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훈의 차이나 시그널]사드로 시작해 코로나로 끝나나…중국 한한령 해제 가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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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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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만에 재등장한 GD 광고, 중 전역 강타
후난 TV 한중 번역가 채용...7월부터 시작
중 동영상플랫폼, 최신 한국 드라마 개방
“한한령 해제, 中 내수경제 악화 돌파구”
지드래곤(GDㆍ권지용)이 나온 중국 차파이 음료 광고. 충칭시 대형 쇼핑몰 LED 전광판에 걸렸다. [중국 농푸샨촨 웨이보]

‘GD가 중국을 밝혔다, 밤하늘만 빼고.’

지난 1일 중국 광저우 최대 번화가 톈허 지구 쇼핑몰. 시크한 표정의 빅뱅 멤버 지드래곤(GD·권지용)이 음료수를 들고 있는 사진이 건물 전면 대형 스크린에 걸렸다. 중국 음료업계 '큰손' 농푸산촨(農夫山川)의 과즙 음료 ‘차파이’(茶∏) 광고다.

광고 규모는 대대적이다. 충칭·항저우·청두·창사·우한 등 권역별 주요 도시 시내 중심가에서 동시에 시작됐다. 버스와 지하철도 GD의 사진으로 도배됐다. 항저우 건국북로역은 에스컬레이터부터 승강장까지 전 역사에 그의 광고만 볼 수 있도록 사진이 걸렸다. 대륙 스케일이다.

항저우시 지하철역에 설치된 지드래곤의 음료 광고 간판. 지하철역사 에스컬레이터부터 승강장까지 전 구간에 부착됐다. [중국 농푸샨촨 웨이보]

지난 2016년 한국 정부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이후 중국에선 한국 연예인들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한국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도 중국 TV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4년 만에 재등장한 GD의 등장은 한한령 해제의 신호탄으로 해석되며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중국 웨이보에 올라온 후난 TV 한중 번역가 채용 공고. 7월 말부터 한국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 번역 작업이 시작된다고 알렸다. [웨이보 캡쳐]

한한령 해제 분위기는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지난 7일 중국 웨이보(微博·중국식 트위터)에 한국어 번역가를 찾는다는 채용 공고가 올라왔다. 후난(湖南) 위성TV가 한·중 번역 최고 전문가를 찾고 있다면서다.

채용 공지에 따르면 "업무 시작은 7월 말부터 시작하며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 중심으로 연구 개발과 회의 병행, 업무 장소는 베이징"이라고 돼 있다. 시진핑(习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이 올 하반기로 예상되는 점을 감안하면 후난 TV가 한국 드라마 등의 수입을 사전에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되는 대목이다.

후난 TV는 한국 드라마 ‘대장금’을 처음 방영해 1억6000만 명의 시청자 수를 기록하며 한국 드라마 열풍을 처음으로 끌어낸 중국 매체다. 중국 후난성 성도인 창사에 있는 중국 최초의 종합 미디어 그룹으로 7개의 지역 TV 채널과 4개의 라디오 방송을 소유하고 있다.

2013년 MBC의 ‘아빠 어디가’, 2015년 ‘나는 가수다’의 판권을 사들인 뒤 중국판으로 리메이크해 1조원 이상의 수익을 올리기도 했다. 이후 사드 사태 이전까지 저장 TV가 SBS의 '런닝맨'을, 베이징 TV가 JTBC의 '히든싱어' 등의 예능 리메이크 버전을 내놓으면서 한류가 본격화됐다.

이 때문에 후난 TV의 움직임은 한한령 해제 기류를 읽고 기존 한국 매체와의 네트워크를 이용해 인기 콘텐츠를 선점하려는 의도로 읽히고 있다. 베이징 채용 업체 관계자는 중앙일보에 "한한령이 실제로 해소되고 있는 분위기라고 볼 수 있다"며 "관련 채용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 최대 동영상 플랫폼 유우쿠에 올라온 최신 한국 드라마. tvN '사랑의 불시착' 등 올해 2월까지 방영된 최신 한국 드라마들이 올라오고 있다. [유우쿠 홈페이지 캡쳐]

중국 최대 동영상 플랫폼 중 하나인 요우쿠(优酷·중국식 유튜브)에도 한국 드라마 최신작들이 하나둘 올라오고 있다. 지난해 tvN에서 방송돼 최고 시청률 21.7%까지 올라간 현빈·손예진 주연의 ‘사랑의 불시착’ 16부작이 최근 업데이트됐다. JTBC 드라마인 이정재 주연의 ‘보좌관 1·2’, KBS2의 ‘99억의 여자’ 등 올해 2월까지 방영된 한국 인기 드라마도 이제 중국 사이트나 앱을 통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아직 전체적인 분위기는 아니다. 중국인이 즐겨 찾는 텅쉰스핀(腾讯视频)과 아이치이(爱奇艺) 홈페이지에선 최신작은 올라오지 않고 있다. 2016년 방영된 '응답하라 1988'이나 중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은 '태양의 제국'(2016년), '별에서 온 그대'(2014년) 등이 여전히 맨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사드 사태 이전 수입된 한국 드라마가 지금도 방영되고 있는 셈이다.

한·중간 문화콘텐츠 수출입 업무를 하는 한 업계 관계자는 "현재 상황은 한한령 해제의 개념을 넘어서고 있다"며 "한국 드라마를 모색하는 건 자신들의 수익 구조 재편과 맞물려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 최대 엔터테인먼트 회사로 알리바바와 텐센트의 투자를 받는 화이브라더스(华谊兄弟)는 2012년 상장 이후 최근 수익률이 -360%까지 떨어졌다. 고위험 고수익 구조인 콘텐츠 투자 사업이 고정 수익을 담보하기 어려운 데다 코로나19 상황까지 겹치며 휘청거리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중국에선 본격적으로 MCN(멀티채널 네트워크) 방식의 사업 구조 개편도 진행되고 있다. 콘텐츠 온라인 소비에서 그치지 않고 테마파크, 쇼핑몰과 결합해 오프라인상에서의 판매로 이어질 수 있게 하는 방식이다.

이 관계자는 "중국 전체가 힘들고 내수 경제를 활성화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엔터테인먼트 기업들도 큰 위기에 처해 있다"며 "이러다 보니 한한령 해제라는 관점보다 뭐든 새로운 판을 짜서 사업을 확장시키는 데 관심이 큰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중국 정부가 5G를 선도하는 것도 한한령 해제의 동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4세대 LTE보다 처리 속도는 20배, 처리 용량은 최대 100배로 늘어나는 5G 기술로 인해 미디어 콘텐츠 수요도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드로 시작된 한한령이 코로나19로 인한 중국 경제 돌파구로 '해빙'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하지만 사드 사태 이후 중국 정부의 비공식 제재로 한국인들이 받은 정서적 상처도 적지 않다. 한국 내 혐중 정서가 여전하다는 점은 중국이 풀어야 할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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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적 시각으로 접근하겠습니다. 팩트 취재에 집중하겠습니다. 깊이있는 보도로 나아가겠습니다. 박성훈 중앙일보-JTBC 베이징 특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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