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시간 단축?'…노동계 겉으론 '찬성', 속내는 '복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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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7.03.21. 오후 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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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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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등 일부 제조대기업 민감한 반응
초과근무 임무보전 중기근로자 소득감소 우려
기본급 인상 논란 노사간 새로운 쟁점될 수도
노동계 "논의 기회 쉽지 않아 이번이 공론화 적기"

【서울=뉴시스】박준호 기자 = 정치권에서 불붙은 근로시간 단축 논란에 대해 노동계에서는 겉으로는 "단축해야 한다"는 원칙론을 펴면서도 파장이 큰 만큼 민감하게 반응하는 분위기다.

노동계 일각에서는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수당 감소 등을 우려해 업종이나 기업 규모별로 득실을 계산하는 등 '온도차'도 감지된다.

근로기준법은 1일 근로시간을 8시간씩 40시간으로 제한하는 대신 연장근로를 매주 12시간씩 허용하고 있다. 현행법상 주당 최대 근로시간은 52시간이 되지만 실질적으로는 지켜지지 않았다.

여기에는 고용노동부의 애매모호한 행정 해석이 한 몫한다.

노동부는 1주일에서 토·일요일(휴일)을 제외한 5일을 근로의무가 있는 날로 봤다. 이에따라 토·일요일 각 8시간씩 총 16시간의 초과근무가 허용되면서 주당 최장 근로시간은 52시간이 아닌 68시간(법정근로 40시간+연장근로 12시간+휴일근로 16시간)으로 현장에서 굳어졌다.

민주노총은 "노동부가 주당 최대 노동시간을 68시간이라는 불법 행정해석으로 심각한 혼란을 끼쳐왔다"며 "노동자들은 무급 초과노동을 강요당했고 엄청난 체불임금을 발생시켰다"고 지적했다.

노동계와 재계가 '1주'의 해석을 두고 주 7일이냐 5일이냐는 공방을 10년 넘게 계속하자 정치권이 '근로일'에 대해 토·일요일을 포함한 주 7일로 명시하는 내용을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에 나서면서 해묵은 갈등이 재연되고 있다.

노동계에서는 OECD 회원국가중 한국이 두번째로 긴 노동을 하는 만큼 근로시간은 일단 단축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행 근로기준법이 정한 노동시간이 주당 최대 52시간인 만큼 이를 두고 노동시간 단축이라고 우려하는 것은 오히려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근로기준법 제50조1항에는 1주간의 근로시간은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같은법 53조1항은 1주간 12시간을 한도로 당사자 합의에 따라 연장을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일하는 시간이 줄게 될 경우 야근이나 잔업, 휴일근무 등을 통한 각종 수당이 축소되거나 사라질 것을 우려해 근로시간 단축을 불안하게 보는 시선도 없지 않다.

특히 자동차, 조선 등과 같은 제조대기업에서 근로시간 단축에 반발할 가능성이 클 것으로 관측된다. 정치권에서 근로시간 단축안을 수면 위로 띄우자 당장 현대차, 기아차 등 일부 대기업노조에서는 법안 시행 가능성을 문의하며 민감하게 반응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임금이 낮은 일부 중소기업의 근로자들도 초과근무 등을 통해 임금을 보전해온 만큼 근로시간이 줄어들 경우 소득감소로 인한 생계 타격을 우려하고 있다.

중소기업단체협의회는 "급격한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한 근로자 임금 감소를 고려해야 한다"면서 "중기 월평균 임금감소폭은 4.4%로 대기업 3.6%에 비해 더 높아 영세사업장은 인력부족 현상을 해결하기가 더욱 어려울 것"이라며 "임금 격차로 인한 대기업 쏠림 현상도 가속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근로시간이 단축될 경우 향후 기본급 인상 논란이 노사간의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를 가능성도 없지 않다.

노동계의 한 인사는 "우리나라 대부분 노동자들은 기본급이 낮은 실정이라 적은 임금을 근무수당 등으로 채워왔다"면서 "근로시간이 단축되면 노동계에서 기본급 상향 조정 논의에 대한 요구가 많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근로시간 단축이 법적으로 정해지면 교대근무제 등의 유연근무제가 좀 더 활성화될 것이라는 낙관론도 있지만 반대로 비정규직만 양산하는 부작용을 우려하는 비관론도 나오고 있다.

사업주들이 기존 생산량을 맞추기 위해 직원을 추가로 채용해야 할 경우 정규직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건비 부담이 적은 비정규직만 채용하려들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주당 52시간으로 근로시간이 단축될 경우 추가 고용에 따른 인건비 등으로 기업들은 12조3000억원의 비용을 부담해야 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중 중소기업이 부담할 비용은 8조6000억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민주노총은 면벌(免罰)조항을 마련하는 것에 대해서도 반발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주당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단축하는 대신, 재계의 반발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300인 이상 사업장은 2019년 1월1일부터, 300인 이하 사업장은 2021년 1월1일부터 시행하도록 시행시점을 유예하는 방안 등을 검토중이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위법 사업주에 대해 면벌조항을 둔다면 불법 초과노동을 계속해 인정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며 "법을 지키지 않아도 처벌받지 않는다면 누가 법을 지키겠냐"고 반문했다.

이어 "면벌조항은 결국 불법 장시간 노동을 통해 배를 불려온 재벌대기업들에 대한 특혜에 불과하다"며 "불법에 면죄부를 주는 면벌조항은 노동시간 단축은 커녕 노동시간 연장이자 노동개악"이라고 비판했다.

한국노총은 공식적으로 입장을 밝히지 않았지만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원칙에는 공감하는 분위기다. 다만 정치권에서 각론을 두고 이견을 보이는 만큼 논의 과정이나 진행 추이를 좀 더 지켜본 뒤 구체적인 대응방침을 정하기로 했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정치권에서 아직 명확하게 결론을 내리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현재로써는 진행과정을 좀 더 지켜볼 예정"이라며 "다만 재계에서 비용부담을 이유로 근로시간 단축을 반대하는 건 정권의 눈치를 보며 수백억원 이상을 재단에 기부한 행태에 비춰볼 때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고 꼬집었다.

노동계 관계자는 "근로시간 단축이 노동계에 무조건 득이 될지 안 될지 섣불리 단언하기 힘들다"며 "사업장 규모나 업종에 따라 각 노조마다 처한 상황이 다른 만큼 입장이 다를 수도 있지만 근로시간 단축을 논의할 기회가 쉽지 않은 만큼 이번에 공론화할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pjh@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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