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같은 아이, 가슴에 못묻어 수목장…” 방청석 눈물바다… 엄마는 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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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7.07.13. 오전 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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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피살 인천 초등생’ 어머니, 법정서 주먹 꼭 쥐고 눈물 참으며 증언

뽀뽀를 하고 학교에 갔다가 처참한 주검으로 돌아온 여덟 살 딸의 어머니는 법정에서 한 번도 울지 않았다. 딸을 죽인 범인 앞에서 어머니는 당찬 목소리로 선서하고 증인석에 섰다.

12일 오후 인천지법 413호 법정. 올 3월 인천의 한 공원에서 A 양(8)을 집으로 유인해 살해한 피고인 김모 양(17·구속 기소)을 바로 옆에 두고 A 양의 어머니는 증언 내내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기억을 더듬다 목소리가 떨릴 때마다 주먹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준비한 손수건을 꼭 쥐었을 뿐 눈에 가져다 대지도 않았다. 피고인석의 김 양은 1m 앞에 있는 A 양의 어머니를 쳐다보지 못하고 재판 내내 고개를 푹 숙였다.

○ “얼마나 보물 같은 아이였는지 알아야 한다”

A 양의 어머니는 딸을 마지막으로 봤던 날을 떠올리며 평소 딸에게 스마트폰을 쓰지 않도록 한 자신을 자책했다. 김 양은 “엄마한테 연락을 해야 하는데 전화기를 빌려줄 수 있느냐”며 다가오던 A 양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A 양의 어머니는 “스마트폰이 애들한테 안 좋다기에 최대한 나중에 사주려고 했다. 급할 때는 아이를 데리고 있는 아주머니한테 전화기를 빌리라고 가르쳤는데 이렇게 될 줄은…”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A 양의 어머니는 사건 당일 저녁이 되도록 딸이 돌아오지 않았지만 살아있을 것이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딸의 운명을 감지했던 순간을 담담히 설명하며 입술을 꾹 깨물었다.

“딸아이가 아파트로 올라가는 모습이 폐쇄회로(CC)TV에 잡혀서 내려오는 장면을 애타게 찾았는데 끝내 없더군요. 옆에 있던 형사님이 불쑥 전화 한 통을 받더니 갑자기 조용해졌어요. 이상하다 싶었는데 밖에 나갔던 남편이 울면서 들어오는 걸 보고 알았죠. 우리 딸 안 오는구나….”

바닥만 내려다보던 김 양은 A 양의 어머니가 장례식장에서 딸과 작별하던 순간을 증언하자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꼈다. A 양의 어머니는 “염하기 전 아이 얼굴을 봤는데 예쁘던 얼굴이 검붉은 색을 띠고 눈을 감지 못하고 있었다”며 “예쁜 옷을 입혀주고 싶었는데 (시신이 훼손돼) 잘라서 입혔다”고 말했다.

A 양의 어머니는 “3남매 중 막둥이인 우리 딸은 퇴근한 아빠에게 와락 안겨서 뽀뽀하고 고사리손으로 할아버지 할머니 안마를 해주던 아이였다. 개구지고 장난기 가득한…. 집에 가면 환하게 웃던 그 아이가 지금은 없다”며 읊조리듯 말했다. A양 어머니는 “부모는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데 그렇게 보낼 수가 없어 수목장을 했다. 언제나 같이 있어주려고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그렇게 보냈다”고 말했다. 순간 방청석과 취재진은 울음바다가 됐다.

정면의 재판부를 바라보며 증언하던 A 양의 어머니는 이때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 피고인석에 있던 김 양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우리 막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 피고인이 알았으면 합니다. 그 아이는 정말 보물 같은 아이였습니다. 그날 누구라도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같은 일을 당했을 겁니다. 자기가 무슨 잘못을 한 건지 제대로 알길 바랐습니다. 피고인이 자신에게 맞는 벌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 “김 양과 박 양은 연인 사이”

A 양의 어머니가 증언을 마치고 퇴정하자 김 양은 한순간에 울음기를 걷어내고 안경을 고쳐 썼다.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고 변호인과 대화를 주고받기도 했다. 몇 분 뒤 공범인 박모 양(18)이 법정에 들어와 증인석에 앉자 김 양은 괴로운 듯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김 양은 지난달 23일 열린 박 양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박 양의 지시로 피해자를 살해했다”고 돌발 증언을 했다. 박 양에게 살인교사 혐의가 추가되면 박 양은 직접 살인을 저지른 김 양과 동일한 처벌을 받게 된다. 증언대에 선 박 양은 김 양에게 조금도 시선을 두지 않고 몸을 왼쪽으로 돌린 채 검사 쪽을 보며 증언했다.

검사는 김 양이 범행 열흘 전쯤 “박 양에게 기습키스를 당했다”며 지인과 나눈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공개하면서 “두 사람이 연인 사이가 맞느냐. 계약연애를 하기로 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박 양은 “김 양이 먼저 기습키스를 했다. 계약연애는 장난으로 한 이야기일 뿐 연인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김 양은 박 양의 무표정한 얼굴을 힐끗 보더니 심경이 복잡한 듯 당황하는 표정을 지었다.

검사가 이날 공개한 김 양의 진술조서에 따르면 김 양은 A 양을 살해하기 직전 박 양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 집 베란다에서 초등학교 운동장이 내려다보인다”라고 하자 박 양이 “그럼 거기 애들 중 한 명이 죽게 되겠네. 불쌍해라, 꺅”이라고 말했다. 검사가 “이 같은 사실이 있느냐”고 묻자 박 양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 “김 양, 아스퍼거증후군 관련 서적 탐독”

이날 재판에서는 김 양과 함께 수감생활을 했던 이모 씨가 증인으로 나와 김 양의 당시 언행을 낱낱이 증언했다. 이 씨는 “피해자 부모에게 사죄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하자 김 양이 ‘나도 힘든데 왜 그 사람들에게 미안해야 하냐’고 반문해 놀란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 씨는 이어 “김 양이 어떻게 여기서 20, 30년을 사느냐고 하소연을 하다 어느 날 변호사를 만나 정신병 판정을 받으면 감형된다는 얘기를 듣고 와서부터는 기분이 좋아져 콧노래를 불렀다”고 말했다. 김 양은 그날 이후 부모가 넣어준 ‘아스퍼거증후군(자폐증의 일종이지만 언어와 인지능력은 정상인 만성질환)’ 관련 서적을 탐독했다고 한다.

“심신미약 상태에서 저지른 우발적 범행”이라는 김 양 측 주장도 도마에 올랐다. 전문가 증인으로 나온 김태경 우석대 심리학과 교수는 “김 양 면담 결과 조현병이나 아스퍼거 가능성은 없으며 사이코패스일 가능성이 있다”며 심신미약으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대검 수사자문위원인 김 교수는 “김 양이 수감생활로 허송세월하거나 벚꽃을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슬프다는 말을 했다”고 증언했다.

김 양은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이 이어지자 변호인의 옷깃을 여러 번 잡아당기며 “반박해 달라”는 듯이 귓속말을 했다. 변호인이 “알겠다”고만 하며 반대신문을 하지 않자 김 양은 변호인에게 A4 용지 절반 분량의 메모를 적어줬다. 참다못한 김 양은 변호인 앞에 있는 마이크를 향해 “학교에서 교우관계가 안 좋았고 적응도 못 했다. 정신감정을 다시 받고 싶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김 양의 결심 공판은 다음 달 9일 인천지법에서 열린다.

인천=김단비 kubee08@donga.com / 차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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