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판 기둥·분리대… 두드러지지 않아도 제 역할 하는 사물에 주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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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남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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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보이지 않는 99% | 로먼 마스·커트 콜스테트 지음, 강동혁 옮김 | 어크로스

많은 사람은 멋진 건물이나 풍경 등 관광안내서에 나올 법한 랜드마크를 중심으로 도시를 바라보는 데 익숙하다. 로먼 마스와 커트 콜스테트의 책 ‘도시의 보이지 않는 99%’(원제 The 99% invisible city)는 그 제목처럼 눈에 보이는 것들이 아닌, 일상 속에 감춰진 도시의 모습에 관심을 기울일 것을 제안한다.

저자들은 우선 두드러지지 않으면서도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 도시의 사물들에 주목하라고 말한다. 비바람에는 잘 버티되 차가 부딪치면 쉽게 부러지도록 고안된 교통표지판 기둥, 자동차가 충돌할 경우 제자리로 돌아가도록 각도를 맞춰 놓은 급커브 구간 분리대, 지하철이나 지하터널 환기구로 활용되는 도심 속 위장 건물들, 과속을 막기 위해 다양하게 설치된 방지턱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공공디자인의 영역에 속하지만, 저자들이 주목하는 것은 사물 자체가 아니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디자인을 이야기할 때 아름다움에 대해 주로 말하지만, 우리가 만들어낸 세상에서 더욱 흥미로운 부분은 우리가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고 역사적으로 어떤 제약과 드라마를 겪었는지에 관한 것이다.”

실제로 책에는 도시가 현재의 모습을 갖기까지 전개된 수많은 성공과 실패 이야기가 가득하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더럼의 노퍽서던-그레그슨 거리에 있는 다리는 3.6m 높이까지의 자동차만 지날 수 있게 설계돼 한때 트럭 지붕을 긁어버리는 것으로 악명 높았다. ‘깡통따개 다리(Can opener bridge)’라는 별명이 붙은 이 다리는 관료주의의 폐단을 상징한다. 뉴욕 맨해튼 휴스턴가의 남쪽(South of Houston street)을 뜻하는 ‘소호(SoHo)’ 지역은 성공한 도시재생의 표본으로 꼽히지만, 임대료 상승으로 원주민이 쫓겨나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책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는 도시가 누군가의 완벽한 계획으로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그곳에서 생활하는 많은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고 고쳐지는 공간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결국 도시의 변화는 정부의 ‘하향식 행정’과 시민들의 ‘상향식 개입’의 만남과 토론, 타협의 산물인 셈이다. 504쪽, 1만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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