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아이돌 사관학교? 서울공연예술고는 교장 일가 ‘비리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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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9.01.27. 오후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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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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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청, 감사 후 “교장 파면하라”… 채용비리 의혹 등 수사 의뢰도
지방자치단체 보조금 횡령과 가족 채용 등 비리로 서울시교육청이 수사 의뢰를 결정한 서울공연예술고의 모습. 이 학교가 부적절한 행사에 학생을 동원해 공연하게 했다는 의혹도 조사 결과 사실로 드러났다. 서울공연예술고 홈페이지 캡처


서울시교육청 조사에서 드러난 ‘아이돌 사관학교’ 서울공연예술고의 실체는 교장 일가의 ‘비리 백화점’이었다. 박모 교장은 아내와 아들, 딸을 직원으로 채용하고 교사 인사를 마음대로 결정했다. 학교 건물의 한 층을 집으로 쓰는가하면 학교 예산으로 차 기름값과 휴대전화 요금을 냈다. 본래 목적대로 사용되지 않은 예산은 교육청이 확인한 것만 1억6000여만원이었다.

교육청은 27일 181쪽에 이르는 ‘서울공연예술고 조사 결과 보고서’에서 “학교회계 집행이 전반적으로 불투명하게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학생들의 국내 공연으로 발생한 수입 872만원은 법인 계좌가 아닌 박 교장의 아내 행정실장 A씨의 개인 계좌로 입금됐다. 해외 공연의 경우는 수입이 있었는지조차 확인되지 않고 있다. 교육청은 “해외 공연은 2016년부터 7차례 열렸는데 입출금 내역을 확인하기 어려워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기로 했다”고 했다. 학부모들은 ‘일본 공연 때 오키나와 시에서 현지관광 비용 등으로 1000만원을 찬조했는데 학생들은 오히려 자비 60만~80만원을 들였다’며 학교 측의 수입금 횡령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박 교장은 학교법인 소유 차량을 개인적으로 사용하고 지난 4년간 기름 값과 통행료 816만원을 학교 돈으로 지불했다. 같은 기간 휴대전화 요금 273만원도 학교 예산으로 냈다. 교육청은 “이외에도 캠프지도비, 강사료 등 아무 근거 없는 명목의 수당으로 교장과 그의 아내 행정실장에게 4567만원이 부당 지급됐다”고 덧붙였다.

서울공연예술고는 ‘박 교장 가족의 왕국’처럼 운영됐다. 지난해 교원 채용에서 최종 4명이 합격했는데 이 중 한 명은 교장의 딸이고 다른 두 명도 학교 관계자의 지인으로 확인됐다. 교육청은 응시자의 지원 서류, 면접 결과 등을 요청했으나 ‘이미 파기됐다’는 답변을 들었다. 서류를 파기한 행정실 직원은 박 교장의 아들이다. 교육청은 “비위사실을 은폐하려 서류를 고의적으로 파기하지 않았다고 단정하기 어려워 수사를 의뢰키로 했다”고 했다.

박 교장 일가는 학교 건물을 개조해 집처럼 거주하면서 전기·수도요금 등을 내지 않았다. 교육청은 “1층 숙직실, 5층 법인실, 지붕층 기자재실에 씽크대 등 취사시설을 갖춘 후 2015년부터 지난해 9월까지 교장 등이 거주했다”고 밝혔다. 시설을 개조하는 과정에서 5층 여학생 화장실 천장에서 물이 새 학생들이 피해를 입었다.

박 교장의 전횡이 가능했던 건 그가 행정실장 등 학교의 주요 직책에 가족을 장기간 앉혀 왔기 때문이다. 2009년 교장이 된 그는 사립학교법상 중임제한 조항을 어겼다. 사립학교 교장의 중임은 1차례(8년)로 제한된다. 교육청과의 두 차례 소송에서 모두 패소했지만 여전히 교장 자리를 지키고 있다. 교육청은 “박 교장이 자신의 아내인 행정실장을 통해 정관을 변경, 정년 규정을 무력화했다”며 “그의 집권이 장기간 지속될 우려가 있다”고 했다.

교장 일가의 집권 아래 학생들은 부적절한 공연에 동원되고 학습권을 억압당했다. 이 학교 학생들은 2017년부터 2년간 10차례 교장 가족의 사적 모임 행사에 동원됐다. 교육청 관계자는 “박 교장 아내 출신 대학의 동문회 공연 등 지극히 사적인 모임만 10차례”라며 “군부대·지방자치단체 행사까지 합하면 외부 행사 차출 횟수는 훨씬 더 늘어난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공연 차출로 조퇴, 결석 처리돼 수업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학생들은 교육청 조사에서 공연 불참 시 보복이 두려웠다고 진술했다.

일부 학생은 불법촬영을 당하고 성희롱 발언을 들었다. 한 학생은 “한 고등학교에서 공연이 끝나고 옷을 갈아입으려 하는데 남학생들이 화장실까지 따라오고 계속 손을 잡아달라고 했다”고 했다. 다른 학생은 “교회 찬조 공연에서 누군가가 무대 바로 앞에서 내 춤 영상을 찍어 인터넷에 올렸다. 학생들이 ‘몇 분 몇 초 봤냐’고 품평하며 영상을 돌려봤다”고 답했다. 교육청은 “학생 외부 공연에 따른 문제가 중대해 신속한 대책 수립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학부모회와 학생이 이 같은 문제들을 폭로하려 하자 교장 측은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 입막음을 시도했다. 기존 학부모회를 탄핵하고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인사들로 학부모회를 새로 구성한 정황이 발견됐다. 교육청의 설문조사를 도와준 2학년생에 대해 보복성 징계위원회도 열었다.

교육청은 지난해 8월 공익제보센터를 통해 서울공연예술고의 회계 부적절 처리, 채용 비리, 학생의 사적 행사 동원 등 관련 의혹을 접수하고 10월 실태조사에 나섰다. 지난 10일 실태 조사를 최종 마무리하고 교장 파면과 행정실장 해임 등 처분 요구를 학교와 재단에 통보했다.

박 교장은 교육청 조사 결과를 모두 부인하며 이의를 신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외부 공연 중 어느 것을 사적으로 볼 것인지는 관점의 차이”라며 “구로구 보조금도 우리 기준으로는 학생들 프로그램에 썼다”고 말했다. 채용비리 의혹에는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서류를 폐기한 것일 뿐”이라고 했다.

안규영 박재현 기자 ky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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