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찬 마음에 안들어 밥상 걷어 찼다"… 민주노총의 사면초가

입력
기사원문
신혜정 기자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민주노총 출신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
"대화 DNA 갖춘 건 한국노총 뿐"  
홍남기 부총리도 한국노총 찾아 힘 실어
"저도 민주노총 출신이지만, 이번 일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아직 사회적 대화의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29일 오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업무보고에 참석한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위원장은 인사말 대신 민주노총에 대한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민주노총이 스스로 제안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극복 노사정 합의안’에 불참한 데 대한 비판이다. 민주노총이 내홍을 이기지 못하고 노사정 합의 기회를 걷어차면서 22년만의 사회적 대화는 무산됐다. 경사노위는 지난 28일 민주노총을 제외한 나머지 주체들과 ‘노사정 협약’을 의결했지만, 이는 당초 계획했던 ‘노사정 대타협’보다 그 상징성과 영향력이 작을 수밖에 없다.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이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 위원장은 민주노총 내부 관계자들의 발언까지 인용하며 비판을 이어갔다. 그는 “민주노총 내부에서도 ‘반찬이 마음에 안 든다고 밥상을 걷어찼다’, ‘압도적 지지를 받은 직선 위원장을 정파들이 무시하고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고 언급했다. 나아가 “(김명환)민주노총 위원장께서 ‘이번에 (사회적 대화를) 책임지고 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 제가 한번 믿고 해보자고 했지만 성공하지 못해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민주노총이 없이도 앞으로 사회적 대화를 책임지고 해 나가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문 위원장은 민주노총의 전신인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 창설을 주도한 노동운동 1세대다. 그런 그가 공식 석상에서 민주노총에 대한 비판을 쏟아낸 건 사회적 대화를 주관하는 경사노위 위원장으로서뿐만 아니라 노동운동 선배로서 제1노총의 무책임을 간과할 수 없었다는 분석이다. 특히 문 위원장이 민주노총 내 정파갈등을 지적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문 위원장은 민주노총 금속노조 위원장 출신인데, 금속노조는 이번 노사정 대화 추진에 가장 강경하게 반대한 계파다.

고립 자초한 민주노총, 한국노총에만 손 내미는 정부



사회적 대화 자리를 걷어찬 민주노총은 벌써부터 정부의 주요 대화파트너에서 배제되는 모습이다. 이날 문 위원장의 송곳 발언이 화제가 되자 경사노위는 “문 위원장의 발언은 민주노총 참여와는 무관하게 합의내용을 잘 추진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 해명했다. 하지만 문 위원장은 “사회적 대화의 유전자(DNA)를 갖춘 건 한국노총조합총연맹(한국노총) 뿐”이라며 민주노총은 대화 상대가 아니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내가 절실히 필요한 게 있으면 상대가 절박해 하는 것 하나를 들어주는 사회적 대화의 자세를 갖춘 곳은 현재 한국노총이 유일하다”는 것이다. 민주노총이 고립을 자초한 결과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이날 한국노총을 방문해 김동명 위원장에게 “노사정 협약을 성실하게 이행해 달라”고 당부했다. 부총리급 정부 인사가 한국노총을 방문한 것은 전신 대한독립촉성노동총연맹(대한노총) 설립된 1946년 이후 75년만에 처음이다. 홍 부총리가 노사정 협약식 바로 다음날 이 같은 행보를 한 것을 두고 정부가 한국노총을 유일한 노동계 대화파트너로 명확히 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이날 김 위원장이 “정례적으로 만나자”고 제안하자, 홍 부총리는 “언제든지 만나길 바란다”는 호의적인 답변을 하기도 했다.

이번 일로 민주노총은 실리와 명분을 모두 잃었다는 비판을 안팎에서 받고 있다. 사실상 사면초가에 놓인 상황이다. 민주노총은 최근 조합원이 늘면서 한국노총을 제치고 제1노총이 됐지만, 노사정 대화를 거부하면서 정부에 정책을 제안하고 협력할 파트너십을 잃었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처럼 입지가 좁아지면서 강경파들이 노사정 합의 반대논리로 내세웠던 ‘취약계층ㆍ미조직 노동자 보호’ 대책 추진을 요구하기도 어려운 상황이 됐다. 한 노동계 인사는 “노조 총연맹이 필요한 이유는 제도적ㆍ정치적 수단을 통해 정책형성 주체로 기여하는 것인데 민주노총은 그 역할을 망각한 것 같다”며 “진심으로 취약 노동자를 위해 고민하기보다 내부 정치에만 골몰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한편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한 민주노총은 전날 '민주노총, 다시 총노동 투쟁전선을 형성하자'는 성명을 통해 "노사정 합의에 집약된 반노동 공세는 고스란히 살아있다"며 강경 투쟁을 예고했다. 이에 대해 사회적 대화 찬성파 측 관계자는 "(강경파)소수가 다수를 지도한다는 수령교시나 다름 없다"고 말했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네이버 채널에서 한국일보를 구독하세요!

[정치채널X] [뉴스보야쥬] [넷따잡] [뷰잉] 영상보기

한국일보닷컴 바로가기

기자 프로필

기후대응팀 기자. 지구는 인간이 없어도 살 수 있지만, 인간은 지구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사회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