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문화센터 강의를 다니다 보니 3세- 7세 자녀를 둔 엄마들을 주로 만나게 된다. 엄마들의 주된 고민은 자녀 훈육 문제인데 해야 할 일과하지 말아야 할 일을 가르치는 일이다. 하루 종일 "하지 마!"를 입에 달고 살아야 하는 엄마들에게 엄마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는 아이의 태도는 화를 참았다가 사소한 일로 폭발하게 되는 일상으로 이어진다.
3-7세 시기는 한 사람의 발달이 시작되면서 꼭 획득되어야 할 여러 발달과업이 있는 '결정적 시기'이다. 한 사람 성장의 여러 시기 중 가장 중요한 연령대인 셈이다. 그만큼 많은 지원과 돌봄, 발달단계에 맞는 양육이 필요하다. 이 시기 기초공사가 한 사람 전 생애에 많은 영향을 주고, 모든 관계에 토대를 이루기 때문이다.
부모들이 일정 금액을 출자해서 어린이집을 열고, 부모와 교사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공동육아에 아이들을 등원시킨 나는 큰 아이 훈육 문제로 오랫동안 고민해야 했다. 지금 돌아보니 아이에게 한계를 정해주고 규칙과 규율 안에서 자율성을 길러주는 훈육이 부족했다. " 하지 마!" " 안돼! " 이런 말을 싫어했던 나는 아이에게 금지어를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뭐든 한번 시도해 보도록 지지하고 격려하도록 키우고 싶었던 엄마의 욕구 때문에 훈육이 필요한 시기를 놓치고 친구들과 사회성을 키우고 함께 하는 놀이를 익히는 또래와의 사회화를 통해 주도성을 기르는 시기로 옮아갔다.
아이 몸의 발달 시기에 충분한 놀이가 필요하고, 교사와 아이들이 비교적 평등한 유대를 맺을 수 있다는 점만 보려 했던 것 같다. 그게 모두 엄마인 내가 받고 싶었던 교육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공동육아 어린이집 안에서 분명한 규칙과 훈육이 있었음에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니 아이 또한 잘 듣지 않았다. 모든 교육의 출발은 가정에서 시작된다는 말을 실감했다. 집에서 부모가 한계, 규칙, 규율을 익혀 보내지 않으면 아이는 무시하기 쉽다.
그러다, 큰 아이가 초등 입학하기 전 6-7세에 발도르프 교육을 만났다. 슈타이너는 자녀 발달단계를 자녀 양육에서 무엇보다 강조한 교육자다. 그 시기 뇌 발달이 곧 자녀 신체, 심리적 발달의 기초가 되기 때문에 발달단계에 따른 교육을 누구보다 강조했다. 뒤늦게 발도르프 교육을 만나면서 그제서야 아이에게 자율성을 주고 싶었으나 한계를 정해주지 않았던 엄마의 무지함을 깨닫게 되었다. 육아에서 늘 어떻게 키우는 것이 올바른지 혼란스러웠던 고민들이 그제서야 정리되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 자녀에게 필요한 교육은 자녀의 현재 진행형 발달을 지원하는 것이어야 하고, 발달단계는 아이마다 일정 정도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일반적인 양육기술과 훈육의 방법 등과 같은 교육을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아이의 발달단계였다. 육아서, 육아 멘토, 유명 부모교육 전문가들의 의견과 정보를 참고는 할 수 있지만 언제, 어떻게 어떤 지원이 아이에게 필요할지는 아이를 관찰하고, 아이와 소통해야 한다는 깨달음이었다.
인간의 발달 단계에서
여러 발달 과업들이
가장 적절하게 획득되는
최적의 시기.
아동을 둘러싼 내적·외적
사건들이 아동의 발달에
최대의 영향을 미치는
특정한 짧은 기간을 말한다.
결정적 시기는 오랫동안
발달이론에서
유전과 환경의 영향 문제와 같이
발달의 속도와 밀접하게
관련되는 쟁점이다.
'발달에 있어 결정적 시기가 존재하는가,
존재한다면 그 영향력은
어느 정도인가’의 문제는
연구 대상이 ‘인간’이라는 고유성
때문에 쉽게 입증하기가 어렵다
.
발도르프 교육을 만난 이후로 아이의 발달단계를 중요시한다는 말은 결국 "육아의 답은 자녀가 갖고 있다"라는 의미임을 알게 됐다. 그리고 결정적 시기라는 건 아이 성장에 영향을 주지만 자녀 연령에 맞는 발달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다소 늦더라도 그 시기 채워지지 못한 애착, 훈육, 자율성 이런 것들은 노력에 의해 회복되고 다시 채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단호하면서 엄격한 부모 역할을 다시 할 수 있었다.
그때, 엄마인 나의 마음에는 미안함이 있었다. 무지에서 온 육아의 시행착오를 큰 아이가 고스란히 경험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과 그로 인해 친구관계, 어린이집, 놀이집단에서 불편하고 힘들었을 아이에게 부모로서 용서를 빌었다. 훈육이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면서 가르쳐야 할 과제가 아니었다.
아이가 친구관계를 잘 하게 하기 위해, 선생님이 알려준 규칙을 마음으로 잘 지키려는 아이다움을 회복시키기 위해, 단체 생활을 모두 편안하고 재미있게 배려하는 마음을 키워주기 위해 사랑으로 훈육을 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러면서 아이에게 네가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은 알겠지만 이렇게 가르치는 건 " 네가 행복하게 살아가도록 도와주기 위해 안되는 거야! " 단호하고 엄격하게 " NO, 안돼 "를 할 수 있었다.
< 선배 욱 맘의 분노 처방 >
1. '결정적 시기'를 놓치면 안 된다는
말에 너무 매이지 말아라
'결정적 시기'의 중요성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부모를 조급증으로 몰아세우면 의심해보길 바란다. 주로 '결정적 시기'를 자녀의 조기교육에 적용해서 때늦게 후회하지 말라고 걱정하게 한다. '결정적 시기'는 언어뿐 아니라 신체, 정서적 발달단계 모두를 포함한다. 사람의 성장이란 이미 유전적으로 갖고 태어난 발달과 환경의 영향으로 키워지는 발달, 두 종류가 있다. 어른들이 너무 조급해 하지 말고 기다리면 다 될 거야! 이렇게 말하는 건 유전적으로 갖고 태어난 발달을 의미한다. 애착, 훈육, 자율성 이런 욕구들은 환경의 영향으로 충분히 채워지면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 발달로 이어지는 발달들이다. '결정적 시기'를 놓쳤다 하더라도 성장은 계속된다. 즉 다음 발달단계로 넘어가 그 시기 발달에 집중한다는 말이다. 자녀 발달에 놓친 점이 있다면 조급하게 여기지 말고 채우는데 집중하면 된다. 사람에게는 회복탄력성이 있어 채워지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 싶게 회복된다.
2. ' 결정적 시기'를 놓친 결핍이 언제 채워지나? 조급함은 금물
자녀와 충분한 애착이 형성되지 못한 경우, 자녀가 유치원을 가거나 학교에 갈 때 떨어져 있지 않으려 할 경우가 있다. 부모는 충분히 돌봐주고 사랑을 줬다고 생각하는데 아이가 불안해하고 친구들과 놀이에 집중하지 못하면 많이 힘들고 귀찮다. " 언제까지 이렇게 아이를 돌봐야 하나?" 육아가 지치고 힘들어 우울감에 빠질 수 있다. '결정적 시기'를 놓친 경우, 자녀 연령보다 더 긴 시간 동안 사랑을 쏟아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좋다. 부모가 조급함과 기대를 갖고 있다고 아이가 느끼면 시간이 훨씬 오래 걸릴 가능성이 높다. " 언제까지 이렇게 아이를 직접 등원시켜야 해요?" 답은 아이가 엄마를 더 이상 찾지 않을 때 까지다. 이제 충분히 채워졌으니 친구들이랑 놀래요! 하면서 엄마랑은 눈도 마 추치지 않고 쏜살같이 친구들 속으로 달려가는 순간이다. 엄마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면 애착과 관련된 결정적 시기가 채워졌다고 볼 수 있다. 모든 일이 그렇듯 부모의 조급함은 아이에게 불안감을 준다. 아이는 채워지면 더 이상 부모 곁을 맴돌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