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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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가 아닌 현실을 직접적으로 다루면서 현실의 허구적인 해석 대신 현실 그대로를 전달하는 영화. 이 영화들은 실제 사람과 공간뿐만 아니라 사건과 행동들에 관심을 갖는다. 영화에 현실을 넣으려는 행위는 현실을 어느 정도 바꾸어야만 하고, 현실로부터 선택한 것에 형태와 형식을 부여해야만 한다. 그래서 다큐멘터리는 감독이 기록한 현실을 어떻게 통제했는가의 관점에서 평가받는다. 어떤 다큐멘터리는 현실의 한 측면에 대해서 관객을 특정한 시각으로 설득시키기 위해 제작된다.

1930년대 페어 로렌츠(Pare Lorentz)의 ‘뉴 딜’(New Deal) 정책에 관한 영화가 그 예이다. 그러나 영화의 주장이 현실을 현저히 왜곡하면 영화는 선전 영화가 된다. 또 다른 다큐멘터리는 기본적으로 대중을 계몽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제작된다. 1930년대 영국에서 존 그리어슨(John Grierson) 그룹에 의해 만들어진 영화들이 그러한 경우이다. 1896년 뤼미에르(Lumière) 형제가 만든 영화의 다수가 현실을 윤색하지 않고 그대로 보여 준 일종의 다큐멘터리였지만, 현대적인 다큐멘터리는 1922년 처음으로 상영한 로버트 플래허티(Robert Flaherty)의 〈북극의 나누크〉(Nanook of the North)로부터 시작한다.

〈북극의 나누크〉는 이국적인 생활 양식을 매우 흥미 있게 묘사했고, 이후 메리언 C. 쿠퍼(Merian C. Cooper)와 어네스트 B. 쇼드색(Ernest B. Schoedsack)은 공동으로 〈초원〉(Grass, 1925)과 〈창〉(Chang, 1927)을 만들었고 플래허티는 〈모아나〉(Moana, 1926), 〈아란의 사람〉(Aran of Man, 1934)과 같은 영화를 만들었다. 어느 정도 연출한 것이었지만 플래허티의 영화는 이국적인 생활 양식에 초점을 맞추면서 주목할 만한 성취를 이뤘다. 플래허티는 장면 선택과 촬영, 편집에 있어서 미세한 기교로 원경에서 근경을 포착했고, 시각적으로도 시적 감흥을 만들어내면서 외국 문화를 환기시켰다.

러시아에서는 지가 베르토프(Dziga Vertov)가 〈키노 프라우다〉(Kino-pravda,1925) 시리즈에서 주목할 만한 테크닉을 실험했고, 이후 10년간 그의 기법은 러시아를 비롯한 다른 나라 다큐멘터리에 영향을 주었다. 베르토프는 표현주의자로 기록 영화의 본질은 편집이라고 믿었으며 〈카메라를 든 사나이〉(The Man with a Movie Camera, 1929) 등에서 주제적이면서도 급진적인 몽타주를 실험했다. 플래허티와 베르토프 이후 존 그리어슨은 단 한 편의 영화, 스코틀랜드 어부들에 대한 영화인 〈유망어선〉(The Drifters, 1929)만을 감독했지만 다큐멘터리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로 간주된다.

그리어슨은 본격적으로 다큐멘터리 운동을 일으켰고 1930년대 약 300편의 영화를 제작 지휘했다. 그리어슨 그룹의 영화는 영국 생활, 정부 기구, 사회적 문제들에 대해서 대중들을 교육시킬 목적으로 제작되었는데 일반적으로 뛰어난 기술을 선보였고, 미학적이기보다는 대체로 계몽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한편 미국 대공황 시기에 정부 지원을 받아 만들어진 영화들도 다큐멘터리의 중요한 흐름으로 기억된다. 대표적인 작품들로는 로렌츠의 〈대평원을 황폐화시킨 경작〉(The Plow That Broke the Plains, 1936)과 미시시피 계곡과 테네시 계곡의 공공사업에 대한 〈강〉(The River, 1937)이 있다.

2차 세계대전 동안에는 애국심을 고취하는 선전적인 다큐멘터리가 제작되었는데, 영국에서 만들어진 험프리 제닝스(Humphrey Jennings)의 〈발포가 시작됐다〉(Fires Were Started, 1943)와 미국에서 만들어진 존 휴스턴(John Huston)의 〈산 피에트로 전투〉(The Battle of San Pietro, 1944) 같은 작품들이 있다. 이후 다큐멘터리에서 가장 중요한 성과는 1960년대 프랑스의 시네마 베리테(cinéma vérité )와 미국의 다이렉트 시네마(direct cinema)에서 나왔다. 두 운동은 텔레비전 뉴스와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로부터 영향을 받았고, 가볍고 휴대가 가능한 새로운 장비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이 운동은 그리어슨이 중시했던 철저한 사전 계획과 세분화된 대본을 거부했고 이전 영화가 갖지 못했던 현실성과 직접성을 보여 줬다.

이 시기 다큐멘터리 감독들은 기동력 있는 장비를 이용하여 사건과 대상에게 접근했고 선입견이나 무리한 스토리 구성, 영화적 기법과 편집 방식을 배제하면서 서툴러 보이지만 인간 본성의 진실에 근접한 영화를 만들었다. 마르셀 오퓔스(Marcel Ophüls)의 〈슬픔과 동정〉(Le Chagrin et la Pitié, 1969)은 시네마 베리테 계열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영화 중 하나이며, 프레데릭 와이즈먼(Frederick Wiseman)의 영화들은 다이렉트 시네마 작품들 중 가장 유명하다. 또 다른 중요한 흐름의 다큐멘터리로는 제3세계에서 나온 정치적 다큐멘터리들이다.

이 계열의 작품으로는 아르헨티나의 정치적 부패와 군대의 집권에 대항해서 만들어진 페르난도 솔라나스(Fernando Solanas)와 옥타비오 게티노(Octavio Getino)의 〈시련의 시간〉(The Hour of the Furnaces, 1968)이 있다. 간혹 다큐멘터리는 후대를 위하여 역사의 연대기를 기록하기도 하며, 영화를 중요한 사료 차원으로 끌어올리기도 한다. 클로드 란츠만(Claude Lanzmann)의 〈쇼아〉(Shoah, 1985)가 바로 그런 영화이다. 〈쇼아〉는 9시간 분량이 두 편으로 나뉘어져 홀로코스트 희생자와 가해자의 기억을 기록한 영화이며, 비극적인 사건을 압도적으로 재현하는 대신, 시네마 베리테 스타일의 인터뷰로 재구성하고 있다.

다큐멘터리는 상업 극장에서 상영하기 어렵기 때문에 자금을 조달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공공 기관이나 기금의 후원을 받아 제작비를 조달한다. 하지만 다큐멘터리는 현실을 보다 밀접하게 다루면서 관객으로 하여금 주위 세계를 바라보도록 하고, 감성적으로 참여를 유도하면서 대중에게 접근하기도 한다. 바바라 코플(Babara Kopple)의 〈미국의 할란 카운티〉(Harlan County, U.S.A., 1976)가 좋은 예인데 이 영화는 광부들의 파업을 신문 기사처럼 기록한 것으로 인간 존엄에 대한 감동적이고 생생한 묘사를 담고 있다.

<유망어선>(1929), 감독: 존 그리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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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사전 2004. 9.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