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사로잡힌 맹획

七擒孟獲

중국상하오천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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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나라와의 싸움에서 참패를 면치 못한 유비는 영안(永安, 사천성 봉절현)에서 병이 들었다. 병세가 날로 위중해지자 유비는 성도에 있는 제갈량을 영안으로 불러와 후사를 부탁했다. 그리고 며칠 뒤에 유비는 세상을 떠났다. 성도로 돌아온 제갈량은 유비의 아들 유선(劉禪)을 황제로 세웠다. 후주 유선이 즉위한 뒤 남만왕(南蠻王) 맹획(孟獲)이 군사 10만을 거느리고 촉나라의 남부 변경을 침범했다. 225년, 제갈량은 조운(趙雲)과 위연(魏延)을 대장으로 삼아, 직접 50만 대군을 거느리고 맹획을 잡으러 남중(南中)으로 내려갔다.

촉나라군이 남으로 내려오자 남만왕 맹획은 직접 군사를 이끌고 싸우러 나왔다. 그런데 멀리서 촉나라군을 지켜보니 대오는 혼란스럽고 깃발은 어지러웠다. “다들 제갈량이 군대를 잘 지휘한다더니 헛소문이었구나.”

맹획은 코웃음을 치며 앞장서서 촉나라군을 공격했다. 촉나라 장수 왕평이 나와 맹획을 막았는데 몇 합을 싸우지 못하고 달아났다. 맹획은 단숨에 이십여 리를 추격했다. 그런데 갑자기 천지를 울리는 함성을 지르며 촉나라군이 돌격해 나왔다. 왼쪽에서는 장억(張嶷)이, 오른쪽에서는 장익(張翼)이 뛰쳐나오면서 맹획의 퇴로를 막았다. 남만의 군대는 대패했고 맹획은 필사적으로 포위를 뚫고 빠져 나왔다. 좁고 가파른 산길로 황급히 도망치자 촉나라군이 바싹 추격해 왔다. 산길이 너무 험해 말을 버리고 산을 오르는데 갑자기 북소리가 울리며 매복해 있던 위연의 군사 5백 명이 달려나왔다. 맹획은 꼼짝 못하고 사로잡히고 말았다. 맹획이 군막 안으로 끌려오자 제갈량이 물었다. “이렇게 끌려왔으니 이젠 할말이 없겠지요?”

“산길이 험해서 잡힌 것이지 싸움에서 잡힌 것은 아니오.”
“억울하다 이 말씀이오? 그렇다면 놓아주겠으니 한 번 더 싸워보겠소?”
“물론이오. 놓아만 준다면 내 다시 군사를 끌고 와 자웅을 겨루어보겠소. 그때도 잡히면 달갑게 굴복하겠소.”

제갈량은 즉시 결박을 풀어주고 맹획을 돌려보냈다. 영채로 돌아온 맹획은, 촉나라군에게 포로가 되었다가 풀려난 장수 둘에게 명해 나가 싸우게 했다. 그런데 그 둘은 싸움에서 패하고 돌아왔다. 맹획은 그들이 제갈량이 풀어준 은공에 보답하려고 일부러 져주고 돌아왔다며 곤장 1백 대의 벌을 내렸다. 곤장에 볼기가 터진 그 둘은 마찬가지로 포로가 되었다가 풀려난 군사 1백여 명을 이끌고 맹획의 군막으로 쳐들어가 술에 취해 곤죽이 된 그를 칭칭 묶었다. 그러고는 촉나라군의 영채로 달려가 맹획을 제갈량에게 바쳤다. 제갈량은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다시 사로잡히면 항복한다고 하지 않았소? 그래 지금도 항복하지 않겠단 말이오?”

그러자 맹획은 당당하다는 듯이 이렇게 대답했다. “이번에도 내 힘이 없어서 사로잡힌 게 아니잖소. 내 수하놈들이 나를 팔아먹은 거지요. 내가 왜 항복한단 말이오?”

제갈량은 그 말에 역시 빙그레 웃더니 맹획을 놓아주며 다시 싸워보자고 했다. 이렇게 제갈량은 맹획을 사로잡았다가는 놓아주고 놓아주었다가는 다시 사로잡기를 일곱 번이나 거듭했다. 맹획이 일곱 번째로 붙잡혀 군막 안으로 끌려오자 제갈량은 아무 말 없이 결박을 풀어주고는 다른 장막으로 가서 술을 마시며 숨을 돌리라고 했다. 그러고는 다른 사람을 보내어 맹획에게 이렇게 전했다. “승상께서는 그대를 만나기가 좀 무엇해서 오시지 못합니다. 그 대신 나를 보내서 그대를 풀어주라고 하셨습니다. 돌아가서 또 한 번 싸울 채비를 하시지요.”

그 말에 맹획은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다. “승상께서는 이 못난 맹획을 일곱 번이나 사로잡았다가 죽이지 않고 돌려보냈는데 고금에 이런 일이 어디 있겠는가? 승상께서는 이 못난 놈에게 은혜를 베푸실 대로 다 베푸셨다. 그 은덕을 모른다면 내가 어떻게 인두겁을 쓴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그러고는 제갈량 앞으로 나아가 무릎을 꿇으며 맹세했다. “승상의 하늘 같은 위엄을 기억하고 우리 남인들은 영원히 반란을 일으키지 않을 것입니다.”

제갈량은 맹획을 영원한 남인의 동주(洞主)로 책봉하고 촉나라군이 점령한 땅을 되돌려주었다. 맹획과 그의 가문 사람들은 감지덕지해하며 돌아갔고, 제갈량은 대군을 거느리고 성도로 돌아왔다. 그 다음부터 제갈량은 남만에 대한 우려를 없애고 일심으로 중원을 북벌할 준비에 몰두할 수 있었다.

이 군영은 지금의 운남성 보산 지구에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이곳이 제갈량이 맹획을 일곱 번 사로잡은 군영의 소재지라고 한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제갈량이 연노를 발명했다고 한다. 활갑에 화살 열 대를 넣고 연속 사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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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과 사건으로 보는 <중국 상하이 오천년사> 제1권. 중국인민정치현상회 산하의 역사ㆍ문화학자들이 오천 년 ...더보기

  • 저자

    전문 창작 집단으로서 중국인민정치협상회(中國人民政治協商會) 산하의 역사ㆍ문화학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지은 책으로는 『중국통사』, 『세계통사』, 『중화문명사』, 『세계문명사』, 『세계상하오천년』, 『중국고전명저감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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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옮긴이

    중국 연변대를 졸업하고 중앙민족대 대학원과 북경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현재 중앙민족대 교수이자 조선한국학연구소 소장, 국가일급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설야』, 『춘정』, 『봉황새 난다』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지낭』, 『서유기』, 『후서유기』, 『후수호전』, 『금병매 속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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