콕토 감독이 직접 나와 칠판에 분필로 크레딧을 적고 지우길 반복하죠. 이후로 글로 풀어낸 프롤로그가 등장하고 본격적인 스토리 전개가 시작됩니다.
스토리가 있는
오프닝 시퀀스
스타워즈 에피소드4 - 새로운 희망
오프닝에 스토리가? 프롤로그 하면 이 작품이 빠질 수 없습니다. "A long time ago in a galaxy far(아주 오래 전 머나먼 은하계에)…" 이 문장 뒤로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스타워즈 로고와 함께 영화의 백스토리가 묘사된 오프닝 스크롤이 등장하죠. (빰빰빰 빰빠밤 빰빠밤~ 오스트 자동 재생) 이 오프닝 시퀀스는 <스타워즈> 시리즈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현기증
그렇다면 스토리가 있는 타이틀 시퀀스는 다 글자로만 이뤄진걸까요? 정답은 놉! 알프레드 히치콕이 서스펜스의 거장이라면, 이 타이틀을 디자인한 솔 바스는 서스펜스한 타이틀 시퀀스의 거장임이 분명합니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현기증>의 오프닝 시퀀스를 "필름 안의 작은 필름"이라고 말하기도 했는데요. <현기증>의 오프닝은 3분 정도 되는 시간 안에 본 영화의 내용을 상징적으로 압축해 담아놓았습니다. 지금은 별거 아닌 일이겠지만, 그 당시에는 크레딧 영상 안에 패턴을 넣는 것도 획기적인 일이었다고 하네요.
세븐
<세븐>의 오프닝은 솔 바스를 잇는 타이틀 시퀀스계의 레전드 카일 쿠퍼의 손에서 탄생했습니다. 클로즈업과 다소 섬뜩한 이미지, 소름끼치는 사운드로 이뤄진 이 영상은 한 남자의 수상한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그는 면도칼로 자신의 지문을 지우기도 하고 알 수 없는 메모를 남기기도 하죠. 이 남자가 영화 속 살인자 '존 도우'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관객들에게 전해지는 소름은 어마어마합니다. 핸드라이팅으로 제작된 타이포그래피 또한 이 영화만의 불안정한 느낌을 잘 반영했죠.
얼굴로 인물을 소개하는
오프닝 스퀀스
저수지의 개들
쿠엔틴 타란티노 작 <저수지의 개들> 오프닝 시퀀스에는 쫙 빼입은 여섯 명의 갱이 등장합니다. 경쾌한 음악과 함께 배우들의 얼굴이 화면을 가득 메우고 그 밑에는 그 역을 맡은 배우의 이름이 등장하죠. 유유히 걸어지나가는 그들. 그들의 뒷모습 위에는 "are", "RESERVOIR DOGS"란 타이틀이 올라갑니다. 센스 넘치는 타이틀 소개네요!
로얄 테넌바움
우리에게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로 유명한 감독 웨스 앤더슨의 <로얄 테넌바움> 오프닝 또한 인물들의 얼굴을 비추며 진행됩니다. 웨스 앤더슨 아니랄까봐 정중앙을 고집하는 크레딧들은 마치 소개서를 보는 듯한 느낌도 주죠. 한 장면만으로도 인물들의 스타일을 너무 잘 파악할 수 있는 오프닝 시퀀스입니다.
심플한 미리보기 식
오프닝 시퀀스
캐치 미 이프 유 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희대의 사기꾼으로, 톰 행크스가 그를 끊임없이 쫓는 형사로 나왔던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을 기억하시나요? 영화를 다 본 후 오프닝 시퀀스를 보면, 그 안에 영화의 내용이 압축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어요. 왠지 모르게 여유로워 보이는 인물들의 동선 위로 흐르는 재즈 음악은 이 영화가 어떤 색을 지니고 있는지 명확히 보여주죠.
틴틴: 유니콘호의 비밀
<틴틴: 유니콘호의 비밀>의 오프닝 또한 하나의 작품으로 보기에 손색이 없습니다. 영화의 방대한 스토리를 몇 분 안에 요약해 보여주거든요. 유연하게 연결되는 신들을 보고 있자면 틴틴이 펼칠 모험을 기대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 실루엣뿐이지만 캐릭터의 기본 설정을 눈치챌 수 있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참고로 이 섹션의 두 작품은 모두 스티븐 스필버그가 연출했습니다.
영화의 분위기를
더 짙게 만드는 오프닝 시퀀스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다니엘 크레이그와 루니 마라가 출연한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의 오프닝은 어디서나 역대급으로 손꼽힙니다. 스토리에 대한 힌트와 캐릭터에 대한 소스를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죠. 눈에서 뻗어나오는 촉수, 머리에 엉키는 USB 전선, 꽃, 피닉스, 피부를 끈적하게 감싸는 알 수 없는 액체 등 다소 어둡고 기괴한 이미지의 연속인 이 오프닝 시퀀스에는 영화의 상징적인 요소가 모두 녹아있습니다.
좀비랜드
<좀비랜드>의 오프닝 시퀀스는 효율적이에요. 제시 아이젠버그가 좀비 아포칼립스에서 살아남는 법을 설명해주거든요. 이렇게 하면 안되고요, 이렇게 하면 안되고요…. 좀비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끔찍하게 묘사됩니다. 하지만 깨알 같은 웃음 코드도 녹아있죠.(제대로된 병맛이란 이런 것...!) 내 장르는 코미디야! 오프닝 시퀀스에서부터 자신의 정체성을 확실히 밝히고 시작하는 영화입니다.
검은 사제들
강동원이 사제복을 입은 것만으로도 은혜로운 영화 <검은 사제들>은 한국영화에서 생소한 소재를 다뤄 주목을 받은 영화였습니다. 이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 또한 영화의 소재만큼 이색적이죠. 부제, 사제, 부마자 등 관객들에게 생소할 수 있는 단어의 정의와 동시에 그 역할을 소화하는 배우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그 뒤로는 먼지 묻은 고서에서나 볼 법한 이미지들이 지나가죠. 이 오프닝 시퀀스가 귀한 이유! 강동원이 외우는 한국어/라틴어 기도문이 배경음으로 들어간답니다. 안 볼 이유가 없겠죠? 후후.
샤이닝
이렇게 단정하면서 소름끼치는 오프닝이 있을까요? 광활한 풍경 속으로 차 한대가 들어갑니다. 아무리 들어가도 쭉 뻗은 길엔 작은 차 하나뿐이고, 곧이어 기묘한 음악이 흐르기 시작하죠.(이 오프닝의 압권은 음악인데 들려드릴 수 없어 아쉽네요.) <샤이닝>의 오프닝은 배경과 크레딧, 음악이 모두 제각각입니다. 어딘가 모를 불안함은 보는 이를 더 긴장하게 만들죠. 오프닝 시퀀스가 끝나면서 이 차는 결국 오버룩 호텔(영화의 배경이 되는 호텔)에 도착하고 맙니다. (안돼, 안돼!! 외치고 싶은 맘...) 본 영화의 느낌을 고대로 옮겨놓은 오프닝 시퀀스입니다.
연애의 온도
큽... <연애의 온도> 오프닝 시퀀스는 솔로들 마음에 불을 지릅니다. 동희(이민기)와 영(김민희)의 행복했던 시절을 비춰주는데 세상에, 실제 커플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케미가 어마어마하죠. 이렇게 행복했던 것도 잠시 이들은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싸우게 되는데(쩜쩜쩜...) 이런 오프닝이 있었기에 헤어져도 헤어진 것 같지 않은 이들의 상황에 더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조금 색다른 오프닝 시퀀스
나폴레옹 다이너마이트
"오프닝 크레딧, 그래봤자 화면 위에 글씨 뜨는 거잖아!"란 의견에 고개 절레절레하고 자신만의 방법을 선보인 영화가 있습니다. <나폴레옹 다이너마이트>죠. 70년대 감성을 한껏 품은 이 영화는 배우와 스탭들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소개합니다. 접시 위에 케첩으로 이름을 써놓는다든지, 머스타드와 피넛 버터로 빵 위에 이름을 적어놓는다든지. 심지어 학생증으로 영화의 타이틀을 소개하기도 하죠. 세상에 이렇게나 귀여운 오프닝 크레딧이 있을까요? 소장하고 싶은 마음 100이네요!
핑크팬더
'핑크 팬더'가 그저 캐릭터 애니메이션인 줄 알았던 사람 손! 애니메이션 캐릭터 핑크 팬더는 영화 <핑크 팬더>의 오프닝과 엔딩 장면에 삽입되면서부터 탄생했습니다. <핑크 팬더> 속 커다란 분홍색 다이아몬드의 이름이 바로 핑크 팬더죠. 참고로 이 캐릭터는 백 개도 넘는 표범들 중에서 선택된 캐릭터라고 하네요. 큰 인기를 얻어 그 다음 해엔 짧은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데뷔하기도 한 <핑크 팬더> 오프닝 시퀀스 속 '핑크 팬더'! 출세한 캐릭터임이 분명합니다.
<007> 시리즈 오프닝
<007 시리즈>는 언제 나오나, 의아하셨던 분들 많죠? '오프닝 시퀀스'하면 <007 시리즈>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제임스 본드가 걸어나오다가 갑자기 화면을 향해 몸을 돌리며 총을 탕! 쏘는 '건배럴 신'은 타이틀 디자이너 모리스 바인더의 손에서 탄생했습니다. 역대 제임스 본드들마다 제스처가 미묘하게 다르긴 하지만(이 깨알 같은 차이를 찾아보는 재미도 있는 것!), 다니엘 크레이그가 출연하기 시작한 시리즈, <007 카지노 로얄>에서부터 큰 변화가 일기 시작합니다.
뜨든! 이렇게! 걸어나오지 않고 상대방에게 총을 쏘는 더 역동적이고 파워풀한 모습으로 변신하죠.
제목만 봐도 노래가 자동재생? <007 스카이폴>에서는 처음으로 회색 수트를 입고 나비 넥타이 대신 긴 타이를 메고 나와 소소한 변화를 주기도 했습니다. 이러나 저러나 멋있기만 한 제임스 본드! 앞으로 나올 새로운 건 배럴 신 또한 기대가 되네요!
씨네플레이 에디터 코헤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