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청원에 제 2성전… 진주 성도들 “배신하고 떠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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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은 목사의 ‘아스팔트에 핀 부흥의 꽃’ <10>
충북 청주 청원진주초대교회에서 2008년 6월 열린 ‘아바드 리더 콘퍼런스 2차 세미나’ 참석자들이 교회 잔디밭에서 점심을 먹고 있다. 교회의 대지면적은 2만4462㎡(7400평), 연건평은 8585㎡(2600평)이다.

남편 전태식 목사는 전도사 시절부터 자주 부흥집회 강사로 초청받았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말씀의 은사를 허락하셨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목사 안수를 받고 난 후부턴 더욱 자주 집회를 다녔다.

점점 소문이 나서 남편의 설교를 듣고자 하는 목회자들이 많아졌다. 어쩔 수 없이 1999년 6월 목회자 세미나를 열었다. 참석자들이 불어나자 2001년 7월 ‘국제오순절 목회자 성경연구원’을 설립하고 1기생을 모집했다.

말씀을 듣고자 전국 각지의 목회자들이 매월 성전이 있던 경남 진주 공단지역으로 몰려들었다. 그 숫자는 점점 늘어 갔다. 매달 1회 모이는 참석자 수가 많다 보니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화장실이 부족해 참석자들을 인근 시청 화장실까지 버스로 수송했다. 물 부족으로 소방서에 요청했더니 소방차가 달려와 물을 공급해 줬던 적도 있다. 숙소를 해결할 수 없어 진주 시내 찜질방 3곳을 통째로 빌린 일도 있다. 이런 어려움 때문에 지역을 옮겨 다니며 세미나 장소를 빌렸다. 참석하시는 분들도 그때마다 이동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세미나를 열 수 있는 건물을 두고 기도에 집중했다. 어느 날이었다. “목사님, 충북 청원에 새천년민주당 연수원 건물이 매물로 나왔습니다.” 단숨에 달려갔다. 마치 우리를 위해 지은 듯한 최적의 장소였다.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서울로 향하는 차들이 한 번은 지나가야 하는 곳에 있었다. 게다가 국회의원 연수원이었기에 숟가락부터 침구까지 모든 것이 갖춰져 있었다.

‘지금껏 겪은 물 부족, 화장실 부족, 숙소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환경이다. 청소만 하고 들어가면 당장 세미나를 진행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눈이 번쩍 뜨였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대형 건물을 매입할만한 형편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 저희는 계약금도 없고 이자밖에 낼 수 없는 형편입니다. 하지만 너무나 필요한 건물입니다. 청소만 하고 들어갈 수 있게 해주세요.’ 간절한 기도에 하나님은 그대로 응답해주셨다. 48억원에 달하는 건물이었지만 이자만 내고 들어갈 수 있도록 환경을 열어주신 것이다.

2004년 9월, 그렇게 제2성전인 청원진주초대교회가 설립됐다. 놀라운 사실은 건물을 매입한 그다음이었다. “목사님, 놀라지 마십시오. 연수원 앞으로 청주와 상주를 잇는 당진영덕고속도로가 뚫린다고 합니다.” “그럼 어떻게 되는데?” “연수원 부지가 도로에 편입된다고 합니다.” 그렇게 적잖은 보상금으로 보수와 이전까지 해결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길을 열어 주셨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

그러나 마냥 기뻐할 일이 아니었다. 여건상 제1성전인 진주초대교회는 부목사에게 맡기고, 남편과 나는 제2성전인 청원으로 사역지를 옮겨야 하는 상황에 부닥친 것이다. 성도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목사님, 어떻게 저희를 두고 가실 수 있습니꺼. 제발 가지 마이소.” “목사님, 마 우리를 배신하고 가시겠다는 겁니꺼.”

성도들은 울먹이는 소리로 우리를 막았다. ‘배신’이라는 말이 가슴에 꽂혔다. 엄마에게 막무가내 떼쓰는 아이처럼 우릴 붙들고 싶은 성도들의 마음이 느껴졌다. ‘하나님,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해야 할 주의 종이 배신자 소리를 듣고 어떻게 목회를 하겠습니까.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기도 끝에 결단을 내렸다. 남편이 떠난 자리를 내가 메우기로 했다. 하소연했던 성도들의 손을 다시 잡았다. “닭 대신 병아리라고… 저라도 남으면 되겠습니까.” “거참, 하는 수 없지예.”

성도들은 마지못해 허락을 해줬다. 개척 때부터 신학 공부로, 외부집회로 바빴던 남편 때문에 사실 주일 강단을 제외한 교회 행정, 상담, 심방은 모두 내 몫이었다. 주위에서는 종종 이런 우스개를 했다.

“사모님, 사모님은 4박 5일 목회를 하고, 전도사님은 2박 3일 목회를 하시네요.” 그처럼 훈련을 받았지만, 담임목사로서 교회를 이끄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더군다나 나는 여성 목회자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었다. 진주가 어떤 곳인가. 불교와 유교 색채가 가득한 곳, 기독교 인구가 3%도 채 되지 않는 곳, 남존여비 관습이 강한 곳이었다. 그런 지역에서 여성 목회자란 어떤 존재이겠는가.

막막한 마음에 매일 눈물로 밤을 지새웠다. 그런 내게 하나님께선 여호수아 1장 5~9절 말씀을 주셨다. 모세의 수종을 들던 몸종 여호수아. 그가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을 인도하게 하신 하나님은 그에게 약속하셨다.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남편 목사님의 몸종 같은 존재였던 나였다. 영적 지도자의 뒤를 잇게 이끄신 하나님, 그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약속하신 것처럼 같은 말씀을 주셨다. 이에 힘입어, 취임식 때 여호수아 1장 16~18절 말씀을 두고 성도들과 서로 선서를 했다.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남편 목사님과 함께하심을 보이신 것처럼, 나와도 함께하심을 보여 달라고 요구했다. 나도 그날 성도들에게 이렇게 선포했다. “하나님께서 남편 목사님과 함께하셨던 것과 같이 저와 함께하신다는 증거를 분명히 나타내 보일 것입니다. 여러분도 하나님 말씀이라면 반드시 제 말에 순종해 주십시오.” 2004년 10월 8일, 남편의 뒤를 이어 순복음진주초대교회 2대 담임목사로 취임했다.

▒ 아바드리더시스템이란
주님께서 보내 주신다는 보혜사는 바로 ‘성령’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요 16:7) 예수님이 떠나신다는 말을 듣고 근심하는 제자들에게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제자들은 3년이라는 세월을 주님과 함께하며 그가 행하시는 수많은 이적을 보았다. 이를 통해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았고 이를 증거하시는 예수님과 함께하는 것이 너무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떠나는 것이 유익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제자들은 근심한다. ‘주님이 떠나가시는 게 무슨 유익이라는 말인가.’

그 뜻을 알 수 없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깨달음을 주신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을 보라. 하나님은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 산에 이르렀을 때, 불 가운데 강림하셔서 율법을 반포하신다.(출 19) 우뢰와 번개와 큰 나팔 소리와 산에 연기가 자욱할 때, 그들은 캄캄한 가운데서 나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이스라엘 백성은 너무나 두려워 떨며 모세에게 말한다.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출 20:19)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들으면 죽을 것 같으니 모세가 듣고 대신 전해 달라는 것이다. 그러면 그것을 다 듣고 행하겠다고 말한다.(신 5:27)

백성들의 말을 들으신 하나님은 어떻게 하시는가. 그 말이 옳다 하시고 다만 한 가지 조건을 말씀하신다. ‘모세가 전하여도 하나님이 전하시는 것처럼 항상 떨며 두려움으로 말씀을 받고 지켜 행하라’는 것이다.(신 5:28~29) 그 후로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셨다.

그뿐만 아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나온 날부터 가나안에 들어가기까지 40년 동안을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셨다. 이처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직접 인도해 가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속하신 땅 가나안에 들어간 이들은 과연 몇 명이나 됐는가. 20세 미만 외에는 여호수아와 갈렙, 단 두 사람뿐이었다.

주님 시대에는 어떠했는가. 예수님의 제자들은 3년이라는 시간을 주님과 함께하며 주님이 행하시는 이적과 표적과 기사를 보았다. 예수님께 직접 가르침도 받았다. 그럼에도 제자들은 주님을 부인하고 돌아섰다.

예수님은 잡히기 전, 제자들에게 자신이 떠나가는 것이 유익이라며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주겠다고 약속하신다.(요 14:16) 보혜사는 헬라어로 ‘파라클레토스’다. 이는 변호인, 증인, 곁에 서서 격려하고 돕는 자를 뜻한다. 주님께서 가시면 이 보혜사를 보내주신다는 것이다.

그러면 주님께서 보내주신다는 ‘또 다른 보혜사’는 누구인가.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 14:26)

주님께서 보내주신다는 보혜사는 바로 ‘성령’을 말한다. 베드로를 보자. 죽을지언정 자신은 주님을 떠나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하던 그다. 그럼에도 한낱 대제사장의 여종 앞에서 두려움에 예수님을 부인했다. 저주하고 맹세까지 하며 세 번이나 부인했다.

그런데 성령을 받고는 어떻게 변화됐는가. 부인하기는커녕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 ‘하나님을 기쁘게 하랴, 사람을 기쁘게 하랴’며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행 4:19~20) 그 외 많은 제자가 성령을 받은 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에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행 12:2)

예수님과 같이 있어도, 직접 가르침을 받아도 부인할 수밖에 없던 그들이다. 그런데 성령을 받고는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말씀을 전할 수 있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이 떠나고 그들에게 보혜사 곧 성령을 보내주시는 게 유익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 성령을 마태복음 7장 7~11절에서는 ‘좋은 것’이라 말씀한다. 이 ‘좋은 것’을 누가복음 11장 13절에서는 ‘성령’이라 말한다. 얼마나 좋은 것이기에 성령을 가리켜 좋은 것이라 말씀하셨을까.

이경은 목사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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